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게 뚝뚝…거래절벽 속 급매가격, 진짜 내집 가격일까© 경향신문
이달 첫째 주 전국 아파트 가격 0.59% 하락해 역대 최고 낙폭 올해 거래량, 예년의 10분의 1 그나마도 ‘직거래’가 대부분“금리 인상 멈춰야 분석 가능”
서울 송파구 잠실에 사는 주부 A씨(43)는 최근 떨어진 집값만 생각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2년 전 자신이 아파트를 구입했을 때보다 집값이 3억~4억원 가까이 빠졌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어차피 언젠가는 다시 오를 건데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위로하지만 A씨는 자신의 아파트와 관련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A씨는 “내가 너무 비쌀 때 덜컥 집을 사버렸구나 싶어 그 후회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B씨는 집값 하락 뉴스를 볼 때마다 동네 공인중개사무소를 기웃거린다. 그는 3년 전 아파트(84㎡)를 8억원 후반대에 분양받아 샀다. 한때 20억원까지 올랐다가 최근에는 호가마저 11억원으로 떨어졌다. 최고가 기준 9억원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 B씨는 “평생 거주할 목적으로 산 집이라 일희일비하지 말자 싶다가도 집값이 더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한국부동산원의 12월 1주(5일 기준) 전국 아파트 가격은 지난주보다 0.59% 하락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서울의 아파트값도 지난 5월 말 이후 28주째 하락하고 있다. 하락폭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전주 -0.56%에 이어 이번주 0.59% 하락하면서 역대 최대 하락폭을 매주 갱신하고 있다. 수치만으로 보자면 ‘자고 나면 집값이 억 단위로 떨어져 있는’ 상황인 셈이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C씨는 그러나 “집값이 떨어졌다는 게 체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품을 팔며 돌아다녀봐도 전세는 널렸는데 매매는 매물 자체가 없어요. 그나마 있던 것도 집주인들이 싹 다 거둬갔대요. 부동산에 나와 있는 매물들도 죄다 지금 시세보다 낮은 게 없어요.” 한국부동산원의 매매가격지수는 해당 월의 조사대상(표본)의 실거래 사례 및 가격형성 요인이 유사한 인근 지역 실거래 사례를 기반으로 매물정보, 시세정보, 부동산중개업소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산출된다. 표본 규모는 월간 4만6170가구·주간 3만2000가구(아파트·연립·단독)다. 문제는 시세를 반영해야 할 현재의 부동산 시장 거래량이 연평균 거래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종 부동산 규제로 거래가 줄었다고 평가받았던 문재인 정부조차 2017년 월평균 아파트 거래량은 9000건 안팎을 기록했었다. 반면 올해는 1~11월 평균 991건 거래되는 데 그쳤다. 지표 산출의 근거 중 하나인 ‘실거래 표본’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즉 100건이 거래되던 시장에서 산출하던 지수를 현재는 10건을 놓고 산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억원씩 하락 거래된 가격을 해당 단지 전체의 시세로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리 인상 기조가 어느 정도 멈춰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중개업자들은 “급매물 시세도 시세”라면서도 “급매물이 매번 나오지도 않고 그나마도 직거래가 많다. 여전히 집주인들이 내놓는 가격은 이전 최고가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강남 집값이 크게 떨어졌다는데 우리들이 체감하는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다. 전세는 25억원 집 기준으로 3억~4억원 정도 하락하긴 했지만 매매가는 전혀 떨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매수 문의는 가끔 있었는데 기대가격에 나온 매물이 없으니 이제는 전화도 끊긴 상태”라고 덧붙였다. 서울 광진구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내놓는 사람은 최고가격일 때를 생각하고, 사려는 사람은 최저가격일 때를 생각하니 거래가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심형석 미국 IAU 부동산학과 교수(우대빵부동산연구소 소장)는 “하락장이라기보다는 조정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심 교수는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판단하려면 하락 거래가 진행되는 와중에 하락된 가격의 매물을 매수자가 받아주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돌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급매물 한두 건 정도의 거래가 이뤄지는 수준이라 실제 하락장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면 땅값과 건축비도 같이 떨어져야 하는데 땅값은 계속 상승 중이고, 건축비도 내년에 더 오르면 집을 싸게 지을 수가 없다”면서 “현재는 하락기라기보다는 조정기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