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제 인생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 강제수용소에 살았던 솔제니친에 따르면 벽돌쌓기 노동에 동원된 사람들은 대부분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정이라는 그리스어 엔테오스에서 온 영어 단어 enthusiasm은 '하느님 안에 머물다'이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머물면 어떤 처지에 있든, 어떤 어려움을 껶든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험악한 처지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에게 받은 이름을 본명이라 하지 않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녀가 되면서 받은 이름을 본명이라 하는가 ? 그때부터 하느님 안에서 온전한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이 그분의 공생활에서 죽음과 부활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네 명의 제자가 하느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을 일방적으로 부르신 것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 15, 16)
필자는 젊은 날 삶의 무의미함과 방황 속에서 헤매던 중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다. 병원에서 코에 고무관을 끼우고 누워있던 중 부르심을 받았다. 대학시절 한번 술을 마시면 4홉들이 소주병 네 병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십이지장이 터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수술을 기다리던 중 내면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퇴원 후 사제의 길을 택했다. 예수님과 다른 종교 창시자들과 달리 다른 종교 창시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했지, 자기를 따르고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이기 때문이다. '내맡기기' 게임을 통해 우리는 관계에서 신뢰와 의탁이 중요함을 배운다. 초대에 응답할지 안 할지는 자유다. 한 시간 행복해지고 싶으면 잠을 자라. 하루 행복해지고 싶으면 낚시를 가라. 일주일 행복해지고 싶으면 돼지 한마리를 잡아라. 한 달 행복해지고 싶으면 결혼하라. 평생 행복해지고 싶으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라.
평신도란 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평신도의 올바른 의미는 '평범한 신분의 신도'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합당하다. 현실이 아무리 각박하여도 우리에겐 꿈이 있다. 우리가 본당에서 봉사와 심신활동을 할 때도 그 사람의 인간적 자질과 재능과 신적 은사, 곧 탈렌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탈렌트와 자기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한다. 특별히 인생의 전환점에서 하느님 섬김의 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섭리적 부르심을 고려해야 한다. 진정한 부르심에는 기쁨이 함께한다. 그런데 신자 가운데 간혹 '순교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대법관 겸 수상인 토머스 모어는 국왕 헨리 8세가 왕비를 버리고 궁녀 앤 블린을 왕비로 삼으려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고 최고 수장이 된다. 토머스 모어는 국왕의 이런 행위에 번대하면서 수상직을 떠나고 감옥에 가지만, 딸의 회유에도 나는 내 영혼의 구언을 위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서 왕의 회유책을 거부한다. 이렇게 훌륭한 성인을 모시고 그분의 고매한 영성을 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섭리적 부르심을 찾아가는 식별의 물음
1. 나는 어떤 것을 잘하고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재능이 가장 잘 발휘된 곳은 어디인가 ?
3. 사랑의 인내를 할 수 있는가 ?
4. 내가 하고자 하는 섬김의 삶에 대해 내 안에 타는 마음이 있는가 ?
5. 섬기는데 기쁨을 느끼는가 ?
6. 섬기는 자리에서 보람을 느끼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