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 기아자동차산악회외 27명
♣ 언제 : 2014. 12.28일(일)~2015.01.04일(일) 06박08일
♣ 어디 : 로맨틱 그리스와 터어키 일주여행
♣ 코스 : 광주 - 인천공항- 터어키 이스탐블 - 그리스 아테네(2박) - 이스탐블(1박) - 카이세리(1박) - 카파도키아(1박) - 파묵깔레(1박)
♣ 날씨 : 지중해연안의 나라인지라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대체적으로 따뜻하고 겨울에 눈은 많치가 않음.
♣개요 : 고대문명의 발상지 그리스에서의 이틀동안 문화와 역사의 정취를 굵고 짧게 마치고,다시 본격적인 터어키 일주여행을 위해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에 위치한 터어키는 히타이트에서부터 로마,비잔틱 제국,오스만 대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거쳐간 곳입니다.초대 교회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많은 성지 순례객들이 터어키를 찾고 있으며,오스만 투르크제국의 화려했던 이슬람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는 이슬람국가로서 자리를 잡아있고,축구를 좋아하는 나라이자,한국동란시 참전으로 맺은 인연으로 인하여,한국인을 "코낼리(Koreli)" 즉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멀지만 아주 가까운 나라입니다. 여행 동선 그리스,터어키 지도 이스탐블 지도 터키정식 명칭은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으로, 한자어로 토이기(土耳其)라고도 한다. 지중해 및 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7200㎞이다. 지중해 북동쪽에 있는 나라.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에 걸쳐 있다. 면적은 78만 3,562㎢ 이고, 인구는 약 8,161만 9,392명(2014년)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다. 유럽 쪽의 트라키아는 구릉 지대이고, 아시아 쪽에는 남부와 북부에 산맥이 뻗었다. 트라키아 반도의 해안은 지중해성 기후이며, 내륙은 건조한 스텝 기후로 추위와 더위의 차가 심하다. 주민은 대부분 우랄 알타이어 계의 터키 인이다. 종교는 이슬람 교를 믿는다. 해안 지방에서는 밀 · 보리 · 잎담배 · 올리브 등이 나고, 고원 지대에서는 밀 농사와 더불어 양 · 염소 · 말 등의 목축업이 활발하다. 종족구성은 터키인 80%, 쿠르드인 20%, 아랍인 등이다. 언어는 터키어가 공용어이고, 쿠르드어와 아랍어 등도 사용된다. 종교는 인구의 98% 이상이 이슬람교(주요 종파는 수니파)를 믿고 있다. 경제는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이었으나, 1963년부터 5개년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여 경제구조의 산업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채소·과일류·잎담배·면화 등 농산물과 섬유제품을 주로 수출하고 원유·화학제품·금속제품을 수입하고 있으며, 근래에 중동지역에의 건설 진출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2007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6634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9629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를 가미한 의원내각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550석)이다. 주요 정당은 정의개발당(AKP), 공화인민당(CHP), 국가행동당(MHP), 민주좌익당(DSP), 정도당(DYP) 등이다. 오늘은 이스탐블에서 첫날밤을 지낸후 다시 비행기로 카파도키아 지역의 카이세르로 날아 갑니다. 터어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곳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마치 동화속에서 볼수 있음직한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드넓은 계곡지대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1,괴레메 골짜기 이곳은 바위동굴 속에 교회들이 위치하고 있다.3개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이곳 교회들 대부분은 건축시기가 9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는데,가장 오래된것은 1세기경으로 추정된다.교회 벽면이 온통 성서에 나오는 장면들이 그려진 성화로 장식되어 있어 더욱 유명하고,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스탐블 호텔에서의 첫날밤을 편안하게 자고 아침을 든든히 먹은후 호텔 로비로 내려오니,심총무님 내외가 터이키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어서 다들 터어키 왕자 흉내를 내며 재미있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나도 한컷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도 그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이 그대로 묻어 납니다. 젊잖은 사람은 젊잖하게..귀여운 사람은 귀엽게.. 우아한 모습의 현석형수님의 자태 한마디 툭툭 던지는게 무척 재미있는 군대 장교 스타일의 기호선님 비행기에서 카파도키아로 가는중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터어키 국토가 의외로 넓고 광활하여 비행기로 한시간을 달려도 이런 평야지대만 나옵니다. 가끔 이런 마을도 나오네요. 하얀 설산만 나오면 눈이 번쩍 트이는 저는 올여름 몽블랑에서의 생사의 기로에 선 추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이제 도시에 가까워 지는지 공장도 나오고,아파트도 보입니다. 터어키는 군사강국으로 알고 있는데,이 카이세르공항이 군사공항을 겸비하고 있는지 전투 수송기들이 많이 보이네요. 드디어 본격적인 터어키 카파도키아 투어에 나서는 카이세르 공항에 도착했네요. 날씨도 그리 춥지 않고 무척 즐거운 여행이 될것 같습니다. 즐거운 표정의 임옥현님 처제분 우리도 좀 찍어줘요.. 외국 공항에 내리는 국가 사절처럼 여유있고,즐거운 표정의 일행들 우리가 내린 공항은 그리 크지는 않치만,세계적인 관광지 카파도키아가 있어서인지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터어키 카파도키아 카이세르 공항 현지 로컬가이드와 함께 본격적인 투어에 나선다. 아담하고 정갈한 느낌의 카이세르공항 현지 경찰분이 한컷 찍어 준다. 아라라트산 [Ararat Mt.]
터어키의 아라라트산(Ararat)과 노아의 방주
성경에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러 있다고 기록이 되었는데 지금부터 약 4,500년 전에 있었던 방주가 지금도 아라랏 산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임을 증거하는 자료들이 계속 발견이 되고 있다. 해발 5,156 m 의 아라랏 산은 넓은 들판에 홀로 솟아 있으며, 그 높이에 견주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게다가 구름 속에서 어쩌다 잠깐 모습을 보이는 산꼭대기는 흰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 장엄함과 신비함을 더해 준다. 거기에 대홍수에 관한 전설까지 곁들여졌으므로 람들은 대대로 이 산을 공경하고 두려워 하였다.
기원전 300년, 바빌로니아의 신관 베롯소스는 '방주 있는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언제나 배에서 송진을 긁어내어 악마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삼았다' 고 썼다. 기원 초기에는 아르메니아의 수도자 죠지 하고피안 (George Hagoppian)이 방주를 찾으려고 몇 번이나 아라랏 산에 올랐다. 그가 세번째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은 이 산에 오르지 말라고 하시며 방주의 나무 조각 하나를 주셨다는 이 전해 진다. 어쨌든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거의 2 천여년간 아무도 이 신성한 산에 오르지 않았다. 아라랏은 '노아의 방주'와 '에덴동산'이 있었던 성지로, 하나님이 출입을 금한 금역으로 거룩히 여김을 받아왔다.
조선일보 1970년 3월 4일자 기사에도 언급이 되었듯이 프랑스의 실업자 '페르낭 나바라'가 아라랏 산에서 방주의 조각을 직접 가져 와서 그 나무 샘플을 미국 산림청에 감식을 의뢰하였다. 감식 결과 그 나무는 잣나무과에 속하는 백참나무로 밝혀졌는데, 이런 종류의 나무는 '아라랏 산'으로부터 사방 480km이내의 지역에서는 자라지 못하며 오늘날 유프라테스의 평원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지금으로부터 약 4,000여년 전의 나무였음이 밝혀졌다. 특히 이 나무 샘플 연구에 참여했던 미국 마드리드 산림 연구소와 보르도 대학에서는 이 샘플을 4천년 보다 더욱 오래된 것으로 감정했다.
기록에 의하면 1840년경부터 많은 탐험가들이 이 산을 올랐고 그 중에 방주를 보았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러시아 제국의 탐사 주목을 끄는 노아 방주의 발견은 성경 고고학자들이나 탐험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1916년 제정 러시아(구 소련)의 공군 비행기조종사에 의해서였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중의 러시아 공군기 조종사인 블라디미르 로스코비키 중위는 어느 날 새 비행기를 시험하느라 아라랏 산 근처를 순찰하다가 방주를 발견했는데 그는 그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뭐라고 소리치며 호수 가장자리를 가르켰다. 거기에는 동그스름한 지붕으로 덮힌 묘하게 생긴 배 한 척이 얼음에 파묻혀 있었다. 그 반대 쪽에는 7m는 됨직한 큰 문이 나 있었다. 우리는 기지로 돌아오자마자 대장에게 그 일을 알렸다. 대장은 자기를 그 곳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조금 드러내고 열 달은 얼음에 묻히므로 썩지 않고 5천 년간 버텨왔을 거라는 것이 대장의 의견이었다. 대장은 이 사실을 당시 러시아 황제인 니꼴라이 2세에게 보고했다. 과학자들은 방주의 사진을 찍고 위치를 지도에 그렸다….
그런데 황제가 미처 이 사실을 서방 세계에 알리기도 전에 러시아는 신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니꼴라이 2세 일가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노아의 방주가 사실임이 밝혀지면 종교가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한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것이므로 공산주의 정권 기반을 흔들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뒤 우리 항공대의 몇몇 사람들은 아르메니아를 거쳐 자유세계로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여 노아 방주의 존재는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세상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
미국과 소련의 탐사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소련 공군 마스케린 소좌가 1916년의 기록을 확인하려고 부하로 하여금 아라랏 산을 정찰 비행토록 하였다. 부하는 돌아와서 얼어붙은 호숫가에 반쯤 파묻힌 배가 있다고 보고했다. 특별 조사반이 그 곳에 가서 조사한 바로는 그 배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거의 화석으로 변하였고, 길이는 120m가 넘는다고 했다(성경에는 135m정도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알려지지 않은 채 비밀에 붙여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 사건이 역사적 사실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다른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그것은 곧 미소 냉전시대에 'NASA'(미항공우주국)의 군사위성이 소련의 국경지대를 정찰촬영 중 방주 모양의 한 구조물을 포착한 사건이다. 소련이 '무기제한협정'을 이행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이 인공위성은 텔레비전 카메라와 적외선 필름 및 야로 어떠한 기후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기타의 정밀한 탐지기를 갖추고 있었다.
의하여 아라랏 산 위에 노아의 방주가 있음이 공식적으로 밝혀져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국방성의 고위관리들은 펜타곤의 일급 기밀실에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군사사진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군사기밀에 관련된 사진이기 때문에 민간인들은 접근할 수가 없다. 아라랏 산 탐험과 방주의 발견 과거 수백 년간 탐험가들과 인근 주민들은 노아의 방주와 그 유물을 찾기 위하여 아라랏 산을 등반했고 방주를 발견하거나 방주의 잔해 조각을 가지고 온 기록들은 아래와 같다.
1) 1886년 제임스 브라우스는 단독으로 아라랏 산을 등반하던 중 방주 조각으로 보이는 돌같이 굳은 목재를 가지고 왔다 2) 1887년 죠셉 노우리는 방주를 발견했는데 그 위치는 나무가 한 번도 자란 적이 없는 불모지였다. 3) 1905년 목동인 야곱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가다가 방주를 발견하였다. 4) 1908년 목동인 죠지는 아라랏 산에서 방주를 보았다. 5) 1916년 러시아 군인이 비행 중 방주를 발견하였다. 6) 1936년 뉴질랜드인 하드위크 나이트는 아라랏 산 등반 중 직사각형의 선재(船材)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목재의 크기를 보고 능히 추정할 수 있었다. 선체의 대부분은 눈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그 내부구조를 살펴볼 수 없었다 .(죤 몽고메리의 7) 1938년 소련 공군의 한 조종사는 아라랏 산 공중 탐사 중 해발 1만4천 피트(4.2km) 상공에서 얼음 밖으로 약 80~90피트(27m)쯤 튀어나온 방주의 사진을 찍었다. 8) 1948년 9월 레쉬트라는 쿠르드인 농부는 협곡에서 녹은 얼음 위로 드러나 있는 방주의 뱃머리를 발견했다. 뱃머리는 거의 완전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방주의 대부분은 아직도 빙하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는 당시의 목격담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전에 배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방주를 목격했을 때 그것이 배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9) 1952년 미국인 죠지 제퍼슨 그린은 헬리콥터로 100미터 위에서 6장의 선명한 방주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실제로 본 어느 미국인은 "솔직히 고백해서 나는 성경을 믿어본 적이 없답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고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요,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라고 말했다. 10) 1953년 페드랑 나바라가 아라랏 산 탐험 도중 방주를 발견하였다. 그는 후에 아라랏 산에서 노아 방주의 나무 제목을 가져왔는데 그것을 정밀 분석해 본 결과 그 나무는 유프라테스 평원에서만 자라는 나무임이 밝혀졌다(유프라테스 지방은 당시 노아가 배를 만든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11) 1974년 미국 'NASA'의 인공위성 사진에 의하여 아라랏 산위에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 12) 1974년 터키 정부가 아라랏 산에 외국인들의 여행과 탐험활동을 금지한다는 공식 발표를 하였다.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방주가 발견된 곳이 소련의 군사기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라 하였다. 13) 1984년 미국 NASA인공위성 어츠호는 인공위성 사진에 의하여 아라랏 산에 방주가 머물러 있음을 증거하였다(1990년 6월 학생과학) 14) 1984년 미국 국제탐험단의 마빈 스티핀스는 아라랏 산에서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는데 배 모양의 형태는 대략 길이가 136미터 넓이가 24미터 높이가 14미터인데 이는 성경에 나오는 길이 "300규빗, 넓이50규빗, 길이 30규빗'과 같은 것이다. 15) 1992년 현재는 터키 정부가 소련연방의 해체와 무신론인 공산주의의 위협이 퇴조되는 때를 같이하여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을 하고 있다. 16)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험가인 마르코폴로(A.D1234~1324)는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산이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던 아라라트산(5,185M)은 아니지만,현지 가이드 우경석해설사님께 물어보니 터이키에서 가장 높은산이 아라라트산이고 그산에서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검색하여 자료를 올려 보았다. 다음에 오게될지는 모르겠지만,새로운 버킷리스트에 올려 놓아 새로운 꿈을 꾸게될것 같다. 다시 여행 일상으로 돌아와 창가에 스치는 마을을 구경하면서 해설사님의 터어키역사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든다. 해설사님의 뒷모습도 한컷 하고.. 드디어 카파도키아 괴레메 계곡에 들어선것 같다. 특이한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우리를 환영하듯 일렬로 정렬되어 있는 느낌이다.
괴레메계곡에 내리자마자 아이스크림 코너의 잘생긴 터어키 젊은이들이 대번에 한국사람 인줄알고,"안녕사세요"를 외치며 젊은 처자들을 유혹한다. 1,괴레메 골짜기 이곳은 바위동굴 속에 교회들이 위치하고 있다.3개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이곳 교회들 대부분은 건축시기가 9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는데,가장 오래된것은 1세기경으로 추정된다.교회 벽면이 온통 성서에 나오는 장면들이 그려진 성화로 장식되어 있어 더욱 유명하고,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주제로 하고 있다. 독특한 형태의 괴레메 기암들 예전에는 저곳에 수십개의 교회들이 있어서 수도사들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중동부를 일컫는 지명이다. 페르시아어 '카파투카(Kapatuka)'에서 나온 말인데 '좋은 말(馬)의 고장'이라는 뜻이라 한다. 카파도키아에는 수많은 지하동굴이 있다. 그 지하동굴에서 많을 때는 약 200만 명이 거주하는 지하도시가 형성됐다고 한다. 지하 교회만 해도 1천여 개로 추정된다. 가운데에 구멍이 난 것, 움푹 팬 것, 사람이 일부러 안을 파내어 방을 만들거나 곳간을 만든 것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기이한 자연 조각품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괴레메이다.
우리 옛말에 '괴다'를 연상시킨다. '괴다'는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괴레메의 '메'는 곧 '뫼'이니 산을 일컫는 우리 옛말이다. 괴레메의 '레'는 미래를 나타낼 때 쓰는 'ㄹ'이라 본다면, 괴레메는 '괼 메' 즉 '사랑할 산' 또는 '사랑하고 싶은 산'이라는 뜻으로 유추된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증샷을 한장 남기고.. 해설사님의 설명도 들어야하고,사진도 찍어야하고 몸과 마음이 무척 바쁘게 움직여햐 했다. 틈틈이 남일이 심포지움도 참석해야 하고..ㅎ 워낙 우경석해설사님의 설명이 속사포같이 쏟아부어 전부 기억나지는 않치만,역대 해설하신분중 최고로 꼽는 터이키 해설사님이 아닐까 생각한다.(내생각) 다른 나라도 그런 나라들이 많치만 이곳 터어키도 항상 우리나라 가이드 말고 자국의 현지가이드(일명:로컬가이드)를 고용해서 함께 다녀야 한다고 한다. 우리 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아 별로 하는것은 없지만,그래도 현지에서 잡다한 일을 해주어 나름 편한 부분도 있었다. (예:입장권 티켓팅,식당 안내,그리고 이렇게 사진 찍어 주고..ㅎ) 공포 영화의 괴물처럼도 보이는 괴레메 용암층 한정된 시간에 전부 다 둘러 보지는 못하고,해설사님이 지정해준 중요한 포인트만 둘러보고 인증샷을 남기고 구경을 한다. 흑산도 산행후 돌아오는 배에서 우연히 만나 지금은 여행 동호회처럼 가끔 만나서 산행도 하고,해외 여행도 하면서 즐거움을 함께하는 소중한 분들이다. 맏형으로서 항상 동생들을 잘 챙기고 있는 현석형님 내외 동궁안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크지만,야외를 둘러 보면 신비로운 원뿔을 엎어 놓은듯한 용암층 기암들이 즐비해 참 신기한 풍경이다. 수도승들이 살았던 동굴 내부인데 다른 중요한 동굴은 벽화들이 훼손될까봐 사진을 못찍게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잇었는데,이곳은 괜찮은지 사진을 찍고 있어서 몇장 담아 본다. 이번 여행은 관광이지라 인물사진을 많이 찍어,인물과 풍경사진을 분리해서 올려야 하는데 함께 올리다 보니 이야기가 자꾸 끊기는 부분이 있는것 같다. 보는 사람들도 좀 지겨울것 같고..ㅎ 이해 바랍니다. 그래도 우리 맏형 현석형님은 머가 그리 좋은지 항상 싱글 벙글이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장모님이 위독하시다고 공항에서 바로 장모님이 계시는 시흥으로 달려 갔는데, 결국에는 며칠뒤 유명을 달리 하셔서 좀 힘든 시간도 있으셨다. 제법 사진 포인트 같아서 올려 보냈는데,썩 잘나오지는 않은 사진이었다. 우리 언니들도 올려 보냈는데 뒤늦게온 남일이도 합류를 하고.. 과거에는 중책을 맡아 일만 하다가 다 내려놓고 지금은 대내외 산악회 활동을 매주 열심히하는 남일님 에너지가 넘치고 남을위해 봉사정신이 강해 어디가나 남들이 좋아하는 친구이다. 이번 여행 기간에도 항상 베낭에 간식거리와 주(酒)님을 챙겨 와서 일행들의 욕구를 충복시켜 주어서 여행이 즐겁게 끝날수 있도록한 일등 공신이다. 영화 제목은 생각나지 않치만,아무리 보아도 영화에서 보았던 괴물 마스크 같던 기암 약 한시간여에 걸친 괴레메 동굴관람은 끝나고,간단한 심포지움을 하고 다음 일정인 사파리투어 체험을 떠난다. 우리가 나오자 또다시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터어키 청년들 괴레메 쇼핑타운 우리 사파리 투어를 위해 대기중인 도요타차량의 4륜구동의 짚차들 우리 광주공장의 스포티지R 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힘도 좋았고 거친 비포장 도로를 거침 없이 달리는 모습에서 언젠가는 우리 기아차가 이곳 터어키 카파도키아 사막을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에~말이요..박사장님은 소리소리 지르며 인원파악하랴..차량 점검하랴..정신이 없으시다. 10여분을 요동치며 달려온 사파리 전망대 집사람은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재미 있었던 순간을 이 지프사파리 투어였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선택상품은 가장 타보고 싶었던 카파도키아 열기구투어와 지프 사파리 투어였는데,예정대로라면 2015년 01월01일 신정 첫날에 탈수 있었지만,아쉽게도 풍속이 시속 30km이상이면 탈수가 없다는 카파도키아주의 법규정 때문에 타지를 못했고, 2번째로 이 지프 사파리투어(경비;유로90EUR) 였는데 생각 이상으로 2시간동안 스릴과 재미를 느끼게 해준 이번 여행의 압권이었다. 차량안에 탑승을 해야해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카파도키아에 가면 꼭 열기구투어와 지프 사파라 투어를 타보도록 권하고 싶다. 괴레메 마을이 가장 잘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다함께 인증샷을 남기고.. 산행과 여행을 조금 다녀 보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굴 표정에 그늘이 별로 없다. 잘살고 못사는걸 떠나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설레임과 호기심이 가득해 항상 즐겁고 행복해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수 있기 때문에 12시간의 비행기를 타는 불편함도,10시간의 차량 이동 시간의 지루함도 여행의 한부분으로 즐겁게 승화 시킬수 있는 힘이 여기에 있는것 같다. 터어키 남자 한국 여자 남편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터어키 젊은이들과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한국 여성들의 여권신장의 단면을 보는것 같다.ㅎ 한국 남자들은 집사람이 보는앞에서 외국여자랑 사진을 찍으려면,쭈뼛쭈뼛 하는데 여자들은 거침어 없어 보인다. 지프 사파리투어는 차량1대에 운전자 빼고 4명씩 탔는데,함께 동승한 이무영부장님 사모님인데 인상도 좋고 참 성격이 재기발랄해 호감이 가는 부부였다. 오랜만에 함께 부부여행을 왔다는 이무영부장님 다시 30여분을 지프릍 타고 왔는데,울퉁불퉁한 비포장 사막길을 아주 오바이트 나올정도로 거칠게 돌려버려 뒤에탄 나와 집사람은 아주 괴성을 지르며 즐거워 했다. 환호하는 일행들 중간 기착지인 이곳에서 잠시 사진도 찍고 심포지움도 하고 쉬어가기로 한다. 한국사람들이 사진 찍는걸 좋아하는줄 알고 항상 함께 사진을 찍자면 무조건 오케이 한다. ㅎㅎ터어키 운전자 어깨동무에 무척이나 즐거워 하는 기호선님 사모님 누가 부부인줄 모르겠네..ㅋ ㅎㅎ 왠지는 모르겠지만,유상운 사모님은 좀 불편해 하시고.. 기아광주공장 스포츠,문화센타내에 있는 여행나루 박숭례사장님과 함께.. 와일드 하시고 항상 유쾌한 표정으로 인솔을 하셔서 다들 즐거워 하는 여행이되었다. 항상 가이드 할때에 "에~말이요"가 트레이드 마크라고 한다. 중간 기착지 부근에 관광객들을 위한 노천 포차및 과일가게들이 있는데,흥이 많은 터어키인들이 음악에 ?춰서 춤을 추면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우리도 뒤질쏘냐..같이 흥겨워하는 심총무님,기호선님 아따! 맨정신에 놀랑께 쑥수럽네 그려..ㅎ 멋진풍경이다.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이렇 풍경을 가진곳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수천년전에는 저곳위에 까지 물이 찼었다고 한다. 잠시 풍경 좋은곳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맨날 혼자만 돌아다녀 미안했는데,이번 여행으로 집사람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번 여행중에도 집사람 몸이 많이 불편해 조금은 힘든 일정이었는데,잘 지내주어 고마움 마음이다. 항상 재기발랄하고 재미있으신 심총무님 사모님 함께한 임옥현님 딸인데 이제 고3으로 올라가 공부에 올인하기에 앞서서 함께 따라온 임소연양 젊어서 그런지 생기발랄하고 사진 포즈도 귀엽게 잘 취해 사진발이 아주 잘받는 귀염둥이이다. 일년 열심히 노력하여 원하는 대학 진학하길 바란다. 소연아! 화~이~팅 항상 즐거운 임옥현님 내외 나름 여행 마니아로 가족과 함께 해외 여행을 자주 가신다고 한다. 다들 포즈가 멋져여..! ㅎ 혼자라 외러워요.. 스틱이 있으면 활쏘는 포즈가 전문인데 스틱이 없어서 활쏘는 시늉만하고 있는 남일이.. 아직도 춤추고 있다냐.. 남일이 누님도 댄스파티에 합류를 하고.. 왜들 춤이 그런다냐.. 내가 한수 가르쳐 줄께..봐바아잉.. 흥이 많은 남일이가 춤을 추자 다들 흥겨워 하고.. 우쩨 쓸만 항가..ㅎ 말은 통하지 않치만 만국공통어 춤과 노래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어,즐거운 지프사파리 투어를 할수 잇었다. 터어키 전통 견과류들 투어 종류도 다양한것 같다. 우리는 지프투어였지만,이렇게 말을 타고 하는 투어도 있고,또 미니 전동차를 타고 하는 투어도 가끔 보였다. 2시간여의 지프사파리 투어의 황홀한 추억도 이제 종착점에 도달해 이곳 절벽위에서 마지막 사진 찰영을 하고, 사파리투어팀에서 준비한 삼페인 파티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꼭 버섯 모양같기도 하고,거시기 같기도 하고.. 참 고놈 특이하게도 생겼네.. 꼭 이런장소가 나오면 하는 뽀뽀타임을 가져 보지만,쑥수러워하는 집사람은 선뜻 응하지를 않는다.ㅎ 기럭지가 우월해 높이가 제대로 맞은 쌍둥이아빠 정성배님 내외 이런것 쯤이야..맨날 하는것인디 우짼다냐..ㅎ 박현석님 내외 남일이는 짝꿍이 없어서 그냥에~말이요 사장님,이무형님과 함께.. ㅋㅋ 가장 터프하게 키스씬을 연출하는 임옥?님 부부 이 양반들은 너무 찐하게 하는거 아녀..! 이곳 카파도키아 지역은 조지 루카스 감독의 대표작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고 하여 잠시 캡쳐해 옵니다.
우리는 그냥 찍을래요.. 기아와는 무관하게 여행사측의 배려로 우리와 합류한 최미남님 가족 지금은 메리츠보험사에서 일을 하신다고 한다. 애들도 엄마,아빠를 닮아 외모도 출중하고 공부도 잘해 둘다 고려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번 지프 사파리 투어의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샴페인을 준비하고,기다리고 있는 터어키 레이싱팀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즐거우셨나요..? 레이싱팀의 팀장인분이 샴페인을 터트리고 다함께 한잔 들면서 이번 사파리투어의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다. 다같이 코리아를 위~하~여 터어키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러브샷을 마치고 사파리 투어를 마감하고,즐거운 점심식사를 위해 터어키 전통음식인 항아리 케밥을 맛보기위해 근처 전문 식당으로 향한다. 기존에 있던 석굴같은 식당으로 케밥을 먹기위해 들어 갑니다. "알티노삭"인가..? 식당 내부가 미로처럼 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먼저 나온 야채 셀러드와 빵을 먹으면서 주메뉴인 항아리 케밥을 기다리는중에 잠시 사진을 몇장 남깁니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먹었던 항아리 케밥입니다.
직접 손님앞에서 항아리 마개부분을 떼어 내고 음식을 퍼서 줍니다. 항아리케밥에서 나온 양고기 케밥에 밥을 버물려 맛나게 먹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전골과 맛이 비슷하여 별로 부담없이 맛있게 잘먹었네요. 후식으로 나온 사과와 오랜지로 깔끔하게 입안을 정리하고.. 카파도키아를 가로 지르는 강입니다. 강이 별로 없는 터어키에서 가장 큰강이라고 합니다. 동양에서는 일본,한국,중국 사람들이 많이와서 그런지 유로연합기와 함께 식당앞에서 힘차게 펄럭이고 있습니다. 처음 서두에서 말했듯이 하루에 한번씩 들르는 쇼핑센터 방문이 가장 싫었는데,오늘도 어김없이 쇼핑센터에 들어 갑니다. 오늘은 터어키의 보석 터어키석으로 온갖 악세사리를 만들어 놓은 보석가게에 들릅니다. 여성분들과 관심있는 몇분은 가게를 들러 보고 관심없는 우리는 밖으로 나와 심포지움을 갖습니다. 어여쁜 여성분들의 단체 인증샷 남자들이 기가 죽을수는 없어 힘차게 환호와 함께 인증샷 데린구유로 오기전에 들른 휴게소에서 보험일을 하신다는 최미남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리다고 하여 하나씩 받아들고 맛나게 먹었다. 카파도키아의 또다른 볼거리인 데린구유이다. 처음에는 왠 우물가에 대려오나 싶었더니,이곳이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어 살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그 규모나 길이가 어마어마 하여 어떻게 3만명이나 이 지하동굴에서 살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데린구유버섯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카파도키아를 더욱 경이롭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최대 3만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지하 도시이다. 이 곳의 형성시기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히타이트 시대즈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본격적인 확장기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곳에 들어와 교육기관과 교회, 와인 저장고 등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작은 규모의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되었으나 오늘날 일반인에게는 소수만이 공개되고 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 데린구유는 1965년에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나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은 총 면적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좁다라한 통로 곳곳은 무너져내린 곳도 많지만 놀랍게도 내부의 환기시설은 아직도 잘 작동하고 있다. 데린구유 지하 도시는 총 깊이가 55m에 달하는 8층으로 이루어졌다. 1층과 2층에는 마구간과 포도주 압착기, 돌로 만든 두개의 긴 탁자가 놓여져 있는 식당 혹은 교실이 위치하고 있고 3, 4층에는 거주지와 교회, 병기고, 터널이 있다. 십자가 모양의 교회, 지하감옥 및 묘지는 지하층에 위치해 있다.
이 지하동굴 데린구유에 대해서 하나하나 소상히 설명해 주는 우경석가이드님 이곳에서 숨어 살때는 생리적인 현상들을 처리하기 힘들어서 식사를 3일에 한끼씩 먹었다고 한다. 동굴내내 꾸부러 다니다가 잠시 너른공간이 나오자 허리도 펴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잠시 포토 타임을 갖는다. 아까 보았던 샘터 환기구가 저곳이란다. 외부에서 적군이나 로마군이 쳐들어 오면 이돌을 움직여 통로를 차단하여 외부 침입을 물리쳤다고 한다. 데린구유를 감상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어둑어둑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푼후 저녁식사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강풍으로 인해 가장 타고 싶었던 열기구 투어를 하지못한 아쉬움에 호텔 식당에 갈려있는 열기구투어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ㅎ 한국사람들이 소주를 피티병에 숨겨서 갖고 들어와 몰래 자주 먹으니,현지 가이드가 눈치있게 우리 주변을 돌면서 술을 몰래 갖고 들어오지 않은지 감시를 거듭해서 하자,넉살좋은 남일이가 기분좋게 와인을 한잔 권하면서 화해를 요청한다. . . . 그리스,터어키 여행 4일차,터어키에서 1일차인 카파도키아 괴뢰메 계곡,데린구유,우치사르,지프 사파라투어등 터어키에서의 첫일정을 바쁘게 즐겁게 마무리 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오면 남는것은 추억과 사진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많은 사진을 버리고 또 버리고 올려도 많은양 인지라 올리기도 무척 힘이 들고,사진에 담겨있는 분들께 미안해서 버리지 못한 사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아 주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카파도키아의 또 다른 명소인 파묵깔레를 가게 됩니다. 기대해 주시고그때 뵙겠습니다. ★ 터어키 일주 4일차-카파도키아(괴레메,데린구유,우치사르) 끝. ★ ~ 산 신 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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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신령 원문보기 글쓴이: 산신령
첫댓글 2002년 한일월드컵 예선을 일본에서 치루면서 푸대접받던 터키축구팀이 4강에 진출하여
한국으로오자 최고급호텔에 최고의 음식등 서비스 만땅에,
한국과 치른 3,4위전에서 터키가 이겼슴에도 승패를 떠나 대형 터키국기를 흔들며 아낌없이 응원해준 한국인들의 환대에,
그 옛날부터 돌궐족(돌궐-투르크-터키) 때부터 뜨거운 형제관계를 유지하던 터키에서 한국열풍이 불었었다지요.
그런 형제의 나라 터키!!!
단순한 형제관계를 떠나 이렇게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었다는걸 부회장님의 여행기보고 다시금 알수있었네요.
꼼꼼한 산행기따라가다보니 세계사공부까지 덤으로 얻을수있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유럽의 변방에서 떠도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의외로 강성대국이면서 자국의 프라이버시가 대단한
터어키엿습니다.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화려했던 과거 유산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칭하면서 우리나라에 애정을 많이 갖고 있었고,어딜가나 환대해 주어서 무척 즐거운 여행을 할수 있었네요.
댓글 감사 합니다.
왕자와 왕비...신혼여행 생각이 나셨겠는데요..부부의 멋진 모습들 아름답습니다
좋은 추억이 되리라 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부가 함께 하라는 말을 몸소 느끼고 왔었네..
담에는 뚜내외와 함께 여행 하세나..
조~오~대 바위앞에서 취하는 포즈인감^^
ㅋㅋ거시기를 많이 닮았제..
우리나라에도 몇개 있음 쓰것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