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동성당이야기
병인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모여들면서 영동 지역에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강릉군 내에 삼정평, 새울, 금광리 공소가 설립되었습니다.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자 양양 본당, 금광리 본당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금광리는 거주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전 가능성도 적어 주문진으로 본당을 이전했습니다.
성당 화재 이후 잠시 금광리로 본당을 옮겼다가
발전 가능성이 더 컸던 강릉으로 다시 이전했습니다.
강릉으로 이전한 후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던 중 광복을 맞았고,
광복 후 본당의 내실화는 물론 사회복지와 교육사업 등을
통해 지역과 함께하는 본당 공동체를 구현했습니다.
본당 명칭도 강릉 본당에서 임당동 본당으로 바꾸었습니다.
성당 앞 왼쪽에는 강릉 대도호부 관아가 있습니다.
이곳의 칠사당과 객사문에서 병인박해 당시 많은 신자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임당동 성당은 강원도 지역 성당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로
외관의 뾰족한 종탑과 지붕 장식, 첨두형 아치 창호, 부축벽을 이용한
입면 구성 및 내부의 정교한 몰딩 구성 등 의장 기법에서 보존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영동 지역 신앙의 중심지로, 영동 지역 많은 본당의 모(母)본당이라는
역사성도 겸비하고 있어 2010년 2월 19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57호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