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마스크가 필요해/이정순
“좋은 아침! 이번 여름은 무척 더웠는데, 방학 다들 건강하게 잘 보냈죠?”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이다. 친구들 얼굴이 모두 까맸다. 선생님 얼굴도 아프리카 사람 같았다.
운동장의 플라타너스 나무는 9월인데도 잎이 힘없이 축 쳐져있었다. 지난여름 더위를 먹은 모양이다.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 더워서 정말 짜증나는 방학을 보냈다고 대답했다.
“최 열은 왜 이번 여름이 그렇게 더웠다고 생각하나요?”
“저희 집 에어컨이 고장 났거든요.”
“와우-! 대박이다. 하하하, 호호호!”
내 대답에 교실이 떠나갈 듯이 아이들은 웃어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런, 열이 고생 많았네요. 물론 그런 예도 있겠지만, 이번 여름은 대한민국 전체가 열 도가니였다는 사실이에요. 혹시 그렇게 더운 이유를 아는 사람 있는 지 누가 말해 볼래요?”
아이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구가 오염되었기 때문이에요. 지구가 산소 부족으로 그런 현상이 일어 난 거고요. 왜 지구에 산소가 부족해 졌는지 집에 가서 한번 찾아 봐요.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내가 뭘 해야 되는지 알거예요. 그리고 절약정신도 생길 거고요. 자, 방학 숙제 한 것 반장이 거둬 와요.”
“척척박사! 오늘 단단히 더위 먹은 모양이다. 네겐 그 정도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아니냐? 왜 꿀 먹은 벙어리였어?”
집에 오는 길에 민욱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정말 더위를 먹은 건지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애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보자!”
민욱이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으응? 그, 그래.”
민욱이와 헤어지고 내내 지구 산소부족에 대해 생각하며 걸었다. 오늘 창피 당한 걸 생각하면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도서관에 들렀다.
“열이 왔구나? 오늘은 무슨 책이 필요하니?”
“네, 지구 환경에 대해 알아보려고요.”
“그건 환경도서 목록에서 찾아보렴. 저쪽이야. 민욱이는 집에 갔니?”
“네, 방금 저랑 헤어졌어요.”
오늘 도서관 자원봉사 사서는 민욱이 엄마였다. 민욱이 엄마가 가리키는 곳에서 환경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최열 아저씨의 지구촌 환경이야기1,2』
‘어, 내 이름하고 똑같잖아?’
나는 얼른 그 책 두 권을 뽑아서 아주머니 앞에 내밀었다.
“우리 민욱이도 열이처럼 책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
“민욱이는 대신 운동을 잘 하잖아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현관 밖에 서 계셨다.
“엄마. 왜 밖에 계세요?”
“이제 오니? 할머니가 주무셔서 네가 초인종 누르면 깨실까봐 기다리고 있었지. 엄마 마켓에 다녀 올 거니까 시원한 미숫가루 타 놨어. 마시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참, 텔레비전 소리는 낮춰 놨다. 할머니 주무시는데 소리 크게 틀지 않는 게 좋겠어. 할머니가 기운이 없으시다는 구나.”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책 읽고 있을게요.”
“그래. 그럼 책 읽고 있어.”
나는 빌려 온 책이 궁금해서 집에 오자마자 책부터 읽었다. 엄마가 마켓에 다녀오셨다. 장바구니에는 약간 덜 익은 것 같은 사과가 담겨있었다.
“열이 덥지? 민욱이 어머니 만났는데 오늘도 도서관 들렀다면서?”
“네!”
“그래, 오늘은 무슨 책을 빌려왔니?”
“환경에 관한 동화에요. 근데 이 책 누가 썼는지 아세요?”
“글쎄다.”
“제 이름하고 똑같은 작가선생님이 쓰신 책이에요.”
“그러니? 무척 반가웠겠다. 그 책에서 뭐가 알고 싶어 빌려 왔니?”
나는 오늘 학교에서 창피당한 일을 엄마한테 다 말했다.
“저런, 우리 열이가 그런 엉뚱한 대답을 할 때도 있었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번처럼 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났으니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 내년 여름에는 새로 하나 들여 놔야겠구나.”
엄마가 마트에서 사 온 사과를 쟁반에 담아왔다.
“과일 먹고 읽으렴.”
엄마는 사과 한쪽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사과가 시고 텁텁했다.
“엄마, 사과 맛이 왜이래요?”
“일조량이 부족해서 그럴 거야.”
“엄마, 여기 일조량에 대해서도 나와 있어요. 최열 작가선생님은 환경운동가래요. 전 세계를 다니면서 환경운동을 하신대요. 멋지죠?”
나는 책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말했다.
“만약 이 사과를 지구라고 하면요.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대기는 이 사과 껍질이라고 볼 수 있대요. 지금 지구 대기가 이 사과 껍질처럼 거무튀튀하고 열이 난대요. 사과껍질이 사과 속을 보호하듯이 대기가 지구를 보호해야하는데 오염돼서 그렇지 못하대요.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대기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 대기가 역할을 못해 큰일이래요. 그래서 산소가 부족하고 일조량까지 부족해서 사과가 익지 못해 맛이 없는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렇네. 우리 열이 대단하구나.”
“엄마, 온실 가스는 지구 온도를 알맞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대요. 근데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배출되어서 지구가 숨쉬기 힘들대요. 온실가스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지구 온난화 현상이 생겨 이번 여름처럼 더운 거고요.”
“열이 덕분에 엄마가 제대로 환경공부를 하는구나.”
엄마는 또 사과 한 쪽을 입에 넣어주었다.
“엄마 사과 안 먹을래요. 맛이 없어요.”
“그래도 우리가 먹어줘야 하지 않겠니. 농부아저씨들이 힘들게 지은 농사인데, 그렇다면 대책을 마련해야하는데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니?”
“보지 않는 텔레비전은 꺼야 해요. 전기를 아껴야한대요. 전기는 석유를 때서 만들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의 주범이래요.”
나는 켜놓은 텔레비전을 껐다. 선풍기를 강에서 약으로 돌렸다.
“엄마, 에어컨 대신 손부채를 사용하면 에어컨에서 내품는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대요. 참, 이번 여름에 더워 고생은 했지만, 에어컨 고장 난 게 잘 된 건지 모르겠네요. 전기세도 아꼈고, 이산화탄소도 줄였으니까요.”
“호호, 우리 아들 살림꾼까지 되었네. 그렇다면, 산이나 도시에 나무를 심는 것도 한 방법이겠구나.”
“네,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나무를 많이 심는 거래요. 숲이 제일 큰 역할을 하구요. 여기 보세요. 최열 작가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숲은 ‘산소공장’이래요. 잘 가꾸어진 1핵타르의 숲은 일 년 동안에 16톤의 탄산가스를 빨아들이고 12톤의 산소를 만든다고 했어요. 어른 한 명이 하루에 필요한 산소는 0.75킬로그램 인데 그 양은 44년 동안 어른 한명이 숨을 쉬는데 필요한 산소 양이래요. 그 중 1그램만 모자라도 사람은 숨을 쉴 수가 없어 생명이 위험하대요. 숲은 또 공기 정화기 역할도 한대요. 대도시의 공기 1리터에는 약 40만개의 먼지가 들어있는데 숲속에는 몇 천개의 먼지만 있대요.”
“최 열 작가님 대단하신 분이구나. 우리 열이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게 쉽게 쓴 동화책인 모양이네.”
“아주 쉽고 재미있게 쓰신 책이에요.”
“이 할미도 하나 거들어도 되겠니?”
“아, 할머니! 시끄러워서 깨셨어요?”
“애미 환경 공부하는데 방해 될까 봐 자는 척 했지.”
“호호! 그러셨어요? 어머니.”
할머니가 오후 꿀잠을 주무시다 일어나서 잠시 책 읽는 것을 멈추었다.
“참, 할머니 무슨 이야기 해주실 건데요?”
할머니도 환경에 관심이 많으셨다.
“쯧쯧! 저렇게 차가 많으니 공기가 오염 될 수밖에 없제. 가까운 거리는 운동 삼아 걸어 다녀도 좋으련만,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차를 몰고 나오니 원.”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도로에는 차 뒤꽁무니에 이마를 대고 줄을 서 있는 듯했다.
“네, 맞아요. 대기 오염의 주범이 또 자동차가 내품는 매연이래요.”
“할미가 자랄 때는 먹을 게 없어 끼니마다 걱정을 했지 공기가 나빠 숨을 못 쉴까봐 걱정을 한 적은 없었던 기라.”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산에 나무를 다 베어가서 산이 벌거숭이가 되어 산사태가 날까 봐서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단다. 그래서 학교에서 전교생이 나무심기를 했단다.
“일본 놈들은 큰 나무는 목재로, 작은 나무는 땔감으로 싹쓸이로 베갔제. 산마다 벌건 흙이 들어나 보기가 숭했다 아이가.”
할머니는 일본사람이 옆에 있기라도 하듯이 주먹까지 휘두르며 말씀하셨다. 선진국에서는 다 자란 나무를 목재로 베어내면 반드시 그 자리에 어린나무를 심는데 일본사람들은 자란 나무만 베어갈 줄만 알았지 심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할머니는 일제만행이 생각나시는지 치를 부르르 떨었다.
“해방이 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전 국민이 나무심기운동을 벌였단다. 그래서 정부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한기라.”
식목일 날 주로 일본 리키다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또 송충이 얼마나 끓던지 대나무로 집게를 만들어 깡통을 들고 산에 송충이 잡으러 다녔다고 했다.
“그때 심은 나무가 자라 지금 푸른 숲을 볼 수 있는 기라. 도시에 차들이 많아 공기가 오염됐는데, 그때 나무를 심지 않았다면 아마 숨도 제대로 못 쉬지 싶다.”
할머니는 어릴 때 나무심기한 일들을 생각하면 추억도 많았다고 했다.
“그때가 참 좋았던 기라. 공부 안 하고 나무 심으러 간다면 얼마나 좋았던지.”
“할머니도 공부 안 한다면 좋았어요?”
“하모, 학생들은 공부시간에 공부 안 하고 다른 것 한다면 신나는 건 지금이나 옛날 우리가 자랄 때나 똑 같은 기라.”
“아, 할머니도 그랬구나. 저도 그런대요.”
“호호, 하하!”
할머니와 엄마는 내 말에 큰소리를 내어 웃었다.
“우리가 심은 그 나무들이 자라 땅이 더워진 걸 식힐 것 인데, 힘들게 심어 가꾼 그 아까운 나무를 다 베어내고 이렇게 높은 아파트를 지었으니 더울 수밖에 없제. 열이가 말하는 그 오, 뭐라더라……”
“오존층 요,”
“하모. 그 오존층인가 하는 것이 없어진 게야.”
할머니는 나무 심던 이야기를 오염된 환경에 빗대어 재미나게 말씀해 주었다.
“와, 우리 할머니도 환경 박사시네. 송충이는 징그럽지 않았어요?”
“왜 안 징그러웠겠나. 굵기가 어른 손가락보다 더 굵었제. 털에 쏘이면 한 달은 넘게 가려워 고생도 했제. 그래도 내가 심은 나무를 송충이들이 다 먹는다 싶으니 께 징그러운 줄도 모르고 안 잡았나.”
“그땐, 전 국민이 환경 운동가였겠네요.”
“그런 셈이제. 열이는 책마저 읽고 있어. 할미가 엄마 거들어 우리 열이 맛난 거 해줘야 제.”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일어섰다.
“어머니는 열이랑 이야기하고 계세요. 제가 할게요.”
“아서라. 할미가 열이한테 방해가 되면 안 되제.”
“방해 아니에요. 엄마, 오늘 저녁 반찬은 뭐예요?”
“애미야, 우리 열이가 좋아하는 불고기 좀 하거라.”
“네, 어머니. 오늘은 열이 덕분에 불고기 파티해요.”
“와, 신난다. 다음 이야기는 이 책 다 읽고 해드릴게요. 엄마.”
“그래, 엄마 기대하고 있을 게.”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앞으로 환경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환경 지킴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하는데 뭐부터 해야 할 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 맞다. 헤어스프레이!’
나는 4학년이 되면서 학교 갈 때마다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여자 아이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였다.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스프레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헤어스프레이의 프레온가스는 40년 동안 분해되지 않는 유해성 물질이다.
부엌에서 맛있는 불고기 냄새가 솔솔 났다.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열아, 저녁밥 준비 다 됐는데 책은 다 읽었니?”
“네, 엄마!”
“그럼 아빠 오실 시간 됐는데 우리 버스정거장으로 마중 나갈까?”
“네. 마스크 가지고 나가요.”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서쪽하늘의 석양이 미세먼지에 가려 뿌옇게 보였다. 저 많은 미세먼지가 대기를 오염시켜 빠른 속도로 지구 온난화 현상이 일어나는 거다. 이파리가 시커먼 가로수들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저 나무들이 사람을 대신해서 죽어간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했다. 도시의 나무는 생명의 은인이다.
“나무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앞서가는 꼬마가 엄마 손을 잡고 가며 플라스틱 컵에든 음료수를 먹고 있었다. 그 꼬마는 다 먹은 음료수 컵을 스트로우를 꽂은 채 길바닥에 버렸다. 거북이 코에 스트로우가 꽂혀서 거물에 잡힌 뉴스가 생각났다. 나는 얼른 그 컵을 주워 아이한테로 달려가서 말했다.
“꼬마야! 이런 건 쓰레기통에 버리면 좋겠는데.”
그 아인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별 꼴 다보겠네.”
아주머니가 열이한테 말했다.
“아주머니, 여기보세요.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거리가 지저분하잖아요.”
“그건 구청에서 청소를 안 해서 그렇지. 얘가 못하는 말이 없네.”
“형, 미안해. 내가 버릴게.”
그 꼬마가 내 손에 있는 컵을 받아들고 쓰레기통으로 달려갔다. 쓰레기통은 이미 넘쳐 있었다.
“엄마, 우리 쓰레기는 우리 집에 가지고 가는 게 좋겠어요.”
아이 엄마는 멋쩍은 듯이 나를 한번 뒤돌아보았다. 그 아인 엄마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어가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엄마도 웃고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마스크 두개를 꺼내 한 개는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 나무들에게도 마스크를 씌어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무도 마스크가 필요하겠구나.”
저만치서 아빠가 걸어오고 있었다. 미세먼지에 가려 아빠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36.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