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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5:1~4(392)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2023. 1. 22
한국인으로서 세계적은 수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인강 교수가 있습니다.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등과학원(KAIS)교수로 계시는 분입니다. 이 분이‘기쁨 공식’기독교 신앙서적을 써냈습니다. 김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7년도에 40세 이하의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상’을 받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수학자입니다. 그런데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충청도 농사꾼의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2살 때 소아마비에 걸립니다. 그런데 집이 너무 가난하다 보니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면서,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앉은뱅이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2살 이후로 단 한 번도 두 다리의 힘으로 서지 못하는 시절을 보냅니다. 혼자 서지 못하니 기어 다닙니다. 비료 포대 위에 엎드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한손으로 포대를 잡아끌어 움직입니다. 어릴 때 이런 모습을 본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은 ‘나중에 크면 거지가 될 것’이라 말하면서 조롱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초등학교를 방문했지만, 학교에서는 모자의 등교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교문 밖에서 엄마와 아들은 한 없이 웁니다. 그러나 모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엄마의 기도와 아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았고, 11세 집을 떠나 재활원에서 목발을 짚으면서 홀로 서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아이의 뛰어난 재능을 눈여겨 본 선생님은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며 노력한 결과 서울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대학 3학년 초, 목발을 짚고 가방을 맨채로 계속 걷다 보니 갈비뼈와 폐가 부딪쳐 폐에 큰 구멍이 났습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 기도로 매어 달립니다.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 주세요’ 그때 등 뒤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그 순간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김인강 교수는 ‘기쁨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가질 수 있음으로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1절,“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born of God)’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 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와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두고 칼빈은 ‘하나님께로 난 자라는 말은 성도의 정체성을 밝히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육신의 부모가 있고, 그 부모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지만, 성도는 하나님께로 난 자 임을 잊어서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본 요한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단들과 사이비들이 창궐하여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올바른 신앙에서 벗어나도록 항상 미혹하고 유혹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이단들과 사이비 사설들이 올바른 신앙을 훼손하고자 항상 노력합니다. 성도들을 미혹하고자 불철주야 덤벼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 모두는 확고부동한 신앙의 터전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몸 된 교회에 충성 봉사하는 자’라는 판단이 흐트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직 나는 주의 길을 가리라’라는 표어를 가지고 생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1. 믿음이 있는 자가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이태원에서 할로윈 행사를 하다가 참사가 발생하였고, 몇 해 전에는 세월호가 파선하여 안타까운 생명들이 죽었습니다. 이런 대형 사고의 원조를 선택하면, 1995년도에 발생한 ‘삼풍백화점붕괴’를 손 꼽습니다.
1995년 6월 29일, 당시 강남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대학원 다닐 때에 백화점 앞 도로를 버스로 이용하며 지날 때가 있었는데, 삼풍백화점의 외관이 너무 휘황찬란하게 아름답게 꾸며졌다는 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삼풍백화점은 롯데백화점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너무나 멋진 명품 백화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화점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피해액만 당시 금액으로 2,7백억이 넘었습니다. 이 때에 삼풍백화점 사장이었던 이한상 사장이었고, 추후에 재판을 통해 전 재산은 배상금으로 몰수당합니다. 그리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습니다. 사고와 함께 호화로운 삶은 끝나고 옷 한 벌, 숟가락 하나 제 것이 없는 삶이 시작됩니다.
감방 벽에 등을 대고 다리를 뻗으면 닿을 정도로 좁은 감방에서 벽만 바라보는 신세가 됩니다. 왜 자신이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감옥에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화려했던 것들을 부족함 없이 주셨지만 너무도 교만하여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 것을 구하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7년 형기를 다 마치고 출소한 후에, 그는 몽골 자비량 선교사가 되어 몽골 땅으로 갑니다. 그 땅에서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여기의 ‘믿는 자마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어(파스 호 피스튜온, Everyone who believes)’ 인데, 이 말에는‘확신하다, 의뢰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기름 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을 100% 확신한다는 말입니다. 그냥 대충 대충 믿거나 또는 100% 완벽하게 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며, 흔들리지 않고 확고부동한 믿음으로서 모든 신앙인들이 가져야 하는 올바른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분들이 다 자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하나이지만, 이 믿음과 연관된 성경 구정은 너무나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는 말씀들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단 6: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사자굴에 들어가서도 믿음을 잃어 버리지 아니한 다니엘의 모습을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사자굴에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다니엘의 모습입니다.
□마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던 12명의 제자들에게 던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파도와 바람을 보고 걱정 하면서 두려워하였던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시는 모습입니다.
□마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서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12년 동안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병에서 고침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구세주이시며,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심판의 재림 주 되심을 굳건하게 믿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라는 것은, 기독교인의 여부를 구분 짓는 핵심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 온전하다면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이 바탕 되지 않는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이 만들어 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반석과 같이 집의 구조를 튼튼하게 세워지는 기둥이며 주춧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께로 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든든하게 성장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으로 행동하는 자가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2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성도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된 다른 성도님들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다른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온전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하는 분들이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믿음의 자녀들을 미워하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절대로 올바른 믿음을 가진 모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성도가 당연히 해야 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2절 하반절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줄을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아신다는 말인가요? 내가 드러내고 사랑하는 사랑의 모습이 무엇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이 상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때’라고 사도요한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두 가지 행동의 모습이 전제되어져 있습니다. 1)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2)내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 이 두 가지가 온전히 이행되어질 때에 내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당 안에서 가금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분들을 보셨다면, 그런 분들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사도요한이 말한 이 두 가지 항목에 다 결격 사유가 있는 분들이 벌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는 다른 성도들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나와 생각과 견해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배척하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이 그런 모습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은 말씀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성도를 미워하는 분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교회 공동체를 흔들고 어지럽히는 분들, 이런 모든 분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길을 가리라’라고 결단하는 모든 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고백 교회를 창설한 마틴 니묄러 (Martin Niemöller 1892-1984)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절 니묄러는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아돌프 히틀러의 열성적인 지지자였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민족주의가 성경 말씀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 성향을 바꿔 나치와 히틀러를 반대하는데 앞장섭니다. 그리고 독일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되면서 나치에 물들어 히틀러를 지지하였던 독일의 개신교를 비판합니다. 이런 반나치 활동으로 인해 뉘물러 목사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1937-1945년(8년)까지 갇혀 생활합니다.
자신이 갇혀 있었던 감옥에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교수대였습니다. 교수대가 비워져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끔 나찌가 협박과 경고의 의미로 교수형을 시킨 사람을 그대로 교수대에 매달아 놓기도 하는데, 뉘물러는 이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만약 나도 밧줄에 목을 매어 죽는다면 숨을 거두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 내가 목사로써 내 마지막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스데반처럼 원수를 위해 기도하면서 내가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창문너머 보이는 교수대를 바라볼 때마다 뉘물러 목사는 이 생각을 합니다. 나찌와 협력하지 아니하고 히틀러를 반대한 결과 자신이 겪는 고충 때문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이끌어 주실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었습니다.
4절 보세요.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4절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라는 말이 1절에 이어 다시 등장합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께로 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 말하고 있고, 4절에서는 하나님께로 난 자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8년간 끔직한 수용소 생활을 겪으면서 뉘물러 목사가 가졌던 믿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혹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의 위기를 맞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확신만 있으면 환난과 유혹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확신이 바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믿음을 끝까지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주일이면서도 설이 함께 겹쳐져 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구정 구정명절 연휴가 이어지는 주간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고 동기와 형제와 자매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번 구정 명절 연휴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난 자로서 사랑을 전해야 되는 사명이 있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구정 명절기간을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하게 보내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