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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거 북벽
남가주 산악회의 등반대장인 조 종환(미국 명·제이 조)군 과1989년 8월 23일 저녁, 기차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네그역에 도착한 나는, 책에서만 보고 꿈속에서만 오르던 아이거 북벽을 막상 눈앞에 볼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움과 벽의 크기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역 앞의 가게주인 할아버지에게 일기예보를 알아보니 25일부터 날씨가 나빠지다 26일부터 본격적인 폭풍이 시작된다고 한다. 조 대장과 나는 여관에서 한 참을 의논하다 결국 등반을 포기하고, 샤모니로 돌아갔다가 폭풍이 끝난 후에 아이거로 돌아오기로 결론을 내리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나는 속이 상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유럽에 온지 벌써 닷새나 되었건만 바위는 만져 보지도 못했고, 아이거를 코앞에 두고도 물러나야 하다니 잠이 제대로 올 수가 없었다.
새벽 3시경에 살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와 전망대에 올라갔다. 샤모니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거 북벽의 모습이나 실컷 보고싶어 하현달이 비춰주는 북벽의 밤모습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북벽의 좌측에 있는 바리에션 코스에서 헤드렘프의 불빛이 반짝했다.
나의 심장은 자동적으로 크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 불빛을 따라 함께 등반을 시작하였다. 불빛은 단 하나 누군가가 솔로 등반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 하였다. 정 말 무서운 속도 였다. 나는 이 불빛을 지켜보며 두 시간동안 꼼짝도 않았다. 저런 속도로 오른다면 8시간 정도면 정상에 도착 할 것 같았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저것이다."
아이거를 하루에만 오를 수 있다면 폭풍이 시작 하기 전에 정상에 도착 할 수가 있고 정상에만 오른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폭풍을 뚫고 내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쿨쿨자고있는 조 대장을 깨웠다.
"제이야 ! 아이거를 하루에 해치우자" 밤새 입장이 180도로 바뀌고 만 것이다. 어젯밤에 조대장은 악천후를 무릅쓰고 북벽에 붙자고 졸라 되었고 내가 만류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이었다. "형님 ! 아이거를 어떻게 하루에 합니까?"
지난 5년간 나는 제이와 등반을 함께 하였고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꼬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제이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제이야 ! 아이거 북벽이 1500m라고 는 하지만 터널 속의 창문에서 스타트를 하면 1300미터밖에 안되고 정상부근의 설 벽은 경사가 없으니 해가 지더라도 그럭저럭 오를 수 있으니, 설벽 200미터를 빼면 결국 1100미터, 엘캐피탄의 높이밖에 더 되냐 ? 요즈음 엘캐피탄도 하루에 오르는 판에 기술적으로 훨씬 수월한 아이거를 하루에 못 오르리라는 법이 없다."장황설을 늘어놓았다. 조대장도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변할 새라 계속 신나서 떠들었다. 요사이 아이거 북벽은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가물어서 새로 내린 눈이 없으며 제1설원과 제 3설원은 거의다 녹아서 없어 졌다는 것과, 눈이 쌓일 수 있는 지역은 완경사이고 이 완경사 지역에 눈이 없다면 이 지대를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나는 제1설원과 제3설원을 빌레이 없이 프리솔로로 갈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는 경험을 통한 내 주장이었다. 제 2설원까지는 대부분이 암벽등반이 되어 버렸으니 암벽화 창이 달린 우리의 운동화를 신고가면 빌레이없이 제2설원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여기서부터 플라스틱 이중화로 갈아 신고 오르면 되지 않겠냐 ?"
"형 ! 어디 얼굴 팔리게 운동화를 신고 아이거를 합니까 ?"
조대장은 정통 알피니즘을 주장하며 운동화의 사용을 극구 반대했다. "야 ! 이거 찬밥 더운밥 가리냐? 지금 당장 폭풍이 밀려오고 있는데 얼어죽을 알피니즘이나 찾고 있을 때냐?"나는 협박도 해보고 회유도 해 보고여러가지 심리전을 벌인 끝에 결국 운동화를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를 마음씨 순한 조대장으로부터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8월 24일, 아침밥을 먹고 루트 파인딩에 들어갔으나 도대체 헤크마이어의 코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원래 그랑조라스 북벽을 12시간 오르려고 계획하였기 때문에 그랑 조라스에 관한 자료만을 수집하였고 아이거에 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그랑조라스 북벽은 약 2주일 전에 내린 신설로 인하여 당분간 등반이 불가능하였고 우리는 할 수 목표를 아이거로 바꾸었던 것이다.
우리는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늘어지게 잔 뒤 저녁 기차를 타고 아이거의 터널 속에 있는 아이거 반트 역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볼더링으로 시간을 보낸 뒤 히터가 켜진 여자화장실에서 따뜻하게 잠을 청했다.
8월 25일 새벽 1시경에 일어나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장비를 추린 뒤에 터널의 창문으로 기어 나왔다.
새벽 2시 30분이었다.
새벽 2시30분 ! 시간은 충분하다. 이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잠 못 이루는 잠을 지새웠던가 …
바위 탄지 20년간 항시 오르고싶었던 벽이었는데 이렇게 막상 붙고 보니 감개 무량하였다. 우리는 운동화를 신은 채 왼편으로 트레버스를 계속하였다. 3피치정도를 연속 등반하자, 우리가 찾던 힘든 크랙의 초록색 고정자일이 나타났다. 우리는 쥬마를 이 고정자일에 끼고 번개같이 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고정자일은 엉뚱한 크랙에 설치된 것이었다. 고정 자일을 끝내고 좌측으로 트레버스하며 제1설원으로 향하는데 4피치정도를 전진하자 오버행이 나오며 코스가 막혀버린 것이다. 결국 코스를 잘못든 것을 깨닫고 후퇴를 하였다. 하강한 피치를 다시 오르는데 이건 5.10급의 동작이 여러 번 나왔고, 흔들리는 바위를 모르고 잡은 조대장이 떨어져 죽을뻔도 하였다. 우리는 고정자일의 끝부분까지(10피치정도를)하산을 하여 새벽 5시경에야 루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힌터슈토에서 트래버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은 것이었다. "형 ! 이럴 때 지원조가 있다면 무전으로 코스를 물어볼수도 있을 텐데…" 불행 이도 우리는 단 둘이서 여행을 떠났으니 모든 것은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만 되었다.
"할 수 없다 ! 스타트 지점으로 하강하여 다시 오르든지, 포기를 하든지 정하자 '결국 우리는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을 계속하여 스타트지점인 터널의 창문 부근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때는 이미 동이 터서 사방이 잘 보였다. 나는 훨씬 우측에 검정색 고정자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찾았다 ! 저기가 힘든 크랙이다"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시간은 벌써 7시 30분, 지금 다시 출발하여 이 거대한 북벽을 하루에 오른 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5시간동안을 엉뚱한 크랙에서 헤매느라 무척 지쳐있었고 배도 몹시 고팠다. 우리는 북벽을 15시간에 오를 계획이었기 때문에 식량을 가져오지 않았다. 만일 비박을 하게되면 먹을 식량이 없었다.
나는 이 등반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조대장의 안타까운 눈동자를 보니 도저히 때려치고 내려가자는 말이 안나왔다. "형 ! 비상식이 한 봉지 있어"이 말은 한번 붙어 보자는 안타까운 몸짓의 표현이었다. "그래 ! 비박을 한번 하는 한이 있더라도 붙고 보자"
이때 어느 독일 등반가 한 명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프리 솔로로 번개같이 새치기를 했다.
우리는 다시 아침 7시 30분에 재도전을 시작하였다. '스피드가 생명이다 오늘 중으로 정상에 가야한다.
또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으므로 빨리 오르는 것만이 위험과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안전등반보다는 스피드를 선택하였다.
따라서 지금 까지 배워왔고 행해왔던 모든 안전법규를 무시하기로 하였다.
"제이야 !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다" 우리 는 자일을 서로 묶은 채 연속등반을 하였다. 말이 연속등반이지 러닝빌레이가 없는 우리의 등반 방식은 엄격히 말하면 프리솔로였다. 힘든 크랙의 고정자일을 타고 오른 뒤 힌터슈토이서 트래버스의 고정자일을 타고 제 1설원에 도착하였다. 루트파인딩을 하고있는사이에 조대장이 도착하더니 벼락같이 앞으로 전진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치기를 당한 것이다. 나는 졸지에 톱을 빼앗겼다. 조대장은 이후 톱을 내게 빼았길까봐마치 마라톤을 하듯이 앞에서 뛰어 가고있었다.
나는 다시 톱을 빼앗기 위해 마구 쫓아가고 하다보니 결국 각자 프리 솔로를 하게 되었다. 제 1설원의 빙벽은 다 없어 져서 제비둥지니, 수정관이니 하는 것도 다 없어진 듯하고 마치 인수봉의 대슬랩을 오르는 것처럼 수월하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조대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2피치를 오르자 제 2설원이 나왔다. 이때 시간이 오전 9시경, 총 12피를 1시간 30분만에 오른 셈이었다. 1피치를 평균 8분만에 오른 것이니 무서운 속도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가 수월하게 오를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제 2설원은 예상을 벗어난 채 아주 단단하고 불량스러운 흑빙(Black Ice)으로 변해있었다. 아이스 액스가 박히질 않고 얼음이 계속 깨지 기만하는 위험한 빙질이었다.
이 넓은 지역에서 과연 어디로 오르는 것이 제 코스인지 알 수가 없었고 이때부터 많은 시간을 루트파인딩으로 낭비하게되었다. 우리가 갖고있는 유일한 자료인 우편엽서의 사진은 눈이 많을 때 촬영된 것이다.
현재의 북벽 모습과는 판이하게 틀려서 몹시 혼동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운동화를 벗고 플라스틱 이중화에 아이젠을 착용했다. 이후 계속 정상까지는 이 차림새였다.
빙벽의 경사가 얕아서 빌레이는 필요가 없었으나 중간중간에 겁나는 부분이 있어서 잠깐잠깐씩 약식으로 빌레이를 보며 연속 등반을 하였다. 제 2설원에서 예상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게 되었다. 너무 자주 길을 잃어서 많은 시간을 루트파인딩에 소비한 뒤 제 2설원을 끝냈다. 앞서가던 등반가가 배나 에서 비데오 카메라를 꺼내어 우리들을 촬영하고 있다. 정말 기가 차서 말도 안나왔다. 우리는 무게를 줄이려고 카라비나도 제일 가벼운 것만 챙겨왔고 하켄도 단 3개만 가져왔는데 저 미친 녀석은 저 무거운 비데오 카메라를 메고 단독 등반을 하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 나는 이 순간 아이거 북벽이 적어도 내가 상상하던 어려운 벽이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시즌은 어떠했는지 몰라고 적어도 이번 시즌만큼은 이 아이거는 요세미테의 어느 대암벽보다 쉬웠다. 억지를 부리자면 무거운 비데오 카메라를 메고서도 단독 등반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별로 대단하지 못한 두 명의 재미산악인이 빌레이없이도 연속 등반을 할 수 있을 만큼 현실로 가능한 벽이었다. 또 다시 길을 잘못들 어서 우리는 짧은 하강을 몇번하게 되었는데 나는 이때 처음으로 하켄을 한 개 박아보았다. 우리는 지금껏 시간에 쫓기다 보니 하켄 1개 박을 시간조차 갖지 않았다. 그 시간에라도 더오르려고 하였던 것이다.
우편 엽서의 사진을 계속 대조하며 오르는데도 어찌나 길을 자주 잃게 되었는지, 그 유명한 '죽음의 비박'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예상보다 너무 늦은 도착이었다.
"제이야 ! 이제는 다 틀렸다. 포기하자" 결국 아이거 북벽을 하루에 오르려는 계획을 우리는 서럽게도 여기서 포기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오르려는 의욕을 상실하여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람프(Ramp)역시 중간중간만 임시로 약식 빌레이를 보며 연속 등반을 하였다. 람프 중간에 있는 비박지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이때부터 낙석의 위험도가 커지고 또 위의 비박지가 어디 있는지도 확실치가 않았다. 아쉬운 데로 이곳에서 비박을 하기로 했다. 해가 넘어가는 8시 30분 경까지 이 비박지에서 노닥대다가 잠이 들었다. 결국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이곳에서 비박을 한 것이 우리에겐 큰 실수였다.
폭풍이 몰려오고 있으므로 (날씨가 좋을 때) 단 1분이라도 아껴서 올랐어야 했다. 그런데 이 비박지에서 3 ~5시간의 햇빛을 노닥거리며 낭비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죽을 고비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이날 2시간만 더 올랐으면 신들의 트래버스 부근에서 비박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신들의트래버스 부근에 비박장소가 있는지도 까맣게 모를 정도로'아이거'를 모르고 있었다. 람프 중간의 비박지 이외에는 비박지가 없는줄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8월 26일 비상식 반 봉지를 아침을 간단히 먹고나자 식량이 몽땅 떨어졌다.
그런데 비박지를 살펴보니 사방에 인삼 봉지가 널려있고 한국 음식 봉지가 깔려 있었다. 우리는 이비박지를 '코리아타운(Korea Town)'이라고 이름을 지어버렸다. 이 코리아타운에서 북어냄새가 나는 밥을 한 봉지 발견하였다. 배는 고팠지만 혹시나 밥이 상했을까봐 먹지는 못하고 비상용으로 가지고 가기로 하였다. 아침 6시 30분, 등반을 개시하였다. 폭풍이 온다는 일기 예보가 틀렸는지 날씨는 좋기만 하여 우리는 신나했다. 조대장이 워터 플 크랙(Water Fall Crack)에 붙었다. 물방울 은 한 방울도 안 흐르고 두께 1센티미터 정도의 살얼음이 사방의 암벽에 깔려있었다.
바로 이러한 상태가 위험한 등반이다. 얼음이 너무 얇아서 아이스 액스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암벽등반을 해야 되었다. 조대장이 좁은 침니에 들어가서 쩔쩔매고 있다. 심상치 않은 피치에서 나는 등반중 처음으로 하강기를 사용하는 정식 빌레이를 보았다." 제이야 ! 배낭을 벗고 올라가 봐 "조대장은 배낭을 벗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듯하였으나 사실 그침니는 너무 좁았다. 배낭을 벗자 침니속에서의 활동이 자유로와 졌는지 가볍게 인공등반으로 3미터 정도를 더 올랐고 다시 프리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나는 배낭을 두 개 메고 유마링으로 이 피치를 따라갔다. 좁은 침니에서 나 역시 쩔쩔맸다.
다시 연속등반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신들의 트래버스 밑의 5급 크랙을 내가 오르게 되었다. '어렵 쇼! 심상치 않다. 제법 가파르다.'"제이야 나도 배낭을 벗어야 겠다. 너도 빌레이를 정식으로 보아라" 이 크랙은 좁은 게 흠이었다. 그러나 보기보다 쉬워서 배낭을 벗고 오르니 5.7급이나 5.8급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다시 연속 등반, 신들의 트래버스를 지나서 '하얀 거미'를 제이가 앞장섰다.
"형! 이 하얀거미를 내가 밟아 죽일 거야" 조대장은 하얀 거미를 밟아 죽이는 시늉을 하며 올랐다. 몇 시간 후에 아이거가 우리를 밟아 죽이려고 계획 하고있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채 ….
이때가 아침 9시30분경, 시간이 일러서인지 아니면 다가오는 폭풍으로 기온이 낮아선 지 단 한 개의 낙석도 없었다. "제이야! 왜 돌이 안 떨어지냐?" "형! 얘기할 시간에 한발이라도 더 올라가겠수"
"아이고 배고파 죽겠다. 빨리 오르자" 하얀 거미를 끝내고 나자 안개가 뽀얗게 끼어서 앞이 안 보이는 바람에 또 다시 방황을 하게되었다. 사방에 하켄이 박혀있고 슬링이 걸려있는데 도대체 어느 것이 엑시트크랙(Exit Crack) 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적당히 오르는 순간, 조대장의 아이스 액스의 나사가 풀리며 피크가 분해되었다. "형! 빌레이 잘 봐요, 아이스 액스가 부서졌어"이 크랙에서 안쪽으로 간 것이 실수였다. 두 피치를 오르자 막다른 오버행이 나왔고 안개가 잠시 걷힌 사이에 주위를 둘러보니 50m 우측으로 슬링이 보였다. 그러나 디시 하강을 하자니 너무 억울물해서, 나는 나름대로 코스를 개척하여 옆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펌핑이 될 정도로 어려웠다. 는 조대장에게 정식으로 빌레이를 부탁했다.
이때 정찰기가 우리 발밑으로 두 번 지나갔는데 이제사 생각하니 몰려오는 폭풍 때문에 우리를 살피러 온 구조용 비행기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천진 난만하게 키득대면서 즐겁게 올랐다. 쿼츠크랙(Quartz Crack) 역시 빙벽은 사라지고 살얼음만 깔려있는 상태여서 몹시 어려웠으나 조대장이 무난히 통과했다. 좌측으로 8미터를 트래버스 한 뒤 또다시 연속등반으로 올라 눈이 내리는 엑시트 크랙을 오르자 정상 설원이 나왔다. 자일만 묶은 채 프리 솔로로 200미터를 오르고나자 북벽이 끝나버렸다.
칼날 같은 나이프맀지를 지나 저녁 7시 30분 정상에 섰다.
해 가지려면 한시간 정도 남아 있었으므로, 서둘러서 하산을 시작했으면 만사가 무난히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상에서 비박을 하는 엄청난 과오를 범하게된다.
"야, 폭풍이 오기는 무얼 오냐, 날씨만 좋다." 우리는 즐거워하며 오늘 아침 비박지에서 주어온 북어 밥을 끓여먹었다. 어찌나 맛이 좋든지. "형! 누가 코리아타운에다. 놓고 갔는지, 나중에 알아내서 술한잔 진하게 삽시다. 나중에 안 사실은, 경성대 보다 앞에 올라간 한국 등반대가 놓고 간 것이었다.
예상외로 너무나 간단하게 아이거 북벽을 오를 수 있었던 우리는 긴장을 풀고 노닥거렸는데 이것이 실수 였다. 장비를 사방에 널어 놓은 채 비박을 하였는데 이것이 실수 였다.
장비를 사방에 널어놓은 채 비박을 하였는데 밤새 폭풍이 몰려온 것이다. 우리는 아이거의 정상에서 진짜 임자를 만난 것이다. 밤새 눈이 내려 암벽은 새하얗게 덮혔고 어찌나 추운지 조대장은 침낭 커버속에서 라이터를 켜고 몸을 녹이고 있었다. 새벽 5시경 견디다 못한 조대장이 부르짖었다.
"형님 ! 이렇게 얼어죽느니 움직이다 떨어져 죽읍시다" 우리는 헤드램프를 켜고 하산을 서둘렀다.
바람은 밑에서부터 올라오고 눈보라는 사방에서 몰려와서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길이 끈기고 절벽이 나타났다. 우리는 전혀 엉뚱한 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와서 한참을 헤매다 다시 길을 찾았다. 밤새 바위에 살짝덮힌 10센티미터 가량의 신설은 모든 스탠스를 덮어놓았다. 우리는 벌 벌기면서 내려가야만 하였다. 평소 때에 걸어갈 수 있는 이 길을 우리는 프론트 포인팅으로 하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내려가다 한 명이라도 미끄러지면 둘다 죽기 십상이었다.
나는 지난 20년간의 경험을 통하여 바로 이런 상태에서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살 수 있는 길은 빙하로 향하는 가장 짧은 코스로 압자일렌 하는 길이 가장 안전했고, 조대장도 여기에 동감이었다. 우리는 계속 하켄을 박고 아이스 스크류를 박으며 내려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총 3개의 하켄과 5개의 TCU. 그리고 1개의 취나드 프렌드, 5개의 아이스 스크류, 카라비나 20개를 가지고 북벽을 올랐다.
이 장비를 잘만 사용하면 하강을 할 수도 있을 듯하였다. 우리는 미친 듯이 바위 위에 덮힌 눈을 손으로 쓸어내며 크랙을 찾아 헤맸다. 불량한 크랙에 하켄을 절반정도 박은 뒤 50미터씩 압자일렌을 하였다. TCU도 박고 아이스 스크류도 박고 하면서 하강을 하였다. 확보물의 설치가 불가능한 부분에 서로서로 빌레이를 보며 프론트 포인팅으로 내려왔다. 이 폭풍 속에서 조대장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다.
확보 물이 없는 위험한 피치가 나타날 때마다 그는 나를 먼저 안전하게 내려보낸 뒤 자신은 빌레이 없이 솔로로 내려왔다. 아이스 스크류도 다 떨어 졌을 때 우리는 얼음에 구멍을 뚫고 자이일을 얼음에 걸고 하강하였다. 우리의 체중으로 인해 얼음이 녹으면서 자일은 얼 음속에 박혀버려 자일이 회수가 잘 안되었다.
그래서 다시 올라가서 자일을 정리하고 내려오기도 하였던 조종환의 희생정신은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다.
눈보라는 계속되고 이 폭풍은 예사로운 폭풍이 아니었다. 우리는 진짜 임자를 만난 것이다.
아이거에서 클라머들이 폭풍 속에서 죽어 가는 스토리를 나는 여러 번 들어왔다. 그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직접 당해보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과 인내로는 어려운 것이 없다. 이런 상황을 맞고서야 비로소 나는 아이거가 왜그리 유명한지를 알 수가 있었다.
아이거는, 등반의 난이도보다는 기후 변화에 따른 위험도 때문에 어려운 등반이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바로 이런 벽에서 사람은 손쉽게 꺽일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 우리가 묵었던 여관 주인이 구조대에 우리조난을 신고하였다. 그러나 폭풍으로 헬기가 뜰 수 없어서 구조대는 대기 중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발악을 하였다. 어느 지점에서 확보물의 설치가 불가능하였다. 이때 나는 조대장을 먼저 텐션으로 내려보낸 뒤 프론트 포인팅으로 내려왔다. 순간 아이젠이 미끄러지며 나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본능 적으로 자기 제동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나는 끝장이다'
내가 떨어지면 50미터 밑에 있는 제이가 나와 함께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결사적으로 쥐고있는 아이스 액스로 계속 자기제동을 하였다. 그러나 바위 위에 살짝 덮힌 눈에서 자기 제동이 될 리가 없었다.
손끝에 드르륵, 드르륵 하며 피크가 바위에 갈리는 촉감이 계속 왔다. 이때' 턱' 하면서 자기제동이 되었다. 15미터를 추락하면서 중간의 작은 테라스에 아이스 액스가 걸려 자기제동이 된 것이다.
나는 우리 애기들이 보고싶었다. 두 살반이된 우리 앤디와 이제 갓 돌을 지낸 제이슨을 두고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가 없었다. 약 15회의 하강 끝에 우리는 무사히 빙하에 도착하였다.
빙하 위에 살짝 덮인 시설은 아이젠에 스노우 볼을 형성하여 세 스텝에 한번씩 눈을 털어야만 하였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톱을 텐션을 이용한 글리세이딩을 하고 세컨드는 프론트 포인트로 이 빙벽을 모두 하강하였다. 한참을 내려가니 150미터의 절벽이 나왔다. 우리는 더 이상 가진 장비가 없었다. 맨몸으로 더 이상의 하강이 불가능하였다. "이젠 정말 끝장이다" "구조를 요청해야 겠지요?"
조대장은 그래도 여유다. 그는 좌측의 벽을 프리 솔로로 내려가 보자고 했다. 그의 자존심은 구조 당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내가보기에 그 벽을 프리솔로로 내려가는 것은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았다. 나는 폭풍이 더 심해지기 전에 구조를 요청해야 된다고 조대장을 설득하였다.
때마침 구름이 우리 머리위로 올라가면서 아래로 기차역이 보였다. "사람 살려 주 영 살려"
우리는 소리치며 빨간색 파카를 벗어서 흔들어 대어다. 내 일생에 처음 당하는 수치지만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기차역에서 누군가가 나와보는 듯도 하다고 생각했지만 30분을 소리쳐대도 구조대의 코빼기도, 헬리콥터도 이런 폭풍 속에서는 구조가 불가능한 게 사실이었다. 소리조차 들리지 안았다. 나는 열심히 죽어라고 파카를 흔들어 대는데 조대장은 마지못해 무대에 올라선 삼류 배우처럼,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파카를 흔들고 있었다. "야 ! 좀 제대로 흔들어 봐" "형! 이거 얼굴 팔려서 못해먹겠어요"
다시 구름이 내려와서 시야를 가렸고 우리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아이거 정상을 향해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대장이 신경질을 내며 한 피치를 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빨간슬링이 우측 벽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제이야! 하켄이다. 살았다"
제이도 밑의 고정 하켄을 발견하였는데 이 하켄은 우리가 구조요청을 하던 바위 밑 바로 3미터 지점에 있었다. 누군가가 우리처럼 이리로 내려가며 하켄을 박은 것이었다. 폭풍이 더욱 심해지기 전에 이 산을 벗어나기 위해 압자일렌을 두 번한 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자일을 풀고 각각 프리솔로로 하강하였다.
그때 갑자기 조대장이 빙벽에서 추락을 하였다. 자기제동을 바로 시도하였지만 아이스 액스를 손에서 놓치면서 맨손으로 추락하였다. "제이야, 제이야!" 나는 목놓아 소리쳤다. 제이는 약 30미터를 그렇게 절벽의 모서리를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15미터만 더 가면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이었다.
'제이 녀석 집에 가서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리나, 괜히 멀쩡한 녀석 꼬여서 아이거에 왔다가 죽게 만들었구나'별의별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며 지나 같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목놓아 소리쳤다.
'내가 왜 자일을 풀렀던고… 발버둥을 치며 35미터정도 추락하던 제이는 빙벽과 암벽사이의 움푹들어간지점에서 발악적으로 정지하였다. '살았구나'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이로부터 1시간후 우리는 평지를 밟을 수가 있었다.
기차역으로 걸어가는 나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앞장서서 서둘러 걸었다. 조대장은 왠 일인지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오고 있다. 그 역시 울고있었던 것이다. 기차에 울라 타니 난방이 너무 더워 우리는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 하였는데 시끄럽던 열차가 갑자기 쥐죽은듯 조용해 진다. 이상하여 둘러보니 이 기차는 단체 관광을 온 일본 처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들은 두명의 동양 클라이머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차에 올라 탄 뒤 옷을 마구 벗어 던지는 모습에 몹시 놀란 모양 이었다.
"귀여운 것들!!"
우리는 낄낄대고 웃을 수 있었다.
등반후 내려왔을 때 알프스 전역을 휩쓴 이 폭풍으로 샤이데그 잔디밭은 스키장으로 변해있었고 반바지를 입고 다니던 관광객들은 우모복을 입고 있었으며 유럽전역의 평균기온이 10도씩 떨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건의 조난사고가 이 지역에서 발생하여 13명이 실종 되었다. . 우리가 이러한 폭풍을 뚫고 살아서 이 산을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조대장의 헌신적인 활약과 나의 잔꾀의 힘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재수가 좋았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 북벽을 내려오니 사람들이 '당신들 운이 좋았습니다'고 얘기들 하였는데 나의 생각에도 우리들은 정말로 운이 좋았었다. 여관으로 돌아가니 여관의 여주인이 눈물울 글썽이며 우리를 반겨 준다. 그녀가 우리를 위해 요청한 구조대는 아직도 대기중 이었다.
전체 60피치를 오르는 도중 약 15피치정도에서 빌레이를 보았지만 모두 중간중간에 간헐적으로 하는 약식 빌레이었고, 하강기를 사용하는 정식 빌레이는 단지 5개의 피치에서만 행하여 졌다. 나머지 약 45피치정도는 모두 러닝 빌레이를 이용하는 연속등반 이거나 자일만 몸에 묶은 프리솔로였다.
북벽에 붙기전 까지는 이곳을 오른다는 것이 몹시 어려운 듯 느껴졌으나 실제로 북벽을 오르고나니 하루에 충분히 가능한 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북벽의 상태가 불량할 때 이 벽을 오른다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힘든 벽이 되겠지만 상태가 양호할 때 이 벽을 오른다면 대부분의 피치는 빌레이가 필요 없는 수월한 루트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태의 북벽은 단독등반에 가장 적합한 벽이 될 듯도 싶다.
우리 나라 클라이머 들의 수준은 지난 몇년간 괄목할 성장을 하였으므로 북벽의 상태가 아주 양호할 때, 코스를 정확히 알고 오른다면 10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나는 등반후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도 코스만 정확히 알고 올랐더라면 충분히 15시간 정도에 끝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리…
북벽의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 정승권 정도 수준의 클라이머 둘이서 '람프'까지 프리솔로나 연속등반후 상단부 중간중간에 잠깐 잠깐씩 빌레이를 보면서 오른다면 10시간 정도에 충분히 오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첫댓글 남가주에 있는 주영씨가 쓴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