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서사시 소감문
손수연
영구 불변하는 것은 없다. 영원히 남아 있을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약속을 언제까지고 영원히 지킬 수 있을까? 형제들이 유산을 나누어 가진 후 영원히 자기 것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강이 홍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 껍질을 벗고 눈부신 태양을 볼 수 있는 것은 잠자리에 요정뿐이다. 먼 옛날부터 영구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위 구절은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영생을 사는 우투나파시팀이 영생을 얻고 싶어하는 길가메시에게 영원한 것은 없다며 말해주는 구절이다. 이번 글은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고 쓰는 소감문이다. 내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고 느낀 점과 내가 생각하는 영생, 죽음에 관해 써 보려고 한다. 먼저 길가메시 서사시를 안 읽어 보셨을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써 보려고 한다.
줄거리
길가메시는 반인 반신인 우룩에 왕이었다. 길가메시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막무가내로 굴었다. 하지만 우룩에는 길가메시보다 강한 사람이 없었기에 길가메시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자 우룩 사람들은 점점 불만이 쌓여 갔고, 신들도 그들의 호소를 듣게 된다. 그래서 창조의 여신 아루루가 길가메시에게 대적할 수 있는 사람 엔키두를 만들었고 그렇게 엔키두가 태어났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처음엔 서로를 죽이려 하지만 싸움 끝에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고 엔키두와 함께 괴물 훔바바를 죽인다. 둘은 영웅이 되었지만, 하늘의 황소까지 죽여버리고 이에 분노한 신들은 엔키두에게 벌을 내리고 엔키두는 죽는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헤매게 된다. 오랜 방황을 끝에 드디어 영생을 사는 우트나피시팀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우트나피시팀은 자신이 영생을 얻게 된 대홍수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길가메시에게 여섯 낮과 일곱 밤을 자지 않고 버틴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지만, 그는 바로 실패하게 된다. 길가메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가려는 길가메시에게 우트나피시팀은 젊음을 얻을 수 있는 풀을 바다에서 캐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길가메시가 이 풀을 캐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잠시 쉬고 있는 사이 뱀이 이 풀을 먹어 버린다. 길가메시는 좌절했지만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우루크 성으로 돌아오게 되고 결국 위대한 영웅이고 반인 반신이던 그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길가메시는 죽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았다.
엔키두
엔키두는 꿈에서 신들의 회의를 보고 자신이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죽는다. 나는 그 죽음이 조금 허무해 보였다. 엔키두는 신들이 직접 죽인 것이 아니었고 꿈을 통해 죽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엔키두는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알차게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고 자신을 숲에서 나오게 했던 사람들을 저주하며 절망하였다. 엔키두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절망과 슬픔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은 것이었다.
길가메시
길가메시는 친구인 엔키두가 죽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영생을 얻고 싶어한다. 그렇게 길가메시는 죽음을 극복하려 하지만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었다. 그렇게 길가메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지만 결국 죽음 또한 인간의 운명이란 것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남은 생을 우룩을 평화롭게 다스리며 마무리한다. 길가메시는 한때 죽음 앞에 고통받고 절망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깨닫고 지혜를 얻는다. 그렇게 결국 길가메시도 죽음을 피해 가진 못하였으나 길가메시의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엔키두와 길가메시의 죽음 비교
이 둘은 결국 다 죽게 되지만 이들의 죽음이 똑같지는 않다. 엔키두는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어 죽는다. 반면 길가메시는 한때 죽음앞에 고통받고 절망했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깨닫고 생을 잘 마무리 하며 이름을 남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겠지만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삶이 바뀌고 나의 죽음이 바뀐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 말고 현재를, 지금 이 순간을, 이 시간을 행복하게,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
영생
불로초에 집착하던 진시황도 죽었고, 평소 진귀한 음식만 먹는 사람도 10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 어떤 위대한 왕도 인간이기에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에만 빠져 산다면 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삶이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도, 지나버린 과거에 대한 집착도 아닌 바로 현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다가 죽는 것이다.
영생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생을 살게 된다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다 떠나가 버린 세상에서 홀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 또 모두가 영생을 산다면 사람들에게는 삶의 목표라는 것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영생을 산다면 시간은 영원하기에 굳이 목표를 세워 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삶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도 있기 때문이다.
또 영생을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물론 나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죽음이 두렵다. 하지만 죽음 때문에 지금의 나의 삶을 망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갈 것이다. 비록 길가메시처럼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해로운 존재로 기억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마무리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엔키두처럼 죽음의 공포에 잡아먹혀 산다면 스스로를 자신을 죽이는 꼴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두려워 하며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거나 행복하게 온전하게 산다 해도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번 사는 삶을 늘 두려워하다 죽는 것보다 행복하게 알차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시간을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죽음에 잡아먹혀 산다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
소감
이 글을 써야 한다고 숙제를 받았을 때는 솔직히 힘들 것 같고 하기 싫은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고 이렇게 글을 써보니 영생, 죽음이라는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 하지만 살면서 반드시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할 ‘죽음’에 대하여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첫댓글 잘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