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지점(광주)생활 할 때 쓴 여행기입니다. 어제 10월 월례회때 X조나발누님이 소쇄원을 어찌 아나? 하고 묻기에... 이런저런 말을 하다보니 그 누님 고향이 담양이라서 함 올려봅니다... 재미로 함 보세요.. 아~~~ 다른덴 몰라도 담양에 있는 정자들은 꼭 다시 가고 싶어요....
나도 한 번 써본 남도 여행기............!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남도를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난 요즘 남도여행을 계획하거나 막연히 한 번 가봐야 할텐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동안 내가 다녔던 남도의 이곳 저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휴일날 주마간산식으로 다녔던 여행길이기에 그리 충실한 여행기는 되지 못할지라도 .........
1) 담양 : 대나무와 정자벨트
유흥준교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현 문화재청장)는 남도답사의 첫걸음을 강진에서 출발하라 했지만 근래에는 젊은 사람들을 위주로 하여 담양과 보성을 많이 찾고 있어 나도 이렇게 출발해 볼까 한다.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한 곳으로 매년 5월에는 "죽향제"가 열려 대나무를 소재로 한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담양읍내에는 300여년동안 이어져온 죽물시장이 끝수가 2와 7이 되는 날에 열린다. 대나무를 이용한 바구니, 삿갓, 참빗 등을 팔지만 예전의 화려했던 명성에 비하면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다. 이곳에서는 죽부인을 하나쯤은 구입해도 좋을 듯 하다. 무더운 여름날 본 부인을 대신한다는 죽부인을 끼고 자면 선풍기와 에어컨바람이 부럽지 않다. 담양을 찾은 여행객은 죽물박물관을 가보시라. 세계 유일의 대나무박물관으로 대나무와 연관된 각종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는데 특히 닭을 키웠던 대나무 광주리(?)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담양에서 대나무 숲을 보려면 금성산에 있는 대나무골 야영장을 가야한다. 예전 한석규의 XX텔레콤광고와 체X맨광고에 등장했던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울창한 대나무 숲이 바로 이곳이다. 또한 죽물박물관에서 야영장을 찾아가는 도로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있다. 마치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장관인 이곳의 경치에 반해 속도위반으로 딱지를 끊겨 억울해 한 기억이 새롭다.
담양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수많은 정자들과의 만남이다. 담양읍에서부터 빼어난 드라이브코스인 광주호를 지나면 작년에 완공된 가사문학관을 중심으로 하여 이름난 정자들을 만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식영정(息影亭)은 말 그대로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1560년에 김성원이 만들어 그의 장인인 임억령에게 드린 곳이다. 옛 정취가 느껴지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둘레가 엄청난 노송(老松)을 만나게 되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 광주호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식영정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환벽당(環碧堂)이 나오는데 구석에 있는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정자벨트를 찾을 때 가장 포근한 마음으로 찾아가는 곳이다. 이 곳 주인인 김윤제는 김성원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친하게 지냈다 하는데 이때 성산별곡의 주인공 송강 정철은 식영정 옆 마을에서 살고 있었으며 후에 환벽당에서 27세에 과거 급제할 때까지 10여년 동안 머물며 공부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김윤제는 정철을 외손녀 사위로 삼으며 관계로 나갈 때까지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한다.
식영정에서 차를 타고 3분 정도 가면 그 유명한 소쇄원(瀟灑園)을 만날 수 있다. 소쇄란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한다 하는데 한자가 하도 어려워 자주 잊어버린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답다는 민간 정원인 소쇄원은 별서 정원으로 살림집과 떨어져 산수가 좋은 곳에 조성된 주거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요즘으로 치면 잘 조성된 별장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소쇄원은 양산보가 10여년의 많은 시간을 들여 완성한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시원시원한 대밭을 양쪽으로 끼고 들어가기 때문에 한 여름에도 서늘한 느낌을 준다. 소쇄원내에는 광풍각, 제월당 등의 정자가 있으며 소쇄원의 명물인 오곡문(돌다리 담장 밑으로 냇물이 흘러가게 하여 5개의 물줄기가 생기는 현상?)의 모습은 아쉽게도 장마 때 같이 물이 많이 불어나야 볼 수 있다. 생전의 양산보는 55세에 운명하면서 후손들에게 부탁한 게 있다 하는데 하나는 소쇄원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원내의 어느 것도 훼손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쇄원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주거하며 선조의 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그의 후손의 소쇄원 사랑은 정말로 대단하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직접 소쇄원에 대한 해설을 관람객에게 해주기도 하며, 언젠가는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너무 알려져서 지금도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괴롭다며 취재를 거절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 외에도 송강정, 면앙정, 명옥헌, 취가정 등 많은 정자들이 나름대로의 독특함과 색채를 갖고 있어 어디에 가더라도 옛 현인들의 여유로움과 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승주, 보성 : 선암사와 보성차밭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승주 조계산에는 800년역사를 자랑하는 송광사가 있지만 산 넘어에는 작고 아담한 선암사가 위치하고 있다. 조정래가 이곳 선암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임권택감독의 '아제아제바라아제'가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하였다. 선암사의 경내에 들어서면 부도밭을 지나 조계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건너기 위한 승선교(昇仙橋)를 만날 수 있다. 보물 400호인 승선교는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자아낼 만큼 경치가 수려하다. 또한 승선교는 반달모양의 무지개 다리로 만들어져 있어 물 속에 또 하나의 다리가 만들어져 둥근 달이 된다는 극찬을 받는 다리다. 38개동으로 빼곡히 들어찬 선암사는 다소 협소한 느낌이 들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정돈되어 꽤 정감이 간다.
선암사의 명물 중 하나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화장실(해우소)이다. 사찰의 단순한 화장실 같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꽤 재미가 있다. 우선 크고 웅장하며 고풍스러움에 이용객(?)들은 일단 압도당한다. 또한 주위를 감싸는 사계절 나무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이들 나무들에게서 풍겨나오는 향긋한 냄새와 함께하는 볼일(?)은 우리에게 또다른 감흥을 준다. 정호승님의 시를 옮겨 적는다.
선암사 해우소 - 정호승 -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에서 가까운 곳에는 높이 4m, 둘레 1천3백84m를 돌로 둘러 싼 거대한 성이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낙안읍성이 있는데 초가집 등 옛날 민초들이 살아왔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이곳에는 100여 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어 현실감이 높아 용인민속촌이나 제주민속마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요즘 남도여행에서 가장 뜨는 지역이 보성차밭이다.
영화나 드라마 CF를 통해 워낙 알려져서 그런지 과거엔 아는 사람만 조용히 왔다 가곤 했는데 요즘 커다란 다원엔 서울을 비롯한 경상도, 충청도 심지어 강원도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장을 채우고 있다. 보성은 우리 나라 녹찻잎의 90%를 생산하는 차의 주산지이다. 이곳은 차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1939년에 차 재배 장소를 찾다가 발견한 곳으로 기후와 강우량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차를 재배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한다. 보성에서 율포를 넘어가는 고개 인근에 여러 차 재배지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대한다업이다. 이곳은 모 이동통신사의 수녀와 비구니 편을 촬영한 곳으로 만약 이곳에 가게 된다면 차밭을 기준으로 하여 우측으로 올라가서 정상으로 간 후 중앙으로 내려오길 권하고 싶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차밭은 온갖 세상 시름을 날려 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이 곳은 화창한 날씨보다는 부슬비가 온다든지 할 때가 훨씬 깊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보성지역은 특별히 눈에 띄는 화려한 유물, 유적지는 없지만 이곳에 가면 서편제의 터전인 보성 사람들의 풍류와 여유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3) 강진 : 다산초당과 영랑생가
광주에서 영광을 거쳐 강진 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게 대형 아치형 구조물에 쓰여진 '남도답사 일번지-강진'이라는 글귀이다. 아마도 유흥준교수가 이곳을 그렇게 지칭한 후 많은 여행객들에게 강진의 상징어로서 군에서 내세운 것으로 생각되는데 좀 흉물스럽게 보이는 건 왜일까? 강진에는 다산초당, 영랑생가, 고려청자도요지 등 유명한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다산초당! 알다시피 다산 정약용이 장장 18년에 걸친 강진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을 이곳에서 지냈다. 남도에는 유독 유배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다산초당을 비롯하여 고산 윤선도가 생활했던 보길도, 능주의 조광조적려유허비 등이 모두 유배와 관련한 흔적들이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총 7백여명의 유배자 중 전라남도 지역에서 귀양살이를 한 사람의 수가 129명이나 된다 한다. 조선의 왕들이 전라도를 유배지로 선택한 것은 섬이 많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의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렇지만 중앙에서 수준 높은 학식과 덕망을 쌓았던 이들이 모처럼의 한가로운 시간을 통해 지역민과 나눴던 문화교류는 현재까지 이어져 독특한 남도문화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은 다산초당에 오기 전에 이곳 저곳으로 거쳐를 옮겨다녀 심적으로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이곳으로 온 후 마음을 잡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활동에 전념한 결과 목민심서같은 명저를 남겼다. 다산초당 자체는 1958년에 기와집으로 다시 만들었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다산초당이란 현판과 바로 옆에 있는 동암에 걸려있는 보정산방(寶丁山房; 정약용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으로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강진사람들의 영랑 김윤식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읍내에 위치한 영랑의 생가에 가는 길에는 영랑슈퍼, 모란세탁소 등 가게 이름에 영랑의 이름을 붙인 곳이 흔하다. 당시 강진의 대지주답게 넓은 집터에 있는 그의 생가는 집뒤의 대밭과 동백꽃밭이 그윽한 향기를 뿜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입구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가 적혀 있는 멋대가리 없는 시비가 있는데 과거 학창시절에 이 시를 외우기 위해 또한 시의 뜻을 해석하기 위해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좀 씁쓸하기는 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날...."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봄이 연인을 의미하였던 것인가? 나라의 해방을 의미하였던가? 아직도 헷갈리네.
강진의 또 하나의 볼거리 무위사는 직접 찾아가 보면 약간 실망하게 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너무나 많이 알려져 이를 이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법당을 짓기 위한 대규모 공사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유흥준교수가 얘기했던 빨간색을 싫어하는 송아지 만한 큰 개는 대를 이어 여전히 양지 바른 곳에서 늘어져 여행객들을 능청스럽게 쳐다보고 있는데 그 개를 한가로이 바라 보는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런데 지난 월드컵 때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수많은 여행객들을 바라보았던 무위사 개의 머리속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4) 남도의 먹거리
여행을 다닐 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이 아닐까? 특히 남도는 미향(味香)의 고장으로서 어느 음식점에 가더라고 많은 가짓수의 깔끔한 상차림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내가 맛 봤던 독특한 남도의 음식을 소개한다.
* 죽통밥과 죽순회
죽통밥은 말 그대로 대나무를 썰어 빈 공간에 쌀을 채워 압력밥솥에 넣어 쪄 낸 것으로 좋은 쌀이 대나무를 만나면 얼마나 향기로워질 수 있는가를 확인 시켜주는 요리 아닌 요리이다. 죽순은 대나무의 어린줄기를 말하는 것으로 죽순의 껍질을 까고 알맹이 부분을 채취해 마치 골뱅이무침하듯이 양념한 것이 죽순회이다. 씹을 때 아삭아삭하면서도 담백한 그 맛은 정말로 일품이다. 죽통밥과 죽순회는 담양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그외에도 대나무와 삼계탕의 만남인 죽계탕이 있고 또 애주가들을 위해 대통주를 추천한다.
* 짱뚱어탕
망둥이와 비슷하게 생긴 짱뚱어는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관계로 양식이 불가능하며 좀 징그럽게 생겼지만 맛은 꽤 괜찮다. 통째로 전골을 해서 먹기도 하지만 갈아서 탕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직접 먹어보니 추어탕과 비슷한 맛을 낸다. 영암쪽에서 많이 잡히지만 광주의 식당에서 많이 판다.
* 전어회무침
봄 - 낙지, 가을 - 전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남도에서는 특히 가을에 전어를 많이 먹는다. 錢魚라는 말은 하도 고기 맛이 좋아 사람들이 값을 생각하지 않고 사들였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 하는데 별로 신빙성이 없는 얘기 같다. 워낙 싸기 때문에.. 양념해서 버무린 전어회무침은 씹을수록 은근한 맛을 낸다. 보성, 벌교, 강진 등 남도 해안지역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맛난 것은 전어구이가 아닐까한다. 짚불위에 굽는 이 전어구이 냄새 때문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하니... 허허 참..
* 세발낙지
서해안고속도가 개통되어 서울에서 목포까지 이르면 4시간이면 올 수 있기 때문에 서울사람들이 목포에 와 그 유명한 세발낙지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가격 때문에 깜짝 놀란다 한다. 한 마리에 만원이나 한다니 어디 맘 먹고 먹을수 있겠는가? 낙지는 주로 봄에 무안 등 일부에서만 잡히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는 웃돈을 주어도 쉽게 먹을 수 없다. 물론 중국산 낙지야 많겠지만 어디 우리나라 땅에서 얻은 것과 비교할 수가 있는가. 발이 가느다라서 이름 지워진 세발낙지는 나무 젓가락으로 낙지 한 마리를 돌돌 말아 통째로 삼켜버리는데 입천장에 달라붙는 낙지의 흐물흐물한 몸놀림을 느끼면서 먹으며 약간의 몬도가네식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안과 목포 등지에서 맛 볼 수 있다.
* 떡갈비
떡갈비는 갈비뼈에 붙어 있는 살을 떼 내어 손으로 일일이 칼질을 해서 잘게 다져 갖은 양념을 한 것으로 워낙 부드러워 이가 없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광주 송정리에 저마다 원조를 내세우는 떡갈비촌이 있는데 나는 떡갈비 자체보다는 서비스로 나오는 감자탕 비슷한 탕이 마음에 쏙 든다. 하지만 진짜로 맛있는 떡갈비를 먹고자 한다면 담양에 가보라.. 그곳은 송정리완 차원이 다르다..
* 홍어
남도에서는 결혼식에 반드시 등장하는 음식으로 홍어를 빼놓을 수 없다. 홍어는 무침, 찜, 사시미, 탕 등으로 해 먹는데 역시 가장 먹기 어려운 것은 탕이다. 입에 넣자 마자 코를 향해 뭔가가 시큼하고 화끈하게 타 올라가는 듯한 느낌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아쉽게도 우리가 아는 흑산도 홍어는 싯가로 백만이나 해 왠만한 사람은 먹기가 어렵고 주로 칠레산 홍어를 많이 먹게 된다. 남도 어디든 쉽게 홍어 집을 찾을 수 있다.
* 꼬막
벌교와 보성의 갯벌에서 주로 잡히는데 겨울과 봄 사이가 제철이라 한다. 양념을 하지 않아도 간간하고 쫄깃해서 반찬 노릇도 하는 꼬막을 숯불 위에 놓고 구워 먹으면 소주 한 병이 금방 없어진다.
지금까지 남도의 여러곳을 다니면서 느꼈던 것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지만.. 사실 난 남도를 잘 모른다.. 수많은 유배지에 남아있는 남도인들의 한... 풍류... 문화... 그 여유로움등을 어떻게 알 수 있으리오... 하지만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끼지 않으리라......
남도여행은 언제라도 즐겁습니다....
|
첫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을 등록해 주세요.
함가보자....
참긍정님은 글을 잘쓰네여,,,, 아는게 진짜 많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