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세계 각지의 여행가이드북 및 지역별 문화예술 백과사전을 발간하는 <러프 가이드>(Rough Guides: www.roughguides.com) 시리즈가 제공하는 정보로서, 태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장르 "룩퉁"(Luk thung, ลูกทุ่ง)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소개한 글이다. 룩퉁은 "룩꿍"(Luk krung, ลูกกรุง) "멀람"(Mo lam 혹은 Mor lam, หมอลำ) 및 "깐뜨름"(Kantrum: กันตรึม) 장르와 더불어, 한국의 트로트 음악이나 일본의 엔카(演歌)에 대비되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음악 장르이다. 룩퉁, 멀람, 깐뜨름 등의 장르들 중에서도, 특히 룩퉁은 태국의 대중문화를 대변하는 위상에서 단연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한국이나 일본의 유사 장르와 비교해서도 훨씬 더 큰 상업적 음악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본 정보는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완역한 것으로, 사진 및 동영상은 별도로 추가한 것이다.
'룩퉁'이란 용어가 협의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느린 발라드 위주의 '룩퉁 형식' 음악만을 지칭한다. 하지만 광의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협의의 룩퉁을 비롯하여 보다 재즈풍의 전통가요인 '룩꿍'(Luk krung, ลูกกรุง), 이싼(Issan, อีสาน: 태국 북동부) 지방 및 라오스에서 인기가 있는 토속적이고 흥겨운 리듬의 '멀람'(Mo lam 혹은 Mor lam, หมอลำ) 및 태국 특유의 포크락 장르인 '플렝 프어 치윗'(Phleng phuea chiwit, เพลงเพื่อชีวิต: '인생을 위한 노래'란 의미) 등 성인가요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크세]
[개론] 태국 음악 룩퉁의 역사적 개관 : 대표적인 전통음악 장르
룩퉁 쇼를 보지 않았다면 태국을 말하지 말라 !
(사진) 룩퉁 쇼는 주로 유명 가수를 주인공으로 진행함으로써, 과거 한국의 가수들이 활동했던 리사이틀 형식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명 가수에게는 언제나 대규모 악단과 남녀 무용단 및 합창단, 그리고 개그쇼(만담)를 진행할 동료 코메디언들이 함께 동반해서 전국 투어에 나선다. 룩퉁 쇼에 출연하는 남녀 댄서들은 고전무용과 현대적 댄싱 모두에 능하고, 때때로 합창단 역할까지 해낸다. 룩퉁 쇼는 특히 그 출연자들이 태국의 전통 의상부터 심지어는 현대적 핫팬츠와 미니스커트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의상들을 지속적으로 갈아입고 출연하는 볼거리로 유명하다. 그러한 의상 중 유명한 스타일이 바로 이 사진에서 볼수 있는 무랑루즈 캉캉춤 풍의 의상이다. "룩퉁 패션"으로도 불리는 이러한 의상은 이제 룩퉁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위의 사진은 태국의 인물사진 작가 소라윗 붑파(Sorawich Buppa)가 촬영한 것으로, 대기실에서 준비 중인 룩퉁 댄서들의 모습이다.
보다 많은 화보들과 국영 MCOT의 "고교 룩퉁 경연대회" 정보를 보려면, 다음 게시물을 클릭하라.
태국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방콕 근교의 사찰(와트) 축제나 체육관, 혹은 지방의 사찰 주변 축제장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룩퉁(Luk Thung ลูกทุ่ง) 콘서트(쇼)를 관람하길 권한다. 아마도 당신은 아시아에서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대단한 대중음악적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룩퉁 쇼는 화려한 조명 속에서 만담식의 코메디(개그 쇼) 및 여러 종류의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며, 가수와 수십명의 무용수들(댄서들)이 참여하여 장시간 동안 펼쳐지는 공연이다.(역주1)
(역주1) 역자가 관람해본 공연들은 평균 진행시간이 무려 4~5시간에 이르렀다. 태국 지역 공동체에서 자주 보게 되는 축제기간이나 불교 명절을 맞이하여 사찰 주변에서 진행되는 축제장터에서 보게 되기도 한다. 혹은 유명 가수의 룩퉁 쇼일 경우, 그 공연만을 위한 독립적인 행사로 진행되기도 한다. 시골지역의 경우 여러 축제들이 지방자치단체 등이 스폰서의 협찬을 받아 재정을 부담하여 무료로 공연되는 행사들이 많은데, 이 룩퉁 쇼만큼은 거의 담장을 설치하고 유로로 진행된다. 대체로 1인당 100바트(2,500~3,000원) 수준의 입장료를 받으며, 입장객 규모는 적게는 2,000명 선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조명과 대형 음향장치, LCD 화면 중계장치 등 상당한 규모의 무대시설을 동반하는데, 아마 한국에서 디너쇼 형식으로 런칭한다면, 1인당 10만원 정도를 받아도 무방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도로 화려하며, 그 품격도 훌륭한 대중문화 공연예술로 생각된다.
"룩꿍"(Luk krung, ลูกกรุง)(역주2)과 비교해서, "룩퉁"(역주3)은 언제나 시골이나 도시 빈민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데, 이 장르가 지난 40여년간 전국적인 대중성을 누린 데서 기인한다.
(역주2) 원래 "플렝 룩꿍"(เพลงลูกกรุง)의 준말로 "플렝"(เพลง)은 동사로는 "노래하다"이고 명사로는 "노래"(歌)라는 의미이다. "룩꿍"을 직역하면 "도시의 아이들"이란 의미이다.
(역주3) 원래 "플렝 룩퉁"(เพลงลูกทุ่ง)의 준말로, "룩퉁"을 직역하면 "들판[시골] 아이들"이란 의미이다. 룩꿍 장르에 비해 룩퉁은 조금 더 올드하고 연장자들이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룩퉁 전문 DJ 쩬뽀뻬 쫍까분완(Jenpope Jobkrabunwan)에 따르면, "룩퉁"이란 용어는 1962년 짬넝 랑싯꾼(Jamnong Rangsitkuhn)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스타일로 녹음된 최초의 노래는 <오! 채소농삿꾼의 신부>(Oh Jow Sow Chao Rai: Oh, the Vegetable Grower's Bride)였고, 이 장르 최초의 대형가수는 1940년대 중반에 등장한 캄론 삼분나논(Kamron Samboonanon 혹은 Kamrot Samboonanon,คำรณ สัมบุณณานนท์)이었다.
(동영상)깜론 삼분나논이 부르는 <황금도시의 태국인들>(คนไทยเมืองทอง: 콘타이 므앙텅). 오래된 LP 사운드이다. 나콘 라차시마 도에는 "므앙텅"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존재하기도 한다.
"룩퉁"은 원래 "플렝 딸랏"(pleng talat, เพลงตลาด: 시장통의 노래) 혹은 "플렝 치윗"(pleng chiwit, เพลงชีวิต: 인생의 노래)이라 불렸는데, 태국 전통음악의 핵심 장르인 민요풍의 "플렝 프어 반"(pleng phua bahn)과 태국 민속춤인 람웡(ram wong, 람봉) 형식이 결합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또한 1950년대가 되면 말레이 전통의 현악기들과 말레이식 바이얼린이 악단 편성에 추가됐고, 그 무렵 라틴 음악의 거장이자 명 악단장 자비에르 쿠가트(Xavier Cugat)가 아시아 순회공연에 나서면서, "차차차"(cha-cha-cha)와 "맘보"(mambo) 같은 리듬들과 라틴식 금관악기(브라스, brass) 편성도 추가됐다.([역주] 자비에르 쿠가트는 1910년 스페인에서 출생하여, 5세 때 쿠바로 가서 음악교육을 받았고, 16세 때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음)
또한 헐리웃(Hollywood) 음악영화들과 진 어트리(Gene Autry) 및 행크 윌리암스(Hank Williams) 같은 "요들송적인" 창법의 컨추리 앤 웨스턴 음악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동영상) Xavier Cugat - She's a Bombshell from Brooklyn (1943) 작, 편곡자이자 명 악단장이던 자비에르 쿠가트의 악단이 연주하는 차차차와 맘보 뮤직. 1950년대 아시아의 대중음악계는 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그리하여 당시 최고의 뮤지션들은 작곡자 겸 편곡자, 가수 겸 악단장 겸 연주인을 겸하는 것이 하나의 이상이었다. 한국의 경우 배호 같은 초기 대중음악 천재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음악의 제왕"으로 불리다 크메르루즈 정권기에 사망한 신시사모웃(Sinn Sisamouth) 역시, 자국의 음악계에서 그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한국, 일본, 태국, 캄보디아 등 아시아의 대중음악은 20세기 중반경에 모두 유사한 과정을 겪으면서 발전했다.
(동영상) 배호의 <누가 울어>(1969년). 그가 27세 때 부른 이 동영상에서, 반주음악의 편곡은 정통적인 트로트 리듬으로 된 스튜디오 앨범과 달리 스윙 음악으로 되어 있다. 중학교 2학년 과정에서 중퇴한 배호(본명: 배만금)는 각 방송국 악단장들이었던 김광수, 김광빈 등 외삼촌들을 따라서 방송 3사의 전속악단에서 드럼 연주자로 음악을 시작한 명연주자였다. 가수로 데뷔한 후에도, 그는 당시 서울 최고의 사교클럽이었던 충무로 "풍전호텔" 악단장 겸 작곡자로서 라틴풍 및 재즈풍의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재즈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바운스 감각(리듬 타고 나가기?)을 지녔던 이 천재는 불과 2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52년, 신인가수였던 수라폰 솜바띠짤른(Suraphon Sombatjalern, สุรพล สมบัติเจริญ)이 자신의 데뷔곡 <위앙짠[=비엔티안] 출신 그녀의 눈물>(น้ำตาสาวเวียงจัน)을 발표했고, 1967년 불의의 공격으로 살해당하기 전까지 이 장르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성편력 등 여러 소문들이 무성했다. 수라폰 솜바띠짤른은 룩퉁의 형식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 이 장르의 발전에 공헌했다. 그리하여 룩퉁의 "여왕"으로 불린 펑시 워라눗(Pongsri Woranut, ผ่องศรี วรนุช)과 더불어, 룩퉁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차지했다.
(동영상) "룩퉁의 제왕" 수라폰 솜바띠짤른의 곡 <뻰 솟 탐마이>(เป็นโสดทำไม: 왜 혼자 살아?).
(동영상) "룩퉁의 여왕"으로 불리는 펑시 워라눗의 노래 <마이 와 메이 름>(ไหนว่าไม่ลืม: 잊지 않는다고 말해 줄래요?). 1939년생인 그녀는 아직도 원로가수로서 드물게 무대에 서기도 한다. 태국의 이미자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아래의 동영상은 2012년 공중파 방송인 채널3과의 인터뷰 프로그램이다.
오늘날의 룩퉁 음악은 태국 전통민요와 유랑극단 전통인 "리께"(likay, ลิเก),(역주4) 그리고 서구식 대중음악까지 결합하면서 발전한 것이다.
(역주4) "리께"는 캄보디아의 "유이께"(Yike)와도 유사한 유랑극단에서 파생된 극예술 형식이다.
태국의 "룩퉁" 음악은 분명히 인도네시아의 "당둣"(dangdut)이나 일본의 엔카(演歌)와 같이 아시아 주변국들의 전통가요들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태국의 룩퉁은 그 스펙타클한 라이브 쇼 무대를 제외하더라도, 창법이나 가사의 내용에서도 나름의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태국 룩퉁의 창법은 글리산도(붙임음) 주법을 많이 사용하며,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음계와 훌륭한 장식음(꾸밈음)들을 가지고 있다. 즉 한 사람의 가수가 상당히 넓은 음역대를 소화해야만 한다. 가령 1992년 사망한 여성 대스타 품푸웡 두웡짠(Pompuang [Pompuang] Duangjan, พุ่มพวง ดวงจันทร์)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룩퉁적인 목소리를 갖기는 쉽지 않다. 고음과 저음에서 상당한 조절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룩꿍"과 비교해서 감정조절도 더욱 중요하다. 게다가 분위기를 강력하게 장악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품푸웡은 척추를 젤리로 변화시키는듯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1970년대 후반 태국 대중음악계의 최고 남녀 스타인 "사얀 산야"(Sayan Sanya)에 합류하면서 대가수로 부상했다.
(동영상) 품푸웡 두웡짠의 명곡 <낙렁 반넉>(นักร้องบ้านนอก: 시골집의 가수). 그녀는 1992년 31세의 나이로 인기절정의 순간에 사망한 태국의 국민가수였다. <낙렁 반넉>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남녀 가수들이 리바이벌해서 부르는 태국 룩퉁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수라폰 솜바티짤른과 품푸웡 두웡짠은 모두 시골 농촌 출신이고, 이들은 노래에 사용되는 음악적 주제와 가사의 줄거리를 청중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주로 작은 이야기로 엮어나가는 룩퉁의 가사들은 화물차 운전수나 농촌 총각과 처녀들, 가난한 농부와 윤락녀, 혹은 하녀들과 같은 전형적인 주인공들을 갖고 있다. 또한 그 주제 역시 확실하게 비극적이거나 성적 쾌락이 기다리고 있는 대도시로의 이주 같은 사건들이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룩퉁의 노래 자체는 당국의 외설 검열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외설적 표현이 다소 정제되어 있지만, 노래를 부를 때의 창법이라든지 무대 위에서의 동작표현 등은 상당히 선정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TV가 도래하고 스트링(string)(역주5) 뮤직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태국 내륙지역에서 활동하던 룩퉁 쇼 단체들의 수가 크게 줄었다. 폼푸웡 두웡짠은 생전에 밝히기를, "항꾸엉"(hang kruang: 합창단) 속의 무용수들을 포함하여, 100명 이상이 함께 투어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 바 있다. 그녀는 "우리는 4시간 이상 공연하지만, 스트링계 밴드들을 보면 스탭들도 별로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서 고작 2시간 남짓 공연을 한다"고 말했다.
(역주5) "스트링" 음악은 태국의 팝뮤직(pop music)이나 락뮤직(Rock music)과 같은 신세대 취향의 장르들을 총칭하는 용어로, "타이팝"(Thai pop)이라고도 부른다.
품푸웡은 스트링계 음악의 출현에 대한 대응책으로 프로모션 비디오 제작에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플로어형 댄스와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된 사운드를 가진 음악이 출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일렉트로닉 룩퉁"(electronic luk thung)이다. 하지만 룩퉁 가수들 중에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폼푸웡은 발라드에서 빠른 템포의 댄스곡까지 소화할 능력을 가진 가수였다. 그녀가 음악적 영역을 넓히자 그 인기 역시 엄청나게 확장됐다. 1992년 그녀가 단지 3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녀의 고향인 수판부리(Suphanburi)에서 진행된 다비식(화장 의식)에는 왕실 가족부터 농촌 빈곤층에 이르기까지 20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녀를 추모했다.
품푸웡 두웡짠이 사망한 후 룩퉁 장르의 정상을 지배한 가수는 껏 짜끄라판("Got" Chakrapand, ก๊อท จักรพันธ์, 껏 짜까판)이었다. 그는 팝 스타일과 룩퉁을 접목시켜 많은 젊은 팬들을 확보했다.
(동영상) 껏 짜끄라판의 노래 <몬락룩퉁>(มนต์รักลูกทุ่ง: 농촌 시골의 아이들)들. 이 곡은 원래 원로 여가수 펑시 워라눗의 히트곡이다.
(동영상) 껏 짜까판이 2012년에 발매한 신보 <약 툭콘 락하이루 레우 루럿>(อยากถูกคนรักให้รู้แล้วรู้รอ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여 구원된다면). 껏의 목소리는 감미롭다.
(동영상) 껏 짜까판의 신나는 노래 <롬팟 롬페>(ลมพัดลมเพ). 2011년 발매.
반면 이 시기에 여성으로는 처음에 수나리 라차시마(Sunaree Ratchasima, สุนารี ราชสีมา)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후 패기만만한 아파폰 나콘사완(Arpaporn Nakornsawan, อาภาพร นครสวรรค์)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동영상) 수나리 라차시마의 노래 <카오 넌 반나이>(เขานอนบ้านใน: 그는 어느 곳에서 잠드는지).
(동영상) 아파폰 나콘사완은 주로 댄스뮤직 풍의 룩퉁을 구사했다.
마이 피롬폰(Mike Piromporn, ไมค์ ภิรมย์พร)은 원래 "멀람" 장르의 가수였는데, 껏 짜끄라판의 주요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1997년 방콕에서는 24시간 룩퉁을 방송하는 "룩퉁 FM"(Luk Thung FM: 90Hz) 라디오가 개국했다. 이 방송국은 심지어 중산층 사람들까지도 오늘날의 룩퉁을 좋아하게 만들어주었다.
(동영상) 마이 피롬폰의 노래들. 그의 목소리는 구성지며 시골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애호가들이 룩퉁의 고전적 앨범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자, 솟사이 룽퐁텅(Sodsai Rungphothong สดใส รุ่งโพธิ์ทอง)을 비롯한 원로가수들이 자신들의 곡을 재취입하기도 했다. 솟사이는 <나는 넝폰을 사랑해>(รักน้องพร, 락넝폰) 앨범을 무려 200만장이나 팔아치우기도 했다.
이후 새로운 세대의 뮤지션들도 대거 출현했다. 이 중에 유명한 이들로는 몸싯 캄서이(Monsit Kamsoi, มนต์สิทธิ์ คำสร้อย), 잉용 욧부웡언(Yingyong Yodbuangarm, ยิ่งยง ยอดบัวงาม), 유이 욘듀(Yui Yardyuh), 따이 어라타이(Tai Orathai, ต่าย อรทัย: 여), 폰 타나순톤(Fon Thanasunthorn, ฝน ธนสุนทร) 등이 있다.
(사진) 201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따이 어라타이의 노래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신세대 룩퉁 가수들 중 일부는 마치 팝이나 락뮤직 장르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스타라는 비판도 제기되는데, 일리가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가창력보다는 귀여운 용모가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룩퉁은 오랜 기간 방콕의 바로 북쪽 근교에 위치한 수판부리(Suphanburi, สุพรรณบุรี) 도에서 공연자들을 중심으로 불려졌다. 하지만 이제 룩퉁 분야에서도 보다 다양한 지방적 특색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북동부(이산) 지방 가수들의 수가 더 많은 편이다. "룩퉁 이산"(luk thung Isaan, 이싼 지방의 룩퉁)은 보다 빠른 템포를 가진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 음악의 선도적 인물은 핌파 폰시리(Pimpa Pornsiri, พิมพา พรศิริ)로서, 그녀의 음악은 "룩퉁 쁘라육"(luk thung prayuk) 스타일이라고도 불린다.
한편 남부지방에서도 독자적 스타일의 룩퉁스타가 출현했는데, 에까차이 시위차이(Ekachai Srivichai, เอกชัย ศรีวิชัย)가 광범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동영상) 에까차이 시위차이는 북동부 이싼 지방 출신이지만, 남부지방인 말레이 반도 지역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가하는 가수이다. 그는 구수하고 해학적인 만담과 전통 국극(=리께)과 전통무용 등 태국 대중 극예술의 다양한 재능을 무기로 자신의 순회공연단을 이끌고 있다. 그의 쇼는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다채로운 내용과 화려한 의상, 4시간에 달하는 런닝 타임 등으로 유명하다. 태국 남부지방에서 지방의 주요 축제가 있을 경우, 지역 유지들이 협력하여 도청 차원에서 그의 쇼를 마지막 날의 메인 이벤트로 유치한곤 할 정도이다. 룩퉁 무용단과 관현악단 및 전통 악단, 코메디언 그룹과 동료 가수들, 그리고 상당한 양의 무대장치와 음향 및 조명 등 그의 쇼단은 주요 가수들의 순회공연단 중에서도 특히 대규모 구성을 갖고 있다. [크세]
하지만 룩퉁의 가장 놀랄만한 발전에는, 유창하게 룩퉁과 멀람 노래들을 불러대는 2명의 노란 머리카락과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등장한 인물은 스웨덴 출신의 남자가수 마낫 요나스 안데르손(Manat "Jonas" Andersson, โจนัส แอนเด่อสัน: 요낫 앤더산)으로, 그는 <제 이름은 요낫이예요>(Pom Cheu Jonas)라는 데뷔 앨범을 출시했다. 요낫은 이미 룩퉁계의 단골손님으로 자리를 잡았다. 두번째로 등장한 인물은 영국-네델란드계 여성인 크리스티 깁슨(Kristy Gibson, คริสตี้)으로, 그녀는 주로 "룩퉁 이산"과 "멀람" 곡들을 즐겨 부른다.
첫댓글최근의 한국 트로트계와 태국 룩퉁계의 교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태국 룩퉁.. 한국의 트로트나 일본 엔카는... 노래 빼고 공연예술 전체적으로 볼 때는... 명함 내밀기가 쉽지 않을듯 합니다.. 대단하네요.. 노래뿐만 아니라, 춤과 퍼포먼스.. 대단한 종합예술이네요..
그나저나 자비에르 쿠가트 선생.. 참 대단한 쇼맨쉽을 가진 라틴 음악의 거장이었네요 ^^ 춤, 연주, 멘트.. 모두가 완벽하구만요~~ ^^
<베사메 무초>를 세계적인 연주곡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분이죠.. 심지어는 쿠테타 주도세력인 노태우 옹도 즐겨불렀다는.. ^^
그리고 배호선생의 동영상이 많지가 않습니다..
전에 셔플 스윙 반주로 된 <누가 울어>가 공개되어 있었는데.. 저작권 문제로 삭제가 되었네요.. 참, 배호 선생이 좀 더 오래 생존했더라면, 한국 대중음악에도 더 많은 발전이 있었을듯 하다는 생각이.. 깊이 뇌리를 스쳐갑니다.. 저 동영상이 제가 태어나기 꼭 몇달 전에 촬영된 것이네요..
첫댓글 최근의 한국 트로트계와 태국 룩퉁계의 교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태국 룩퉁.. 한국의 트로트나 일본 엔카는... 노래 빼고 공연예술 전체적으로 볼 때는... 명함 내밀기가 쉽지 않을듯 합니다.. 대단하네요.. 노래뿐만 아니라, 춤과 퍼포먼스.. 대단한 종합예술이네요..
그나저나 자비에르 쿠가트 선생..
참 대단한 쇼맨쉽을 가진 라틴 음악의 거장이었네요 ^^
춤, 연주, 멘트.. 모두가 완벽하구만요~~ ^^
<베사메 무초>를 세계적인 연주곡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분이죠..
심지어는 쿠테타 주도세력인 노태우 옹도 즐겨불렀다는.. ^^
그리고 배호선생의 동영상이 많지가 않습니다..
전에 셔플 스윙 반주로 된 <누가 울어>가 공개되어 있었는데.. 저작권 문제로 삭제가 되었네요.. 참, 배호 선생이 좀 더 오래 생존했더라면, 한국 대중음악에도 더 많은 발전이 있었을듯 하다는 생각이.. 깊이 뇌리를 스쳐갑니다.. 저 동영상이 제가 태어나기 꼭 몇달 전에 촬영된 것이네요..
[사후 감상] 껏 짜까판의 2번째 노래는..
바로 지금 한국에서는 듣기 어려운 디스코 리듬입니다..
기타와 키보드가 연주하는 리듬 말이죠..
새삼스럽네요..
"으짭! 으짭! 짜압~짜 으짭!"..
추억의 리듬이죠~~ ^^
방대한 자료입니다,
한두번 음악을 클릭하는것으로,,도처히 감이 오질않는군요,,
덧글 하나 달으려 하여도 몇번을 보고,,들어보고,,하여야 할듯
이런 엄청난 귀한,자료를 이렇케 접할수있게 다듬어주신 카페지기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카페의 문화예술 담당 고문님이신 꼬르 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기쁩니다~ ^^
저도 간만에 다시 폼푸웡 두엉짠의 노래를 몇번 반복해서 들어보니 훌륭한 가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남자가수 마이 피롬판의 노래는 농촌적 정서가 있어서 그런지
애절함이 가슴을 저며들어 오네요...
저리 고운 아가씨가 어찌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났누?
참~,,,안타깝네요,,
[안내]
동영상을 전면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그 동안에 크리스티 깁슨의 노래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네요..
게다가 서양인 특유의 풍부한 성량도 곁들여지고..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