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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대 시
초 대 시
◆ 지리산 문학회
목숨지기
문 병 우*
살아있는 참게 끓인 간장 붓는다
아홉 번 끓인 간장 속, 참게 아홉 번 죽어있다
죽음이 맛으로 남아있는 참게 뚜껑 속 검은 진국
아시나요. 오늘 아내는 큰스님 친견하러 가는 날
죄는 물로 씻으면 된다고
목욕 깨끗이 하고 게장쯤이야, 옷맵시가 맑다
돈 벌어오는 남편, 교수가 꿈인 아들
게장 먹다가 김도 먹으라, 친견한 사랑아
하얀 금속 물체 속
동글동글하게 비치는 다섯 식구
흔들리는 맛있는 진국 빛깔
지난날 참게도 다슬기를 맛있게 먹었겠지
죄야 모르면 귀신도 속는 법
살아있는 참게, 끓인 간장 붓는 아내여
참게와 숟가락 그리고 사람 그 먹이의 사건들은
유리문 안에서 일어난 일, 아내는 오늘 큰 스님
법문에서 무엇을 담아올까? 허리케인 미국의 옆
구리를 쑤시고 있는데, 생명들이 게장이 되어 가
는데, 참말은 산에 가야 꼭 있는지
빛나다, 나의 아내
살아있는 참게 끓인 간장 붓는다고
열린 세상 닫히겠나
나침반을 가지고 다녀요
노란나무대문 앞에서 오줌을 누다
번개 비를 쪼개는 것을 보았다
누워있는 산소 발자국 옆
크고 작아지는 것 빛으로부터 무디어질 때,
지린내도 비가 칼집을 내고 있었다.
철저한 분해위엔 바람의 손 지나갔다
땅 위 걸어 다니는 내 그림자
가을비 한줄기에 죽어나가고
얼마를 걸어 다녀야 줄기찬
閃光을 만나, 터 집하나 내리는지
오리무중 사거리는 땅값이 출렁거렸다
한참을 걸어, 소낙비 머리 풀 듯 가버리고
달은 따라와 공동묘지 조명은 완벽했다
무덤 위 소나무 그림자 내려 산소를 뒤척인다
번개 천둥들이 지나간 풀잎 부근엔
不立文字가 분명한 형성들이
모두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개는 만들 수 없는 내 그림자
소나무 그림자에 섞이면 바람의 손 나무가 된다
멀리 오줌을 누던 사거리 무덤 넘어 앉아있고
이곳 귀신들과 조용히 사귀고 싶다
귀신 머리가 마른 풀잎이라면 일어나라!
달빛 공동묘지 명상 지구라는 섬 흔들고 있다
나침반 남북을 가르치고 있다
춥다
동 행
달마가 나와 몽둥이 후리치면
눈물 분자가 되어 나온다
매 맞고 있는 팔십 노스님
지구 나이 무색하도록 소립자가 된 노스님 눈물
별에게로 걸어가고 있다
달마 눈을 두 번 감았다
천둥 번개가 몽둥이 이라서
바다가 시퍼렇더냐!
답 못하시는 노스님.
달마 몽둥이 물기둥 되어 육지를 들어서
해면 속, 가라앉혔다
억 만 년 전 물새 집, 바다 속 산호 숲 될 무렵
노스님 달마와 걸어 가신다
달마 앞이냐? 노스님 앞이냐?
제발 그런 짓은 하지 말거라
* 월간 <스토리문학>으로 등단, 현대불교문학, 지리산문학회원, 시집『禪시집』,『허수아비 보약 먹네』,
『흙파도』등
적벽송
문 복 주*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깎아지른 암벽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 있고 사람 살지 않는 섬이어야 한다
천길 아래 성난 파도 밀려와 으르렁거리고
모진 바람조차 휘감아 나가야 한다
구름 지나다 간간히 떨구어 주는 몇 개의 물방울
은혜되어 눈물 흘리는 곳이어야 한다
고깃배 지나가면 한나절 무심히 앉아 있던 물새떼들
놀라서 아우성치고 허겁지겁하는 이름 없고 외진 섬에서
이그러지고 구부러지고 휘어진 나의 등뼈로
허공에 받치고 있는 하늘보다 더 푸르게 지킨 나의 청솔은
뿌리가 물려 준 지켜야 할 가문의 고고함이었다
평면은 공간을 알 수 없다
살아온 날들의 슬픈 칼이 날아와 살점을 뚝 뚝 한 점씩
베어가고 남은 상처 밑둥 옹이져
지금은 굳은살들이 등이며 팔뚝이며 허벅지에
남아 몸은 더 이상 황홀한 감정을
불같은 성감대를 갖지 못한다
굳은살이 박힌 사이로 푸르게 강이 흐르지만
지나가는 것들이 남아 있는 것들의 내밀한
치욕이나 궂은 날이면 시작되는 곰팡이류의 무성한
일과성 통증을 어찌 다 기억할 수 있으랴
벽을 허물고 빛을 일으키는 순간에 마지막
묵시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목울대 누르는 생의 반란
절망에 떨어져 보지 않은 평면은
공간을 알 수 없다
무엇이 지나가는가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강물이 지나가고
라일락 꽃잎 책갈피에 꽂았던
추억과 꿈도 지나가고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시간도
흘러흘러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다 지나가고 남은 것은 없다
사랑이라 불렀던 사랑은 어디로 가고
증오라 불렀던 증오는 어디로 갔는가
돌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강물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추억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우리의 곁을 지나간 것은
존재가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생각해 보면
지나간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인 것을
위험한 항해
삶 어딘가에 숨어 있는 커다란 위험이
운명이란 이름으로 나타나 강줄기를 바꾸듯
저 세계의 탐험은 제우스의 신탁과 같아서
우리의 운명을 알 수 없게 바꿔 놓으려 하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오지에서 꽃잎보다도
더 쉽게 떨어져 지고만 사람들을 기억하지
無明의 바다를 건넌다는 건 정말 위험한 항해야
그러나 운명으로 선택된 사람들은 ‘왜 나인가?’를 묻지 않아
운명이란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그 운명 속으로 들어가
신화를 남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
황금 양털을 찾아 가는 이아손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딧세우스처럼
운명을 싣고 폭풍의 바다를 가는 건
희망과 미래를 내다 볼 줄 아는 용감한 자의 몫이지
어둠의 바다에는 알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
마지막 남은 미지의 세계여,
기다려라. 꽃잎을 떨어뜨리며 우리가 간다
불안한 산골
불빛만 보면 무작정 덤벼드는 온갖 날벌레
뛰어들며 뛰어들며 나도 한 때 뛰어 들며
살았던 미망들
인두로 지진 머리 상처가 아물지 못했는지
오늘처럼 산 속 깊은 곳에 밤비가 내리면
불안하기만 하다
어디든 헤매여야 하는 역살을 이 곳에 박았는데도
이 곳 산골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못해 불안하기만 하다
가뭄의 장마 끝 오감이 구멍마다 터지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그리움
어제 패다 만 장작의 무게가 그대로 남아 나를 누른다
지리산 자락 아직 낯설어
가까이 어느 때는 멀리 아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신선과 부처 어찌 그리 쉽게 만나지겠는가
산골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조금씩 불안해지는 밤
아내는 무료하면 신혼시절 가져온 재봉틀을 돌리다가
불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나는 곁에서 내일이 불안해
텃밭 가꾸기 책을 보다 쓰러진다
이제부터는 개구리 세상
박정만의 세상이다
* <현대시>로 등단, 한국시인협회, 함양문인협회, 현대시회, 지리산문학회 회원시집 『꿈꾸는 섬』,『우주로의 초대』,
『제주수선화』,『식물도 자살한다』등
대화
최 장 식*
이제 그만 좀 쑤셔대요
그만큼 빨았으면 됐지 안나온다고
마구 쑤셔댄다고 나오나요
어제는 보니 너울너울 춤을 추며
그 길쭉한 침인지 주둥아리인지
그토록 오래 빨아대고 쑤셔대도
파란 하늘 보며
바람난 계집 가을 향 신음소리로
실바람에 실려 보내시던데요
그런데 저는 왜, 맘에 안드시나요?
당신은 입술마저 짧고
짜증나면 한번씩
매끈한 엉덩이 끝에 달린 빨간 땡고추로
왜 그리 따끔따끔 그곳을 아프게 하는지
그래 누가 보내서 오셨나요?
여왕벌님께서 가보라 해서요
당신의 그 깊숙한 곳에 고인 그 맛이
이 가을엔 제일이시나나요
역시, 이 가을 제왕의 꽃이라는 걸
잘 알고 계시었군요
그럼 한번 내일 이른 아침
은구슬로 맺힌 이슬 꽃뱀이 핥고 난 후에
여왕벌님께서 직접 찾아오시라고 해요
욕하는 참새
참새가 씨벌씨벌 하며 재잘거린다
정성들여 다 길러놓은 새끼들이
시들시들 눈까풀이 자주 감긴다
큰일이다!
이러다간 참새들 싹 쓰리당하겠다
이제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도
깊숙한 산속으로 들어가
목탁소리나 주워 먹고 살아야 하나보다
눈알이 쑥 들어간 얼굴에
금이 가 입 바람 새어나가는 부리로
재 재 재잘 씨버 씨버얼 하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허수아비에게 속아 이리저리 도망도 다니고
훠이 훠이 하며 똘방똘방한 논주인 아들 녀석
돌팔매질 잘도 피해 다니셨다지
때론 아찔한 숨박꼭질 같은 삶이지만
참말이지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고
그런데 씨벌씨벌 그런 시절 오는날 있으려나
왠지 자꾸 너 죽고 나 죽는
세상 벼랑 끝으로 기울어 가고 있구나
씨벌씨벌 밀대모자 푹 눌러쓴
허수아비 같은 농투성이 아부지야
농약 좀 제발, 그만 뿌려 대시라요
씨벌 씨-벌........
봄
팔도 없다
발도 없다
1급 장애자다
봄이라는 눈 하나로
꼼짝 못하고 겨울 눈 속에서 보냈다
산비둘기 겨드랑이 깃털 바람으로
팔이 자라나고
다리가 자라나고
온 지상에
너불너불 푸른 피를 토해낸다
* <문예한국>으로 등단, 한국시인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함양문협회원, 지리산문학동인, 첫 시집 『나의 물음표』출간
연
이 영 숙*
길 떠나자
무명실 팽팽히 감긴 오색얼레
잠시 쉼표로 떨어진 시간의 낙엽을 밟고
속도를 넘어 날아오르는
황홀한 나의 부레.
오욕의 입자들
칠정의 입자들
육욕의 입자들로
가로막힌 산맥을 지나
무지개빛 십악을 넘는다
거미줄 친 십선을 넘는다
거친 바람에 댓살 꺾이며
속계 지나 선계
선계 지나 속계
속절없는 출가여.
떠나도 또 떠나도
한없이 맴도는 삶의 이랑
그 끝
천안의 미륵 웃고 있는가
피안의 문 열려 있는가
물고기 화석
물결에 쓸려 흩어진 선홍색 살점들이
가시를 세우다
깊은 어둠의 침묵에서 깨어나
지느러미 세우고 비늘 털며
힘찬 유영을 한다
어제의 꿈들이 난파되어
켜켜이 잠들어 있는 바다 밑
죽음으로 단단히 지킨 뼈대들이
폭풍 이는 오늘
태어난 곳과 돌아갈 곳 어디 쯤
지층을 만들고 있을까
죽은 후 전신에 남는 인광
썩음으로 이루어지는 퇴적층
세월의 녹 쓴 줄 끊고
등뼈 세운 나의 화석이 유유히 헤엄친다
유리창 3
촉 없는 화살 한 무더기
들어와 박혔다
스스로 울렸던 현들이
소리 거두며
비누거품으로 날아간다
울음을 대신하는 뻐꾸기 시계소리
아물던 상처를 타종 한다
순간
일시에 불 밝히는 횃불
어깨를 부딪히며 타고 있다
* <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인협회회원, 함양문인협회회원, 지리산문학회회원
천년의 숲
권 갑 점*
사립문 열고
지리산 골짝 내다본다
사운정 아래
문창후 최선생 비문 마지막 한 줄만큼은
다시 시작될 천 년의 사랑을
금호미로 심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자라는
숲, 오른손 호리병에 담은
위천수는 함양 사람들 골 깊은 가슴 씻어주고
왼손
연꽃 높이 받들어
씨눈 같은 우주의 빛을 모은다
지리산 마고할미 보낸
씨앗 하나 날아와
숲이 된 전설
북두칠성 사립문 활짝, 열어놓고
별들을 방목하는
숲
나는 이미 천 년을 살고 있다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의 훈수
숲 관리소 앞 낡은 의자
28년간 수도한 조 노인이
너덜너덜한 사주 책장 넘기고 있다
죄 지은 듯 앉아 있는 남원에서 온 연인
아무래도 점괘가 심상찮은 듯 도사 얼굴에
개서어나무 그늘이 내려 와 있다
말해야 할까?
고과살에 상충살도 있구만
옳아, 그렇지
슬하에 자녀가 많다고 하면 되겠군
조 도사 어깨 너머
나뭇가지 살랑대며 훈수 드는
나를 도사는 알기나 할까
조 도사 발에 내린 뿌리가 내 발목을 잡고 담 넘어와
우리 집 가문이 된 것도 모를테지
나무들은 안다. 다람쥐가 죽어 표피로 자란다는
사운정 앞 900년생 갈참나무도 다 알고 있다
상처 난 사람들아
자판기 커피라도 뽑아 도사에게 건네 보라
그대 팔자가 살짝살짝 변할 것이다
숲에서 28년 수도한 도사
참나무가 다된 손으로
천 년 전 비밀 하나 몰래 쥐어 줄지도.
석산화(石蒜花)1)
지상에 핀 꽃이 그냥 꽃이었을까
하늘에 핀 별이 그냥 별이었을까
바람이 쓸쓸함을 부추기던 날
견우가 암송한 시는 지상으로 날아와 꽃이 되었다
혀끝으로 시를 말아 올리는 가을의 눈썹, 그 아래
연인들은 받아쓰기에 하루가 짧다
가만히 숲을 들여다보라
바람은
사유를 해독해 낸 특권만이 볼 수 있는
상사화 키웠다. 사람들은
듬성듬성 음계로 놓인 젊은 신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껴안고 서로 꽃이 되었거나 별이 되어
끝내는 숲이 되었다
견우가 고백한 시 받아 적던 직녀
꽃의 기호 해독 못해 천 년 바람으로 떠도는
지상에 핀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하늘에 핀 별은 그냥 별이 아니다
* 경남 함양 출생, 농협중앙회 전국문예대전 시부문 우수작(1994), 수필부문 최우수작 선정(1995), <순수문학> 신인상수상(1995),
지리산문학회장 역임, 현 함양문인협회 회장
1)상사화의 일종, 9월이면 상림숲에 지천으로 피어남
환생還生
정 경 화*
로데오, 오 로데오
스위치, 스위치, 펄펄 뛰는
태백산맥 준령을 타고 넘어오는 자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선수
화살로 그 가슴 과녁 맞추기
푸드덕 장끼 한 마리 꼬꾸라져
굴러서 어디로 갔나
박세리 한희원 최근에 와서 위성미까지
날려보낸 새의 알들을 찾아
올인의 구멍 속에서
솟아오른 손, 펼쳐지는 하늘에
바이칼 호수 자궁의 물 찾아
떠나가는 기러기 떼
날개가 쓸고 지나간 길 선명히 남아
그 소리 흐드러진 열성인자 꽃길
까마득한 머리 위로
노랑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스위치, 오, 스위치 내려진
로데오, 오, 로데오 잠든
어깨를 들먹이는 바람꽃
어머니 꽃상여 깃발 속으로 팔랑팔랑
월암리月岩里가 굴다리로 길을 넣어
마을은 사람을 풀어놓을 때나
사람을 불러들일 때는
은밀히 길 아래 굴다리로 길을 넣어
길을 잡고 있는 자신이 거기 있음을 알렸다
멀리 대처로부터 달려 내려온
고속도로 제방에 막힌 병곡면 월암리가
길에 막히지 않고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길 아래로 은밀히 길을 넣어
길을 만들 줄 아는 까닭에
힘찬 펌프질 심장박동을 차지한 이래로
깊은 잠 빠진 일 없이
뜨거운 피 웅지를 펼쳐
江을 건너고 산맥을 뚫어 내달려온 길이
이곳 월암리 마을 앞에 와서는
은근슬쩍 옷자락을 들추어
* 함양문인협회, 지리산문학회,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선인장꽃은 가시를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