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안녕하세요, 임재한 학생입니다.. ^^ 저는 Pound의 In a Station of the Metro를 가지고 이야기 좀 해보려 합니다... 이 시가 俳句(Haiku)를 본딴 거 다들 아시죠. 그래서 말인데요, 이 시를 느끼고 해석함에 있어 俳句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몇 개 감상해 보실까요?
古池や蛙とび込む水の音 - 松尾芭蕉
An old pond! A frog jumps in the sound of water.
(그림도 유명하죠? 집에 하나씩 다 갖고들 계시니... ^^)
あかあかと日はつれなくも秋の風 - 松尾芭蕉
Red, red, the sun relentless but the autumn wind.
いちはつの一輪白し春の暮 - 与謝蕪村
An iris, whiter at twilight in spring.
이상 세 편밖에 안 됩니다만,,, haiku는 수업시간에 말했듯이 순간의 미학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각적이지요.. 한 순간 포착되는 장면을 주로 묘사할 뿐이지만 그걸 읽고서 그 장면에서 화자가 느꼈을 느낌, 깨달음, 정서 나아가 깊은 삶의 철학 따위를 읽어내게끔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haiku의 특성은 오늘날 일본대중문화 속에도 남아있지 않나 하는데요... 다음은 일본 아니메 ココロ図書館의 opening song 가사입니다, 함 보실까요..
今日花が咲いたよ 오늘 꽃이 폈어
真っ白な小さい花 새하얗고 작은 꽃
ベランダの鉢植え 베란다 화분에 심어놓은 풀
勝手に君が買ってきた 멋대로 니가 사다 놓은
名前なんてすぐ忘れたけど 이름 같은 건 금방 까먹었지만
毎朝水だけちゃんとあげたのさ 매일 물만은 잘 주었지
こんなに可愛い花が咲いた 이렇게 예쁜 꽃이 피었어
歌をうたおう 노래를 불러
僕の口からでたらめメロディ 네가 멋대로 부르는 멜로디
誰も知らないうた 아무도 모르는 노래
君のこと大好きだよって思ってたら… 너를 무척 좋아한다 생각했더니
生まれたメロディ (저절로) 나온 멜로디
(생략)
어떻습니까.. 전 열 둘 (열 셋이던가) 시리즈로 된 '아니메'인데요, '우리 귀여운 코꼬로쨩은 숲 속 토쇼깐에서 살지요..' 하는 내용이 가사에 없습니다. 다만 꽃이 핀 사건 하나와 그에 대해 주인공 여자애가 생각할 만한 내용, 이런 단편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심성과 만화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듭니다... 순간에 영원함이 있노니... 사건 하나에 만화 내용 전부가 있노니... ^^
이쯤에서 Pound의 시를 봅시다..
In a Station of the Metro
The appat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haiku가 순간의 장면을 포착, 묘사한다는 점에 특별히 유의하시면 어떨까요... wet, back bough 등 죽음의 이미지... 라는 설명이 수업시간에 있었지만, 그 이전에 이 시 역시 뭔가를 보고 묘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그것부터 살펴보지요...
Pound가 직접 한 말을 엿보겠습니다...
"Three years ago in Paris I got out of a 'metro' train at La Concorde, and saw suddenly a beautiful face, and then another and another, and then a beautiful child's face, and then another beautiful woman, ... and I found, suddenly, the expression. ... not in speech, but in <font color=blue>little splotches of colour</font>... The <font color=blue>'one-image poem'</font> is a form of super-position, that is to say, it is one idea getting out of the impasse in which I had been left by my metro emotion..."
'One-image poem'과 'little splotches of color'란 말이 있는데, 역시 이 시가 순간의 장면을 포착, 묘사했음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에서 'black bough' 어쩌고 하는 것도 추상적인 이미지라기보다 뭔가를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크군요.. 그럼 과연 이 시는 무엇을 묘사한 걸까요?
Pound의 말을 다시 보면, 'Pound가 기차 안에서 나왔을 때'라는 힌트가 있지요... 아하! 제 머리 속에 뭔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재한: "Pound가 막 기차를 빠져나와 걷다 문득 뒤를 돌아봤습니다... <font color=blue>얼굴들... 아름다운 얼굴들... 줄줄이 이어진 꺼먼 기차칸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하얀 빛의 얼굴들..."</font>
음,,, 이 시가 haiku처럼 뭔가 하나의 장면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떻습니까.. 우중충한 지하도의 먼지 낀 우중충한 기차칸에서 걸어나오고 있는 사람들의, 마치 Ghost Busters에 나오는 유령인양 희멀건 빛깔의 얼굴들을 묘사한 게 아닐까요? black bough는 바로 줄줄이 연결된 기차칸들을 말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고... 물론 기차칸은 wet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건 나뭇가지가 젖을수록 더욱 검은 빛깔을 띤다는 점에서 등장한 말이라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재한: <font color=blue>"긴 기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하얀 얼굴이 마치 좀 전까지 내린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한 검은 빛깔인 나뭇가지에 줄줄이 피어난 꽃잎과도 같으니..."</font> ^^
... ^^ 이상 Pound가 보고 묘사했을 그 장면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Pound가 이 장면에서 순간 떠올렸던 정서와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수업시간에서는 죽음과 연관하여 설명되었습니다만,, 이 시가 그렇게 암울한 느낌을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Pound의 인용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들'이란 말이 나오기도 하고요, 그리고 '비에 젖은 까만 나뭇가지와 그에 달린 꽃잎들'이란 이미지가 그리 암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Pound가 죽음의 이미지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고, 또한 그래서 기차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지하도라는 장소적 특징과 맞물려 apparition으로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우중충한 이미지지요.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아름다운 얼굴들을 발견한 Pound는 아마 곧 미소짓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apparition 같다는 비유가 두번 째 행에서 바로 아름다운 꽃잎이라는 비유로 바뀌어져 버리는 거고요... 그렇다면 시에서 묘사된 이 짧은 순간은 <font color=blue>우울한 일상의 이미지 속에서 문득 아름다움을 발견한 Pound 내면의 자그마한 심경 변화를 간결하고 아름답게 담고 있는</font> 셈입니다..
어떻습니까, <font color=blue>시끄럽고 복잡한 지하도에서 문득 머리 속을 스쳐가는 생활 속의 자그맣고 흐뭇한 발견... 순간 시간이 멎고 귀가 먼 듯한 그런 평온하면서도 희열에 찬 내면의 고요</font>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Herbert의 Altar라는 시에서도 어느정도의 이미지의 순간 포착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제단을 보고서 느껴던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형 있잖아요 이미지즘이 과연 기존에 있던 시들과 극명한 차이점을 가질까요? 그리고 모더니즘에 대해서 설명좀 해주세요..^^
첫댓글 형.. 너무 멋져요^^
Herbert의 Altar라는 시에서도 어느정도의 이미지의 순간 포착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제단을 보고서 느껴던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형 있잖아요 이미지즘이 과연 기존에 있던 시들과 극명한 차이점을 가질까요? 그리고 모더니즘에 대해서 설명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