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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8-14 (찬양: 이와 같은 때엔)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2.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롬 1:8-14
모든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꿈이나 계획한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이 계획한 일을 잘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하고 계획하고 목표를 가지고 달려갔는데도 그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들이 앞을 가로 막을 때가 있습니다.
[파블로프 피아니스트] 미국에 ‘그레고리 파블로프’라고 하는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그는 18세에 촉망 받는 젊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피바디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받고 각종 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많은 연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1986년 ‘모스코바의 차이콥스키 경연대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 대회는 올림픽처럼 사 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대회인데 그는 이 대회를 위해 지난 10년 동안 전심을 다해 연습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수상을 하면 소감을 말하기 위해서 ‘러시아어’로 수상 소감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경연 하루 전날 모스코바 시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 왔는지 ‘벌 한 마리’가 그의 새끼 손가락을 쏘았습니다. 손가락이 퉁퉁 부어 오르고 감각을 잃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하루를 남겨놓고 벌 한 마리 때문에 지닌 십 년간 준비했던 그의 평생의 꿈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꿈은 준비하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면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길이 막힐 때도 있고, 꿈이 좌절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추진해야 될 기회가 왔는데,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데, 갑자기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 때문에 ‘나아갈 길’이 막혔던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직장이든 진학이든 사업이든 결혼이든, 갑작스런 일로 인해 내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가는데도 그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꿈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꿈’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데도 길이 막혀서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의 이해
오늘 본문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꿈을 꾸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사도 바울’이 나옵니다.
[13절]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그런데 이러한 사도 바울도 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과 마케도니아 지역과 유럽과 아시아 전역을 다니면서 수십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마음 속에 떠나지 않는 열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는 여러 번 방문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바울은 ‘이방의 사도’로서 당시의 제국,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로마는 그 당시 세계 중심이었고, 정치 문화 경제 모든 것이 로마의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 속에는 로마를 정복하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경유하여 당시 땅 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 즉 지금의 ‘스페인’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은 관광이나 비즈니스가 아니고 오직 한 가지 ‘복음’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는데 로마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여기에서 ‘길이 막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이 로마에 가는 길을 막으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막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까지는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통해서라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사도 하나님의 뜻을 잘 감당하는 능력 있는 사도의 삶에도 ‘막힌 길이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도 얼마든지 길이 막힐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길이 막힌 것이 아니라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그것을 통과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길이 막혔을 때에 ‘세 가지의 중요한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이 새롭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본문을 통해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해야 할 ‘세가지 중요한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것을 우리 삶의 적용한다면 우리를 막고 있던 길들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이 길을 통과했는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들어가며
[쿠시너] ‘헤럴드 쿠시너’(H.S. Kushner) 목사님이 쓴 책 중에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쿠시너 목사님은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었고 훌륭한 목사로서 모든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기쁘고 보람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3개월된 어린 아들이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조로증’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늙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살이 되기 전에 팔순 노인처럼 늙어 버리고 더 이상 세상에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어버이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나는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나는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 했는데, 믿음으로 살려고 했는데 내게 왜 이런 고난이 찾아와야 하는가?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 고통을 왜 내가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며 오랜 시간을 씨름하게 됩니다.
기도를 마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인생의 모든 고난은 나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이 땅에 우연한 일은 없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가 안되지만 이 고통 가운데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다. 셋째, 길을 막으신 하나님은 다른 길을 주신다. 하나님은 슬픔과 기쁨을 병행해 주시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땅의 문을 닫으실 때에 하늘 문을 여신다. 한가지 문을 닫으시면 다른 문을 열고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문을 닫으실 때에 다른 문을 열고 계십니다. 문제가 주어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길이 막힐 때에 다른 길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문제는 있게 마련이고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를 푸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긁어 부스럼형’입니다. 자기 재주, 경험, 인간적인 방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이리저리 뛰다가 더 문제를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절망형’입니다. 티끌만한 문제만 있어도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세 번째 유형은 ‘백치형’입니다. 문제가 있으나 없으나 밥 잘 먹고 잠 잘자고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유형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아주 쉽게 문제를 푸는 ‘지혜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지혜를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에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 인생의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바울은 길이 막혔을 때에 기도했습니다.
[8절]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먼저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먼저’라는 말은 '프로포토 프로토스'인데 '무엇보다 먼저'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부터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은 ‘모든 일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감사’는 신앙이 성숙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로마에 그리스도를 믿은 신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보지도 못한 제국의 수도에 ‘벌써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였습니다.
[9절]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그리고 사도 바울은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막혔다고 해서 로마로 가는 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10절]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어떻게 하든지’ 즉 로마로 가기 위해 하나님께 모든 방법을 간구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것’을 확고한 목표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듯이 바울은 결국 로마에 들어갑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배 삯 한 푼 내지 않고 최단 시간에 공짜로 들어갑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276명의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로마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이 복음 전파로 인해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아갈 길이 막히는 상황에 찾아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뜻대로 하려고 했다면 그는 로마 시민권자였고 아무 배가 타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함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가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좋은 길 얻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베스트’ 즉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최상의 길을 가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의 목적을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뜻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나의 뜻, 나의 계획을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길’이 어디 있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경우에는 내 뜻을 하나님께 승복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 최상의 길을 주신다고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토스카니니] 세계적인 명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시력이 나빠서 연주 때마다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외워 버렸습니다. 그 이후 이것이 습관화 되었고 오케스트라 특성상 조화를 이뤄야겠기에 다른 파트 악보까지 모조리 외워버렸습니다.
한번은 연주를 목전에 두고 지휘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득이 대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지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논 끝에 악보를 모조리 외우고 있는 토스카니니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어렵지 않게 모든 곡을 잘 소화하여 연주를 마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스카니니가 ‘세계적인 명 지휘자’로 발 돋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나의 나쁜 시력이 나를 명 지휘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문을 닫으실 때에 다른 문을 열고 계십니다. 문제가 주어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길이 막힐 때에 다른 길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스터 키’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는 문들을 열고 만사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기도’입니다. ‘God is the Key!’ 하나님은 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Bible is the Key!’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Pray is the Key’ 기도는 인생의 막힌 길을 여는 마스터 열쇠입니다.
절망 중에 있을 때 기도하게 되고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 듣기’ 입니다. 이 음성이 들리는 순간 믿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놀라운 능력을 부여 받게 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최상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때가 가장 최상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최상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값지고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가장 필요합니다.
두 번째 가고자 하는 목적을 점검했습니다.
[11절]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사랑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견고케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은사’는 ‘방언이나 예언이나 통변이나 병 고치는 것’과 같은 어떤 특별한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교회에 꼭 필요했던 ‘복음 진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에서 13권을 기록했습니다. 신약성경의 약 절반 정도를 바울이 썼습니다. 그런데 13권의 서신서 가운데 두 권 즉 ‘롬 ’과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렇지만 로마 교회가 바울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사도 바울의 선교에 대한 소식을 듣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에 꼭 필요한 ‘복음 진리의 내용’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그들이 견고하게 연합해 서로 힘있게 세워주기를 소망했고 서로가 ‘상호 격려’를 얻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 교회는 사도 바울의 방문 이후에 어떤 교회보다 강한 교회가 됩니다. 지금도 로마를 방문하면 ‘카타콤’이라고 하는 그 당시 성도들이 핍박 중에도 살았던 그 집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로마교회는 장차 급박한 핍박 가운데도 불구하고 강한 교회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복음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를 가고 싶어 했던 이유는 ‘관광’이나 ‘개인적인 이득’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또는 ‘버킷 리스트’ 즉 ‘죽기 전의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어서 가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가고자 하는 목적은 복음을 통해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그 가운데 복음의 열매가 계속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길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그 길은 정당한 길인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인지? 다시 한 번 목적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고 계속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빠르게 길을 수정해야 합니다.
[조니 에릭슨 타다] 조니 에릭슨 타다는 미국에서 ‘수영 선수’로 촉망을 받았고 미국의 올림픽 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체사피크 만’(Chesapeake Bay)에서 다이빙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그녀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수심이 너무도 얕은 곳이었습니다. 그것을 전혀 모르고 힘차게 다이빙을 한 그 녀는 그만 바위에 머리가 부딪치면서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로 인하여 어깨 뼈 이하의 신체를 전혀 쓸 수 없는 심각한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밥도 먹여주어야 하고 몸도 씻겨주어야 하며 대소변도 치워주어야 하는 비참한 인생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하루아침에 침대 위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신체마비 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꿈꿨던 모든 꿈이 순식간에 다 부서졌습니다. 나아갈 길이 완전히 막혔습니다.
십대의 어린 나이에 그러한 충격을 받았으니, 그 마음은 온갖 고통과 아픔과 절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너무도 괴롭고 힘들어서 죽으려고 여러 번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좋은 언니는 그녀를 신앙으로 격려하고 ‘휠체어’를 타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던 중 ‘캐더린 쿨만’이라는 유명한 부흥사가 와서 치유 집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분에게 한번 안수를 받으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 앞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기 않고 휠체어를 타고 자기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그 때 자기의 마음이 ‘베데스다 못 가’에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38 년 된 환자 같은 심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3-4시간 이상을 기다렸음에 불구하고 그 목사님은 다음 집회를 위해 자기에게 안수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화가 났고 원망과 함께 좌절감과 분노의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 원하며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안수하지 않으실 수 있는가?’ 분노하며 몇 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그녀의 가슴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그리고 나는 너의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기를 원하는데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 말씀을 듣고 조니는 ‘나를 묶고 있는 것이 ‘휠체어’가 아니라 ‘내 마음의 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엉켜 있던 분노와 좌절하는 마음들을 하나님 앞에 토해내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신비롭다고 할 정도의 기쁨이 찾아오고 다시 회복을 결심하고 일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매는 입으로 붓대를 물고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워 유명한 ‘화가’가 됩니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전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조니 에릭슨 타다의 희망노트’를 통해 ‘나의 희망, Jesus!, 하나님의 마음을 그리다!’라는 책을 집필합니다. 그리고 ‘48권의 책’을 쓴 세계적인 저술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1979년에는 그 자매의 스토리를 담은 ‘조니(Joni)’라는 영화가 만들어져서 여러 나라에서 상영 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그 자매의 어두운 삶에 광명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나에게 장애가 있어도,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무엇인가 나에게 목적을 두셨습니다.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목적과 기대를 두셨습니다. 나는 휠체어에서 일어서지도 못하나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휠체어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이상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현재 남편 켄(Ken Tada)과 행복하게 살고 있고, 지금도 곳곳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녀의 꿈이 부서지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완전히 막아 버리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막혀있는 길 앞에 좌절하는 그녀를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너머의 하나님께서는 더 멋진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특별히 어떤 외모를 가지거나, 능력을 가지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나아갈 길이 막혀 좌절하고 있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기만 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수 많은 난관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정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목적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다면, 길이 막혔다고 해서 당황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길이라면 그 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좋아 보이는 길이라도, 나의 욕심, 나의 야망이 동기가 되어서 시작한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길을 막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이 막혔을 때 내가 가는 길에 대한 목적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목표한 길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다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돌아와야 합니다.
셋 번째로 길이 막혔을 때 바른 자세를 가졌습니다.
기도한 것도 중요하고, 목적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이 맡겼을 때 우리는 ‘마음의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4절]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로마로 가면서 ‘빚진 자’로서의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빚을 졌다’는 것은 갚아야 할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빚을 갚았다고 해서 ‘보상’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첫째. 나는 ‘빚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다’고 하며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곤충으로 말하면 ‘개미’와 같은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다음은 나는 ‘받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채권자’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도 감사할 줄 모르고, 가족들에게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거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항상 받고, 빼앗는 삶만 사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처럼 나는 ‘빚진 자’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채무자’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곤충으로 말하면 ‘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꿀처럼 수고하여 만든 것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나는 빚진 자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빚’.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이웃에 대한 빚’ 그리고 가장 큰 빚은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자기로서는 아무 자격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엄청난 값을 치르고 사도 바울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까지 가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에게는 빚이었습니다. ‘빚 중에 더 큰 빚’을 졌습니다.
바울은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은 구원 받을 자격도 없을뿐더러, 죽어 마땅한 존재인데 이방인들에게 이런 복음의 소식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선택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생각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죽을 때까지 거저 주는 자로 사는 ‘복음에 빚진 자’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여러분께서는 우리가 지금 예배하는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죽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길 거리에 내버려질 수 밖에 없는 ‘사업의 실패’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통과한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이루게 하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길이 막힌 것 때문에 좌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을 걱정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 길이 막힌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의 인생 길이 열린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심’만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만 하면 모든 막힘 뒤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더 찬란하고 빛난 길이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 된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높여지고, 복음이 선포되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일을 만날 때 우리가 고백할 말은 ‘나는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고백을 가지고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감사하며 일어서기 바랍니다.
나가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우리의 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계획하던 대로 되든 되지 않았든, 길이 열렸든 그 길이 막혔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기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빚진 자’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이제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인도하심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우리는 만족합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우리는 충분합니다. 이렇게 간증하며 일어서는 귀한 성도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