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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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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幾何學, 그리스어: γεωμετρία, 영어: geometry)은 공간에 있는 도형이나 대상들의 치수, 모양, 상대적 위치 등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이다. 기하학이 다루는 대상으로는 점, 선, 면, 도형, 공간과 같은 것이 있다.[1] 기하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geometry"는 땅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γε(게)와 측정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μετρία(메트리아)를 합하여 만든 말로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사용되었다.[2] 기하(幾何)라는 말은 명나라의 서광계가 게오메트리아를 "얼마인가?"를 뜻하는 중국어 지허(중국어 간체: 几何, 정체: 幾何, 병음: jǐhé)로 음차하였다. 마테오리치가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원론》을 번역하며 기하를 제목으로 삼아 널리 쓰이게 되었다.[3]
세계의 여러 고대 문명에서 농경과 건축을 위해 기하학을 사용하였다.[4] 메소포타미아 시기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우루크의 성벽이 구운 벽돌로 지어진 것임을 자랑한다.[5] 고대 수학은 크게 보아 산술과 기하로 나눌 수 있으며 대략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3000년 사이에 고대 동양 일부 지역에서 공학과 농업 및 상업적인 업무와 종교 의식을 보조하기 위한 실용적인 학문으로 등장하였다.[6] 오늘날 남아있는 고대 수학 연구 기록은 주로 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 점토판과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에서 확인된다. 반면에 고대 인도에서 사용한 나무껍질이나 고대 중국에서 사용한 죽편은 쉽게 썩기 때문에 기하학에 대해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다. 고대 문명기의 수학은 경험에 근거한 일종의 레시피로서 시행 착오에 의해 유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오래된 파피루스 문서는 원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으로 지름에 8/9를 곱하여 제곱을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주해 1], 고대 바빌로니아의 경우 초기에는 원주율을 3으로 계산하였다.[7] 한편, 고대에서부터 계속 사용되며 개정을 계속한 중국의 수학책인 《구장산술》에서는 원주율을 3으로 사용하고 있다.[8]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기하학의 발전에 매우 큰 기여를 하였다. 그 중 가장 큰 성과는 경험적으로만 사용되던 기하학의 법칙들을 엄정한 논리를 통해 증명한 것이다. 이로서 기하학은 공리에서 출발하여 오직 논리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 되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같은 증명이 대표적이다.[9]
에우클레이데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수학적 업적을 정리하여 《원론》[10]을 집필하였다. 《원론》은 당대에 알려진 기하와 대수 문제에 대한 상세한 해법과 증명이 담겨있으며[11], 근대에 이르러서도 수학 교과서로 이용되었다.[12] 에우클레이테스는 《원론》에서 자명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공준과 공리를 수립하고 이를 통하여 기하학 정리를 증명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를 통해 기하학은 엄정한 논리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13] 에우클레이데스가 정리한 기하학을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에우클레이데스보다 후대의 사람으로[14] 도형의 넓이와 부피의 계산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아르키메데스는 원의 넓이가 반지름의 거듭 제곱에 원주율을 곱한 것과 같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원주율의 근사값을 약 3.1416으로 계산하였다.[15] 또한, 구의 부피는 같은 높이의 원기둥의 부피에 대해 3분의 2이라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포물선과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다.[16]
한편, 고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도 수학에 대한 서적이 발간되었는데, 《구장산술》에서는 여러 가지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것을 방전(方田)이라고 불렀으며, 입체도형의 부피를 계산하는 것은 상공(商功),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따른 직각삼각형의 특징에 대하여는 구고(勾股)라고 불렀다.[17]
데카르트는 직교 좌표계를 도입하여 대수학을 기반으로 기하학을 재편하였다.[18] 직교 좌표계가 도입되면서 기존의 도형 작도는 방정식에 대응하는 직교 좌표 위의 점들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원의 수학적 정의는 한 정점으로 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며, 직교 좌표계에서 반지름의 길이가 a인 원을 나타내는 방정식은 가 된다. 이후 수학자들은 원뿔 곡선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도형을 직교 좌표계에서 나타낼 수 있는 방정식들을 정리하였다. 이와 같이 기하학의 개체를 좌표계 안에서 대수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해석기하학이라고 한다.[19]
대수기하학이 발달하면서 곡선에 접하는 접선의 대수적 표현이나 도형의 넓이와 부피 등에 대한 대수적 표현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이작 뉴턴과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는 각자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정립하여 대수기하학에 도입하였다.[20]
19세기에 들어 수학자들은 에우클레이데스의 평행선 공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유클리드 공간이 아닌 다른 종류의 공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예를 들어 베른하르트 리만은 공간의 곡률에 따라 평행선이 무수히 많거나 겹쳐질 수도 있는 것을 보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을 리만 기하학이라고 한다.[21] 1899년 다비드 힐베르트는 기하학의 공리들을 기초부터 다시 검토하여 힐베르트 공리계를 발표하였다. 이로서 기하학의 공리는 극도로 추상적이며 각각이 독립적인 기본 요소가 되었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서로 다른 공리계를 사용하여 구성된다.
한편,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22]와 앙리 푸앵카레[23] 등은 위상수학을 발전시켰다. "고무판 기하학"[24]으로 널리 알려진 위상수학에서는 도형이 변형되더라도 지속되는 성질을 연구한다. 뫼비우스는 한면으로 된 도형인 뫼비우스의 띠를 발견하였고, 푸앵카레는 도형이 변형될 때에도 유지되는 특성인 호몰로지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기하학이 다루는 대상은 추상적인 정의(定義)에 의해 가정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점은 에우클레이데스가 위치만을 나타내며 넓이나 부피가 없는 것으로 정의한 이래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이 외에도 선분, 각 등과 같은 기본적인 기하학의 대상들 역시 합당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대상이 정의되면, 그를 바탕으로 도형, 곡선과 같은 대상도 기본적인 대상을 사용하여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은 하나의 정점에서부터 동일한 거리에 놓여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고 정의된다. 한편, 모든 기하학을 아우를 수 있도록 수학적으로 기하학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오즈월드 베블런은 “수학의 한 분야가 기하학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 이름이 많은 유능한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매우 근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라고 언급하였다.[25]
기하학의 대상이 정의되면 이를 바탕으로 공리를 설정할 수 있다. 공리는 기하학의 대상들이 갖는 기본 성질로서,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가장 기초적인 명제이다. 따라서, 공리는 증명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원론》을 집필하면서 다음과 같은 5 가지의 기하학 공리를 제시하였다.[26] 이 공리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여전히 사용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원론》의 모든 증명을 공리만을 사용하여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원론에서 거론되는 첫 문제인 정삼각형의 작도부터 에우클레이데스가 간과한 점이 발견된다. 유한한 길이를 갖는 선분 AB를 반지름으로 하는 두 원을 그렸을 때, 두 원이 만나는 점과 점 A, B를 연결하면 정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증명은 두 원이 만난다는 것을 공리 만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 그림을 그려보면 자명해 보이지만, 그 자체는 공리가 아니기 때문에 증명이 필요하다. 이 문제가 올바르려면 공리를 추가해야 한다.[27] 현대의 기하학자들은 이 원들이 만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연속성 공준’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28] 이와 같이 자명해 보이는 것이라 할 지라도 공리계 내에서는 자체적인 모순점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공리계 역시 검토가 필요하다. 힐베르트는 유클리트기하학의 공리계를 면밀히 다시 검토하여 힐베르트 공리계를 정리하였다.
공리를 자명하다고 여기는 것은 공리 자체가 결정불가능한 것임을 의미한다. 즉, 공리는 조건에 따라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따라서 기존의 공리계를 변형하여 새로운 공리계를 구성할 수 있고, 이렇게 구성된 공리계도 자체적인 모순이 없다면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여러 분야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공리를 변형하거나 추가하여 사용한다. 예를 들어 리만 기하학은 평행선 공리를 다시 정의하였다. 쿠르트 괴델은 결정 불가능한 공리계에 얼마든지 많은 결정 불가능한 공리를 더 추가할 수 있다는 불완전성의 정리를 증명하였다.[29]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널리 알려진 기본 정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있다. 직각삼각형의 세 변 a, b, c에서 c를 빗변이라고 할 때 가 된다는 이 정리는 고대 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수 많은 방식으로 증명되어 있다.[30]
아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한 간단한 대수적 증명이다.
원뿔 곡선은 하나의 평면으로 원뿔을 잘랐을 때 생기는 곡선인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을 말한다.[31] 원뿔 곡선에 대한 연구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부터 계속되어 왔다.
각 곡선에 대한 기하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는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발견한 도형의 점, 선, 면의 관계이다. 꼭지점의 개수를 , 모서리의 개수를, 라고 하면 의 관계가 성립한다.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는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에서 비롯된 한붓그리기와 함께 도형에 변형이 있더라도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는 호몰로지 라는위상수학의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32]
1796년 가우스는 변의 개수가 페르마 소수인 정다각형은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다. 특히, 3월 30일에 17각형(17면체)의 작도법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수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온 작도 문제에서 주요한 발견이었다.[33] 이는 2π⁄17의 삼각함수가 사칙연산과 제곱근만으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34]
이러한 가우스의 증명은 다시 사칙연산과 제곱근으로 표현 가능한 도형은 작도가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의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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