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년 마침내 누르하치는 명나라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누르하치는 여진족 중 최대의 강적이었던 예허여진과 맞서고 있었다. 명나라는 누르하치를 견제하게 위해 예허부족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르하치로서는 명나라와의 대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누르하치는 7대한(七大限)을 하늘에 고하고 공개적으로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 주요 내용은 누르하치의 조부와 부친의 살해와 명나라가 예허여진을 일부러 키워 후금을 견제한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누르하치는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명나라의 변경지에 있는 푸순을 급습하였다. 당시 푸순의 성주는 이영방이었는데 그는 누르하치가 이성량의 볼모로 있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이영방은 별다른 저항 없이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였고 이어 누르하치는 칭허를 공략하여 승리하였다.
누르하치의 명나라 공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621년에는 랴오둥을 공략하여 랴오허강 동쪽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랴오양에 천도하였다가, 1625년에 다시 선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 시점에서 그는 이미 여진족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족의 힘없는 추장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옛날의 누르하치가 아니었다. 그는 대국 명나라를 침공해 들어가 중국 본토를 차지할 것을 계획했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1626년 2월 누르하치는 랴오허(遼河)를 건너 영원성을 침공하여 중국 본토로 들어가는 길목을 수비하는 명나라 군대와 일대 격돌했다. 그러나 이 싸움은 후금의 공격에 성실히 대비한 명나라 장수 원숭환의 방어로 인해 누르하치의 패배로 끝났다. 누르하치는 원숭환이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홍이포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1618년 누르하치가 명나라와 전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맛 본 패배였다. 누르하치는 이 영원성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1626년 9월에 사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