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 곳)
풍류기행 금산팔경
인류의 영약인 인삼의 종주지와 충절의 고장으로 명성을 얻고있는 금산은 충청남도의 최남단이면서 영호남을 연결하는 중부권 교통의 중심지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지역으로 부각 되여 왔다.
특히 남한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지는 대둔산과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은 충남도내 최고의 산세를 자랑하고 있고 전라북도 장수, 무주, 진안 등에서 발원한 금강분류는 금산고을을 유유히 감싸안아 천혜의 관광자원을 제공함으로서 금산군이 펼치고 있는 각종 지역개발 사업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안겨 주고 있다.
금산은 비단같이 아름답다하여 비단 금(錦)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말 그대로 금수강산을 이루고 있으며 그러한 바탕 위에 금산~대전간 국도 확 포장,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개통 등 주변의 다양한 대단위 사업들과 인삼, 약초와 접목된 지역 활성화로 21세기의 금산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아름답고 신비의 극치인 적벽강을 비롯해 대둔산, 12폭포, 진악산, 서대산, 천내강과 봉황대, 귀래정, 국사봉과 신음산 등 금산8경을 찾아본다,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맑은 물을 자랑하는 적벽강이 그 일경이다
진안,장수에서 금산으로 흘러든 금강의 물줄기는 부리면 수통리에 이르면 적벽강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지어진다,
층층으로 둘러친 기암절벽과 잔잔히 흐르는 물줄기가 조화를 이뤄 신선이 노니는 듯한 한 폭의 동양화다.
지나던 화객이 붓을 놀린 듯 바위를 꿰뚫고 나온 소나무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뒷 물결에 밀린 자그마한 붉은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하얀 물방울로 변하고 햇살 가득담은 수면은 눈부시다.
맑디 맑은 물에 투영되는 물고기들의 유영하는 모습에 온갖 시름은 달아나고 물위에 비치는 기암괴석의 물 그림자에 눈동자는 어느새 절벽으로 향한다.
강가에 널려있는 자갈더미 사이로 간밤에 염원의 불꽃을 사른 흔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한밤중 정갈한 마음으로 하얀초에 불을 붙이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던 촌부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떠오른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하고 부정탈까 사념조차 거부한 촌부는 우리들 마음 가운데 자리잡은 영원한 어머니 상이다.
촌부의 염원은 물에 비친 촛불과 어우러진 달빛에 전해져 적벽강은 성스러움으로 일렁인다.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한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대둔산이 제 이경이다
진산면에서 전주로 통하는 국도는 굽이굽이 산허리를 감아돈다.
한국8경중 하나로 손꼽히는 소금강 대둔산이다.
가파른 돌계단을 슬금슬금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타는목을 냉수 한 모금으로 달래고 계속 올라 발걸음이 돌계단과 씨름에서 밀릴때쯤 구름다리가 보인다. 구름다리 한켠으로 벗어나 소나무 홀로 청청한 바위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면 어디서 불어 온 바람인지 어깨 위에 앉아 시원스레 하다.
구름다리에서 잠시 지체한 발걸음은 봄기운에 힘입어 정상으로 향해 알싸한 바람은 땀으로 젖은 몸을 상쾌하게 씻어주고 줄달음 친다. 저멀리 황해가 보일 듯 말 듯 아스라이 펼쳐진다.
산 봉우리마다 붓으로 그려놓은 것처럼 펼쳐진 기암이며 괴석들은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 의연하게 솟아있는 그 자태가 아름답다.
대둔산 정상에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동안 주위는 벌써 어스레해지고 서쪽으로 기우는 해는 한 낮의 붉은 광채를 아쉬워하듯 그 빛은 더욱 붉게 타오르며 저 멀리로 잠겨든다. 붉은 노을은 산이며 들이며 사람들의 얼굴마저 어스름 달빛이 어느새 발목을 잡아 선다.
굽이치는 물줄기와 투명한 물소리로 나그네의 발길을 잡아 세우는 12폭포가 제 삼경이다
남일면 신동리 저수지를 지나면 산으로 둘러쌓인 곳에 20여호 못미치는 집들로 이루어진 사기소란 마을이 있다.
한밤에 들어와 자고 일어나면 보이느니 산이라 잠시 놀라기는 하지만 외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라 외지인에게 인정이 각별하다.
둘러쌓인 산들을 바라보며 살아온 생, 마음이 산을 닮아 산처럼 변해버린 탓이리라.
사기소 마을을 못가서 무저티(무주티)란 좌측고개를 넘어 얼마 가다보면 시인 이태백의 표현대로 은하수 맑은 물이 구천에서 쏟아지는 듯한 12폭포가 반갑게 맞이한다.
20여미터 깍아지른 폭포는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 웅장함과 골짜기 울려 퍼지는 우렁찬 오케스트라 향연은 옥이 부서지는 듯 영롱하게 퍼져 물방울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12폭포는 크고작은 12개의 폭포가 있어 십이폭포라 이름지어 졌다.
귓전을 때리는 폭포의 굉음을 뒤로한채 거슬러 올라가면 탁트인 시야에 바닥이 하얗게 달아버린 아담한 폭포가 동네 아이들 놀이공간으로 충분하다.
금산사람의 정기를 대표하는 진악산이 제 사 경이다.
금산읍 서남쪽 방향에 금산을 바라보며 우뚝솟은 것이 진악산이다.
금산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예로부터 금산의 鎭山으로 금산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금산의 精氣를 대표하는 산이다.
진악산 품안에는 우리나라 31본산 중 하나인 寶石寺가 자리잡고 있다.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때 조구화상이 창건한 고찰로 한창 번성할 때에는 3천 신도에 5백교인이 기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대항, 장력히 쓰러져간 승장 영규대사의 순절비가 보석사 입구에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보석사 앞을 지나는 시냇물을 건너면 1천1백년 묵은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하늘을 가린채 우람하게 뻗어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울음소리를 낸다는 전설을 간직한 은행나무는 6.25전쟁과 8.15해방을 맞았을 때도 울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악산에는 조선시대 통신기관이던 봉화둑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산중턱 굴이 있는데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알 수 없는 석굴이 있어 이를 빈대굴 이라 한다.
또 인삼의 전설이 담긴 관음굴 에서는 강처사란 선비가 모친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도하다 현몽하여 세계의 빨간 씨앗이 달린 풀을 캐서 뿌리는 어머니에게 달여먹여 병을 완쾌시키고 씨앗은 심어 재배하여 현재의 인삼이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충남의 최고봉으로 대전, 옥천, 금산의 온 세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서대산이 제 오 경이다.
대전에서 금산에 이르는 37번 국도를 타고 가면 태조 이성계의 태를 묻었다 하여 이름한 태봉재를 만난다. 이 재를 넘어야 비로소 금산땅에 이르게 된다.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에서 옥천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충남을 굽어보며 우뚝 솟아있는 서대산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높이 904m로 충남의 최고봉이며 원추모양의 岩산이다. 산세가 온후하고 경치가 빼어나며 봉우리 바위 틈새에 맑고 깨끗한 샘이 있어 예 부터 霆氣가 서려있다 하여 수도하는 스님과 유학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지금은 관광종합 휴양단지로 조성되어 여름이면 북적대는 사람냄새가 온 산을 뒤 업는다.
관광단지에서 용굴을 거쳐 구름다리에 이르면 발 아래로부터 스미는 향기가 잠시 취한 듯 아찔하다. 맴돌다 정상에 올라서면 북으로 대전, 옥천땅이 한 시야를 머물고 남으로는 금산이 아스라이 펼쳐지는 절경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공민왕의 횽호석, 권종군수 순절비가 있는 천내강과 봉황대가 제 육경이다.
금산에서 동쪽으로7km쯤 가면 천내강과 금산을 중심으로 관통하여 흐른 봉황천을 받아들여 유유히 흐른다.
천내 강가에는 고려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남아한 공민왕이 자신의 육묘위치를 정하여 필요한 석물을 준비케 하였으나 개경으로 환도후 그대로 두게 되었다. 전해지는 용호석이 280여m 간격으로 세월의 이끼를 간직한 채 하늘을 응시한다.
개티 강가에는 임진왜란 당시 금산군수였던 권종의 순절비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완만히 흐르는 금강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임진년 6월 영동을 거쳐 호남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던 왜군은 권종이 이끄는 관군과 강 사이로 대치했다. 상류의 용화리 건너편 붉은 산흙을 물에 풀어 적으로 하여금 강의 깊이를 알 수 없도록 해 진군을 저지하던 관군은 물동이를 옆에 끼고 왜군쪽으로 물을 건너는 여인으로 인해 계획이 수포가 됐다고 한다.
적의 화력과 수적 열세로 패색이 짙어지자 권종은 봉황산에 올라 가 자결하였다한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순절비는 일제때 고등계 형사가 폭파시키려 했으나 땅 속에 뭍어 지금의 모습을 모습을 유지했다고 한다.
저곡리 개펄 옆 산이 봉황산이다. 강을 향해 높이 솟아 맑은 물위로 비치는 물그림자와 어울려 마치 봉황이 하늘로 솟구치려는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다.
산마루에는 봉황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시인 묵객을 유혹해 절로 시한수 읖게 한다. 지금은 정자는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있어 시인묵객의 추억을 되새겨 줄뿐이다.
도백(道伯)들이 음풍농월하며 뱃놀이하던 귀래정이 제 칠경이다.
금강 상류의 맑고 푸른 물이 부리면 평촌리와 신촌리 사이에서 여울을 이루고 그 밑으로 흘러 산밑을 감돌면서 잔잔한 호수를 이루고 있는 곳이 귀래정이다.
강건너 신촌리쪽에는 마을 밖에3ha나 되는 넓은 소나무 숲에 50년생 이상의 노송이 사시사철 울창한 숲을 이루며 별천지를 자랑했으나 이제는 농경지를 조성하면서 벌채되어 소나무 숲은 몇 그루의 노송만 남아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곳은 새알 같은 강돌이 곱게 깔려있고 강물에 연해서 금모래 밭이 드넓게 펼쳐지니 한 여름 뱃놀이하며 자연을 만끽하기 안성마춤이다.
지난날에는 충남, 충북, 전북의 3도지사가 호화로운 뱃놀이를 즐기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이 시중을 들도록 동원되었다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이 강물에 빠져있는 듯 내려앉은 작은 동산에는 귀래정이란 정자가 있었으나 손님이 너무 많아 손님치레에 힘들어한 주민이 이 정자를 불태웠다는 얘기가 남아있을 뿐이다.
우뚝 솟아 높은 덕 기개를 상징하는 국사봉과 신음산이 제 팔경이다.
금산군과 옥천군을 사이로 불끈 솟아있는 장엄한 산세와 울창한 숲이 높은 덕을 상징하듯 신안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이 국사봉이다.
제원면 소재지에서 국사봉에 이르는 길이8km가 넘는 계곡으로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고 투명한 시냇물은 갈증을 식혀주는 청량제이다.
어디를 가도 하늘은 세평이라는 강원도 정선마냥 둘러보아도 산만이 보일 뿐 들은 없다.
곳곳 들러진 나무의 잔가지가 치를 때리며 다가온다. 버스로 30분가면 신안리에 이른다. 신라 말 마음이 편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마을은 신라 진평왕때 염선사가 창건했다는 신안사가 국사봉 줄기에 폭 쌓인채 자리하고 있다.
신안사에서 고개를 넘다보면 커다란 바위들이 산 정상에 움찔하게 솟아 있는 곳이 국사봉이다. 깍아세운 듯 절벽은 어느새 정겨운 모습으로 모든 이를 맞는다.
국무관 김광무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