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오늘 장사 끝나고 이제 들어왔습니다 (AM 02:00)
다시 제 글을 읽어 보니 잘못된 점이 있어 매출부분 수정했습니다.
그날그날 번돈을 입금하지 않고 종업원들 월급, 부식비등을 현금으로 주고 남은 돈을 입금한 금액이기에
매출이 아니라 순이익 입니다. 장사한다는 놈이 개념없어 죄송합니다.
참고로 오늘 매출은 112만원 입니다 ^^
*** 2004년 5월24일날 세이노 카페에 가입했네요. 그동안 좋은 글들만 읽고 도움만 받다가 2010년 해가 저물즘에야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올해 3월까지 고등학교 영어선생을 했습니다.
첫해에는 학생부에 들어가 아침7시에 출근, 교문지도로 시작하여 밤10시 야자감독하고 1학년 담임하는 반
종례까지 하고 집에가곤 했습니다. 조금 피곤했지만 캐나다에서 제가 TESOL 수업에서 배운 단 하나의 진리
'Teachers gotta be professional'
을 실천하기 위해 학교선생이지만 학원선생처럼 강의를 했습니다.
80개의 눈이 저에게만 몰입하여 제가 하는말 하나하나에 귀기울이는 수업을 하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쉬는시간 종이 울리면 정말 보람있죠. 항상 그런수업을 하진 못했지만 그런 수업을 할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퇴근후에 헬스1시간반정도 하고 교재연구 하고 새벽1시~2시사이에 잠들었습니다. 그리곤 다음날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죠.
이렇게 생활하면서 학교급식으로만 밥을 먹으니 몸이 작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윗선에 어필하여 2년차때는 2학년 수업만 들어가고
담임을 하지 않고 영어심화반(학년별 전교10등까지 30명)을 만들었습니다. 1주일에 3회 강의가 있었고
100% 무급으로 일했습니다. 놀토라고 불리우는 2,4주 토요일... 다른 교사들은 출근을 안하고 쉬었지만
저는 심화반 학생들을 이끌고 세미나에 갔습니다. 거기서 S,K,Y 카이스트등의 많은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고
그중에는 오지를 포함한 세계 80여개국을 여행하고 KBS 세계탐험?에도 출연하신 사라토가 도용복 회장님도 계셨습니다.
각설하고 아무튼
1년간 열심히 강의하여 영어심화반에서 만든 책을 묶어 교내 영자신문을 만들었고 결국 교육감 상을 받았습니다.
또 성적이 좋지 않아 영어심화반에는 들지 않았지만 캐나다에서 3년간 살다온 학생 1명을 영어특기자로 대학을 보내기
위해 제가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것 보다 더 공부를 했습니다.
왜냐면 그 친구는 토익점수가 높지 않아 회화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에서는 여러모로 불리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를 데리고 전국의 많은 영어경시대회, 말하기 대회, 토론대회를 나가도 상하나 못받았습니다.
너무 좌절하고 있던차에...우연히 교육부와 외교부 주관으로 미국 대사관 학생 명예대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영어권에서 거주한 외고,국제고,자사고를 비롯한 특목고 학생들의 경연장이 될것 같았고 제가 속한 인문계고에서는
합격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냥 도전했습니다
그 친구 서류에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2주일이 걸렸습니다. 서류 합격하였고 앞으로 1,2,3차 면접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영어심화반 학생들 30명에게 면접에 나올것 같은 문제 3문제씩 만들어서
영어로 질의응답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북핵 관련된 문제나, 한미간의 안보문제, 세계평화, 등등은 예상했던 질문이였지만
1학년 학생이 우연히 질문했던
'고려시대 서희의 외교담판'이 실제 문제로 출제되어 결국 최종 합격하여 서울 미대사관에서
마크 토콜라 주한 미부대사에게 학생명예외교관 임명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학생부 성적도 형편없고, 영어 점수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친구는 이 상장 하나로 건국대에 합격했습니다.
2년 넘은 교사생활 동안 교사가 할수 있는 모든걸 경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2년간 최선을 다했지만...뭔가가 부족했습니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교직이 천직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앞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거짓말을 하는 순간이 늘어났고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많은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당시 전남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다녔던 지인을 만났고
나도 한번 의사나 해볼까? 이런 생각으로 MEET 시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교수업이 끝난 방과후에 의사가 되기 위해 독서실 가는 영어선생이 된것입니다.
각설하고
결과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시험쳤던 때는 영어성적이 엄청 중요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중요할 것입니다.
다른 수험생들보다 공부량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모집으로
충남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습니다. 정시였다면 100% 불합격 했을겁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개인적 사정과 집안 사정으로 끝내 등록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계속 교사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뜻이 다른곳에 있으니 교직생활이 재미가 있을까요?
의전원도 합격하고 가지도 못했습니다.
도저히 학교에 남아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1학년 담임 시절, 우리반 급훈이 생각났습니다.
1톤의 생각보다 1그램의 실천을!
그래 한번 해보자.
난 체질적으로 남 밑에 있는건 싫은 인간이니까
내 장사를 해보자. 그래 밑바닥 부터 해보자.
그렇게 사직서를 내고 올해 3월부터 5월중순까지 준비를 해서
어머니랑 식당을 차렸습니다.
크지 않은 식당이지만 잡일이 많아서
종업원 2명을 고용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핵심만 말씀드리면
메뉴개선, 객단가 극대화, 공짜 서비스, 무료안내 서비스, 등등
을 통하여 올해 5월 중순부터 10월 8일까지 *순이익 7191만원 찍었습니다.
*종업원들 월급과 부식비까지 현금으로 주고 남은 금액을 입금했으니 매출로 치면 5개월간 1억 2천 쯤 되는것 같습니다.*
이 불경기에 처음 시작한것 치고는 나름 선방 했다고 생각합니다.
장사라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으며
교사 시절.....월급쟁이 시절이 정말 꿈만 같습니다
말도 못할 정도로 황당한 손님들(?)이 존재한다는것에도 놀랐습니다.
솔직히 저 돈 좋아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새벽에 장사 끝나고 정산할때... 돈냄새 맡을때가 젤 좋습니다.
대목일때는 하루에 net으로 교사월급을 법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투정부릴 시간에 더 열심히 해야죠! 자영업자 투정한다고 받아주는 사람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내년에는 어머니 혼자 종업원 들과 식당 운영 하시고
저는 내년에 운이 좋은 기회가 있어 어머니 식당 근처에서 모텔+식당을 같이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제 식당과 모텔을 알리기 위해 아이폰 앱 등록도 준비중입니다.
이번 3기 모임 이상건 이사님의 말씀을 듣고 내년도 제 모텔운영 계획을 완전 수정 하였습니다.
정말 보람있는 모임 이었습니다.
인생은 매 순간순간 선택의 연속입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민하고 결정된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로 밀어 붙여야 합니다.
지금 교직을 그만두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꿈과 비젼이 있습니다. 1년후, 3년후, 5년후 앞으로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생소한 종목이라도 겁내지 마세요. 저도 첨에 너무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준비를 철저히 하고 보니...누군가의 말처럼 제 경쟁자들이
아이비리그 출신도 아니고 MBA출신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동네 아저씨 아줌마일 뿐입니다. 뭐가 겁이 납니까!
자기에게 맞지 않은 일로 후회하는 시간으로 인생을 낭비 하지 마십시오
지독한 고민끝에 시그널을 올리고 차선을 바꾸십시오.
아우토반이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
앞으로 진척사항들 꾸준히 글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