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2장1절-17절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은 하늘도, 계절도, 아름다운 꽃도 아닙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던 피조물은 다름 아니라 사람, 즉 남자와 여자였습니다. 하나님 눈에 아름다웠던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창세기 2장 24-2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4-25)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관계, 육신을 가릴 옷이 필요 없고, 마음을 가릴 내면의 위장술이 필요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해 벌거벗음은 부끄러움이 되었고,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 지배하려는 성향을 가진 불행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가서는 죄로 인해 몸과 마음을 가리고 위장해야만 했던 남자와 여자가, 다시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부부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시어로 재현해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오묘하던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언어들은 고스란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 번안해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어 보입니다.
죄의 장벽을 허물고 부끄러움 없이 서로 마주설 수 있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회복된 사랑은 상대방을 특별하고 존귀한 자로 여겨줍니다.
1-2절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여인은 자기 자신을 평범하고 초라한 수선화요 백합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지천에 널려 있는 흔하디흔한 꽃들에 자신을 비교하는 여인에게 ‘아니오, 당신은 평범한 꽃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 있는 백합화, 내겐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향기롭고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답고 가장 특별한 존재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며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배우자일수록 더욱 ‘당신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내 사랑이요,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배우자의 고백은 상처 난 자아에 더없이 좋은 치료제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고백을 듣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배우자에게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불러보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둘째, 회복된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한 헌신과 정절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16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16절은 아가서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남자와 여자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한 몸입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깊이 헌신합니다. 서로에게만 허락된 깊은 헌신은 그 누구에게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사랑에 대한 갈망은 더 깊어지는 반면, 온전한 사랑에 이르는 길은 더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서로에게만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감정이 변했다고 쉽게 폐기처분해버립니다. 어떤 이들은 상대를 소유하고 조종하는 일에는 능하면서, 상호 공유하고, 상호 향유하며, 서로서로 자발적으로 섬겨주는 일에는 매번 실패합니다. 결혼식 때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서약은 무엇입니까?
나는 당신을 나의 아내(남편)로 맞아
진실함과 오래참음과 친절함과 헌신으로,
밝은 날에도 궂은 날에도, 부할 때에도 가난할 때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일평생 남편(아내)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합니다.
이 서약서가 말해주고 있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속했다는 것은 헌신에는 조건이 없다는 뜻입니다. 정절을 깨뜨릴 그 어떤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회복된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속했음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진실과 오래참음과 친절과 헌신으로 지켜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지켜나가는 데에는 분명 방해물과 훼방꾼이 존재합니다.
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남편(남자)과 아내(여자)의 사랑의 공간 안에는 사랑의 꽃을 훼방하는 작은 여우들이 종종 출현합니다. 여우의 목적은 포도원을 허는 일입니다. 사랑의 언약을 우습게 여기거나, 잊게 만들거나, 아무 영향력이 없는 종잇조각으로 만들려는 사랑의 훼방꾼은 항상 우리의 주변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우는 ‘작은 여우’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했음을 확인하며, 서로에게 여전히 특별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불러주며, 정신을 차리고 대처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작은 여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우리 눈에 제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여우’에 불과함을 잊지 마십시다.
오늘 묵상한 아가서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어떠해야 함을 조명해 줍니다. 그러나 그 사랑 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상징화 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한 점 먼지와 같은 죄인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불러주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옛사람의 습관을 못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려고 하나,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고 말씀해주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가정이 또하나의 ‘아가서’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인생이 아가서의 후속편이 될 수 있도록, 사랑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 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게 해주시옵소서. 짝지어주신 배우자에게 헌신하되 끝까지 헌신하게 해주시고, 나의 사랑 어여쁜 이를 배반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데에 힘이 고갈되지 않도록, 사랑의 샘이 우리 심령 속에서 터져나오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