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보다
수업 중에 자꾸만 걸려오는 어머니 전화
몇 번이나 대답해도 못 알아들어 막막하고
목소리 크게 내지 못해 나는 또 먹먹하고
보청기 주파수는 어디로 향한 걸까
부재중 문자를 따라 한달음 달려가면
-일 없다, 밥이나 먹자
이 말 저 말 궁굴리는데
-안 들린다면서요? 지금은 들려요?
저녁 밥 먹다 말고 내 얼굴 빤히 보다가
-입 모양 보면 다 알지
순순히 고백하신다
꿀 따는 날
때죽나무 숲속에 전쟁이 났나보다
벌이 훔쳐온 꿀을 다시 내가 훔치는 날
돌돌돌 자동 채밀기, 전리품을 챙긴다
그런 날은 어찌 알고 외삼촌이 찾아온다
가래떡 몇 줄 사들고 온 건들건들 저 너스레
첫꿀에 찍어 먹으면 바람기 도진다나
한때는 서울에서 전당포를 했다는,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삼촌삼촌 한량삼촌
외갓집 거덜내버린
어머니의 푸른 통점
푸른 통점,
벌침 한 방 쏘인 것 같은 그 자리
탈탈 털린 벌장에 벌들이 돌아올 무렵
숲은 또 어루만지듯 꽃불을 켜는 거다
어떤 호객
싸락눈이 날리는
크리스마스 전야
마수걸이 못했는지 군밤 장수 써 붙인 글
'한 봉지 단돈 삼천 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목백일홍
그래서
석 달 열흘을 붉은 적 있었다
봉분 너머 또 봉분 거느리는 목백일홍
한여름 시간차 공격
속수무책 당할 뿐
살구나무
그래도 그리운 건,
눈썹 끝에 걸린 속세
민오름 자락에 세를 든 비구니 절
가끔씩 한눈을 팔듯 가지 뻗는 나무가 있다
그중에 살구나무 살금살금 돌담에 기대
'어디로 통화할까 그 사람은 누구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집을 뛰쳐나왔을까'
해마다 웃자란 생각 가지치기 해봐도
그럴수록 부르고픈 이름이라도 있는 건지
설익은 살구 몇 알을
세상에 툭, 내린다
카페 게시글
10집
겸영순 / 소리를 보다 외
sunny
추천 0
조회 37
22.02.27 00:14
댓글 1
다음검색
첫댓글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