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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손권마을(항조우 인근) 답사 중인 창파 전세영 교수-
창파 전세영 교수는 부산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9년 12월 현재, 중국 항조우사범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계십니다. 또한 지난 몇 년 간, 석음서당(부산교대 사회교육원 부설)에서 오랫동안 격몽요결(擊蒙要訣)을 강의하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지난 오월에 작고하신 퇴산 선생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친하셨던 분입니다.
고메 초대석에 이렇게 모시게 된 것은 오재 선생의 적극 추천이기도 하며, 연붕 및 석음서당 학우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모셔서 교수님의 근황과 중국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참고로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이뤄졌습니다.)
문 1.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떤 연유로 전통문화나 한문교육에 관심을 기울이시게 되었는지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저는 부산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전공은 정치학으로 세부 전공은 동양․한국정치사상입니다. 학회활동으로는 한국시민윤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부회장, 21세기 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학내 활동으로는 교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도에 <율곡의 군주론>으로 한국정치학회 학술상과 한국국민윤리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습니다.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은사님의 학문적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서양정치사상을 전공하신 박사논문 지도교수께서 “서양사상으로는 현재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동양사상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씀하시며, “힘이 들더라도 한문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여 한국학과 동양학에 매진하게 되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고 적극 권유하신 것입니다. 그 이후 서울의 유도회 부설 한문연수원에 등록하여 본격적으로 서당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한문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저의 학문적 필요에 의해서 한문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 서당은 훈장님 한 분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서오경의 과목별로 담당선생님이 계셔서 알차게 배울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외교)학과에 개설된 과목들은 80%이상이 서양관련 과목이고, 동양정치사상, 한국정치사상, 동양정치사, 한국정치사, 한국정치, 한국정부론 등은 일부만 개설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게 되면 한국 및 동양정치사상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날이 올 것으로 봅니다.
문 2. 작고하신 퇴산 이신성 교수님과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 오신 걸로 압니다. 석음서당의 강좌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시게 되었는지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서울의 통일연구원 부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잡은 후에도 유도회에 나갔습니다. 직장을 부산교육대로 옮긴 이후 독학으로 한문공부를 하다가, 학내에 서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2002년 1학기부터 석음서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강좌에 참여하게 된 것은 2003년 1학기부터 이신성 교수께서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면 간혹 대신 강의를 하다가 2003년 2학기부터 본격적인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퇴산선생께서 2003년 2학기부터 2004년 1학기 말까지 1년간 항주에 해외파견교수로 가시는 바람에 방학도 없이 1년 52주 내내 강의를 한 적도 있었고, 퇴산선생의 귀국 후에는 퇴산선생과 번갈아가며 격주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하겠다고 자청한 것은 첫째로 외부 강사 세 분은 3주에 한번 씩 강의를 하지만, 학내교수로서 퇴산 선생께서 혼자 강의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될 것 같아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강의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저도 공부를 해보자는 의욕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퇴산선생과 저는 의기가 투합하여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의중을 아는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문 3.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데 항조우에서 생활하시며 부지런히 중국문화에 대한 탐색을 하시는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항조우사범대학에 가신지 4개월로 접어드는데, 그동안 어려웠던 점과 문화충격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답)항주에 와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중국에서는 중국어 외에는 거의 말이 통하지 않아 벙어리 신세였다는 점이었습니다. 금년 1학기에 부산교대 학생들 틈에 앉아 중국어 수업을 듣기는 했으나 짧은 기간이라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습니다. 항주사범대학에서 저에게 무료로 중국어 랭귀지 코스(주 5일, 하루 세 시간 수업)를 무료로 수강하게 해주겠다고 항주사범대 총장이 적극 권유해서 중국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확실히 어학은 어릴 때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항주사대 국제 언어대학에서 중국어 연수를 받고 있는 유학생 숫자는 약 40개국에서 200여명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 와 있는 한국 유학생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소위 ‘먹고 놀기만 좋아하는’ 학생들로 소문이 나 있는 통에 저까지 그럴 수가 없어서 수업에 임하다 보니, 이 나이에 ‘학생’으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생활하기 위한 도구로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지, 학문 목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닌데도 그것이 주는 정신적 압박감이 상당히 컸습니다. 젊은 선생들이 숙제는 왜 그리 많이 내고, 질문은 왜 그리 자주 하는지 원... 여기에 온 목적이 저의 연구와 중국문화탐방에 있기 때문에 내년 학기에는 일주일에 2일 정도만 수강하고 저의 본래 목적으로 회귀하려고 합니다.
중국어 발음이 된소리(경음)과 센소리(격음)이 많고 4聲調가 되어 조용조용 말할 때는 참 아름답게 들리는데, 큰소리로 말하면 경상도 발음의 할아버지뻘 되는 소리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버스나 기차 등의 제한된 공간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을 참다가가서 주먹을 날리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자동차 문화가 초기단계라 그런지 교통질서 의식이 너무 낮은 것 같군요. 푸른 불이 들어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데도 차들이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오는 상황이 일상화 되어 있지요. 그것도 보통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래침을 뱉는 것도 죽을 지경입니다. 실내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보이니 힘들더군요. 사회주의 국가이니 정부차원에서 국민계몽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 4. 항조우사범대학에서 중국어 연수를 받고 계신 걸로 압니다.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십시오.
답)교육과정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없고 한국학생들과 외국학생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외국학생들은 - 미국, 일본, 태국, 예멘, 베트남,... - 일부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수업에 임하는데, 일부를 제외한 한국 학생들은 너무 불성실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상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들어오는 둥 마는 둥하고, 어떤 때는 책도 없이 들어오질 않나, 11시 30분에 수업이 끝나는데 11시 20분에야 들어오질 않나, 유명메이커 옷 사입는 데 만 정신이 팔려 있고, 끼리끼리 모여 술 마시고 노는데 정력을 쏟고 있고... 참 한심한 노릇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국학생들은 대부분이 중국어 연수를 하기 위해 2-3년간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여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한국학생들은 부모님이 지원을 해 주어서인지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창조적 소수가 사회를 이끌어간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비관적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에피소드 두 가지.
하나는 식당입구에서 흐릿한 사진을 보고 닭다리 하나와 다른 음식을 주문했는데, 나중에 쟁반에 나온 것을 보니 부리가 달린 오리대가리가 나온 것. 사진에서 봤을 때는 분명 닭다리였는데 어찌 이럴 수가? 사진이 흐릿하다 보니 오리의 머리 부분이 닭다리의 오동통한 부분으로 보였고, 그 아래 홀쭉한 부분이 오리의 부리였던 것. 한참이나 소리 없이 웃다가 그래도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살점 부분을 용감하게 시식해 보니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사실.
두 번째는 황산에 갔다가 사람에 밀려 미아가 되었다가 구출된 사실. 가을의 단풍을 보겠다고 1박 2일로 황산을 갔을 때였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황산에 오르는 일정으로 인해 첫째 날 오후는 자유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미남인 중국 은행원을 알게 되어 오후에 그와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황산 중턱에 올라 황산의 부분을 둘러본 후 한 시간 가량 계단을 뛰다시피 내려오느라 피로가 쌓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6시에 가이드의 인솔로 다른 팀과 함께 다른 케이블카를 타고 어제와 다른 지역에 도착했지요. 소문으로만 들었지 중국에 사람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황산에서 점심 식사 후 줄을 서서 어디론가 가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걷는 것이 아니라 2-4줄의 사람들이 손바닥 들어갈 틈도 없이 등과 배가 붙은 채 반발자국씩 밀려서 가는 것이었지요. 겨우 몇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중간에 철책으로 상행와 하행으로 나누어 철책을 넘지 않으면 반대편으로는 갈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오랜 경험의 산물인 것 같았지요. 처음에는 몇 걸음씩 걸을 수 있다가 나중에는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몸을 밀착한 채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반발자국씩 밀려가는 형국이 지속되었다. 마치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만들 때 익힌 찹쌀을 방망이로 밀어 넣으면 기계 끝에서 떡이 밀려나오는 그런 모양새와 다름없었지요. 그런 틈에 나와 동행했던 노인 분들도 어디론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새치기가 있었고, 전화 거는 사람, 침 뱉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 하다가, 한 시간 가량 그렇게 밀려나가다 보니 나중에는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요.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황산이라는 지리적으로 제한된 공간에 인원수의 제한 없이 무조건 사람들을 입장시키니 이런 현상이 있을 수밖에요. 아무리 중국의 명산이라고 그래도 산의 모든 공간이 사람으로 덮여서 거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것은 지옥과 다름없지요.
저는 어제 이쪽 방향은 대충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기를 쓰고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줄이 느슨한 틈을 타서 옆으로 나와 10여 분간 사진을 찍고 우리일행이 지나가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줄을 섰다. 이것은 새치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잠시 빠져나와 경치를 볼 수 있는 지점에서 있다가 다시 줄을 서는 것으로 빠져나오지 않은 사람은 그 시간만큼 한참이나 앞서 가 있는 형국이었지요. 10여 분간 밀려가다가 저 멀리 황산의 대표 봉우리이자 안휘성에서 가장 높다는 연화봉(1864.6m)가까이까지 사람들이 붙은 채 밀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기까지 가다가는 도중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하여, 볼 것을 포기하고 반대편으로 빠질 수 있는 문이 열려있어서 빠져 나왔다.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이 오면 되돌아갈 심산이었지요. 20분가량이 지났는데도 나와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쓴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혼자 이런저런 궁리를 한 끝에 가이드 몇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지도를 들고 내가 갈 곳을 설명하니 사람들이 저렇게 줄을 서 있는 곳을 계속 따라가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지점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이미 저쪽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줄에서 이탈했는데 정말 난감하였지요. 같이 있던 가이드에게 나는 한국인으로 항주에서 왔는데 나의 여행 가이드를 찾을 수 없고, 일행도 찾을 수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니 그들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 가이드의 전화번호를 주며 나의 위치를 말해 달라고 하였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난감하였지요. 어쩔 수 없이 내가 빠져나온 곳으로 걸어가니 젊은 경비원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영어로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 하니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나! 중국말로 나는 한국인인데 친구와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만 알아듣고, 그는 한국인이라도 새치기 하지 말고 줄을 서라고 말했습니다. 줄을 선 채 영문을 모르는 중국인들은 경비원의 말에 동감하는 듯“뛔이, 뛔이(맞다, 맞아!)”하고 있고... 졸지에 저는 새치기로 낙인찍혀 돌아서야 했지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가이드가 사정해서 줄을 서게 된 저는 앞뒤사람과 등을 맞붙인 채로 3시간 반을 밀려갔습니다. 죽을 고생을 해서 내려가 보니 저를 태우고 항주로 갈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이곳 온천장의 호텔은 값이 엄청 비싸다는 소문도 들었고... 다행히 가이드가 나를 발견하여 전날 묵었던 여관에 가서 1박한 후 새벽차로 항주에 돌아왔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혹시 책이 나오면 읽어보시기를...
문 5. 석음서당에서 오랫동안 격몽요결을 강의하신 걸로 압니다. 율곡의 교육철학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요즘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가정교육에 대한 생각도 말씀해 주십시오.
답)제가 율곡전서를 읽은 목적은 그의 교육철학을 연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율곡전서의 양이 방대하였으나 그 중에서 석음서당과 교대에 적절한 내용을 발췌하다보니 격몽요결을 강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교육관은 정통유가의 사상적 틀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즉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유가적 사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퇴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자신의 수양을 위한 ‘爲己之學’을 하다보면 모든 복록이 거기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출세를 위한 학문,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인 ‘爲人之學’을 비판하였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과거시험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런 현상이 주는 국가적 폐해를 지적하면서, 과거시험을 통한 인재선발이외에도 인재등용 방법의 다양화를 주장하였지요.
잘 아시다시피 교육은 하루 이틀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소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현들이 교육을 ‘百年之大計’라고 한 것이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려하지 말고 지혜와 지식을 물려주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군요. 부모가 앉아서 틈만 나면 집값, 땅값, 주식이야기를 하는 가정에서 무슨 원만한 교육이 이루어지겠습니까? 7-8년 전 검도부 학생들과 함께 저렴한 뷔페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우리가 앉은 옆자리에는 7-8명의 주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2시간 남짓의 대화 내용이 전부 아파트값, 땅값, 주식값이었습니다. 30명 가량되는 검도부 학생들도 거부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녀 교육에 관심을 쏟아야 할 주부들이 전부 돈에만 관심을 갖고 입으로 돈만 외치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결과 앞에서 지적했듯이 외국에 유학이나 언어연수를 온 학생들이 불성실하고 나태한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돈은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이면 충분합니다. 아파트와 땅이 투기의 대상이 되고, 1년 동안 성실히 노력해서 얻은 소득이 한번의 아파트 투기보다 못하다면,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값이 세계 유수의 도시들보다 비싸다는 것은 투기의 결과입니다. 결국 부동산 버블이라는 얘기이지요. 그 거품이 빠지게 되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땀흘리지 않고 번 돈은 대부분 자신과 가족을 망치는 법이지요. 부부가 집에서 돈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보다도 자녀를 한 번 더 껴안아 주십시오. 그리고 용돈은 약간 부족하도록 주십시오. 그 이상은 자식을 망치게 합니다.
율곡은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아홉 번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는 모든 면에서 당당하였고 국가적인 일이나 민생과 관련된 일이라면 군주인 선조에게 조차도 굽힘이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생활이 궁핍하였지만 자신의 대승적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미련없이 관직을 떠났습니다. 관직에 진출한 이후에 신병으로 고생하면서도 국가와 백성을 향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거나, 선조가 국정을 잘못 이끌어 가고 있다고 판단될 때는 군주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논자가 율곡의 여러 글을 대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우국충정(憂國衷情), 애민(愛民), 천재성, 완벽한 논리전개, 빈틈없는 언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 박학다식함 등 여러 가지였습니다. 특히 그가 선비와 신하된 입장에서 국가를 걱정하고 민생의 안녕을 위해 선조에게 구구절절이 써서 올린 간곡한 글을 읽으면서 몇몇 구절에서는 콧등이 시큰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유교는 요순시대를 정치적 이상향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론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사상체계가 군주와 지배계급의 통치이데올로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율곡은 유교적 이상을 정치현실에 접목시키려한 사상가였지요. 그런 점에서 그는 조선초기의 유학자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정치적 이상의 현실적 실현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율곡은 재야에 머물러 있었던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단지 서재 속에서 정치현실을 논한 글만을 남긴 ‘미지근하고 소극적인 사상가’가 아니라, 현실정치 속에서 부대끼며 경험한 모든 정치적 문제점을 유교적 이상론으로 풀어내려한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사상가’였습니다. 그의 사상적 출발점이 유교적 이상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원초적 한계가 있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비록 난진이퇴(難進易退)라는 정치행위를 자주 활용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면서 군주의 바람직한 통치방법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온 몸으로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율곡의 사상 속에는 역동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 6. 전공분야가 공자의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로 알고 있습니다. 일전에 어느 학자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의 공자사상의 의의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나아가 중국과 한국의 공자사상에 대한 차이(변천)을 비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답)지난 11월에 항주사범대 정치경제학 전공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특강의 제목은 ‘압축성장, 사회발전, 그리고 전통사상의 역할’(The Compressed Growth, Social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Traditional Thoughts)이었습니다. 한국은 이미 30여년 전에 압축성장을 경험했고, 중국은 현재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험이 중국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며, 압축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문제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전통사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념에 대해서는 관심이 희박한 것 같습니다. 오직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더군요. 그러다 보니 전통사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지요. 중국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안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 있었지요. 그것은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모택동의 권위실추를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는데, 그때 공자를 ‘부르주아 사상가’로 비판하면서 유교관련 유적이나 자료들을 많이 파괴하였지요. 그러나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공자가 복권되고 유가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젊은 남녀들이 나이든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이 무디어진 광경이지요. 지난번에 한국을 다녀오느라 짐이 많아 대학교정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짐을 들어주겠다고 하며 자기의 기숙사를 한참 지나 외국인 아파트 입구까지 짐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한국학생들은 어떨까요. 교대에서조차 교수들이 일을 부탁하려 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꽁무니를 빼는 현실을 생각하면서 저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중국의 학생들이 훨씬 순수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는 이런 가설을 세웠습니다. “국민소득의 수준에 반비례해서 사람들의 순수성은 높아간다.” 중국의 대학생들이 별도의 교육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천 년 동안 시회를 지배해 온 유교사상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교수들은 오늘날 중국 사회에 유교사상이 아주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물질이 무엇보다도 강조되다 보니 자신의 이익추구를 무엇보다도 강조하게 되며, 이기주의가 득세하게 되고, 그 결과 남에 대한 배려나 협동심이 약해진다는 점에서 유교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문 7. 인문학자들은 ‘21세기 광속의 시대’에도 여전히 동양고전의 진가는 빛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수님께서 감명을 받으신 책들 중에서 젊은 세대에게 추천하시고 싶은 고전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잘 아시다시피 고전은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읽어오면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준 작품에 대해 자연스레 붙여진 것입니다. 요즈음 일각에서 인문학이 강조되고는 있습니다만, 인터넷이 발달되다 보니 동양이든 서양이든 젊은이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사색하면서 무엇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려 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서 그냥 베껴내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 사이에서 오래 생각하고, 깊이 사유하고, 골치 아픈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상황이 지배적이 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반드시 배워야할 논리학, 철학, 경제학, 정치학 등등 머리를 쓰는 과목들은 줄줄이 폐강이 되고, 처세술, 돈버는 과목, 잔 재미있는 과목은 몰려드는 상황에 있습니다. 유명학자가 와서 특강을 하면 학생들이 없어도, 탤런트나 개그맨이 오면 수백 명 씩 모여드는 것이 현실이니 참 가슴 아플 따름입니다.
제가 추천하고픈 고전은 무엇보다도 논어입니다. 다음으로 순자입니다. 다름으로 한비자입니다. 다음으로 장자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강조하면서도, 우리들에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문 8. ‘고전의 메아리’에 소개하신 교수님의 중국 기행문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글도 글이지만. 교수님의 사진 실력에 탄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여행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저의 사진실력은 아직 아마추어에도 못 미칩니다. 여기서 사진을 찍어 보니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글은 시간에 쫓겨 우선 초고만 써가는 상황입니다. 지난번 미국문화기행이 일기체 형식이었다면, 계획 중인 책은 여행과 문화중심으로 준비 중입니다. 우선 항주부근의 대도시들이 역사적으로 수천 년 된 곳들이라 이곳 들을 자세히 살펴본 후, 겨울에는 쿤밍, 리쟝, 따리 등 따듯한 윈난성을 보고, 심천과 홍콩을 가보려 합니다. 봄과 여름에는 1차로 내몽골과 연변, 북경지역을, 2차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와 칭하이 성을, 3차로는 고도가 높은 시장 자치구의 라싸와 그 부근의 네팔을 가 볼 계획입니다.
문 9. 중국의 변화, 특히 항조우의 변화가 놀랍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중국에서 보는 한국, 항조우에서 바라보는 부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답)제가 여기서 본 중국은 용이 비상을 시작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곳곳에 고층건물공사가 계속 중에 있고, 특히 항주가 있는 절강성, 그 아래의 광동성, 그 위의 강소성 등 3개 성이 연안에 위치하면서 중국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곳 항주는 부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층건물과 고급 승용차가 많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마치 박정희 정권 때의 성장우선정책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빵 덩어리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빵 덩어리가 커야 나누어 먹을 것이 많다는 논리이지요. 우리나라의 아파트를 보다가 항주지역의 아파트를 보면 우리의 그것은 그냥 성냥갑을 세워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예술미고 조형미고 없이 그냥 세우는 것이지만 이곳은 예술미가 적지 않게 고려된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은 드라마의 영향도 있겠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두드러진 경제성장과 민주발전을 이룩한 국가라는 점에서입니다. 그들은 한국을 그들이 바라는 모델국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그것은 언론과 인터넷 매체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15억 인구가 살다보면 아주 특이한 일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만을 부각시켰다는 느낌입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배울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15-20년 후에 우리 경제의 앞날이 우려됩니다. 우리가 자만하는 사이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여 뒤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부산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한국의 경제에 대해서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문 10. 이 자리는 릴레이 초대석입니다. 교수님께서 다음 손님을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급적 석음서당과 관련된 분 중에서 한문학자 또는 고전에 밝은 분이면 좋겠습니다. 또한 초대하는 이유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답)박영진 선생님을 추천합니다. 譜學에 토대한 강의 내용이 재미있고, 무궁무진한 안동 관련 문화와 얘깃거리가 재미있습니다.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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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벽에 일어나 갓나온 가래떡 같은 창파 선생의 글을 읽었습니다. 행간마다 정치윤리학자의 예리한 시선과 통찰력이 느껴집니다. 황산에 가셨다가 미아가 되신 황당한 경험(비유가 폭소를 자아냅니다), 유학 온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불성실, 중국 젊은이들의 친절함, 고전에 대한 명징한 철학 등등.......새벽에 대학자로부터 쪽집게 과외를 받은 듯이 가슴이 뿌듯합니다.
교수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는데 전공을 알고, 동서양을 어우르는 학문과 생각을 엿볼 수 있네요. 교수님 얘기를 들으니 공부는 끝이 없게 느껴집니다. 모르는 것이 와 이리 많은지~~ 봐야할 책은 또 와그리 많은지~~ 눈도 가고 귀도 가는 이 마당에 ... 쯥!
창파선생,정말 반갑습니다.우리는 같은대학에 오랫동안 같이 근무하며 서로가 양측면(긍정,부정)을 비교적 잘알아온 사이라 생각되지요(우리 서당인들에게 모두 공개하기 어려운부분 포함해서). 그러나 이런 인터뷰통해 선생의 깊고 넓고 예리한 면을 재삼 보게되니, 연령차이를 불구하고 배울점이 많네요. 깊이 존경을 표합니다. 남은기간 유익한 날이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계기를 만드신 박하선생에게도 찬사를 보냅니다..운중
먼 곳에서 날아 온 다양하고 알찬 내용들 잘 읽었습니다. 객지에서의 어려움, 여행 중의 에피소드, 정치 고전 다방면으로 펼쳐주신 교수님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한국 학생들의 먹고 놀기식도 부모들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찬찬히 많은 이야기를 재미 있게 들려 주신 교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우짜든지 건강하시고 많은 것 보고 듣고 체험하셔서 짬짬이 들려 주시길 바랍니다.
생탁에 (~?! )~ 위하여~!! ~
~ 건배주에 연붕 학우님들과의 < 맛있는 수다의 점심 >이 그립지않나요~~ㅎ
갖가지 흥미로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고 에피소드 자주 부탁합니다.
우리나라 외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물건너 다른 나라에 가서, 보고 듣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오고 가네요. 창파선생님에 대해서는 기억되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통한 기사를 읽고 나니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분처럼 친근하게 느껴져서 너무 좋습니다. 중국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전에 대해 배우면서 세상살이의 이치를 조금씩 깨달아갑니다. 공자님의 말씀인 논어부터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