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강 요한계시록의 해석
1. 요한계시록의 해석 원리와 관점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신학적 관점이 다양한 접근 방법에 의한 시도를 통해 여러 가지 있어왔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을 신학으로 접근하여서 해석하려는 까닭이다. 그러나 신학의 원리는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학은 학자들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한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신학이 아니고 성경 계시로 객관적 원리이다. 신학의 원리로 요한계시록에 관한 해석학적 견해를 가질지라도 이는 성경 계시의 객관적 원리로 가져나가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신약 성경 명칭에서 보는 다른 신약 성경과는 차이를 갖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신약 성경 대부분은 마태복음…유다서나 디모데전후서…히브리서 및 로마서…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볼 수 있듯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고 기록한 저자의 이름이나 수신자 및 수신 지역 교회 이름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저자의 이름을 따르되‘계시록’이란 말이 붙는다. 요한계시록은“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1:1)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인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아‘예수 그리스도’의‘계시’를 쓴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계시란 말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용하는 용어인데, 이와 같은 단어가‘묵시’(黙示)이다. 이 말은“말 없는 가운데 은연중에 자기의 의사를 나타내 보임”을 뜻한다. 그러니까‘묵시’의 성격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이 계시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묵시란 말보다는 계시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에서 사용된‘계시’(아포칼륖시스)는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곳 단 한번 나온다. 이 용어는‘계시’,‘폭로’인데, 이는 요한계시록의 성격이‘예언’(1:3), 또는‘예언의 책’(22:7, 10, 18-19)인데 따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1:1)에서도 설명이 되고 있다. 여기서‘하나님이 그에게 주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던 내용들인데, 이것이 요한이 받은 계시와 관련해서는 요한복음과 늘 연결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가르침을 요한복음에 담고 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메시지들,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데, 이 계시는‘반드시 속히 되어져야 할 일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요한이 받은 계시의 복음에서 반드시 속히 되어져야 할 일들까지가 하나의 문장이 된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서 장차 되어질 일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맡기셨는데, 이제 선지자가 말해 온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자신의 계시를 열어 반드시 속히 되어져야 할 일들을 알리시는 일을 하신다. 이렇게 계시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자기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을 말한다.
이중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반드시 속히 될 일’의 관점에서 알려 주시고 있다.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반드시 속히 될 일’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일을 요한에게 보이시고 이를 기록하게 하여서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곧 일어날 일을 자기의 종들에게 알리시려고 그리스도께 계시하셨고, 그리스도는 천사를 자기의 종 요한에게 보내 그 뜻을 설명해 알려 주셨다. 그에 따라서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곧 자기가 듣고 본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하였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이다.
하나님은 이‘반드시 속히 될 일’을‘이미 본 것’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또 앞으로 일어날 일’의 세 가지의 병행적이며 점진적의 진행 구조를 통해서 요한에게 기록하게 하셨다. 첫째는,‘이미 본 것인’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일이다(1장).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쓸 때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보았다. 그분은 구약에서 계시해 주신 분의 모습이었다. 이 분은 처음과 나중이요 죽었으나 부활하여 영원히 살아 있는 자로서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둘째는,‘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인 교회에 되어지고 있는 일이다(2-3장). 교회는 주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 생명이 보살핌을 받고 있다. 셋째는,‘또 앞으로 일어날 일’인 하늘 세계의 광경이다(4-22장). 하늘 세계에서의 예배를 보여주시며, 일곱 재앙의 심판과 하늘로부터 오는 새하늘과 새땅을 통해서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보여 주시는 것을 통해서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는 위로에 있게 하신다.
2.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계시성
요한이 본 계시는 기록되어야 할 계시였다. 그리고 요한이 자신이 듣고 본 모든 것을 다 기록한 후에는 종결되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에서 계시되어져온 성경의 모든 계시가 요한계시록을 끝으로 기록의 마침표를 찍어 종결되었다. 계시의 기록은 종결되었으나, 이로써 계시되어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증거에 의하여 계속되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계속 증거되어 전해지고 있는 계시이다. 이 계시가 말씀되는 증거의 일은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되어진다.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그의 종들에게 계시하여 기록하게 함으로써 주어진 것으로, 이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알 자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자가 없다. 이것이 성경 계시의 특수성이다.
요한은 계시를 받은 자가 아버지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고백을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다. 요한은 요한복음 17장 8절에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이들에게 전하였다. 이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여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이 땅에 내려왔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고 믿음에 있는 것을 “혈육, 곧 인간의 생각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여주신 것이다”(마16:17)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을 시인하는 자를 하늘에서 아버지 앞에서 시인하시는 일을 하신다(마10:32).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알 사람이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지만, 그래서 이스라엘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다.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는 계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 계시가 주어진 오늘날에는 기록되어진 계시의 말씀가지고 성령께서 계시하시는데, 이를 듣고 보고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계시를 받은 자만이 듣고 보고 깨달아 예수님을 믿게 된다. 계시를 받지 못한 자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계시를 받는가 하면, 아버지의 소원이 있는 자이다. 아버지의 소원이 아니고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서 주시는 계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계시의 역사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기록되어진 것이 성경이며, 따라서 성경은 기록 계시이기 때문에 성경 계시에 의존하여서 신앙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면 그것으로 믿어야지, 그것을 우리의 이성으로 생각해서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성경 계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계시에 의존하는 신앙, 이것이 신앙의 원리를 배우는 것이다. 이 신앙은 교회의 초석이다. 초석이 바로 놓여져야 건물은 바로 세워진다. 그러니까 성경 계시에 의한 신앙으로 교회를 이루는 신앙을 가져나가야 하는 것이다.
성경 계시를 대하면서 성경을 신학적 관점으로 풀어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신학이 말하는 것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 계시에 맞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해석도 그렇다. 요한계시록은 어떻게 해석하나? 요한계시록의 해석 원리에 따르면 된다. 1장 3절에 그 원리가 있다.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요한이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계시인 예언은 교회를 통해서 읽혀지며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그 예언을 듣는다. 이 예언을 읽는 자와 듣는 자는 다 같이 지킴으로써 복이 있다. 그러니 이대로 예언이 주어진 그대로 이해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요한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있는 일과 장차 될 일, 이 세 가지를 보았다. 이것의 특징들이 일곱 교회의 형편에 따라서 조금씩 나타나 있다. 따라서 요한이 본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이며,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인데, 이것을 구약에서 보여주신 예언의 계시에 의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므로 구약의 예언 계시의 관계에서 해석하면 된다.
3. 요한계시록의 해석적 의미
요한계시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해석적 의미는, 모든 성경에는 항상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듯이, 본 성경에서도 그 주제가 암시되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를 찾으면 전체의 내용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요한계시록은 서론에서 이미 주제를 보여주고 진행함으로써 본문이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암시해 준다. 1장 1절을 보면 제목이 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해 준다. 이를 요한이 증거하는 내용들이 요한계시록이다. 이 요한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천사를 통해 주셨다.”고 말씀하여 메시지의 신적 기원을 말해 주고 있다. 천사는 하나님의 메시지의 매개체의 역할을 하여서 천상의 전달자로서 요한에게 주어진 계시가 신적 기원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한이 받은 계시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인데, 이것은 “내 앞에 미래의 일들을 미리 알려준다.”는 차원보다는 오늘 이 시점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언제 쓰여졌든지 간에, 그래서 언제 그 계시가 주어지든지 간에 그 계시를 받는 당시의 믿는 신자들이 앞서 일곱 교회가 당한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현실에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가? 할 때 종말론적 관심들을 가져야 되는데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는 구약에 계시의 묵시의 내용들인 다니엘서에서 볼 수 있다. 다니엘서는 최후의 심판, 마지막 날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구약의 메시야 사상은 최후의 심판을 통해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있다.‘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사람 같은 이’의 표현은 신약에서는‘인자’라는 말로 묘사되고 있는데, 최후 심판의 기준은‘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느냐?’에 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은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며, 예수님은 그에 따라서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시는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것으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는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하였다(요6:38-40). 그리고‘그 인자’ 되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으로 살아가는 교회는 요한이 유대인으로서 구약의 메세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서 종말을 살아가는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풀어 설명해주고 있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듣고 ‘인자’되신 예수님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풀어가려면 구약의 메시지에서‘장차 될 일’인 묵시(계시)를 봐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구약의 메시지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드러나 신약에서 온전히 드러내 주신 계시의 내용이 갖는 계시의 전체적 사상은‘하나님 나라’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예수님은 팔복을 통해서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팔복에서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를 믿고 영생을 얻은 자의 것이 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그를 인하여 고난이 있으면 있을수록 미래에 대한 확신은 더욱더 있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것이‘카버넌트 노미즘’(Covenant Nomism),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좇아서 이 언약이 말해주고 있는 신앙으로 사는‘언약주의’,‘언약사상’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언약사상에 의해서 해석되어서 그 의미가 설명이 되어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주신 하나님의 본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