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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03-106 말씀으로 가까이 갑시다 2020.1.12
한 주일학교 학생이 생일선물로 성경을 받았습니다. 지퍼가 있는 가죽성경인데,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성경입니다. 아이는 다음 주일 주일학교에 와서 성경을 자랑을 합니다. 성경을 자랑하는 아이의 말에 선생님이 맞장구를 치면서 말합니다. “이야! 성경 참 좋네! 선생님이 한번 봐도 되겠지?”하고 성경을 받아 지퍼를 열려고 합니다. 그때에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아이가 얼른 성경을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조심하세요. 성경 잘못 열면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이 나와요. 큰일 나요.”
아이는 성경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함부로 열면 하나님이 성경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있다는 이 아이의 판단이 맞는 것일까요? 틀린 것일까요?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성경을 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관점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느냐? 또는 만나지 못하느냐? 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은 성경 안에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가지고 다니는 성경책 안에 갇혀계신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교훈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의 모습은 본 받을 교훈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성경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말씀을 읽을 때에 성경을 접합니다.
얼마 전에 김장로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성경의 겉표지가 낡아서 돈을 주고 새롭게 겉표지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왜 굳이 돈을 들여서 다시 성경을 손보는 것인가요?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성경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아끼고 귀하게 챙기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을 가지고 있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열 때마다, 하나님을 만난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과연 몇 %나 될까요? 여러분은 성경을 펼칠 때마다, 또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마다, 성경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다고 판단하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면에서 성경책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어린아이의 믿음은 순수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성경책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 이 작은 나라에 성경과 함께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만 하여도, 이 작은 땅덩어리에는 꿈도 없고, 희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암울한 상황 중에서도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삶은 정말로 비참했습니다. 남자들이야 서당에 가서 학문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능 있고 뛰어난 여성이라고 해도, 여자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집에서 살림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와 함께 성경말씀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여자들도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기독교 학교가 생겨납니다.
더군다나 성인 여자들도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이화학당(이화여자대학교)이 생깁니다. 그래서 여자들도 남자에 못지않게 공부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열립니다. 이제는 판사, 변호사도 여자들이 절반 이상을 채울 정도로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숫자만 많아 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여성들의 파워가 얼마나 강한지, 여성 단체에서 들고 일어나 한 목소리를 내면, 대통령도 움추려들 정도로 여자 분들의 파워가 강합니다.
기세등등한 여성분들 때문에 만들어진 재미있는 유머어가 있습니다. 죽어서 저승에 도착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모인 남자들을 향해 천사가 “세상에 살아생전에 집에서 가장으로 살면서 큰 소리 친 남자들은 이 쪽으로 줄을 서라. 그리고 아내가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기죽어 살은 남자들은 이쪽 줄에 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수많은 남자들이 아내가 가장의 역활을 감당하면서 자신은 기죽은 상태로 살았다고 표시하면서 <아내가 가장이다>는 푯말 아래에 줄을 섭니다. <남편이 가장이다>라고 적은 푯말을 둘러보니 딱 한 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혼자 서 있는 남자가 너무 기특해서 천사는“남자는 여자의 머리인데, 너는 정말로 올바로 살았구나. 그런데 어떻게 힘들고 어려운 가장자리를 지킬 수 있엇느냐?”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왜 자신이 여기 서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말합니다. 그냥 마누라가 저 쪽 줄에 가서 서 있으라 해서 그냥 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스개 이야기입니다만, 점점 세어지는 여성들의 위치를 보여 주기도 하고, 또한 집안이 조용하려면 남자들이 여성들의 말을 듣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어디 여성들만 위치가 격상된 것인가요? 아니지요!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이 나라가 개화되고, 그리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양반 상놈이라는 구도가 바뀌었고, 여자와 과부와 어린아이들이 무시당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되는 계층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이 일구어낸 역사적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이 분명하게 축복의 책인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주림이 아닙니다. 물질이 없어 가난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영혼의 굶주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여름 홍수 때를 살펴보세요. 지천으로 넘쳐나는 것이 물입니다. 하지만 홍수가 범람하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정작 마실 물이 없어서 사람들이 걱정하는 기현상이 발생합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은 텔레비전과 온라인, 유투브 등에서 차고 넘칩니다. 이렇게 말씀의 홍수속이지만 정작 내가 먹을 수 있는 말씀은 매우 적습니다. 내가 읽지 않은 성경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리 좋은 약이 있으면 무엇을 합니까? 전염병에 걸렸는데 주사를 맞아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 아닙니까? 먹지 않는 약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구경해봐야 필요가 없습니다. 읽지 않은 성경 말씀, 내 삶에 적용하지 않는 성경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20200년 이 한해에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적용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날마다 바쁘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시간을 쪼개어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고,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보약 같은 말씀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성경말씀의 맛을 논할 때에 이 구절보다 달리 더 언급되는 구절이 없을 정도로 이 구절의 말씀은 유명합니다.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두고 말할 때에 흔히 하는 말 중에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날마다 흔하게 먹는 밥이 보약이 되다니요? 이것은 평범한 밥이지만, 식사를 맛있게 잘하고, 잘 먹고, 잘 소화 시키는 것이 비싼 보약을 먹는 것 보다 더 낫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평가 할 때에 그 사람이 먹는 식사를 체크합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아침을 먹고 조금 지나면 또 배가 고픕니다. 한참 먹을 시기인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 보십시오.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다고 먹습니다.
예전에 여러분들 학창시절을 떠 올려 보십시오. 그때만 하여도 학교급식이 없어서 모두들 점심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점심시간에 먹어야 되는 도시락이지만, 배가 고픈 나머지 2교시가 끝나는 10시 전후에 대부분 도시락이 다 비워져 있습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한참이나 자라고 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꾸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맛이 나에게 이렇게 나타나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또 듣고 싶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도 읽어도 자꾸 일고 싶어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신앙인이 가지고 있는 말씀에 대한 태도입니다. 아무리 먹어도,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고 자꾸 먹고 싶은 말씀입니다.
하윤이 키우는 박집사님, 하윤이가 아프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신호가 무엇이에요?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아프면 입맛부터 먼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저희 집 고양이도 먹는 사료량을 보면, 몸 상태가 정상인가? 아니면 비정상인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인이 건강한 성도입니까?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애타게 기다리는 성도가 건강한 교인입니다. 주일날 오전 말씀을 들으면, 오후 예배 말씀을 또 듣고 싶어 합니다. 말씀이 고파서 새벽 예배를 찾아 나오고, 직장 생활로 힘든 몸이지만, 수요예배에 나와서 말씀을 먹습니다. 이것이 성장하는 성도의 모습이고,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시편 19:7절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킨다”라고 말합니다.
소성(蘇醒)이라는 말은 “중병을 앓고 난 뒤에 몸이 다시 회복되다”라는 듯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을 완전하게 치유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고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역약한 나를 살리는 보약과 같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보약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기적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됩니다.
예전에 시골교회에 계셨던 나이 드신 권사님들을 보세요.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하엿는데, 성경을 읽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글씨를 깨우치고 찬송을 부르다가 글씨를 깨우친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사는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입에서는“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달고 맛있습니다”라는 고백이 끊어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에 빠지지 마십시오. 영의 양식이 기록된 성경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묵상하면서 영의 양식을 충만하게 공급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성경은 내 길의 등불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본문에 보면, 말씀을 표현하는 두 가지 모습이 등장합니다. 내 발에 등불이고 내 길에 빛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걸어 갈 때에 내가 올바른 걸음을 할 수 있도록 내 발의 앞을 비쳐주는 등불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내가 길을 걸어 갈 때에 어떤 길로 가야할지 알지 못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나를 이끌어 주시는 빛이 됩니다. 이 부분을 두고 박윤석 박사님은 주석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운 밤하늘, 하늘의 모든 별들이 다 사라지고 가야할 방향을 모르는 배에게 올바르게 가야할 방향을 보여 주는 등대빛과 같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정말로 명쾌한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내 발에 등불처럼 내가 헛될 발걸음을 하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 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수렁에 바지지 않도록 내 걸음을 인도합니다. 또한 내가 걸어가야 하는 올바른 신앙의 길로 나를 인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기도에 매우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기도생활은 목사인 제가 보아도 존경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백번강조해도 백번모자라는 것이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기도라고 할지라도,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다져진 기도가 아니면, 매우 위험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분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판단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는 매우 몰입하고 있지만, 성경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성경 말씀은 도외시하고, 기도 생활에만 몰두하다가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종종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방언 기도하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언으로 찬양도 하고, 심지어 방언으로 대화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나름 충만한 분들이 종종 이단에 쉽게 빠지고 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성경 말씀을 도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이야 문명의 발달로 어두움을 밝히는 여러 가지 첨단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어두움을 밝히는 것은 기름을 붙여서 사용하는 등불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등불이라고 하여도, 바람이 조금 심하게 불거나, 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는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떠합니까? 폭우가 쏟아지는 곳에서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어둠을 밝히는 방수 후레쉬도 있습니다. 심지어 엄청난 수압이 작용하는 깊은 바닷속서도 사용이 가능한 특수전등도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엄청난 성능을 가진 후레쉬가 있습니다. 에베레스트 산꼭대기에서도 작동하고 깊은 바다 속에 던져 놓아도 작동 가능한 후레쉬입니다. 이렇게 제 아무리 성능이 좋은 후레쉬라고 하여도, 내가 가는 내 길을 인도하는 등불이 되지는 못합니다. 수백만원을 주고 산 값비싼 후레쉬라고 하여도, 내 영혼을 인도하는 말씀의 등불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어두움을 몰아내고, 흑암에 갇혀서 밝음을 보지 못하는 영혼들을 광명으로 인도하여 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에 나를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어떤 길로 가야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어떤 길로 가야만 믿음으로 승리하는 길인지 알이지 못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등불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러시모어라는 유명한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존경받는 미국의 대통령 4명의 얼굴을 산에 조각해놓아 더 유명해진 산입니다. 어떤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을까요? 사진을 보세요
먼저 <조지 워싱턴>은 제 1대 대통령입니다.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기원을 성경으로부터 출발시킨 대통령입니다. 두 번째 인물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인데,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사람입니다. 제퍼슨은 “미합중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고 있는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인물로 <에이브러햄 링컨>인데, 두말할 나위 없이 백악관 집무실에 늘 성경을 두고 읽으면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미국을 이끌고 가려고 했고, 그 결과 노예 해방이란 결실을 맺은 대통령입니다. 마지막이 <루즈벨트>대통령입니다. 미국을 경제 대공황에서 구원해낸 루즈벨트 대통령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기의 인생을 참되게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모두 성경을 가까이 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에도 대다수 미국인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매우 즐겨 읽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2020년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손에서 성경책이 떨어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래서 올 한 해동안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신구약 일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 말씀을 읽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신약성경이라도 일독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능력을 받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살리는 보약과 같은 말씀, 그리고 내 길을 인도하는 등불과 같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덕민교회 성도님들이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