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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2)
우리도 갈렙처럼
본문 : 삿1:8-10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
하나님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1)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먼저 앞장서서
올라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냥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든든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2)고
‘현재 완료형’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싸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반드시 이기게 하시겠다는
보증을 서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누가 뒤를 봐주고,
보증을 서 주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증을 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든든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유다 지파는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
어제 새벽에 살펴본바와 같이
완전한 순종을 하지 못했습니다.
절반의 순종만을 했습니다.
유다 지파는
혼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다른 힘,
곧 시므온 지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순종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다 지파를 외면하거나
그들과의 약속을 철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유다지파가 올라갈 때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에
큰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4-5절).
<헤브론 정복>
드디어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8-10절>
8절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절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절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유다 자손은
훗날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는
예루살렘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어제 새벽에
우리는 유다 자손이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서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을 잘라
예루살렘에 끌고 갔다(삿1:7)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유다 자손이 베섹 왕 ‘아도니 베섹’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여
굳이 예루살렘으로 끌고 갔던 것은,
아마도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그것은
가나안의 잔인한 관습을 모방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남방으로 내려가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급기야 헤브론(10절)까지 정복하였습니다.
특히 헤브론 정복 이야기 속에
특이한 이름을 가진 세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입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민13: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과거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
각 지파별로 지휘관이 될 만한 사람
12명을 뽑아 40일 동안 정탐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파견된 이스라엘의 열 두 정탐꾼이
헤브론에 도착해서 압도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낙 자손을 본 것입니다.
그들은 40일 동안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2 대 10으로 갈립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땅을 둘러보았습니다.
그가 정탐한 지역을 둘러보고는
경탄을 했습니다.
“와우, 여기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이구나,
대단하구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땅들을 보니,
이건 은혜 충만,
감사 충만입니다.
이런 곳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구나,
그리고는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너희들은 내 밥이야” 그랬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자신의 믿음대로.....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은
인간적인 관점으로
그 땅을 보았습니다.
특히 아낙 자손을 보고는
기가 질려 이렇게 보고합니다.
<민13:31-33>
31절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절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절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10명의 보고에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마음이 통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관점 보다는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들은 믿음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정탐한 40일,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그 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10절에 나오는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아낙자손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20절에는 그들이 아낙의 세 아들임을 밝힘).
(아낙 자손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골리앗).
그런데 감사하게도
신세대는 구세대와 달리
믿음으로 전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그들을 죽이고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유다자손의 손에
붙여 주심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분명히 기록해 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면
지금 이길 수 있었으면
그 때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무기도 좋아진 것이 없고
군사력도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세대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들의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손에 붙여 주심으로
이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인데
믿음이 없어 40년이나 돌고 돌아 이긴 것입니다.
그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처럼 행하였다면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 – 갈렙>
10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10절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10절에서는 단순히
유다가 헤브론을 점령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20절에 나옵니다.
20절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보다 정확한 기록이
수15:13-1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15:13-14>
13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14절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바로 갈렙입니다.
헤브론 점령에 선봉에 선 사람은
갈렙이었습니다.
성도님들 !
갈렙이 누구입니까?
그는 순수 유대인이 아닙니다.
출애굽 당시 유대인만 나온 것이 아닙니다.
타민족 중에서도 할례를 받고
유대인과 함께 나왔습니다(출 12:48-51).
이것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한 민족(히브리)만을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계명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출애굽에
동참시킨 것입니다(모든 열방의 하나님).
혈통적 구원이 아닙니다.
믿음을 따른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 여인
– 다말, 라합, 룻). 아브라함도 혈통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믿는 모든 사람의
영적 조상입니다.
신약 시대의 예수님의 복음 역시 똑같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을 따를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갈렙은 에서의 자손 중
‘그니스’라는 사람의 자손입니다(창36장, 수14:6-12).
그의 가문은 귀화할 때 유다지파에 속했습니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이민족,
다문화가정의 사람입니다.
유다지파에 살면서 엄청난
차별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과 환경에 대하여...
원망하면서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있는 곳에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낼 때 ...
유다 지파의 대표로 선발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인정받는
인물이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는지는 수14:6-12 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14:6-14>
6절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절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절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절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절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절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절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그가 40년 전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
아낙 자손이 거주하는 산지를
자신의 분깃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좋은 땅을
달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공로를 내세워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아
재산을 늘리고 치부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점령하기 어려운 땅을
달라는 것입니다.
12절에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제게 달라고
청원한 것은 그의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거점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요지를
확보하여야겠다는 신앙적 자세입니다.
그렇습니다.
헤브론을 점령한다는 것은
가나안의 타 지역을 점령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
가장 큰 심리적인 장애를
제거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앞장 선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식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핼하지 않으시랴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비록 45년이나 지난 시점이고
이제 85세가 되었지만
그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갈렙은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았습니다.
갈렙의 영은 옛날 40세 때나
지금 85세 때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노인이 되는 것과 노쇠하는 것은 다릅니다.
노인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육체는 당연히 늙고 약해집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믿음과 생각은 항상 젊게 유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고후4:16)고 고백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의 믿음이
갈렙과 같기를 소망합니다.
나이 먹어도 자꾸 ‘왕년에’를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백발의 청년’ 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그 뜻을 이루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이렇게 앞장 선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본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85세면 뒤로 물러나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유일한 1세대로써
그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자신의 건강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11절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는 건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85세의 가장 연로한
노인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토록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 유다지파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85세 먹은 노인이 앞장서는데
뒤로 물러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도 유다 지파의 모든 사람들이
갈렙의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갈렙’은 좋은 지도자의 표상입니다.
지도자를 잘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스스로 본을 보이고 앞장서는
지도자가 필요할 때입니다.
갈렙의 결단과 순종은 유다지파를 움직여
그 결과 헤브론을 점령하고 ...
아낙의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피차 간에 본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직분자들은 더욱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믿음의 본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위선을 떨라는 말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본이 되고자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권면을 했습니다.
벧전5:3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맺는 말씀 – 우리도 갈렙처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시대는 변해도 하나님께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바로 갈렙과 같은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갈렙이 그 험난한 세월을 보내고
마침내 그에게 약속된 헤브론에 이르렀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쉬지 않으셔서.....
최후 승리의 영광을 다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