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소재(폴리우레탄) 도입 60년사(2) -두 Navigators-
PU 60년사를 써서 후대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60년 전 우리나라에 최초로 Polyurethane을 도입한 임호회장(88세, 1929년생)을 그의 자택 인근인 압구정동의 한 일식집에서 만났다. 90이 가까운 분이지만 12살 밑인 필자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일거수 일투족의 언행이 5,60대 청장년같았다. 건강비결을 물었다. 열심히 운동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노라니 나도 모르게 이 나일될 때까지 탈 없이 지낸다고 한다. 놀랠만하다. 부러웠다. 우선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60년 전 임회장의 PU도입과 국내 전개 상황을 듣고 싶다고 하였다.
한잔을 마시면서 허공을 바라보는 임회장은 어느덧 60여 년 전인 1956년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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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이면 6·25동난 후 환도한지 2∼3년 되었을까하는 시기라 서울은 대부분 폐허상태로 방치되어 있고 복구 작업이 여기저기 눈에 띄일 정도였다. 산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없었기 때문에 서울공대 화공과를 나오고도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대학원에 있으면서 모 미국계 상사에 취직하여 영국 ICI 업무를 맡고 있을 즈음 동신화학공업(주)로부터 西獨 바이엘사와 기술도입 계약을 맺었으나, 이를 이행할 적임자가 없어 물색 중이니 입사해 달라는 교섭을 받고 대학원 논문을 쓸 야심도 있고 해서 흔쾌히 응하였다.(당시 독일 Bayer사는 PU 연질 Slab Foam을 개발하여 상품화를 위해 전세계에 Sales를 전개하고 있었다).
1950년 대 동신화학은 국내 화학공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우리 일상 생활 제품 특히 신발, 고무, 치약, 플라스틱등과 타이어를 생산 공급한 국내 선구자 역활을 한 업체다.
동신화학에 입사해서 서류를 뒤져보고 처음으로 MOLTOPRENE-(Polyurethane Foam의 Bayer사 상표)란 용어를 발견했는데 아무리 갖고 있던 고분자 화공서적을 뒤져도 Polyurethane에 관해 쓴 책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미국문화원 도서관에 가서 최신판 MODERN PLASTICS를 들쳐보니 새로운 고분자로서 기술되어 있어 간신히 TDI, POLYOL, 부가중합반응 등의 기초 상식을 갖고 독일로 떠났다. 이때가 1956년 10월이었다. 그때는 여의도 벌판이 공항이었다. KNA의 푸로펠라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가서 구라파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가는데 3일이 걸렸다.
2차세계대전에 패망하여 10여년이 지났지만 Koeln시는 대성당하나만 덩그런이 남고 시내는 완전히 폐허상태였으나 Koeln시 근처에 있는 Leverkusen의 거대한 화학공장 Bayer는 온전하게 보존되엇음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당시 Bayer사가 개발한 Polyurethane과 새로운 소재는 전략상 귀중한 것임을 첩보기관이 인지하여 연합군은 이곳을 폭격하지 않고 기술과 기술자를 보존하게 되었다.
숙소를 Bayer社의 CASINO HOTEL에 정하고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되었다. 담당 책임자는 Dr. BROCHHAGEN이고 2∼3일간 기술 자료를 내주고 설명하였다.
그때만 해도 Polyol은 Polyester Polyol 밖에 없었고 DESMOPHENE 2,200이 주종이었는데 이 Polyol이 온도에 민감해서 LOGARITHMIC하게 VISCOSITY가 변동하는 도표를 내놓고 원료와 반응온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Pilot Plant가 있는 실험실에서 실험이 시작되었는데 수일간 TDI와 Additive의 Metering Pump인 BOSCH Pump와 분사 Nozzle의 분해, 조립, 세척을 완전무결하게 할 때까지 시키고 나서야 실험기 조작을 가르쳤다..
1957년 초 일본의 이노우에고무공장(주) 사장인 이노우에氏 父子가 역시 Bayer社에 내방해서 소개받고 인사한 기억이 나는데 그 회사는 MTP化成이라는 별도 법인을 만들어 한국보다 2년 앞서 1955년 기술과 시설을 도입하여 대 성공리에 가동 중이란 말을 들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15년 5월16일 토꾜 시나가와 호텔에서 열린 일본 PU 도입 60주년 기념식에 초청을 받고 당시 인사하던 아들 이노우에 회장을 극적으로 해후하였다. 그도 나와 동갑생으로 뱀띠라고 한다. 한.일 양국 PU Navigators의 만남은 양국 PU발전의 상징이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Bayer社의 PU 관련 시설과 기계는 계열사인 Hennecke社가 전담하고 있어 자연 Hennecke社도 방문하고 발주한 UBT-63 PU 발포 Slab 제조기의 제작진도 및 과정을 상담하였다.
1957년 여름에 Hennecke 기계가 도입되어 그해 9월부터 MOLTORPENE의 생산을 시작하였다. 물론 원료인 Polyol, TDI 배합제 전량을 Bayer社사 공급하는 조건이었으나 항상 외화 부족으로 허덕이는 시절이라 원료확보에 많은 애로를 겪었다. 한번 발주량이 POLYOL 20∼30톤(1개월분) 베이스였는데 여의치 않았다.
(1966년부터 한국산업은행에 근무한 필자는 은행에서 자금배정을 하는 업무과에서 근무하였는데 동신화학은 은행관리기업체 였기에 폴리우레탄 원료 수입에 필자가 배정한 기억이 난다.)
SLAB의 크기도 폭 1백 20cm에 높이 40cm 정도여서 현재의 SLAB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이나 일단 제품이 생산되어 나온 후에 이 제품의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아무도 예측을 못했었다. 막연히 일본에서와 같이 자동차 씨트 쿠션과 가정용 매트리스, 의자의 쿠숀용을 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결과는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누구나 가난하고 생필품이 부족한 이유도 있었지만 2~3mm 두께로 SLICE한 각종 색깔의 MOLTOPRENE이 모직물 대용품으로 남녀노소용 목도리, 양복, 한복의 부속재료, 버선에 넣는 솜대용품 등으로 주로 의상분야로 시장이 형성되니 자연 제품도 고부가가치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앞가슴이 큰 여자를 가리켜 ‘동신 스포지‘라고 불렀지요.
최근에는 어느 자동차 의자용 커버를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했는데 SLICE한 P.U FOAM을 포지에 합포해 쓰고 있어서, 그 PU FOAM은 어느 회사 것이냐고 물었더니 K사의 것이라 해서 무엇이 다르냐고 했더니 K사는 동신화학 시설과 기술을 인계 받아 함으로 SLICE제품에 있어서는 他社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상품시장의 전통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60여 년 간 한국의 PU 산업은 놀랄만하게 발전하고 있다. 1993년 4월부터 발행해 온 폴리우레탄세계는 국내외 최신 PU 정보와 새로운 기술을 소개함으로서 우리나라 PU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PU 산업의 숙원인 모임단체도 생겨 전세계 PU 산업과 어깨를 나란히 노력하고 있음을 치하하는 바이다.
한국 PU 산업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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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여세의 노구에도 끄떡없이 60여 년 전의 일화를 들려 주는 임회장의 눈에는 약간의 이슬이 맺혀져 있다.
너무 감격해서일까... 60여년의 회한, 그러나 기술과 소재를 최고 수준에서 경쟁하는 후배를 생각하니 마음 듣든하다고 한다.
필자는 아브라함같이 120수 하세요하며 긴 시간 인터뷰를 끝냈다.(2회 끝)
표민웅/MinPU Service, The Polyurethan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