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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Paraguay) |
파라과이는 심지어 이웃 나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남미의 '빈 구역'이다.
파라과이의 역사 대부분은 중남미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으며 20세기의 오랜 기간 동안
이 나라는 남미에서 가장 악명 높고 오래 지속된
경찰 국가였다.
PJ 오르케(O'Rourke)는
'파라과이는 어디에도 없으며 아무것으로도 유명하지 않다'
라고 씀으로써 무뚝뚝하게 이를 요약했지만
잠시 선거를 떠맡기 위해 이곳을 들르고는
곧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파라과이가 지난날의 정치적, 경제적, 지리적 고립을 딛고
새롭게 방문을 환영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다른 여행자들도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다.
파라과이는 포근한 강변에 자리잡은 수도와 감동적인 예수회 선교지역,
몇몇 국립 공원과 남미에서 가장 훌륭한 야생 생태계 구역 중 하나인
광대하고 건조한 챠코(Chaco)가 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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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 자료
- 국명: 파라과이 공화국(Républica del Paraguay)
면적: 407,000 sq km 인구: 680여만명 수도: 아순시온 (Asunción, 인구 500,000) 인종: 95% 메스티조 언어: 공식어는 스페인어이지만 과란 어도 널리 쓰인다 종교: 97% 카톨릭, 3% 메노파를 비롯한 개신교 정체: 공화국
- 지리 및 기후
-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 둘러싸인 내륙국가이다.
- 국토는 서반구에서 세 번째로 큰 강인 파라과이 강에 의해 불균형하게 둘로 나뉘어 있다. 강의 서쪽에 있는 챠코는 대체로 메마르고 인구도 드문 땅덩이로 전국토의 6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대부분의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데 높은 초원 고지대에다 물도 잘 대어져 있으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는 빠라나(Paraná)강을 따라 죽 아열대 산림이 뻗어있다. 야생 생물들은 다양하여 많은 수의 앵무새나 잉꼬, 황새, 히아신스 마코 앵무, 한때 멸종되었다고 생각되었던 챠코 멧돼지, 거기다 커다란 악어, 아나콘다, 보아 뱀 같은 파충류들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동부 파라과이의 도시 지역에 밀집한 인구로 인해 커다란 개미핥기나 갈기 달린 늑대, 브라질 맥, 재규어 등이 빠르게 사라져가고있다. 동부 파라과이의 기후는 습도가 높으며 강우량은 연중 고르다. 기온은 여름(1월에서 3월)에 평균 35도로 거의 보편적으로 덥고 겨울(7월에서 9월)에는 5도까지 떨어진다. 이 시기에 서리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눈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챠코는 기온이 좀더 높으며 강우량은 더 변덕스럽다.
- 역사
- 파라과이 동부에 원래 살던 주민들은 반 유목민인 과라니였다. 과이쿠루로 알려진 몇몇 수렵 채집 부족들은 챠코에 살았다. 1524년 알레호 가르시아(Alejo García)는 과라니의 안내로 파라과이를 건넌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3년 뒤 세바스티안 카보트(Sebastián Cabot)가 파라과이 강을 항해했으나 정착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로써 정착지의 발견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벗아나 아순시온에 정착한 뻬드로 데 멘도사(Pedro de Mendoza)의 원정대의 몫이 되었다. 식민지는 번성하여 남미의 남동부에 있는 스페인 개척지의 중추가 되었으며 흥미로운 사회화가 진행되는 시대를 열었다. 토착 원주민 집단은 점점 스페인인들을 흡수하였으며 반대로 스페인인들은 과라니의 음식과 언어, 관습을 받아들였다.
- 시간이 흐르면서 스페인-과라니 사회가 형성되어스페인인들이 정치적으로 지배세력이 되고 메스티조들은 스페인의 문화적인 가치를 채택하였다. 식민지화는 또한 토착민에게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예수회가 파견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민첩하고 능숙하게 포교활동을 벌였다. 토착민들은 그들의 땅을 떠나 레둑시온(신정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유도되었으며 이곳에서 성당을 짓도록 돕거나 석공, 조각, 회화 등의 솜씨를 익히고 때로는 전통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767년 예수회가 축출되면서 개척지는 점점 시들어가고 토착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다른 고용주에게 고용되었다. 파라과이는 1811년에 독립을 선언했고 스페인은 반대하지 않았으며 몇 년 뒤에 외국을 싫어하며 'El Supremo'로 알려지기도 한 호세 가스빠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의 손아귀에 쥐여지게 되었다.
- 그는 국경을 폐쇄하고 자급자족(스페인 상류 계급까지도 메스티조와 결혼하도록 시키는 등의) 정책을 권장하였으며 지주와 상인, 성당의 소유지를 몰수하였다. 그는 1840년에 죽었고 그의 유체는 무덤에 빼내어 강에 버려졌다. 프란시아의 후계자인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Carlos Antonio López)는 파라과이의 고립을 끝내고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불행히도 그 또한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과 싸운 파멸적인 삼국 연합의 전쟁(1864-70)을 시작하여 나라를 만신창이로 이끌었다. 포화가 가시자 파라과이는 150,000 sq km의 영토와 인구의 1/4을 잃었으며 로페스의 아들 역시 죽었다. 전쟁이 끝난 후 파라과이의 농업 지역은 새로운 유럽과 아르헨티나의 이민자들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정치적인 불안정은 계속되었다.
- 세기가 바뀔 무렵 볼리비아가 분쟁지역이던 챠코의 일부분을 점령하면서 국경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 지역에 있으리라 추정되던 광대한 석유 자원(결국 없음이 드러났지만)으로 두 나라는 결국 1932년 전쟁을 시작하였다. 볼리비아 군대는 대부분의 챠코 지역에서 쫓겨났으며 이어진 조약으로 파라과이는 이 지역의 3/4을 획득하였다.파라과이의 정치는 챠코 전쟁이후 더 혼란스러워져 잠시동안의 내전 이후 콜로라도 당이 1949년 정권을 잡게 되었다. 1954년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로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Alfredo Stroessner)가 대통령이 되었다. 허영심이 강한 불같은 성격인 스트로에스네는 고문과 살인, 정치적인 숙청을 거듭하였고 이후 35년간 권좌에 머무르기 위해 부정 선거를 일삼았다. 이 적대적인 독재자는 1989년 물러나고 다른 고관인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장군이 대신해 권력을 차지했다.
- 로드리게스의 의도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의견도 있지만(로드리게스는 스트로에스네르의 예전 오른팔이었다) 그는 오랜 기간 계속된 비상령을 해제하고 검열을 없앴으며 야당을 합법화하였으며 정치범을 석방하였다. 파라과이는 1993년 선거까지 정치적인 안정이 계속되었으나, 열광적인 자유 시장주의자이며 예전 스트로에스네르의 당파에 있었던 후안 카를로스 와스모시(Juan Carlos Wasmosy)가 대통령에 오르자 전국적으로 수많은 파업이 일어났다. 와스모시는 자신도 이 나라의 거대한 수력발전 계획과 관련한 암거래 의혹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1998년 5월, 콜로라도 당은 원래 후보자였던 리노 오비에도(Lino Oviedo) 장군을 와스모시에게 반역하였다는 혐의로 1996년 선거기간 중 투옥시킨 이후 새로 선출한 후보자인 전기 공학자 출신의 라울 쿠바스(Raul Cubas)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집권을 재확인하였다.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쿠바스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의 직권을 남용하여 오비에도를 감옥에서 빼내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부통령인 루이스 아르가냐(Luis Agaña)가 1999년 3월 총탄에 암살 당하자 대중적인 의견은 쿠바스와 오비에도를 살인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쿠바스는 사임하도록 촉구받게 되었다. 상원 의원장이던 루이스 곤살레스 마치(Luis Gonzalez Macchi)가 뒤이어 취임하였으며 쿠바스와 오비에도는 이웃 나라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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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플레이션 : 20% 주요 산업 : 콩, 면, 목재, 동물 가죽, 정육, 사탕수수 (그리고 밀매업)
- 주요 교역국: 브라질,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 문화
- 연극은 일반적인 공연물이며 스페인어뿐 아니라 과라니어로도 종종 공연된다. 고정 관념을 깬 놀라운 시각 예술도 많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파라과이의 저명한 문학가로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아우구스또 로아 바스또스(Augusto Roa Bastos)를 들 수 있다. 파라과이의 음악은 매우 흥미로운 면을 가지고 있다 - 언어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이 토착 언어를 아직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음악에서는 다른 흑인이나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럽의 원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기타와 하프가 대중적인 악기이며 노래는 보통 느리고 슬프다. 그러나 폴카와 병을 머리에 이고 추는 것 같은 여러 춤은 훨씬 더 활기 넘친다. 아구스틴 바리오스(Agustín Barrios, 1885-1944)는 남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타 작곡가이로 가끔 파라과이의 정글이 배출한 기타의 '파가니니'로 선전되며 완전히 과라니 의상을 입은 연주가에 의해 그의 음악이 공연되기도 한다.
- 카톨릭은 공식적으로 이 나라의 국교이지만 다른 여러 남미 국가에 비해서는 성당의 영향이 크지 않다. 다른 종교 단체들로는 원리주의 메노파 개신교도나 스트로에스네르의 독재권력과 결부해 운영되어 논란거리가 되어온 복음주의 단체인 New Tribes Mission 등이 있다. 고기 요리는 열대나 아열대 음식 재료와 더불어 파라과이 음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곡물, 특히 옥수수와 카사바 녹말은 거의 모든 음식에 다 들어간다. 시도해 볼만한 음식으로 로크로(옥수수 스튜), 마사모라(옥수수 죽), 므바이피 소오(고깃 덩어리를 얹은 뜨거운 옥수수 푸딩), 소오요 소피(갈은 고기로 만든 걸죽한 수프에 쌀이나 면을 같이 내오는 요리) 등이 있다. 디저트에는 므바이피 에에(옥수수, 우유, 당밀 등을 맛있게 섞은 것) 가 있다. 차나 마테차도 많은 양을 소비하며 모스토(사탕수수 주스)와 카냐(수수 알코올)도 역시 자주 마시는 음료이다.
- 축제 및 행사
- 크리스마스와 새해, 부활절 이외에 눈에 띄는 행사로는 2월의 산 블라스(San Blas, 파라과이의 수호 성인)의 날, 6월의 빠스 델 챠코(챠코 전쟁의 끝), 8월의 푼다시온 데 아순시온(아순시온 설립의 날) 등이 있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3달까지 체류하는 비자가 필요하지만 이웃 국가(오직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와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은 예외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또한 무범죄 기록과 은행 잔고 증명서 그리고 수수료로 US$10만 있으면 된다.
- 보건 위생 : 콜레라, 피부관련 leishmaniasis, 간염, 십이지장충 병, 말라리아, 결핵, 장티푸스
시간 : 한국보다 13시간 느리다 전압 : 220V, 50 Hz 도량형 : 미터법 ( 도량형 환산표 참조)
- 일반 경비:
통화 : 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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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는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에 비해서는 싸지만 볼리비아에 비해서는 비싸다. 검소한 여행자라면 하루 US$10 정도에 살 수 있으며 좀더 편안하고 영가가 있는 여행이라면 하루 US$15-30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아순시온이나 국경 마을의 환전소에서는 현금과 여행자 수표(약간의 수수료를 뗀다) 모두 바꾸어 준다. 내륙에서는 은행을 이용하도록 하자. 몇몇 여행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환전소에서 여행자 수표의 경우 매입 영수증이 없으면 현금으로 바꾸어 주지 않았다고도 한다. 거리에서 환전하는 경우는 조금 낮은 환율에 현금만 바꾸어 주지만 주말이나 저녁에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순시온에 있는 좋은 호텔이나 식당, 상점에서는 신용카드를 받아주지만 수도 밖에서는 별로 많이 쓰이지 않는다. 파라과이 ATM은 일반적으로 외국 신용카드를 인식하지 못한다. 식당에서는 관례적으로 계산서의 10%를 팁으로 남긴다. 택시운전사는 팁을 줄 필요가 없지만 약간의 잔돈이라면 받지 않고 그냥 줄 수 있다.
- 여행 시기
- 강우량은 연중 고르며 가장 심하게 내리는 곳은 브라질 국경 근처이고 가장 추운 달은 7월이다. 파라과이의 2월 카니발 축제는 아순시온에서 가장 활기 넘친다. 카아쿠뻬(Caacupé)는 종교 중심지로 카톨릭의 성 수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 주요 여행지
- 아순시온(Asunción)
- 아순시온은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로 파라과이 강의 동쪽 제방 위 낮은 언덕에 세워져 있다. 도시의 대부분 주요 볼거리들은 강변과 서쪽의 콜론 거리(Avenida Colón), 남쪽의 아에도 거리(Calles Haedo)와 루이스 아 에레라(Luis A Herrera)거리, 그리고 동쪽의 에스따도스 우니도스(Estados Unidos)로 둘러싸인 지역 내에 있다. 이 도시에는 식민지 시대의 유적도 거의 없으며도시 구역화도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롭고 어느 정도 절충적인 건물들과 강변이나 철도를 따라 불법으로 점거한 거주지역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고비에르노(Gobierno) 궁전은 이제는 다가가거나 사진을 찍어도 안전한데 이는 엘 수프레모(프란시아)의 지배 기간 동안 존속했던 상황에 비해 엄청나게 개선된 것이다 - 그는 이 궁전을 응시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사살되도록 했다. 가까이 있는 카사 비올라는 몇 안 되는 식민지 풍의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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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도시의 구경거리로는 19세기 성당과 박물관이 있는 카사 데 쿨뚜라 파라과야와 아순시온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1772) 독립 선언이 이루어진 카사 데 라 인데뻰덴시아가 있다. 또 아순시온의 훌륭한 공원으로는 식물원(Jardín Botánico)과 이 도시가 소장한 현대 예술의 보고인 바로(Barro) 박물관이 있다. 아순시온 동물원은 소문에 의하면 새로운 관리 계획에 의해 개선되어져 있으며 파라과이의 독특한 동, 식물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한때 이 동물원은 초라하고 거무죽죽한 곳으로 작고 냄새나는 우리 안에는 너저분한 동물로 가득했다) 싼 숙소나 식당은 대부분 시 중심가나 강변으로 향하다 보면, 또는 동쪽 구역에서 볼 수 있다. 영화관에서 보여주는 것들이란 잡다한 포르노나 쿵푸 영화가 대부분이지만 극장이나 많은 문화 광장에서 공연되는 음악들은 훌륭하다. 쇼핑으로 가장 좋은 곳은 콜론(Colón), 뻬띠로씨(Pettirossi), 빨마(Palma), 에스뜨레이야(Estrella) 거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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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 파라과이
- 파라과이에서 가장 훌륭한 볼거리들 중 상당수는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 중에는 직물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이따구아(Itaguá)가 있는데 이 도시는 냔두(ñandutí), 즉 거미집 같은 레이스가 만들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라고 이빠라이(Lago Ypacaraí)에 있는 아레구아(Areguá)나 산 베르나디노(San Bernadino)는 둘 다 호수변에 위치한 휴양지이다. 이 곳에서 서쪽으로는 카아쿠뻬(Caacupé)가 있는데 이곳은 파라과이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이며 매년 순례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조용하고 미개발된 이비쿠이(Ybycuí)국립 공원은 파라과이에서 몇 안 되는 열대 우림 지역을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남쪽에 있다. 아순시온의 남동쪽에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는 언덕의 꼭대기에 위치한 예수회의 레둑시온으로 1706-60에 건설되었다. 이곳의 가장 걸작은 아름답게 보존되어있는 성당이다. 다른 흥미로운 예수회의 유적은 산 이그나시오 구아수(San Ignacio Guazú)와 산타 마리아(Santa María)에서 볼 수 있다. 좀더 현대적인 것으로 이따이뿌(Itaipú) 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수력 발전소(1350 sq km)로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간과할 수 없는 다른 곳으로 세로 코라(Cerro Corá) 국립 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건조한 열대림과 사바나 지역으로 가파르고 외딴 언덕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이 안에는 많은 중요한 문화적, 역사적 볼거리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콜롬버스 이전 시대의 동굴이나 암면조각,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Francisco Solano Lopez)가 삼국 연합 전쟁이 끝나고 죽은 장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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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챠코 (Chaco)
- 챠코는 많은 인디언 인구가 산다는 것 이외에는 특색이 없는 것이 눈에 띄는 지역이다. 유일한 포장 도로인 루타 트란스 챠코는 1920년대 메노파 신도들이 살기 시작한 종교 집단인 필라델피아(Filadelfia)로 이어진다. 다른 메노파 신도들의 거주지로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개척지인 로마 쁠라따(Loma Plata)와 인디언 수공예품을 사기에 매우 훌륭한 장소인 네우-알브스타트(Neu-Halbstadt)가 있다. 볼리비아 국경으로 가면 데펜소레스 델 코(Defensores del Chaco) 국립 공원이 있는데 나무로 덮인 이 충적 평원의 주요한 특징은 500m 높이의 세로 레온(Cerro León)이다. 가시 달린 관목이 울창한 숲은 파라과이에서 가장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피난처가 되고 있어 재규어나 퓨마, 스라소니 같은 커다란 고양이과 동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피리베부이(Piribebuy)
- 삼국 연합의 전쟁 중 아순시온 동쪽에 있는 피리베부이 마을은 수도의 역할을 했다. 오늘날 조용하고 침체된 이 마을은 오직 멋있는 성당과 강한 이 지역 술, 카냐로만 잘 알려져 있고 요청에 의해서만 개방하며 챠코 전쟁 상이 용사가 운영하는 재미있는 박물관이 있다. 세 번이나 볼리비아군에 의해 총알을 맞은 늙은 군인은 조심스럽게 다 낡은 전시물들로 안내해 주며 자신이 입었던 낡고 피묻은 군복이 전시된 것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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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틴 똘레도(Fortín Toledo)
- 포틴 똘레도는 챠코 전쟁 중에 참호 전쟁이 일어났던 곳으로 현재는 소수의 챠코 멧돼지가 길러지고 보호되고 있는 구역이다. 이 멧돼지는 1975년에 재발견되기까지 멸종했던 홍적세 시대의 잔재로만 생각되었었다. 이 보호구역은 산 디에고 동물원의 일부로 운영되며 예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흥미를 가진 관람객의 방문을 허용한다. 근처에는 다수의 버려진 요새나 파라과이의 군사 묘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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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에바 아우스트랄리아(Nueva Australia)
- 자주 개명되는 누에바 아우스트랄리아는 파라과이 동부에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이주민들에 의해 19세기 후반에 세워져 짧게 존재했던 사회주의자의 실험무대였다. (독재자의 아버지) 우고 스트로에스네르의 이름을 따 지도에 표시되기도 하는 이 분쟁투성이의 식민지는 경제적인 잠재력에 대해 야심에 찬 선전 덕으로 많은 정착민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끝내 1896년에 무너지고 말았다.
- 레저스포츠
- 이비쿠이(Ybycuí)에는 몇몇 하이킹 길이 있으며 세로 코라(Cerro Corá) 국립 공원에도 자연적인 오솔길들이 있다. 낚시와 캠핑은 비이야 플로리다(Villa Florida)가 좋으며, 물이 자극적인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어지는 라고 이빠카리(Lago Ypacarí)에서는 수영이나 수상 스포츠가 인기 있다. 활발하게 운동을 하고 싶다면 500m 높이의 세로 레온(Cerro León)을 등반하거나 챠코의 야생 지역으로 탐험을 할 수도 있다(충분한 양의 음식과 물, 그리고 연료를 가지고 가는 것을 잊지 말자).
- 파라과이로 가는 길
- 아순시온은 Southern Cone 항공사의 편리한 교통 중심지이다. 육로로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지점도 몇 군데 있어서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세 곳, 브라질에서부터 두 곳이 있으며, 볼리비아에서는 국경 통과가 다소 어렵다. 아순시온으로부터 여객선이 비정기적으로 파라과이 강을 운행하여 브라질 도시인 코룸 (Corumbá)까지 간다.
- 국내 교통편
- LATN (Líneas Aéreas de Transporte Nacionaland)과 공군 여객 서비스인 TAM (TransportesAéros Militares)은 적당히 싼 항공편을 북부 파라과이나 챠코의 몇몇 지역으로 운행한다. 버스는 전국에 걸쳐 대부분의 지역으로 자주 운행된다. 라고 이빠카라이(Lago Ypacaraí)에 있는 아순시온에서 아레구아(Areguá)까지 28km 노선을 제외하고 파라과이의 노후화 되었고 나무를 태워 움직이는 기차는 엄청나게 싸지만 또한 아주 느리다. 도로상의 두드러진 위험 가운데에서도 나무로 만든 달구지나 가축들은(특히 밤에) 운전에 상당히 위험하다. 아순시온에서 파라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 강의 여러 항구까지 가는 여객선이 운항된다. 광범위한 버스 체계나 미터기를 달은 택시들도 아순시온에서 탈 수 있는 교통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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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함께 파라과이에 가는 기분입니다..감사드리며 꼭 목표를 이루시길 응원하겠습니다.....홧팅#
목표를 이루겠습니다.
지구본을 가지고 볼 때 정히 우리나라의 반대편에 있는 파라과이
남미의 심장부에 심어지는 희망나무에도 놀라운 결실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를 접수하는 희망나무 되시기를
하나씩 다가가서 좋은 소식 전하겠습니다.
\뜻을 이루소서~
잘 준비하셔서 많은 성과 얻어 오시길 바랍니다. 입니다.
열정의 양회장님
늘 감사합니다..좋은 소식 올리겠습니다.
글로벌 희망나무!!!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이 성취되시리라 믿습니다..응원하겠습니다..멍멍~~
꼭 이루실겁니다...희망나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