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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정 순 주
2015년 2월, 키다리 아저씨께. (2015년 2월보다는 봄아지랑이 피는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느 날 책장에 꽂힌 <키다리 아저씨>라는 책을 읽었어요. 고아인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대학에 다니게 되죠. 그 곳에서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께 편지를 쓰게 되고요.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좋은 친구가 되었고, 주디는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죠. 그리고 주디는 작가의 꿈도 이루고, 키다리 아저씨와 사랑도 이루게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책을 읽고 난 후 키다리 아저씨가 마음에 들어왔어요.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았던 아빠! 우리 아빠를 생각나게 했으니까요. ‘키다리 아저씨는 낭만적이고 따뜻한 분이셔.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희망이야, 희망? 희망! 오케이.’
그때부터 키다리 아저씨는 나의 희망이 되죠.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나는 아빠와 할머니랑 살았죠. (죠 반복)엄마는 한 달에 한 번은 보았어요. 할머니는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 게 엄마 탓이라고 말했어요.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난 슬픔에 쌓여 힘들었어요. 할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아 엄마에게 연락을 한 것이죠. 엄마와 내가 함께 살게 된 지가 벌써 한 달이 되었네요.
키다리 아저씨, 엄마는 예쁜 분이랍니다. 엄마랑 나는 생김새가 달라요. 엄마는 쌍꺼풀진 큰 눈인데 난 외까풀이에요. 엄마는 코끝에 점도 있어요. 난 그게 매력적 점으로 보여요. 예쁜 여자 연예인들도 코끝에 점이 있는 걸 보았죠. 점을 부러워하다니, 히히. 엄마는 얼마 전까지 스튜어디스였어요. 나 때문에 그만둔 건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에요. 더 훌륭한 스튜어디스 언니들을 길러내는 교육센터에서 새로운 일을 한대요.
엄마는 정리정돈을 잘해요. 집 안 어디에도 먼지 하나 없을걸요. 내가 엄마의 말을 다 따른다면 결벽주의자로 자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엄마처럼요. 엄마는 집을 온통 흰색으로 페인트칠해서 눈의 여왕이 사는 집 같아요. “책상 상태는 네 마음 상태야!”
엄마는 강조하죠.
난 내 어질러진 책상 위에서도 ‘키다리 아저씨’를 만날 수 있고, ‘삐삐 롱 스타킹’을 만날 수 있고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어요. 엄마도 그걸 알었으면 알아갔음 좋겠어요.
키다리 아저씨, 난 엄마랑 살게 된 날부터 가정예배를 드려요. 간절한 기도도 하죠. 기도는 길어요. 여러 사람을, 여러 가지 일을 얘기하죠. 세계 평화도 기도하죠. 지루해요. 나를 위해 기도를 할 때는 이래요.
“윤주는, 착하게…….”
그리고는 한참을 말이 없어요. 엄마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도 같아요.
“잘 자라게 해 주세요.”
항상 이 말로 끝을 내죠. 난 이미 착하게 잘 자랐는데 말이죠.
난 마음 맘속으로 착하게란 기도를 수지보다 예쁘게, 수지보다 매력적이게, 수지보다 영리하게, 수지보다 뛰어나게, 수지보다 인기 있게 등등으로 바꾸어도 봐요. 키다리 아저씨도 기도해 주세요.
아! 수지가 누구냐고요? 수지는 우리 반 엄친 딸이에요. 엄청 인기가 많죠.
2015년 3월, 키다리 아저씨께.
오늘은 ‘윤주의 글방’에 글을 한가득 채워 넣을 거예요. 윤주의 글방은 인터넷 카페에 내 동화며 시 등을 긁적여 놓는 거예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반 친구 송정이, 민아, 연서, 하람이에요. 우린 다섯 손가락 멤버들이죠. 친구들은 내 글을 보고 놀라죠. 재밌다고 난리에요. 어린이 사이버 작가 카페에 공개해 보라고 조언도 해요. 아직은 이야기가 설익은 사과 같아요. 그래서 용기를 내 보려던 마음도 감추어두죠. 조금 더 열심히 쓰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엔 수지에게도 카페를 공개할까 했어요. 우리 반 엄친 딸 수지랑 짝이 되었거든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몹시 궁금해 하더라고요. 그런데근데 망설여졌어요. 뭐 때문에 망설여졌는지 오늘 알았어요.(지문에서는 줄임말보다는 본디말을 쓰는 게 좋아요.)
수지가 내 동화를 보여 달라고 보챘어요. 오늘은 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면서요. 동화 내용이 어떠냐 하면, 키다리 아저씨와 내 이야기랑 비슷해요.
“혜원의 부모님은 성격 차이로 헤어졌어요. 엄마는 해외로 발령받고, 혜원은 아빠와 살게 된답니다. 어느 날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혜원은 힘들고 지쳤죠. 혜원은 키다리 아저씨 책을 읽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일기를 쓰듯 편지를 쓰기로 해요. 혜원은 위로를 받고 잘 자라죠. 그러다 어느 날부터 답장이 오기 시작한 거예요. 편지를 쓰고 답장을 읽고 혜원은 완전 신났죠. 그러다 혜원은 키다리 아저씨에게 만나자고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아직 다 쓰진 않았지만, 보려면 봐.”
나는 수지에게 내 동화를 내밀었죠.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수지가 내가 쓴 동화를 다 읽고 말했어요.
그래서 수지랑 싸웠어요. 수지가 얄미웠어요. 그러려면 보여달라고 하지나 말지.
수지에게 글을 보여 준다는 생각, 이젠 안 해요. 작가를 꿈꾸는 나에게 그런 말은 자존심을 긁는 것밖엔 안 되죠. 그렇죠? 키다리 아저씨. 그냥 중얼중얼 아저씨에게 수다 떠는 게 좋아요. 아저씨는 책 속에서 주디의 희망인데 내 희망도 되다니 놀랍지 않나요? 어쩜 내가 쓰는 동화에서처럼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키다리 아저씨에게 일방적인 정서 전달이라 담담한데요.)
짝이 된 이후, 시간이 갈수록 수지가 좋아져야 하는데 점점 얄미워져 가요. 엄마처럼 코끝에 점이 있는데 예뻐 보이지도 않아요.
수우족 인디언의 기도문에 이런 문구가 있대요.
“아! 위대한 영혼이여! 상대의 신발을 신고 2주일 동안 걷지 않은 이상, 내가 상대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도록 하소서.”
난 수지 신발을 신은 적이 없어요. 수지 입장에 서본 적도 없죠.(앞뒤 문장 호응이 약함) 그렇게 생각하니까 미워했던 마음이 사르륵 눈 녹듯 녹네요. 참 신기한 일이죠.(갈등이 있으려다 해결이 되네요. 이 작품에서 해결되어야 할 갈등은 무엇일까요?)
2015년 12월, 키다리 아저씨께.
지금도 볼을 한 번 세게 당겨 보아요. 아야야! 아프네요. 키다리 아저씨, 기쁜 소식이에요.
크리스마스에 입을 코트를 구입하러 백화점에 갔어요.
작년에 입던 빨간 코트가 작아졌어요. 키가 10센티나 훌쩍 자랐으니까요. 디자인만 다른 빨간색을 고르고 싶었는데 엄마는 눈 같은 하얀색을 사래요. 그래서 실랑이를 벌였죠. 엄마가 양보해 케이프가 달린 빨간색 코트를 샀어요.
엄마랑 팔짱을 끼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걸었어요. 아빠가 생각났어요. 아빠 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걸었던 게 떠올랐거든요. 하늘을 올려다보았죠.
내 휴대폰이 울렸어요.
“장윤주 학생인가요? 축하해요!”
“네?”
“제 11회 초등문예 공모에 대상으로 당선되었어요.”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어요.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징글벨의 “징글벨~, 징글벨~” 가사가 “축하해~, 축하해~” 로 들리기까지 했어요.
엄마도 뛸 듯이 기뻐했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빙빙 돌았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더라고요. 엄마는 묻지도 않는 말을 했어요.
“우리 딸이 대상 받았어요!”
초등독서는 친구들이 많이 보는 잡지에요. 다음 호에 특집으로 수상작들이 실리고 대상을 받은 내 얼굴은 표지에까지 실린대요.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던 일이 나한테 일어난 거죠. 찰칵! 찰칵! 벌써 마음속에서는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 나는 잠시 더 예쁘게 표정도 지어 봐요. 입 꼬리를 올리며 김~치.
며칠 뒤 학교에 현수막이 붙었어요. 이 지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선생님이 말해주었어요. 친구들이 내 주위로 몰려왔어요. 수지도 얼핏 보인 것 같았어요.
추신: 이 정도면 수지보다 인기 있는 건가요? 그럼,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진 거네요. 크크.
(챕터별로 연결성이 없고 하나의 에피소드로 뚝뚝 끊기고 있어요.)
2016년 1월, 키다리 아저씨께.
시간은 자꾸자꾸 흘러 엄마랑 지낸 지도 1년이 되어 가요.
일요일이에요. 난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검정색 구두를 신었어요. 교회에 가야해서 엄마도 맵시 있게 차려 입었죠. 엄마는 나를 꼬마처럼 무릎에 앉히고 머리도 예쁘게 땋아 주었어요.
엄마는 유년부에 나를 데려다 주고 어른 예배를 드리러 갔어요. 나는 새로운 반을 확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어요. 다른 반에 수지가 보였어요.
‘언제 이 교회 온 거야?’
난 일부러 아는 체하고 싶진 않아 고개를 돌렸죠. 수지는 제 짝인데, 얄미운 아이지요.(앞의 정보들을 넣어주는 걸로...)
예배를 마치고 분반공부 시간이 되어 모둠으로 둘러앉았어요.
새로운 선생님은 남자였어요. 아빠가 쓰던 향수 냄새 아니 아빠 냄새 같은 게 났어요.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러도 될 만큼 키가 컸어요. 갈색 뿔테 안경도 꼈는데 제법 잘 어울렸고요.
“안녕! 김현우라고 한다. 너희들을 만나서 반갑다. 잘 부탁한다. 흐흐.”
선생님의 멋진 목소리를 들었어요. 이상하게 선생님이 멋지게만 보이네요. 서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어요.
선생님은 보람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네요. 작년 말 이 교회로 왔고 올해 주일 학교 교사로 봉사하기로 했고요.
“온유 3반! 다음 주에도 기억하고 이 자리에 앉도록 하자.”
기도를 하고 마쳤어요. 아이들은 흩어졌고 나는 엄마를 기다렸어요.
“온유 3반 선생님 멋있지? 히히히, 싱글대디라고 하더라.”
“싱글대디?”
“부인이 난산으로 아이를 낳다 죽어서…….”
“아유, 이런! 슬프다.”
나는 어슬렁대다 서기 선생님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빠!”
선생님을 부르며 뛰어 들어온 건 분명 수지였어요.
“응, 왔구나! 딸.”
“얘가 누구야? 장윤주 아냐!”
수지가 깔깔거렸어요.
“수지랑 윤주랑 아는 사이였어?”
선생님도 놀랐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엄마도 선생님도 공손하게 인사했어요.
싱글대디 수지 아빠가 등장하네요.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앞의 세 이야기 연결성이 약하고 도입부분이 길어요.
2016년 5월, 키다리 아저씨께.
엄마랑 선생님이 친구가 되었어요. 수지와 나처럼 조금은 껄끄러운 친구가 아니라 친한 친구 말예요. 엄마랑 선생님은 성가대를 같이 하며 친해졌대요. 나이도 동갑이라네요. 같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음도 맞춰보고 교회 내 동아리 모임도 하면서요.
엄마는 요즘 더 많이 웃어요.
선생님은 “윤주야! 우리 윤주!”하며 나를 엄청 챙기죠. 수지는 나를 보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아요. 오히려 다행이에요. 수지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어야할지, 수지가 눈을 부라리면 나도 눈을 부라려야 할지 아직 모르겠거든요.
어느 날 학교에서 수지가 나를 조용히 불렀어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콩닥거렸죠. 수지를 만나러 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오만가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쏟아내기에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각들이요. 수지도 나도 아무것도 눈치 못 채는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혼란스러운 건 똑 같겠죠. 수지는 꽤 심각한 표정이었어요.
“음……, 바로 물을게. 우리 아빠랑 너희 엄마 사이 아니? 아니 어떻게 생각해?”
수지가 다짜고짜 말했어요.
“나는 잘 모르겠어……. 너는?”
“나도 잘 모르겠어. 아빠가 그냥……, 나만 바라보고 행복하게 우리 둘이 살았으면 좋겠어. 누가 끼어든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어.”
수지가 울먹였어요.
“나도 그래. 아니 난 더 그렇지! 엄마랑 같이 살게 된 게 얼마 되지 않거든.”
수지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죠.
“그런데 나는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문득 들었어. 엄마가 요즘 더 많이 웃더라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파란 하늘이 맑았어요.
‘내 마음도 모르고 저렇게 푸르기만 하면 뭘 해? 비가 올 듯 끄무레하면 이 상황에서는 조금은 위로가 될걸.’
이상하게 나는 딴 생각이 들었어요.
수지가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어요.
“우리가 반대한다고 하자. 아님 단식이라도 하지 않을래?”
“그럴까? 방해 공작이라도 우리가 짤까?”
우리는 손을 마주 잡았답니다.
2016년 7월 첫째 주, 키다리 아저씨께.
똑똑똑! 키다리 아저씨.
두 달이 지났네요. 아저씨께 이제야 노크해요. 내 얘기 들어 줄 거죠. 수지와 나는 선생님과 엄마가 친해지는 걸 반대한다고 선언했어요. 선생님과 엄마는 하하, 호호, 웃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요?
수지와 나는 선생님과 엄마가 안 어울리는 결정적 이유도 찾았어요.
“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는 엄청 결벽주의자야, 흰색을 너무 좋아해서 집을 온통 흰색으로 도배해.”
“깔끔한 성격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몰랐는데, 심하신 것 같네.”
수지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정리정돈을 잘하라고 얼마나 잔소리를 하는지…….”
“우리 아빠는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멀어. 서류더미를 수북이 쌓아놓으셔. 언제는 중요한 서류를 찾는다고 밤을 꼴딱 샐 뻔한 적도 있었다니까.”
나는 히히, 웃었어요.
“그뿐인지 아니, 양말은 뒤집어 놓기 일쑤지……. 아참, 위생 개념도 없어. 화장실 청소는 내가 다하는 것 같아.”
‘정말 안 맞는다. 그래 정반대야. 계속 이런 부분에서 부딪히고 싸울 거야.’수지와 나는 한마음이었죠.
나는 엄마에게 중요한 사실이라며 조곤조곤 김현우 선생님의 습관에 대해 얘기했죠.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수지도 말했대요. 선생님은 정리정돈 잘 하는 게 부럽다고까지 말했다나요.
나는 선생님의 문자를 엄마 몰래 지웠어요. 전화도 뚝 끊어 버렸어요. 내가 자잘하게 엄마와 선생님의 사이를 방해했다면 수지는 달랐어요. 수지는 좀 더 강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겠다고 했어요. 수지는 단식을 하기로 했대요. 며칠 수지를 못 본 것 같아요. 연락도 안 되었어요. 다시 만난 수지는 볼이 쏙 들어가고 더 말라깽이가 된 것 같았죠. 수지는 아빠에게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떠들어댔어요. 이상한 건 통쾌해야 할 내 마음이 서늘해졌다는 거죠.
한 주, 두 주 엄마의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져 갔어요. 많이 웃던 엄마의 웃음이 뚝 끊겼어요. 커피를 마시며 베란다에서 한숨을 푹, 쉬어요. 내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피해요. 엄마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어 가고 있어요.
똑똑, 수지가 우리 집에 왔어요. 나도 엄마도 놀랐죠. 수지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어요.
“아빠가 마음이 많이 아파요. 아빠 좀 만나 보실래요?”
엄마는 수지의 말에 한달음에 김현우 선생님께 갔죠.
김현우 선생님은 수지를 끌어안고 우셨다고 했어요.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요. 아빠의 눈빛이 너무 슬퍼 보여 수지도 펑펑 울었다고 했어요.
나는 수지의 마음을 알아요. 수지의 슬픔도 알고요. 수지 어깨를 살포시 안아주었어요. 어깨가 들썩였어요. 따뜻한 우유를 건네며 수지를 달랬어요.
다음날 수지는 밝은 얼굴로 나타났어요.
“우리 자매가 되자!”
수지가 던진 한마디에요.
나는 수지를 와락 안았어요.
2016년 7월 마지막 주, 키다리 아저씨께.
수지랑 나는 방과 후 시간을 거의 같이 보내요. 이야기도 하고 군것질도 하고, 트램펄린도 타요. 같이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배드민턴도 함께 해요.
다섯 손가락 멤버들은 의아해하지만 이유는 서서히 알려지겠죠.
수지랑 많은 얘기를 해요.
“난 좋아하는 게 없어. 특별히 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런데 넌 너만의 특별한 꿈이 있어 부럽다.”
수지가 내가 부럽대요. 못하는 게 없는 엄친 딸 수지가요.
“나 사실 글 엄청 못 쓴다. 그래서 더 부러워.”
“몰랐어, 네가 날 부러워하다니.”
“부러워! 부러워!”
수지는 외쳤어요.
“나 아직 멀었어. 다이아몬드도 갈고 닦지 않으면 광석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나도 갈고 닦는 중이야.”
“오! 멋진데.”
“네 고민은 되고 싶은 꿈을 못 찾은 거?”
“그래, 요즘 더 고민이 돼.”
수지는 얼굴을 찡그렸어요.
“내가 책에서 읽은 것 하나 얘기해 줄까? 나도 효과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해 보면 재밌겠더라.”
나는 책에서 읽고 수첩에 적어둔 ‘꿈 찾는 방법’이라는 메모를 읽었어요.
“월요일에는 가장 하기 싫은 일 찾기, 화요일에는 되는 대로 하루 살기, 수요일에는 24시간 소비하고 낭비하기, 목요일에는 하루 동안 단식하기, 금요일에는 하루 동안 자지 말고 직업 스토리 읽기, 토요일에는 아무 일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기, 일요일에는 아무도 없는 곳 찾아가서 느끼고 생각하기.”
“방학이니까 해 볼 만하겠다.”
“성공하길 빌게!”
꿈 찾기를 일주일하고 수지가 말했어요.
“진짜 효과 좋더라! 일요일에 하고 싶은 게 생각났어. 난 요리사가 되고 싶어~.”
아무튼 나는 수지에게 특별한 꿈을 찾아준 게 기뻤어요.
2016년 8월, 키다리 아저씨께.
나는 엄마랑 김현우 선생님, 또 수지랑 영국에 왔어요. 런던대학에서 공부하는 이모도 보고, 여행도 하고 있어요. 이모는 김현우 선생님을 좋게 봤대요. 그리고 내게 살짝 말했어요. 김현우 선생님이 돌아가신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요. 나도 문득문득 선생님의 목소리, 웃음, 큰 키를 보며 아빠를 떠올렸는데…….
아! 수지는요. 약간 까칠한 느낌이라고 말했어요. 그래도 싫다고는 안 했어요.
이모는 요즘 안개가 많이 끼고 우중충한 날이 많았는데 이번 주는 날씨가 좋다고 했어요. 영국 사람들은 첫인사의 70% 이상이 날씨 이야기라네요.
내가 가보고 싶었던 내셔널갤러리에 갔어요. 1759년에 개관한 오래된 곳이에요. 안에 들어가니 책장에 책이 가득했어요. 이 책을 다 보려면 몇 십 년이 걸릴까 상상해 보았죠. 해가 질 무렵에 타워브리지를 보러 갔어요. 멀리서 바라보는 야경이 환상적이었죠.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아이, 시계탑 빅벤도 갔어요. 이모의 친절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 왔어요. 가끔은 김현우 선생님의 보충설명도 들어야 했고요.
옥스퍼드 대학에도 갔죠. 옥스퍼드 대학 수학부 교수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며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죠. 학교가 엄청 컸어요.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대 학장의 세 딸인 로리나, 앨리스, 에디스와 함께 뱃놀이를 갑니다. 아이들이 캐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자 캐럴은 세 아이 중 하나인 앨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시작하죠. 이렇게 탄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말 환상적인 동화에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용품 파는 곳에도 들렀어요. 나는 앨리스 미니어처와 시계가 매달린 북마크를 샀어요.
키다리 아저씨, 지금은 기차를 타고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어요. 엄마와 선생님, 수지는 꾸벅 꾸벅 졸고 있네요. 아름다운 마을을 보라고 깨울까 싶어요.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에요.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전에도 똑 같이 경험한 것 같은 느낌 말예요. 분명 그건 아닌데, 김현우 선생님 자리에 키다리 아저씨가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신 아빠가 앉아서 졸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거예요. 설마 아빠나 아저씨가 그 자리에 오셨던 것은 아니겠죠. 착각이 분명한데 이런 착각을 데자뷰… 라고 하나요? 나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눈으로도 찰칵 찍어뒀어요. 내 마음에도 담고, 다섯 손가락 친구들에게도 보여 주기 위해서지요. 히히히.
언젠가 갔던 대관령 목장이 생각나요. 초록색 넓은 들판이 닮았어요. 하얀 양떼들은 없는데 집 앞에 소가 보여요. 한가로이 풀을 먹고 있어요. 여기서 보니 지붕이 삼각형인 집이 서너 채 보여요. 굴뚝이 있는 집들이네요. 집 앞에는 장작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겨울에는 벽난로를 멋지게 피우지 않을까 싶어요. 꽃이 가득 피어 있는 몽글몽글한 나무가 참 예뻐요. 노란 들국화도 아주 많네요. 살랑살랑 인사를 하는 것 같아요. 기차가 더 천천히 갔으면 좋겠어요. 멀리 보아도 끝없는 초원이군요. 온통 파란빛 하늘도 더 높게 보여요. 내가 어른이 되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을 통해 더 확실해진 게 있어요. 엄마와 선생님은 퍽 잘 어울리고, 서로 많이 아낀다는 것이에요.
이제 내 마음은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아요. 엄마를 잃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내 곁에 든든한 지원군이 한 명, 아니 두 명이 더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생님은 아빠나 키다리 아저씨처럼 따뜻하고 좋으신 분 같다는 것을요. 수지는요? 아직 오락가락 잘 모르겠어요. 다음에 또 얘기해요. 이젠 나도 따뜻한 햇살 받으며 졸고 싶으니까요.
깔끔한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에요.
잘 읽었어요.
다만 도입부분이 길어서 지루한 감이 있는데...
세 개의 이야기는 필요한 정보만 뒤에다 넣고
수지 아빠가 싱글대디라는 것부터 들어가는 게 괜찮을 것 같아요.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연결성도 있고 좋아요.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동을 깊게 들어가 보는 것도 생각해 봐요.
싸웠다면, 얄밉다면, 화가 난다면... 그런 느낌이 들게 써 보는 거죠.
수고 많았어요.
수정하면 다시 올려요.(11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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