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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편 51: 1∼13)
오늘은 10월 31일입니다. 오늘이 어떤 날입니까?
‘아, 알아요! 핼러윈(Halloween)이에요.’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 며칠, 핼러윈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TV에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멀지 않은 이태원에 특히 많이 모인다고 하는데 어제는 저희 교회 부근까지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이 핼러윈이라는 것을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오늘이 종교개혁일이라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중세에 천주교회가 심하게 타락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라는 수도사가 보다 못해 504년 전 바로 오늘인 1517년 10월 31일, 천주교의 잘못을 지적한 ‘95개조’를 비텐베르그 성(城)교회 정문에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에 호응했습니다.
교황청에서는 보롬스(Worms)에 회의를 소집하고 루터를 소환했습니다.
루터는 보름스에 들어가면서 ‘저 성의 기왓장들이 마귀가 되어 덤빈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하며 찬송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 알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찬송가 585장인데 설교 뒤에 이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
이같이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개신교가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들은 10월 마지막 주간을 종교개혁주간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10월을 ‘개혁의 달’로 정한 교회도 있습니다.
올해는 10월 31일이 주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개혁일 예배’라는 이름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개혁에는 세 등급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개혁예배 한 번 드리고 끝나는 것입니다.
‘수준 낮은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제도. 형식, 조직, 이런 것들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개혁을 말하는데 ‘보통 수준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2년에 한 번씩 총회입법의회를 열어 감리교회의 헌법인 장정을 개정합니다.
제34회 총회입법의회가 지난 주간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많은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한 예배당을 두 교회가 같이 사용할 수 있다, 연회의 숫자를 반 가까이 줄인다,, 세 개가 있는 신학대학원을 하나로 통합한다, 본부 구조를 개편한다 등등, 그래서 ‘개혁적인 개정’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총회입법의회에 대해 담임목사님과 저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총회입법의회에 참석하는 대표는 여러 과정을 거쳐 선출됩니다.
제가 그 대표로 선출되었을 때 ‘아, 내가 총회입법의회 대표가 되었다!’ 하면서 흥분했었습니다.
큰 기대 속에서 참석했는데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총회입법의회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저도 그래요!”, 법을 바꾸는 것보다 마음과 자세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개혁에 대한 이야기는 많아도 실제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수준이 낮은 개혁이나 보통 수준의 개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낮은 수준의 개혁, 보통 수준의 개혁에 이어 오늘 설교 제목에 들어 있는 ‘수준 높은 개혁’이 있습니다.
수준 높은 개혁은 어떤 것입니까?
성도 개개인의 믿음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내면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 마을을 만드세 살기 좋은 새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새마을의 노래를 지금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새마을운동이 진행될 때 “새마을운동이 성공하려면 새마음운동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했습니다.
저에게 이런 체험이 있습니다.
20대 후반에 저는 지방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신앙에 바탕을 두고 교육하기 위해 애쓰는 학교인데 교장 선생님은 이 분은 신앙양심을 지키기 위해 일제강점기에도 그랬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해방 직후에는 미국에 유학 가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대전에 있는 어느 대학의 학장으로 초빙 받았는데 응하지 않고 시골 고등학교의 교장직을 택했습니다.
이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직업을 선택할 때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해라, 내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하는 쪽을 택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직업선택의 십계명”이라고 해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학교에 부속교회가 있었는데 주일에 오전 8시에 1부 예배를 드렸고, 11시에 2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1970년 10월 마지막 주일에 1부 예배 설교는 제가, 2부 예배 설교는 교장 선생님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이 종교개혁주일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한국교회는 이렇게, 이렇게 부패했고, 시급하게 개혁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흥분해서 열을 올렸습니디.
그때 저는 그렇게 나올 이유가 있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2부 예배 설교를 맡은 교장 선생님 역시 종교개혁을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종교개혁의 기본정신은 “오직 믿음으로!”인데 믿음이란 이런 것이라고 차분하게 설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개혁의 기본정심은 “오직 믿음으로!”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교독한 종교갤혁주일 교독문(104번) 가운데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개신교 신학의 등뼈’라는 말읖 듣고 있습니다.
이 교장 선생님 역시 소속한 교파로부터 억울한 일을 겪고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평신도의 신분으로 기독교 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분이어서 교회를 공격하려면 얼마든지 통렬하게 공격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 몇 명의 교인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예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교인들의 대부분이 동료 교사들이어서 흉허물 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1부와 2부 예배에 다 참석한 교인들이 있었는데 한 교인이 말하기를 1부와 2부 예배 다 좋았는데 1부 예배에서는 외과 수술을 받았고, 2부 예배에서는 내과 치료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교인은 1부 예배에서는 충격을 느꼈고 2부 예배에서는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한 교인이 그 말을 이어받아 1부 예배에서는 아픔을 느꼈고 2부 예배에서는 시원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교회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교사는 1부 예배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것 같았고 2부 예배는 나를 향한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교인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저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개혁에 대해 말할 때 밖의 개혁보다 안의 개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곧 교회개혁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신앙개혁입니다.
개인의 신앙개혁이 선행되어야 교회개혁이 온전히 이뤄질 수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내가 가톨릭교회를 뒤엎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이룩하리라' 하는 마음으로 오늘 95개조를 내걸지 않았습니다.
루터의 개혁운동은기독교의 본래 진리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습니다.
바깥을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을 개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3대 구호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총으로!”인데 모두 개인의 신앙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안을 개혁하다보니 바깥의 개혁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개혁되어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22년 전인 1999년 10월 30일에 『국민일보』에 “교회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기사 중에 “섬김과 나눔의 상실, 무한정한 대형화의 추구, 교파우선주의, 세습, 지역이기주의, 영성약화, 물질우선주의 등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이전 중세 유럽사회를 지배했던 교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상태에 처했다는 분석이 높다, 최근 사회의 각종 의혹과 비리사건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관련됨으로써 일반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졌다. 기독교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복음전도자체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이것이 개혁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고 최근에는 코로나 문제로 부정적인 여론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회가 일종의 무기력 증세에 빠져 있는 것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개혁은 이렇게 심각하고 시급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혁은 개인의 신앙개혁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신앙개혁, 안으로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는 개혁은 헛된 것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고 선전하는데 내용물은 그대이고 포장을 바꾸었다면 사람들이 실망하고 속았다고 할 것입니다.
내용물을 바꾸고 거기 따라 포장을 바꿔야합니다.
포장만 바꾸는 개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개인의 신앙개혁, 안으로의 개혁, 수준 높은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습니까?
회개를 통해서,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시편 51편은 다윗의 참회시(懺悔詩)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을 했습니다.
그 일을 덮기 위해 충직한 부하 우리아를 간접 살해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그 일을 꾸짖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참회하며 지은 시가 시편 51편입니다.
다윗을 다윗으로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무엇이 다윗을 그렇게 유명하게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다윗 앞에 성군(聖君)이라는 소리가 붙게 만들었으며,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말하게 하고 있습니까?
골리앗을 죽인 것, 수많은 승전, 많은 신앙시들을 지은 것도 다윗을 유명하게 만든 요인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다윗으로 만든 것은 그의 회개입니다.
바로 시편 51편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많은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1절) 호소하는 마음입니다.
만일 이 회개가 없었더라면 다윗은 그저 유명한 장군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군인들이 상대하기조차 두려워하는 용맹한 적장을 어린 소년이 단 번에 거꾸러뜨린 것은 훌륭한 무용담의 소재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허ᅟᅡᆼ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승리를 안겨준 화랑 관창의 이야기를 배우는데 다윗은 이스라엘의 관창 정도로 전해졌을 것입니다.
만일 이 회개가 없었더라면 다윗은 그저 유명한 시인으로 고대문학사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시작되는 시편 23편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사랑 받는 노래입니다.
월남전 당시 미군 조종사들이 출격할 때 만일 비행기가 적탄에 맞아 낙하산을 타고 비상탈출했을 때를 대비하여 비상배낭을 휴대했다고 합니다.
그 비상배낭에는 밀림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비상식량, 지도, 약품, 낚시도구 같은 것들과 함께 시편 23편을 적은 쪽지도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편을 지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런데 회개가 없었마면 “희랍에는 <일리야드>와 <오딧세이>를 지은 호메로스(Homeros)가 있었고 이스라엘에는 시편 23편을 지은 다윗이 있었다” 이 정도로 기록되었을지 모릅니다.
이 회개가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다윗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회개가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이같이 신앙의 역사에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2대 영웅으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원죄(原罪)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시편 51편 5절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하는 것은 원죄에 대한 고백입니다.
“인간은 죄인이다”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은 철학과 윤리와 사람의 모든 정신작업은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원죄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인간관은 기초공사가 잘못된 집과 같습니다.
“내가 죄인이다” 하는 인식이 없는 사람은 “나는 피부가 검은 사람이다”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흑인과 같습습니다.
루터는 죄의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는 “내 죄!” “내 죄!“ 부르짖으며 뒹굴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가 매일 짓는 죄에 대한 회개가 있습니까?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3절)하는 다윗의 고백이 내게도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구원의 기쁨을 선물로 받았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의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회개가 있습니까?
주일이 좋은 것은 교회에 나와 한 주일의 죄를 회개하며 깨끗한 마음,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주일예배에서 장로님들이 드리는 대표기도에는 지난 한 주간의 죄를 참회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일예배에 “참회의 묵상” 순서와 “사죄의 선언” 순서를 넣은 교회도 있습니다.
회개는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하지 않습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참회하며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것이 오히려 창피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를 부흥시켜 주십니다.
한국 교회가 1907년에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한 해 사이에 한국교회가 두 배 반 가까이 배가 되었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회개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디(R.A. Hardie 河鯉泳)이라는 캐나다 출신 감리교 의료선교사가 강원도 지경터라는 곳에서 선교를 하는데 퍽 교만하게 굴었습니다.
초기에 선교인들이 이같은 백인우월주의에 빠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사역을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고민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1903년에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원산에 모여 기도회를 가졌는데 하디가 강사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너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회개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나는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 온 백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한국인들을 멸시했습니다. 우월의식과 자만심과 권위주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힘과 재주를 갖고 선교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회개합니다.”했습니다.
그러자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우리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온 당신을 미워했습니다” 회개의 응답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령이 강림해사 원산부흥이 일어났고 이것이 확산되면서 평양대부흥이 점화되었습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도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경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회개의 고백을 한 것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길선주 장로님은 뒤에 한국장로교 첫 일곱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 되었고 3․1운동 때는 33인 가운데 기독교를 대표한 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일입니다.
회개의 중요함을 더 깊이 깨닫고 진솔한 회개를 하는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시편 51편을 지어 하나님께 바치는 주일이 되어야합니다.
우리 교회의 시편 51편을 지어 노래하는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절)” 하는 기도가 있어야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힘이 소멸되어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영적인 힘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저항력이 약해지면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영적인 힘이 약해지면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무엇이 다윗의 영적인 힘을 약하게 만들었습니까?
자만감 때문입니다.
편안한 시간들이 계속되니까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자만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1장 2절에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낮잠을 실컷 잤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하들은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데 임금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전선에서는 계속해서 승전의 소식이 날아옵니다.
“우리가 암몬 자손을 멸했습니다” “랍바를 포위했습니다”(삼하 11:1), 그런 소식에 자만감에 빠졌고, 그것이 큰 범죄로 연결되었습니다.
한국교회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 한국교회는 “성도의 숫자가 천만을 넘어섰습니다”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에 있다고 합니다” “유럽 교회는 저녁 일곱 시이고 미국 교회는 오후 두 시이고 한국 교회는 아침 일곱 시라고 합니다”, 이런 소식들을 듣으면서 자랑을 하다가 지금 급격항 교세 감소를 겪고 있습니다.
아까 감리교 장정개정 이야기를 했는데 장정개정위원장 목사님은 “교인이 감소되는 추세 가운데에서 생존을 위한 개정”이라고 말슴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영성이 어떠합니까?
처음 믿을 때의 감격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만일 낮잠을 자고 있다면 그렇지 못하다면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12절)하는 기도를 다윗보다 더 간절하게 드려야합니다.
자원하는 열심히 회복되도록 해야합니다.
개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교인들은 목사들을 보고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고, 목사들은 교인들, 특히 장로들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개혁의 주체이고 너는 개혁의 객체, 개혁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보수는 진보를 보고 경건이 부족, 은혜 없다고 합니다.
진보는 보수를 보고 역사 의식이 없다, 사회개혁의 의지가 없다고
예전에 ‘그건 너, 바로 너, 너 때문이야“하는 대중가요가 있었습니다.
이장희가 불렀지요.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보고, 교인 목사 모두, 보수, 진보 모두 개혁하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방휼지쟁(蚌鷸之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싸우는데 도요새가 주둥이를넣는 순간 조개가 입을 꽉 다물어 버렸습니다.
지나가던 어부가 새와 조개를 동시에 잡아 가지고 갔습니다.
도요새와 조개는 교회 안의 구성요소들이고 어부는 사회인 것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성경을 다섯 장씩 읽고 있는데, 오늘 새벽에 역대하 6장에서 10장까지 읽었습니다.
역대하 7장은 성전 낙성식 기록입니다.
솔로놈이 지는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다면 말씀이 1절과 2절과 3절에 연이어 나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할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종교개혁주일에 대한 최근의 언론보도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특징이 발견됩니다.
하나는 전에는 교회 안에서 교회개혁을 말했는데, 이제는 교회 밖에서 교회를 보고 개혁하라는 소리가 높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는 개혁되지 않으면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립기반이 상실될 위기에 처할 정도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더럽다고 인식되어진 세속사회가 깨끗하고 거룩한 세계라고 알려진 교회를 보고 “너 좀 깨끗해져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이 사회가 내비게이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회가 위기를 향해 가고 있디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누구를 보고 개혁하라고 해야 합니까?
내가 나를 보고 개혁하라고 해야합니다!
바깥으로 향했던 손가락을 안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건 나, 나 때문이야!” 합니다.
내가 회개하고, 나의 영성이 회복되고 강화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회개가 살아 있는 교회로 유명해져야 합니다!
영성이 뛰어난 교회로 유명햐져야 합니다!
안으로의 개혁이 이뤄지는 교회로 유명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편의 중심부분을 오늘 저는 이렇게 고쳐 부르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빠짐없이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우리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빠짐없이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빠짐없이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우리 교회 성도들 아무에게서도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우리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빠짐없이 회복시켜 주 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용산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주사 빠짐없이 붙드소서
안으로, 안으로의 개혁을 이뤄나가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저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