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기 때문이지. 그런 우리가 마음과 몸이 굶주리네. 그러니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
113년 전인 1908년 2월 28일,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방직 공장) 1만 5천여 명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추모하며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였고, 노래를 부르며 항의 시가행진을 했다.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근무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을,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과 인권에 대한 요구였다. 대규모의 시위대 행진에 힘입어 다음 해인 1909년 2월 28일 첫 번째 '전국여성의 날'을 미국 사회당이 선포한다. 사실 이 일의 유래는 1857년 3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동현장은 먼지가 가득했고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 씩 일했지만, 임금은 남성 노동자의 절반이었다.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도 없었다. 의류 및 섬유산업 분야에 종사하던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겪는 다양한 차별에 호소하기 위해 마침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하지만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강제 해산되고 만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여성들의 힘이 축적되고 열악한 노동환경과 반쪽 임금, 죽어나가는 여성들에 분노해 뉴욕 시가 행진을 감행한 것이다.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에서는 러시아의 노동운동가인 알렉산드라 콜 론타이와 독일의 여성운동 지도자인 클라라 제트킨이 여성의 권리신장을 주장하며 '여성의 날'을 제안한다. 17개국에서 참석한 100명의 여성들이 두 사람의 제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한다. 일련의 흐름은 1911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참정권과 일할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외치는 최초의 '세계여성의 날' 개최로 이어진다. 지금까지도 세계 여성의 날 하면 떠오르는 상징인 '빵과 장미' 슬로건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11년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임금으로 야기된 굶주림의 상징인 '빵'과 여성의 참정권 및 인권을 상징하는 '장미'를 내세워 "우리에게 빵만이 아닌 장미도 달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왜 3월 8일에 기념하는 걸까?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제트킨이 세계 여성의 날을 제안할 때만 해도 정해진 날짜는 없었다. 1차세계대전이 진행중이던 1917년,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내세워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파업 시작 후 4일 만에 놀랍게도 러시아의 짜르 니콜라스 2세가 폐위되었고, 여성들은 임시정부로부터 참정권을 얻는 데 성공한다.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둔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빵과 평화' 시위 시작일을 양력으로 계산해보니 3월 8일이었다. 이 때부터 세계 여성의 날이 3월 8일이 됐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사회, 경제, 정치 전반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싸워서 쟁취했는지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전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는 몇 나라나 될까?
2019년 3월 7일자 BBC NEWS 코리아에 의하면 187개국 중 단 6개 국가 뿐이다. 여성과 남성의 "완전한 동등함"을 보장하는 나라는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스웨덴 6개 국이다. 세계 은행이 지난 10년 간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포함해 이동의 자유, 출산, 가정 폭력, 자산 권리권 등 각국의 사법제도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다. 한국은 100점 만점에 85점을 기록, 상위 5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럼, 세계 여성의 날이 3월 8일로 공식 지정된 해는 언제일까?
1975년 유엔은 매년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기리기로 결정한다. 이 때부터 전 세계 여성이 국적, 인종, 종교를 뛰어넘어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기념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세계 여성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기리는데, 여성의 날을 기점으로 매년 꽃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중국의 일부 회사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여성 직원들에게 반차를 주기도 하며, 미국은 3월 한 달을 여성의 달로 지정, 매년 3월에 여성들의 업적을 축하하는 대통령의 성명을 발표한다.
세계 남성의 날도 있을까?
물론 있다. 11월 19일이다. 1990년대에 시작된 세계 남성의 날은 유엔이 지정한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영국을 비롯해 세계 60개국에서 세계 남성의 날을 기념한다. 남성과 남자 아이들의 건강에 집중하고, 여성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성평등을 추구하며,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을 주목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여성의 날도 있을까?
1898년 9월 1일 여권통문의 날이 한국 여성운동의 시작을 알린 우리나라 여성의 날이라 자랑할 만하다. 처음 듣는 분이 많겠지만, 2019년 10월 31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지정해 한국 여성운동의 시작일을 온 국민이 기념하게 되었다. 원래 명칭이 '여학교설시통문'인 여권통문(女權通文)은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양반 기혼여성인 이소사(이씨), 김소사(김씨)의 이름으로 선언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다. (*소사: 기혼여성이란 뜻)
"... 어찌하여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자와 다름없는 사람으로 규방에 갇혀 밥과 술만 지으리오. 우리도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라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실시하고, 각각 여야들을 보내 재주를 배우고, 규칙과 행세하는 도리를 배워 남녀가 일반 사람이 되게 할 당장 여학교를 실시하오니 우리 동포 형제 여러 부녀 중 영웅 호걸님네들은 각각 분발한 마음을 내어 우리 학교 회원에 드시려거든 곧 칙명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구월일일 여학교 설립 발기인 이소사, 김소사." 여권통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여성의 근대적 권리인 교육권과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한 300여 명의 여성들은 독립협회 중심의 개화운동과 만민공동회에도 동참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여권통문의 전문이 독립신문과 황성신문 등에 실린 것을 기회로 서민층 부녀와 기생들, 지방의 부인들을 모아 9월 12일 최초의 근대적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한다. 열혈여성들은 관립 여학교 설립까지 추진하다 불발로 끝나자, 사비를 털어 최초의 민간사립 여학교인 순성여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여권통문의 놀라운 점은 세계 여성의 날을 촉발시킨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시위보다 무려 10년이나 앞섰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날 기념행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놀랍게도 1920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혜석, 김일엽 등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에서 '국제부인데이' 또는 '국제무산부인데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시작했고 1945년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좌우대립이 강했던 시기에도 3.8 국제부인데이는 좌우가 공유한 최소한의 상징이었다.
미군정기인 1946-1947년에도 좌우 여성단체들이 3.8주간(3월 1-8일)을 정해 합동으로 전국 행사를 치른 노력도 있다. 당시 좌우 여성단체들은 공사창제 폐지를 요구해 1948년 공사창제 폐지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후 분단국가의 현실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갇혀 3.8 세계여성의 날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다 1985년 제 1회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 여성대회'를 기념하면서 3.8 세계여성의 날로 부활했다. 1985년은 '25세 조기정년 철폐 투쟁' 등 여성노동자 생존권 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했고, 여성단체들의 연대도 활발했다. 세계여성의 날은 한국사회 여성의 현실을 알리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날로, 매년 3월 8일 기념식과 여성축제, 거리행진, 여성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코로나 정국이라 조용하지만, 2021년 올해로 37회를 맞았다.
올해 113돌을 맞는 세계 여성의 날, 한국의 여성 인권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오랜 세월 많은 여성들이 성평등을 위해 애써왔지만, 한국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인권은 열악하다. 2016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 살인 사건을 비롯, 저소득층 가정 여학생의 깔창 월경대 사연, 2018년 1월 29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안태근씨가 성추행 후 인사보복까지 더한 가해를 검사 서지현씨가 폭로했다. 하지만, 결국 무죄로 확정되었다. 같은 해 3월 전 충남지사 안희정씨가 가해한 수행비서 김지은씨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폭로에는 무려 11개월이나 지나서 3년 6개월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전 서울시장 박원순씨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은 '피해호소인'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신조어를 생산, 피해자의 진실을 호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피해당사자의 목소리에 대해 지속적인 의심과 혐오를 노출시켰다. 올해 1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으로 결론짓고 책임자 징계 등 서울시의 엄중한 조치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당사자를 향한 지독한 2차 가해가 멈추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방 성착취 범죄와 N번방, 박사방으로 불린 디지털 성범죄 등 여성 아동과 여성 청소년을 향한 끔찍한 폭력을 끊임없이 생산, 유통,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시작된 낙태죄 폐지가 작은 희망을 주긴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여성혐오와 가부장제 이성애 가족중심주의는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갈망하는 여성들에게 고통이자 걸림돌이다. 특히 코로나 확산으로 일상 속에서 겪는 여성들의 불평등과 차별, 소외와 폭력, 고통이 가중된 20대 여성들의 잇따른 죽음은 정말 가슴 아프고 통탄스럽다.
희망을 상상하고 같이 길어올리자
가부장제 사회구조와 바뀌지 않는 젠더 차별은 여성을 옥죄고 발목잡는다. 반면 시대를 거스르고 초월해 자기 목소리를 낸 여성들을 떠올리면 힘과 희망이 솟는다. 1991년 8월 14일 국제사회조차 전쟁 중 발생한 성노예, 성폭력이 전쟁범죄라는 인식조차 못하던 시절,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미투는 기나긴 세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폭력을 고발한 힘찬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 뿐인가.
비극적인 일제강점기에도 여성의 날이 존재했다는 사실, 윤석남 화백의 전시회인 <싸우는 여성, 역사가 되다>에서 그려지고,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최근 발간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도 주목하고 새길 여성의 목소리다. 113년 전 300여 명의 여성들이 이소사와 김소사가 중심이 되어 외친 여권통문 역시 한국 여성운동의 정말 소중한 유산이다. 도무지 성평등한 세상의 희망이 안 보인다고 느낄 때 다시 희망을 상상할 수 있는 오늘, 3.8 세계 여성의 날을 정말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란다. 그리고 날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로, 때로는 연대의 목소리로 성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을 함께 길어올리자.
출처: 여성신문, 페미위키, 여성가족부, 경향신문, BBC NEWS 코리아, 위키백과 등의 자료를 참조해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