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暹과 함께 떠나는 중국 漢詩 기행
-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를 중심으로
東暹 박병구
西北有高樓
西北有高樓 서북유고루 上與浮雲齊 상여부운제
서북쪽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꼭대기는 구름에 닿는 듯하네
交疏結綺牕 교소결기창 阿閣三重階 아각삼중계
격자창에는 비단 휘장이 걸렸고, 사면四面에 처마가 있는 이 누각은 계단이 세 개라네
上有絃歌聲 상유현가성 音響一何悲 음향일하비
위로 거문고를 타며 부르는 노랫소리 들려오니, 음향이 어찌 이리 슬픈가
誰能為此曲 유능위차곡 無乃杞梁妻 무내기량처
누가 이 곡을 지을 줄 알았을까, 기량의 처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清商隨風發 청상수풍발 中曲正徘徊 중곡정배회
청상곡이 바람 따라 흐르다가, 곡조 중간에 이르러 한창 맴돌고 있네
一彈再三嘆 일탄재삼탄 慷慨有餘哀 강개유여애
거문고 한 번 탈 때마다 두세 번 탄식하니, 비분강개에 슬픔이 여운으로 남아 있네
不惜歌者苦 부석가자고 但傷知音稀 단상지음음희
노래하는 이의 괴로움은 애석하지 않지만, 마음 알아주는 이 드문 것이 마음에 상처로 남네
願為雙鴻鵠 원위상홍곡 奮翅起高飛 분시기고비
바라건대 한 쌍의 기러기 되어, 날개치고 일어나 높이 날아갔으면
〈西北有高樓〉는 동한東漢 말 혼란기에 일정한 직위와 직책이 없던 유사游士가 정치·사회적으로 소외된 심경을 토로한 문인오언시文人五言詩이다.
서주西周의 신분 질서는 주왕周王을 정점으로 제후諸侯⋅경대부卿大夫⋅사士⋅서민庶人⋅노예奴隸로 구성되었다. 춘추시기春秋時期, 사士는 일반적으로 고정적인 전답田畓이 없었고 종족의 속박도 비교적 약하였으며 자유롭게 천하를 주유했던 유사游士였다. 사士는 사민四民(士農工商)의 으뜸이고 민民에 속하는 피지배계급이었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접어들면서 계급 질서가 해체됨에 따라 사士의 신분에도 변화가 발생하여, 사士는 무武에서 문文의 종사자로 역할을 전환하여 상대적으로 독립된 인격체가 되었다. 사士의 인격·신분 독립은 사회상 이동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음을 의미하였다(劉澤華 : 『先秦士人與社會』, 天津人民出版社, 2004, pp.15~16). 이 시의 주인공 유사游士는 권력의 중앙과 주변 ‘사이’에서 방황하며 변죽을 울리는 ‘경계’에 선 자이다.
西北有高樓 上與浮雲齊 “서북쪽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꼭대기는 구름과 맞닿는 듯하네.” 시인은 왜 하필 동서남북 사방 중에서 서북西北을 시어로 삼았을까? 이는 서북 방향이 지닌 이미지와 관련성이 있다. 중국의 지리적 특징은 서고동저西高東底 형태로서 서쪽에는 고원이 많고 동쪽으로 갈수록 평원이 발달해 있다. 서북 지역의 지리적 범위는 황하黃河로부터 곤륜산맥昆侖山脈-아얼진산阿爾金山-기련산맥祁連山脈으로 이어지는 산맥과 만리장성 이북, 대흥안령大興安嶺·오초령烏鞘嶺 서쪽 지역을 말한다. 21세기 현재는 서북부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닝샤 회족 자치구, 산시성, 간쑤성, 칭하이성 지역을 포함한다. 시인에게 서북은 장소적 개념이자 물질적 이미지였다. 서북 지역은 화하족華夏族의 화하華夏 문화와 다른 흉노족이 존재하는 장소이고, 서녘은 하루해가 일몰하는 어둠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아울러 서쪽은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 서방정토西方淨土가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방정토는 수행자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이고, 아미타불이 다스리는 세계이며, 해탈과 영원의 장소이다.
交疏結綺牕 阿閣三重階 “격자창에는 비단 휘장이 걸렸고, 사면四面에 처마가 있는 이 누각은 계단이 세 개라네.” 비단 휘장이 걸려 있는 누각에 보통 서민들이 가서 놀 수 있었을까? 누각은 당시 지배계급의 시회詩會나 휴식 공간이었다. 중국의 누각은 그 처마 끝이 하늘로 날렵하게 올라가 화려하고 위압감을 준다. 이 시의 주인공 유사游士는 누각에서 시회를 즐기거나 세상사를 경영할 처지가 못 되는 철저히 소외된 자였다. 이런 유사游士에겐 누각이 구름처럼 잡을 수 없는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上有絃歌聲 音響一何悲 “위로 거문고를 타는 노랫소리 들려오니, 음향이 어찌 이리 슬픈가.” 현絃은 거문고 등의 현악기를 지칭한다. 시인에게 음향이 슬프게 들렸다면 이 곡조는 어둡고 슬픈 단조短調였을 것이다. 서정적 단조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유사游士의 심경을 대변하였다.
誰能爲此曲 無乃杞梁妻 “누가 이 곡을 지을 줄 알았을까, 기량의 처가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기량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대부大夫였다. BC 550년 제나라 장공莊公이 주周의 봉국封國 중 하나였던 거국莒國을 정벌할 때, 기량이 전투 중 거국성莒國城 아래에서 전사하였다. 기량의 처가 기량을 끌어안고 열흘간 통곡하며 울다가 치수淄水에 투신하였다(《左傳·襄公二十三年》,《禮記·擅弓》). 동한 문인 채옹蔡邕이 집필한 《금조琴操》에 의하면 〈기량처탄杞梁妻歎〉은 기량의 처가 지은 거문고 곡목 금곡琴曲이라고 한다. 시인은 주류 세력에서 밀려나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기량杞梁의 처에게 감정이입 하였다.
清商隨風發 中曲正徘徊 “청상곡이 바람 따라 흐르다가, 곡조 중간에 이르러 한창 맴돌고 있네.” 청상清商은 악곡명으로서 곡조가 애상조다. 시인은 천리를 내달릴 수 있는 천리마 같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백락伯樂이 없어 난관에 부닥친 자신의 처지를 ‘곡조 중간에 이르러서 한창 맴돌고 있다.’고 비유하였다.
不惜歌者苦 但傷知音稀 “노래하는 이의 괴로움은 애석하지 않으나, 다만 마음 알아주는 이 드문 것이 애가 타네.” 지음知音은 음율音律에 통달하여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를 할 수 있는 자이며, 또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의미한다.
願為雙鴻鵠 奮翅起高飛 “바라건대 한 쌍의 기러기가 되어, 날개치고 일어나 높이 날아갔으면.” 기러기는 겨울 철새로서 때가 되면 추운 지방으로 높이 날아 이동한다. 이 시의 주인공도 순백의 기러기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심경을 드러냈다. 시인은 유사游士의 심경과 생존공간을 찾아 하늘 높이 날아 이동하는 기러기를 동일체로 간주하였다.
시인은 전사한 남편을 끌어안고 열흘간 통곡을 하다 치수淄水에 투신한 기량의 처를 통해 인간의 신체에 대해 높은 도덕성을 부여하였다. 또 기러기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심경을 드러내어 정신 초월성도 함께 강조하였다. 신체에 대한 관념은 종교와 시대에 따라 달리 인식되었다. 유교는 예악禮樂의 신체이고, 도가는 자연의 신체이며, 반면 선종禪宗은 불도에 들어가는 세 가지 요체 즉 계戒·정定·혜慧 중의 신체이다(彭富春 : 「身體美學的基本問題」, 中州學刊, 2005, p.242) 소위 ‘자연성 신체’는 양한兩漢 시대의 ‘도덕성 신체’에 상당하는 개념이다. ‘도덕성 신체’는 사회도덕 및 윤리규범으로서 신체를 규율하고 훈육하는 것이다. 한漢나라인은 기개와 절개를 추구하며 생명을 버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견위수명見危授命을 마다하지 않았다. 반면 위진남북조 시대의 ‘자연성 신체’는 유가가 부여한 도덕적 성격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욕망·감성 등 생명 본래의 의미에 충실 하는 것이다. 위진魏晉인은 “인간은 죽음만이 필연적인 진실이고, 시간이 촉박한 인생 중, 생사이별과 불행이 너무 많은 것이 진실”이라고 인식하여, 인간이 신봉하는 가치 체계를 반성하고 의심하며 부정하였다. 그래서 결국 양한兩漢 시대의 선전宣傳과 믿음의 도덕윤리·미신·도참圖讖과 위서緯書의 숙명·장황한 경술經術 등등의 규범·표준·가치가 모두 의심받게 되었다(李澤厚 : 美的歷程, 中国社會科學出版社, 1989, p.85). 이로써 위진 시대가 ‘정신사적으로 자유와 해방이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열정이 가장 농후했던 시대’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宗白華 : 藝境, 北京大學出版社,1986, p.133).
명사名士는 명사名士의 추구가 있다. 위진魏晉 시대 명사名士가 추구하는 가치는 신분 상승 이후의 명예가 아니고, 유가의 규범을 준수하는 것도 아니며, 순전히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을 숨김없이 사실대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위진魏晉인 특히 사상가들은 ‘도’道를 무형무상無形無象의 우주 본체 존재로 격상시켰다. 이는 Martin Heidegger의 “존재하는 것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처럼, 위진인의 철학 수준을 제고 하였다. 그러나 위진인은 모든 인간의 존재는 다 같다고 간주하지 않았고, 한나라 시대의 도덕道德 등 ‘유’有의 존재를 초월하며, 무한성의 존재 즉 ‘무’無를 본체로 하는 우주 존재를 추구하였다. 위진魏晉 현학玄學(노자·장자와 주역에 대한 해석 학문) 중, ‘귀무’貴無(無는 천지만물과 인생의 정신 본원)는 사상 해방 의의를 가졌고, 또 세속과 향락도 내포하였다. 즉 인간의 사상을 현학으로 인도하여 다시는 세속과 향락 속으로 타락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서양의 해체주의(解體主義, deconstructivism)처럼 가치 표준과 사유 관념이 모두 해체 과정을 거쳐 결국 허무주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李劍清 : “自然性的身體”展示和自贖 : 魏晉人的生活世界和思想世界, 2016년 11월 17일-18일 경북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 ‘인문국제’ 국제학술대회 ‘문자와 문화’).
철학은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일체라는 물아일체物我一體, 마음과 만물은 하나라는 심물일체心物一體는 양명심학陽明心學의 기본 관념이다. 양명심학은 인심人心과 만물萬物은 하나이며 분리될 수 없고, 심령과 만물은 하나로 융통된다고 인식하였다. 또 심즉천心卽天은 사유하는 의식과 존재하는 사물의 동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건조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서북, 전사한 남편을 끌어안고 열흘간 통곡을 하다 치수淄水에 투신한 기량의 처, 거문고 타는 노랫소리와 슬픈 음향, 애상조의 청상곡, 노래하는 이, 한 쌍의 기러기는 유사游士의 심경·처지와 분리될 수 없고 구별할 수도 없는 동일체라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부락》 2024년 봄 19. pp.166~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