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리 뿐자의 삶
슈리 H.W.L. 뿐자는 1910년 10월 13일, 지금은 파키스탄 지역인 뻔잡 서부 지방의 빠이살라바드에서 브람만 계급인 아버지 빠르마 난다와 어머니 야무나 데비의 9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계는 전통적으로 빤디뜨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시골 역장의 길을 택했다. 그 당시의 전통에 따라 그의 어머니는 리얄뿌르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그녀의 고향인 작은 마을 무랄리왈리로 가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외삼촌인 라마 띠르따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아버 지가 시골 역장이었던 연고로 이동이 잦았기에 그의 첫 6년은 어머니의 고향에서 주로 살았다. 나중에 아버지는 리얄뿌르에 집을 장만하였다. 그곳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된 1947년까지 보냈다. 슈리 뿐자의 부모님은 독실한 힌두교인이었다. 열렬한 크리슈나 헌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인도의 성자 중 한 사람인 스와미 라마 띠르따의 누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동네 부인들을 오게 하고는 바잔 을 열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헌가를 듣기 위해 집에 모 이곤 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제이 시따람’이라는 자빠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슈리 뿐자는 자연적으로 영적 생활에 젖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3~4세 때까지는 외적 모습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릴 때 슈리 뿐자는 수행자들의 내면적 삶에 대해선 전혀 몰랐 다. 그러나 곧잘 그들을 흉내 내려 했다. 그의 마을 변두리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회교도의 무리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녁 10시에서 아침 6시까지 의식을 행했다. 음식도 주었다. 밤에는 자주 그들이 있는 곳에서 보내고 낮에는 집에서 명상적인 상태에 몰입하였다. 학교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집에 오지 않는 경우에는 아버지가 읍 변두리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그를 찾아내곤 했다. 그때면 그는 아버지에게 “왜 나를 신과 함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곤 하였다.
슈리 뿐자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되는, 최초의 놀라운 사마디의 경험은 여덟 살 때 일어났다. 1919년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서 승리하게 되자, 학생들에게 한 달간의 방학을 주었다. 승전 축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 예정에 없는 방학을 라호르에 있는 친지를 방문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때는 여름이었고 망고가 제철을 만나 풍성하였다.
어느 날 저녁, 모두 라호르의 친척집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가 망고와 우유 및 아몬드가 든 음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군침이 도는 음료였다. 그 음료가 컵 가득한 상태로 그에게 건네졌을 때, 그는 손을 내밀어 받을 수 없었다. 그것을 원치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때 그는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든 그 경험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크게 놀라고 당황하였다. 그래서 그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려고 했다. 그는 눈을 감은 상태로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말들을 들을 수 있었고 또 모든 일들을 선명히 자각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어떤 신체적 반응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체험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 어떤 외부 자극에 반응할 능력이 마비된 것이었다. 이틀 동안 그는 그 평화롭고 희열과 행복이 넘치는 상태에 머물렀다.
그가 깨어나자, 열렬한 크리슈나 헌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그것이 마비가 아니라 신비적 경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크리슈나를 보았니?”라고 물었다. “아뇨,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행복 했다는 것뿐이에요.”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는 그가 무슨 체험을 했는지, 무엇이 그런 강렬하면서도 몸을 마비시키는 행복 속으로 갑자기 끌고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자꾸 묻자 그는 “엄청난 행복, 엄청난 평화, 엄청난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그는 그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경험이 아니었다. 경험이 일어나려면 경험하는 자와 경험의 대상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인가가 그를 안으로 당겨 버렸다. 여하튼 그 결과는 그 당시에 그가 행복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친척집에서 리얄뿌르로 돌아와 다시 학교에 나갔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는 “나에게 행복을 준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늘 일어났다. 이 행복은 그를 그것 자체에게로 끌어당겼다. 그의집 에는 큰 정원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렌지나무 숲도 있었다. 그는 자주 그 숲 뒤에 앉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궁금하였다. 종이 위에 아기 모습의 크리슈나를 그리고는 그것을 그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행복이 크리슈나와의 접촉에서 왔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크리슈나의 헌신자가 되길 바랐다. 크리슈나를 명상하고 크리슈나의 이름을 부르길 바랐다. 어머니는 그에게 크리슈나 숭배와 관련이 있는 여러 의식과 수행법들을 가르쳤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서 그에게 크리슈나의 형상에 대한 강렬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강렬한 박띠의 결과로 그림에서 본 모습의 크리슈나가 그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시점에 그는 크리슈나를 신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친구로서 사랑하였다. 그러자 크리슈나가 친구의 모습으로 와서 그와 더불어 놀았다. 크리슈나가 올 때면 그의 방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기도 하였다. 크리슈나는 밤에 정기적으로 나타났다. 그와 놀다가 침대에서 자려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에는 이분이 힌두교의 위대한 신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 신 의 희미한 모습이라고 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 생애를 보내고 있는가…….
크리슈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기도 하였고, 미묘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였다. 그는 그를 보지 않으려고 담요를 뒤집어쓰고도 그를 볼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보였다. 잠자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다소 귀찮기도 하여 어머니에게 가 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어머니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하였다. 그는 그것을 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크리슈나에게 사랑한다고 엽서를 보내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 배달부를 통해 그에게 오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크리슈나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로 그는 학교 공부에 더욱 관심이 없어졌다. 그가 교실에 앉아 있어도 그의 마음과 가슴은 크리슈나의 모습에 젖어 들었다. 희열의 물결이 내면에서 물결칠 때면, 그는 자신을 그 경험에 맡겨 외부 세상과의 접촉을 잃곤 하였다. 그는 온 밤을 명상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빛의 홍수를 보기도 하였다. 깊은 명상에 들어갈 때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도 불가능 하였다.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그는 내적 평화를 즐기며 앉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크리슈나에 대한 박띠의 길 이외에도 베단따를 배우고 있었다. 그녀는 유명한 베단따 스승을 여럿 두어 그는 어머니와 함께 베단따를 배우는 곳에 참석하곤 하였다. 그때는 아마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그 경전들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지만, 그는 열심히 배웠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베단따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집에서 그에게 베단따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녀는 베단따의 유명한 많은 시행들을 암송할 수도 있었다.
“나는 브람만이다. 온 우주에 브람만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것이다.”라고 읊기도 하였다. 그가 여덟 살 때 체험한, 매혹적인 망고 음료수를 앞에 두고 일어났던 신비스러운 경험은 그를 붓다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열세 살 때쯤에 그는 학교의 역사책에 나오는 붓다를 보았다.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섰던 붓다에게 이끌렸다. 처음에 슈리 분자는 붓다의 신체적 형상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붓다를 흉내 내 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명상을 어떻게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림에서 본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장미넝쿨 아래 앉았다. “나도 저 분처럼 될 수 있어.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저 분처럼 살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하고 만족해했다. 그는 붓다와 더욱 비슷해지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해골처럼 만들기도 하였다. 또 책에는 붓다가 주황색 옷을 입고 발우를 든 채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탁발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의 나이 열다섯, 매년 열리는 홀리 축제 기간이었다. 한 친구의 어머니가 그에게 빠꼬라를 두 개 주었다. 그것은 아주 맛이 있었다. 그가 몇 개 더 달라고 하자 친구의 어머니는 거절했다. 그 속에는 방이 들어 있었다. 방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식욕을 증진 시키는 효과가 있는 잎이었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축제 기간에 음식에 사용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었는데 자꾸 식욕이 당겼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그가 빠꼬라를 먹었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웃었다. 그는 그날 밤 식구들과 한 방에서 잤다. 한밤중에 그가 일어나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당신은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곧 깊은 명상에 들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그날 먹은 방의 효과가 다 가시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새벽 3시에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깨우려 했다. 그러나 그는 깊은 명상 속에 잠겨 있었다. 의사를 불러 진단해 보니, 그 의사는 신체적인 이상은 없고 그가 깊은 명상 중에 있다며 축하의 말을 건네고 갔다. 그날 밤 내내 그리고 다음 날까지 그는 사마디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종일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 을 계속했다. 동네의 한 빤디뜨가 그의 집 앞을 지나가다가, “저 소년은 야주르베다의 한 부분을 산스끄리뜨로 암송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산스끄리뜨를 알지 못했고 야주르베다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방은 틀림없이 그의 전생에 남아 있던 기억들과 지식들을 그에게 유발시켰음에 틀림없다. 그 이후, 그는 여전히 산스끄리뜨나 야주르베다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채 일상생활로 돌아 왔다.
어머니의 스승들 중 한 분은 슈리 뿐자를 소중하게 여겨, 그에게 영적 장서가 풍부한 지방 대여도서관에서 영적 책들을 구해 읽도록 조언했다. 그는 그 자신에게 일어난 것에 대하여 더 나은 이해를 얻고 싶어 하였다. 그는 베단따와 힌두 성자들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 하였다. 그는 여기서 《요가 바시슈따》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책을 사랑하였다. 도서관 직원은 뿐자가 보통 수준 이상의 영적 책들을 읽는 것을 걱정하였다. 그가 외삼촌이면서 성자인 스와미 라마 띠르따의 책을 읽을 때엔 그의 어머니와 심각하게 상의한 적도 있었다. 스와미 라마 띠르따는 말년을 히말라야에서 보냈으며 그곳에 서 짧은 일생을 마쳤다.
또 그는 비베까난다의 저서들도 접하게 되었다. 이 스승들은 베단따의 저서들과 그 가르침들을 서구에 전하는 데 모든 힘을 바친 사람들이다. 인도 안에서도 그들은 영적 성취에 있어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슈리 뿐자의 초기의 역할 모델이었다. 슈리 뿐자의 외가 가문에서 가장 유명하였던 분은 라마 띠르따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놓고 “자라서 누가 라마 띠르따와 같은 인물이 되고 싶은가?”라고 공개적으로 묻기도 하였 다. 그럴 때면 슈리 뿐자는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였다. 아들의 대답을 듣고서 그의 어머니는 흐뭇해하였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그녀는 크리슈나에게 라마 띠르따와 같은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자주 기도하였기 때문이다. 슈리 뿐자는 영적 삶에 열정적이며 그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들 을 이해할 수 있었던 부모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슈리 뿐자의 또 다른 특별한 영적 경험은 16세 때에 일어났다. 스와미 다야난다는 그들 자신의 문화와 역사에 학생들을 접하게 해야 하겠다는 운동으로 앵글로 베딕 기숙학교를 세웠다. 슈리 뿐자는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매일 아침 학생들은 운동장에 반원을 그리고 앉아 기도를 했다. 이 기도는 항상 ‘옴 샨띠 샨띠’라는 말로 끝났다. 기도가 끝나면 ‘옴’ 자가 인쇄된 깃발이 운동장에 있는 깃대에 올라갔다. 그때 학생들은 “다르마에 승리를! 조국 인도에 승리를! 스와미 다야난다에 승리를!” 하고 외치며 힘차게 뛰어올랐다.
어느 날 아침, 슈리 뿐자는 기도의 끝에 나오는 “옴 샨띠 샨띠”라는 말에 온몸이 마비되었다. 그것은 8살 때 건네주는 망고 음료를 받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감각의 마비 상태였다. 그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선명히 감지할 수 있었지만 신체적 반응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다만 내면의 큰 평화와 행복감만이 존재했다. 학생들은 그러한 상태에 들어간 그를 두고 장난으로 장례 행사를 치렀다. 그들은 그의 몸을 그들의 어깨 위에 올리고는 화장터로 가져갔다. 그러고 난 뒤 그의 집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 동안 에도 그는 불평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그는 내적인 평 화와 행복의 상태에 있었다.
학교 다닐 때 그에게는 깊은 신비적 경험인 크리슈나의 비전들과 과격한 독립 운동 및 스포츠 활동들에 대한 관심이 함께 존재했다. 그는 인도인의 평균 이상의 키와 발달한 근육을 갖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버팔로’조차도 들어 옮길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우르두어와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데 관심을 보였다. 시를 쓰는 데도 강한 흥 미를 보였다. 시를 써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 재능은 어머니의 가계로부터 왔을 것이다.
16세에 대학입학자격 시험에 합격하였지만, 아버지는 그의 동생들을 전부 공부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를 라호르에 있는 대학으로 보낼 여유가 없었다.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을 택해야 했다. 신문의 광고를 보고 교정용 기구와 스포츠용품을 파는 회사에 입사했다. 그 일자리는 온 인도를 다니는 세일즈맨 자리였다. 그는 또 봄베이에 적을 두고 있는 또 하나의 세일즈 자리를 얻었 다. 그곳은 대우가 좋았다. 그래서 가족을 봄베이로 오게 하였다. 가 족을 부양하고도 돈이 남아 리얄뿌르에 있는 부모님을 도왔다.
1930년, 뿐자가 20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큰 읍의 역무원이었던 비디야바띠라는 브람민 소녀를 찾아냈다.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는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가장이 되었고 나중엔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게 되었다. 그 이후 몇 년간은 그의 민족주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크리슈나에 대 한 관심이 서로 경쟁하는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은 인도 병사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슈리 뿐자는 1942년 4월, 영국이 세운 인도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군대에서 전술, 군사학 등을 배워 나중에 영국 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 영적 불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자 그는 소위로 임관되었다. 처음 그의 자리는 병참 장교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크리슈나에 대한 그의 집요함과 인간에 대한 강렬한 사랑은 이 군대 기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크리슈나를 생각할 때마다 희열의 물결이 그를 압도하곤 하여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한번은 길거리를 걸어갈 때 누가 크리슈나라는 이름을 말하자 그는 길 한가운데에서 황홀경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낮에는 장교로서 엄격하게 생활하고 밤에는 문을 잠그고 자신을 크리슈나 고삐로 변형시키곤 했다. 그는 어렸을 때만큼 크리슈나가 자주 나타나 주길 원하였다. 크리슈나에 대한 사랑이 더욱더 증가되어,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앞에 크리슈나가 나타났다. 그러면 그의 열정은 더욱 고조되어 이제 다른 것은 생각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또 그들의 혁명 계획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것 도 깨달았다. 군대는 크리슈나에 전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적당한 곳이 못 되었다. 전시에 그러기 어려웠지만 그는 사임을 허락받았다.
그는 리얄뿌르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격노에 부딪쳤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해야 할 그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전도유망 한 사관학교 장교직을 포기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군대에서 그는 좋은 직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사관학교 시절의 그의 모든 급우들은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군의 요직 대부분을 차지했다.
군대를 떠난 뒤 그는 달리 직업을 구할 마음이 없었다. 대신 크리슈나에 대한 그의 사랑이 완전하도록 도와 줄 영적 스승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이 기대하는 스승을 찾아다녔다. 단, 그 스승은 반드시 그 자신이 신을 본 사람이어서, 그에게 신을 보여 줄 수 있는 능 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했다. 그는 이 기준을 가지고 인도 전역을 다 녔다. 거의 모든 유명한 아쉬람이나 구루들을 찾아다녔다. 결국, 그 는 그에게 신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긴 여정은 끝을 맺었다.
리얄뿌르에 있는 가족들에게로 돌아온 뒤의 일이었다. 그의 삶을 변화시킬 한 사두가 그의 집 대문 앞에 나타나 음식을 청했다. 그는 안으로 사두를 들게 하여 약간의 음식을 제공하고 그의 마음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질문을 하였다. “당신은 저에게 신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만일 못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압니까?” 놀랍게도 사두는 그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예, 나는 당신 에게 신을 보여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의 소원은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의 이 름은 라마나 마하리쉬입니다.”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 에, 그는 마하리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물었다. “슈리 라마나스라 맘, 띠루반나말라이에 있습니다.”라고 사두는 말했다. 그는 그 장소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거기로 가는 방향을 물었다.
사두는 그가 찾아갈 수 있도록 자세하게 위치도 가르쳐 주었다. “마드라스로 가는 기차를 타세요. 마드라스에 도착하면 에그모어 역으로 가세요. 거기서 기차를 타고 빌루뿌람으로 가세요. 거기서 는 기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거기에서 띠루반나말라이로 가는 기차 를 타세요.”
그는 다소 복잡한 기분이 들었지만 인도에서 자신에게 신을 보여 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행복해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또 한 명의 스와미를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야 하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분노를 터뜨렸다. “아내와 자식들은 다 어떻게 하고…… 군대를 그만둔 것도 부족해서…… 영적인 모험에 미쳐 인도의 끝으 로 달려가야만 하는가……”
얼마 안 되어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마치 자신을 위해 있기라도 하듯 마드라스에서 전직 장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는 채용되었다. 마드라스로 가는 차비뿐만 아니라 한 달간의 시간 적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마하리쉬를 만나러 가기 위한 돈과 그의 곁에서 지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뿐자의 나이 31세, 1944년이었다. 그는 사두가 일러준 대로 기차를 타고 띠루반나말라이로 갔다. 거기서 약 3km 정도를 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아쉬람에 도착했다. 이 어 그는 그에게 신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그 남자를 찾았다. 그런데 건물의 창문을 통해서 보니 뻔잡의 집에 왔던 그 사두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혐오감이 치밀었다.
“이 남자는 사기꾼이다. 뻔잡의 우리 집에 나타나서 나에게 띠루 반나말라이에 가라고 말한 뒤, 기차를 타고 먼저 와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너무나 화가 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타고 왔던 소달구지를 타고 다시 떠나려 했다. 그때 아쉬람에 거주 하는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북쪽에서 오지 않았소? 당신은 북부 사람처럼 보입니다.”
“예, 그렇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뿐자가 지금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말했다.
“당신은 방금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한 이틀쯤 머물다 가시지요.” 그는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이 사람은 온 나라를 다니면서 자신을 선전했습니다. 나는 그를 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신을 보여 줄 수 있다면, 나를 만나러 왔던 뻔잡에서 왜 신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이런 사람을 보는 데 흥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잘못 아셨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48년 동안 이 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사람을 잘못 보았거나 아니면 라마나님이 자신의 힘을 통해 몸은 여전히 여기에 있으면서 뻔잡에 자신을 나타내셨을 겁니다. 미국에서 온 한 여인도 여기 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실수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뿐자는 미심쩍기도 하였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마하리쉬를 만나 뻔잡의 그의 집에서 생긴 일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쉬람에서 점심을 먹 은 후, 그는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그는 마하리쉬에게 물었다.
“당신은 뻔잡의 제 집에 저를 보러 온 분이 아닙니까?” 마하리쉬는 말없이 조용히 있었다.
“당신은 저희 집에 와서 제가 여기에 오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여기로 오게 한 사람이 맞습니까?”
마하리쉬는 그의 어떤 질문들에도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쉬람을 방문하게 된 주된 목적을 말했다. “당신은 신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신을 보았다면, 저에게 신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신다면 저의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아니오.” 마하리쉬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신을 보여 주거나 볼 수 있도록 해 줄 수 없습니다. 신은 보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은 주체요, ‘보는 자’입니다. 보일 수 있는 대상에 관심을 가지지 마십시오. ‘보는 자’가 누구인지 발견하십시오.” 마하리쉬는 덧붙였다. “당신이 바로 신입니다.” 마하리쉬의 말은 마치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별개의 신을 밖에서 찾고 있는 그 를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하리쉬의 말은 그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만일 마하리쉬가 그에게 “당신이 바로 당신이 보기를 원하는 신입니다.”라는 말을 한 직후에 일어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체험이 없었더라면 그는 마하리쉬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마하리쉬는 말이 끝나자 그를 바라보았다. 마하리쉬가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을 때, 그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떤 전율할 신경 에너지가 그의 몸을 통과했다. 신경의 끝이 춤을 추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리곤 내면에서 그의 영적 가슴을 지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육체적인 가슴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자 바탕이었다. 이 가슴속에서 그는 어떤 닫혀진 꽃봉오리를 보고, 느꼈다. 그것은 매우 빛나고 눈부셨다. 그를 바라보는 마하리쉬와 함께, 그리고 그 자신이 내적 침묵 상태에 있음으로써, 그는 이 꽃봉오리가 열리고 꽃 피어남을 느꼈다. 더 정확하게 이 체험을 표현할 순 없지만, 마하리쉬의 현존 아래에서, 그의 응시 아래에서, 그 자신의 가슴이 열리고 꽃이 피었다. 그는 전에는 이런 경험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하리쉬의 현존 아래 매우 강력한 경험을 하긴 하였지만, “그대가 바로 신입니다. 보는 자가 누구인지 발견하십시오.”라는 마하리쉬의 충고는 강하게 와 닿지 않았다. 바깥에 있는 신을 찾아내려는 그의 경향성은 마하리쉬의 말이나 그와 더불어 가졌던 이런 경험만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초콜릿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초콜릿을 맛보고 싶다.” 그는 신과 별개의 존재로 남아서 신과 결합하는 희열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날 오후, 아쉬람에 헌신자들이 왔을 때, 광적인 크리슈나 박따인 그의 눈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그냥 고요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신에 대한 말도 하지 않았으며 신의 이름을 암송하거나 신에게 주의를 고정시키지도 않았다. 마하리쉬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뿐자는 영적으로 게으른 이런 사람들과 함께 아쉬람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루나짤라의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숲 속에 아주 조용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는 거기에 앉아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크리슈나의 이름을 암송했다.
약 일주일을 거기에 머물면서 그는 헌신의 수행에 몰입했다. 크리슈나가 자주 그 앞에 나타났으며 그와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냈 다. 일주일이 다 되어 갈 때, 그는 새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마드라스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을 떠나면서 뿐자는 마하리쉬에게 작별 인사도 하고 또 자신의 노력으로 신을 매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신을 보기 위해선 이제 그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 기 위해 아쉬람에 들렀다.
그를 보자, 마하리쉬가 물었다. “어디에서 지냈습니까?”
“산 다른 쪽에 있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면 거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마하리쉬가 물었다. “저의 크리슈나와 놀고 있었습니다.” 그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마하리쉬를 능가한다고 느꼈다. 그가 크리슈나를 보는 동안에는 크리슈나가 마하리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 그래요?” 마하리쉬는 놀라고 흥미로워 하면서 말하였다. “아주 좋습니다. 정말 굉장합니다. 당신은 지금도 그를 봅니까?”
“아닙니다, 제가 비전을 가질 때만 크리슈나를 봅니다.” 그는 그 에게 있었던 이러한 비전들이 마하리쉬에겐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에 대해 대단히 흡족해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크리슈나가 와서 당신과 같이 놀고 그리곤 사라지는 군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신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그가 정말로 신이라면, 그는 당신과 늘 함께 해야만 합니다.” 그의 비 전 경험에 대해 마하리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는 다소 의기소침했다.
마하리쉬는 그에게 바깥에 있는 신을 찾지 말고, 신을 보고자 원했던 그 사람의 근원과 바탕을 찾으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받아들이기엔 아주 힘든 일이었다. 크리슈나에 대한 헌신으로 평생을 보낸 그에게 인격을 가진 신 대신에 다른 어떤 방식으로 영적 탐구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하리쉬의 충고는 그에겐 와 닿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를 고무하고 매료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떠나면서 그 자신의 영적 길의 추구에 대한 마하리쉬의 인가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만뜨라를 하나 달라고 했다. 그러나 마하리쉬는 거절했다. 마드라스에 돌아와 있던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그는 만뜨라를 받기는 하였다. 그는 마드라스의 새 직업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자신을 산야사로 입문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마하리쉬는 이도 거절했다. 결국 그는 새 일자리를 시작하기 위해 마드라스로 돌아와야만 했다.
마드라스로 돌아온 뿐자는 가족을 편히 있게 할 수 있는 큰 집을 구했고, 곧 일을 시작했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에 열심히 일을 하였다. 남은 시간엔 그의 에너지를 크리슈나와 함께 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집에 크리슈나에게 뿌자를 드리기 위한 방을 만든 후,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방해받지 않고 《우빠니샤드》와 《바가바드 기따》에 있는 크리슈나에 관한 글을 읽은 후, 대부분의 시간을 자빠로 보냈다. 그는 자빠를 매 호흡과 더불어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24,000번을 하였다. 그러나 자빠를 하지 않았던 과거를 기억해 내고는 하루에 50,000번으로 늘리기도 하였다. 그는 아침 9시 30분까지 크리슈나를 찬양하면서 뿌자를 드리는 방에 있었다. 그러고 나서 집을 떠났는데, 일이 10시에 시작되기 때 문이었다. 그는 뿌자를 드리는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크리슈나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는 크리슈나 박따들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냥 조용히 앉아 있는 성자들에 대하여는 결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하리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제대로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마하리쉬가 마드라스의 그 앞에 나타나 “크리슈나 박띠는 옳다. 크리슈나 박띠는 옳다.”라고 말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마하리쉬가 띠루반나말라이를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가 본 것이 비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하리쉬를 찾아가 그가 마드라스에서 와서 그런 말을 하였는지를 물었지만 마하리쉬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가 답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브린다반으로부터 한 무리의 헌신자들이 왔다. 그 그룹의 리더가 마하리쉬에게 라다를 위하여 피리를 불고 있는 크리슈나의 그림을 건네주었다. 그 그림을 보자 마하리쉬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마음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헌신을 보았다.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는 속으로 “이분은 자신의 헌신을 나에게 감추고 있었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 나 이제 나는 그의 비밀을 발견하였다.”라고 생각하며 기뻐하였다. 마하리쉬도 자신만큼이나 박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밤 2시경이었다. 그는 뿌자를 드리는 방의 문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놀랍게도 문밖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람, 시따, 락슈만, 그리고 하누 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크리슈나를 부르는 데 보냈으며 람에게는 매 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경을 보자, 엄 청난 경외감과 공경심으로 그들 앞에 엎드려 절했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 아름다운 신들이었다. “하누만이 마드라스의 여기에 위대한 크리슈나 박따가 있다기에 그를 방문하려 왔다.”고 하면서 시따가 오른손을 들어 그에게 축복을 주었다. 그 비전은 일곱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마드라스로 돌아와 크리슈나에 대한 찬가를 하려고 했을 때, 그 는 더 이상 크리슈나의 이름을 반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그의 마음은 협력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는 더 이상 영적 도서들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의 마음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며, 고요한 그의 마음은 그 어떤 영적 대상들에 대한 집중이 나 주의도 거부하였다. 약 25년 동안 신성한 이름이 노력을 하지 않 는데도 그의 마음을 통하여 흘러나왔었다. 이제 그는 그 이름을 단 한 번도 부를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이웃에 있는 라마크리슈나 교단 의 원장 까일라사난다를 찾아가 자신의 수행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 했다. 원장은 이러한 현상은 다만 수행 과정의 한 단계인 ‘영혼의 어 두운 밤’이라고 말하며 교단에서 열리는 정기적인 삿상에 참석해 보면 문제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교단의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띠루반나말라이에 있는 마하리쉬에게 생각이 갔다. “이 사람은 뻔잡의 나의 집에 나타나서 띠루반나말라이에 있는 그에게로 와서 만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와 함께 앉아 있을 때 좋은 경험을 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나에게 충고를 해 줄 수 있 을 것이다. 그는 마드라스에 있는 나에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렇 게 두 번이나 나에게 나타난 것은 강한 연결이 있음을 의미한다. 나 는 거기로 가서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겠다.”
그 다음 주 토요일, 그는 기차를 타고 마하리쉬가 있는 아쉬람으로 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점심 식사 후에 그는 마하리쉬를 만나러 들어갔다. 시중드는 사람이 마하리쉬가 쉴 시간이라며 나중에 오라고 하였지만, 이를 본 마하리쉬가 허락하였다. 그는 마하리쉬 앞에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다.
“25년 동안 저는 크리슈나의 이름을 되풀이해 부르며 보냈습니다. 더구나 최근엔 그의 이름을 하루에 50,000번이나 암송했습니다. 그때 라마, 시따, 락슈만 및 하누만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떠난 이후로, 저는 더 이상 제 수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크리슈나의 이름을 암송할 수 없을 뿐더러,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명상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적으로는 큰 고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저 자신이 더 이상 신에 집중하고픈 욕 구가 일어나지 않으며, 집중하려고 노력을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제 마음은 신에 대한 생각들에 관여하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 까?”
마하리쉬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드라스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습니까?”
“기차로 왔습니다.” 그는 질문의 초점을 모르지만 공손하게 대답 했다.
“그러면 띠루반나말라이 역에 도착한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 니까?”
“기차에서 내려 기차표를 건네주고, 소가 끄는 이동수단을 타고 여기 아쉬람까지 왔습니다.”
“아쉬람에 도착하여 소가 끄는 마차꾼에게 돈을 지불하고 난 다음에,
소가 끄는 마차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소가 끄는 마차는 떠났습니다. 추측하건대 읍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는 이와 같은 질문들이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대답을 해 나갔다.
마하리쉬가 그제야 자신이 의도한 바를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기차는 당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당신은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당신에겐 기차가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차는 당신이 원하는 곳까지 당신을 데려다 준 것입니다. 소가 끄는 마차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소가 끄는 마차가 그대를 라마나스라맘에 데려다 주자 당신은 마차에서 내렸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기차나 마차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오는 수단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여기에 있고, 그것들은 더 이상 당신에겐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수행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신의 암송, 독서, 명상은 당신을 영적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도착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하리쉬는 그를 깊이 바라보았다. 뿐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순수의 물결로 씻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과 마음 이 마하리쉬의 고요한 응시에 의해 정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마하리쉬가 그의 가슴속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 황홀케 하는 응시로 옛 몸은 죽고 새로운 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는 이해했다. 지금 그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이 사람이 그 자신이었으며, 늘 그 자신으로 있어 왔음을……. 나를 깨닫게 되자 갑작스러운 충격이 그에게 왔다. 이것은 그가 여덟 살 때 망고 음료가 가득한 컵을 받을 수 없었던 때와 같은 깊은 평화와 충만한 행복감이었다. 슈리 뿐자는 일어나서 마하리쉬 앞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엎드려 절했다.
그는 마하리쉬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마하리쉬는 그에게 정확히 통찰하여, 형상을 가진 어떤 인격적 신에게도 집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모든 형상들은 죽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마하리쉬는 뿐자에게 실재이며 영원한 것을 향해 가도록 첫 만남에서부터 노력하였으나, 오만하게도 뿐자는 마하리쉬의 충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그가 오래 전에 물었어야 했던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는 여덟 살 때 ‘나’를 직접적으로 체험했으면서도 그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의 나머지 생을 보낸 것이다. 그의 수많은 사두들과 스와미, 구루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그에게 마하리쉬가 한 것처럼 간결하게 “신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신은 당신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바로 신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그대 자신에게 물어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나로서의 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좀 더 일찍 마하리 쉬를 만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했더라면 그는 결실 없는 외적 추구는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슈리 뿐자는 이상한 만남들을 통하여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한다. 1947년, 뿐자가 육체적으로 마하리쉬를 떠나려 할 때, 마하리쉬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마하리쉬의 약속이었고, 뿐자는 이것을 체험하고 있었다. 슈리 뿐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있었던 곳에는 텅 빔만이 있었다. 그 텅 빔 안에는 빛나는 ‘나’, 나의 실재인 ‘나’, 나의 스승이신 ‘나’, 어디서든 항상 그와 함께 한다고 스승이 약속한 ‘나’가 빛나고 있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말하고 있는 자는 뿐자가 아니라,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 모든 존재들의 가슴속에 있는 나가 말하고 있다.
마하리쉬의 한 번의 바라봄만으로 슈리 뿐자의 윤회의 연속들이 파괴된 것이다. 그가 나를 깨닫게 되자, 그 즉시 시간, 세상,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어떤 것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무엇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변하지 않는, 형상 없는 나만이 오직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아쉬람을 갖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의미로 보았을 때 그는 보이지 않는 스승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삿상에 참여한 구도자들은 그의 말과 친존에서 기쁨의 웃음을 터뜨렸으며, 햇살처 럼 펼쳐지는 행복감에 깊이 잠겼다. 1997년 9월 6일, 슈리 푼자는 육신을 버리고 마하 사마디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