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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泉煎茶有懷」 산천전다유회 / 산의 샘물로 차를 달이는 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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坐酌冷冷水 좌작냉랭수 / 앉아서 차디찬 산속의 샘물을 떠서
看煎瑟瑟塵 간전슬슬진 / 찻가루 넣고 슬슬 끓어오르는 것을 본다네.
無由持一盌 무유지일완 / 이 좋은 차 한 사발 가져다가
寄與愛茶人 기여애다인 / 차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릴 길이 없네...
■ 작품 감상
이 시는 백거이가 항주자사(杭州子史)로 있던 장경(長慶) 2년(822) 51세 때 지은 것이다. 관직에 있으면서 바쁜 공무에 시달린 심신을 자연을 찾아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일상의 피로를 풀었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백거이는 술 못지않게 차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은 그의 차시들을 통해 알 수가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차를 우리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좋은 물을 찾아 산을 찾을 만큼 백거이는 술맛 못지않게 진정한 차맛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육우도 다경 「오지자」에서 ‘차를 다리는 물로 산수(山水)가 으뜸’이라 했는데 백거이도 그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백거이도 육우가 말한 ‘인가(人家)에서 멀리 떨어진’, ‘젖샘(乳泉)이나 돌못에 천천히 흘러가는 물’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 틀림없다.
제대로 된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화로와 차솥을 비롯한 다구들을 준비하여 산을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진정한 차인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 방금 길러온 샘물을 끓여 찻가루를 넣고, 꽃처럼 피어오르는 차 거품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입신양명하여 부귀공명을 누리고자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깨닫는다. 백거이는 이 심오하고 그윽한 경지를 차 마시는 일을 통해 깨닫게 되었지만, 이 귀한 진리를 함께 나눌 사람 없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한 편의 시로 남기고 있다.
「睡後茶興憶楊同州」 수후다흥억양동주 「잠에서 깨어나 차흥이 일어 양모소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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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晩飮太多 작만음태다 /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嵬峨連宵醉 외아연소취 / 밤새도록 취해 비틀거렸네.
今朝食又飽 금조식우포 / 오늘 아침에는 또 배불리 밥을 먹고
爛漫移時睡 난만이시수 / 늘어지게 누워 잠이 들었네.
睡足摩挲眼 수족마사안 / 실컷 자고 일어나 눈을 비비며 보아도
眼前無一事 안전무일사 / 눈앞에는 아무런 일이 없어라.
信脚遶池行 신각요지행 / 발걸음 가는대로 연못가를 걸으니
偶然得幽致 우연득유치 / 우연히도 그윽한 운치가 있네.
婆婆綠陰樹 파파녹음수 / 너울너울 녹음 짙은 나무들
斑駮靑苔地 반박청태지 / 얼룩얼룩 푸른 이끼 낀 땅.
此處置繩牀 차처치승상 / 이곳에 멍석을 깔고
傍邊洗茶器 방변세다기 / 그 곁에서 다기를 물에 씻네.
白瓷甌甚潔 백자구심결 / 흰 찻사발은 아주 깨끗하고
紅爐炭方熾 홍로탄방치 / 붉은 화로 속의 숯은 활활 타오르네.
沫下麴塵香 말하국진향 / 찻가루를 넣으니 누룩가루 향기 그윽하고
花浮魚眼沸 화부어안비 / 물고기 눈같은 물방울 끓어오르며 거품꽃 피어나네
盛來有佳色 성래유가색 / 찻잔에 담으니 빛깔은 곱기도 고와
嚥罷餘方氣 연파여방기 / 마신 뒤에도 그윽한 향기는 사라지지 않네.
不見楊慕巢 불견양모소 / 양모소 그대가 곁에 없으니
誰人知此味 수인지차미 / 그 누가 이 맛을 알 수 있으리.
■ 작품 감상
이 시는 빈한한 집안에서 태어난 백거이가 대화9년(835) 낙양에서 태자빈객분사동도(太子賓客分司東都)라는 한직(閒職)으로 있던 64세에 지은 시이다. 하지만 봉급으로 7~8만 냥이라는 큰돈을 받고 있어서 생활하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 마지막에 나오는 양모소(楊慕巢)는 백거이의 처남(妻男)으로 동주자사였던 양여사(楊汝士)이다. 그는 양귀비(楊貴妃)와 같은 집안으로 주변에 인망(人望)이 있었던 인물이었는데 백거이와는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지음(知音)으로 지내는 관계였다.
백거이는 많은 음주시(飮酒詩)와 다시(茶詩)들을 남기고 있는데 이 시는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음다(飮茶)의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직으로 물러나 만년을 보내고 있는 작자는 ‘밤새 술에 취해 비틀거린’ 다음날 ‘일어나 배불리 밥을 먹고’ 또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 눈을 비비며 보아도’ ‘눈앞에는 아무런 일이 없는’ 그야말로 걱정거리 없이 유유자적하고 무사태평한 삶을 누리고 있다. 느즈막한 오후나 되었을까? 술에서 깨어나 ‘연못가를 거닐며 그윽한 정취를 느끼는’ 그는 일상다반사가 된 차를 마시기 위해 ‘녹음이 짙은 나무 그늘 아래’ ‘푸른 이끼들이 돋아있는 땅’에 ‘멍석 하나 깔아 놓고’는 그 곁에서 가지고 온 ‘다구들을 씻는다’. ‘흰 색의 도자기로 된 찻사발이 빛나고’ 방금 피워놓은 ‘화로에서는 숯이 붉게 타 오른다’. 물이 끓어오르는 솥에 ‘찻가루를 넣으니 누룩가루 같은 향기가 진동을 하고’, ‘물은 물고기 눈처럼 방울방울 끓어오르고 그 위로 꽃송이처럼 거품꽃이 피어 오른다’. 우린 찻물을 흰색의 도자기 ‘찻잔에 담아 놓으니 그 빛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마시고 나서도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아! 역시 좋은 차는 좋은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것! 이렇게 좋은 날 좋은 자리에 나의 지음(知音) 양모소가 내 곁에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구나.”
이 시는 당대(唐代)의 자다법(煮茶法)의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술을 좋아했던 백거이는 찻가루의 모습과 향을 술을 빚는데 사용하는 누룩가루의 모습과 향에 비유하고 있다. 차솥에 찻가루를 넣고 끓이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것을 좋은 차로 여겼음을 알 수 있고, 백자 찻잔에 담긴 차거품의 색깔을 ‘가색(佳色)이라 표현하고 있다.
백거이가 말하고 있는 양모소 역시 당대의 문인으로 차를 알았고 누구보다 차에 대한 감식안이 뛰어난 인물이었으니, 좋은 차를 앞에 두고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양모소의 감식안이 뛰어난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백거이 자신의 감식안 또한 뛰어났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적어도 양모소 정도의 감식안이 있어야 자신이 끓인 차의 가치를 알아 볼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통해 육우가 다경에서 말하고 있는 자다법(煮茶法)이 당대에 폭넓게 퍼져있는 음다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상생활 가운데 여유와 멋을 찾아 누리는 데에는 차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