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이웃에 아산할메가 계셨다.
우리 할머니와는 어느 누구 보다도 친하게 지나셨던 일가 할머니다.
지금은 봉화군 물야 조합장 직에서 물러 나신 김수형 조합장 할배의 모친이 된다.
일제 시대는 어느 농촌이나 마찬가지 였지만 초근 목피로 겨우 목숨만 연명하던 처지라 우리 마을도 살림이 넉넉한 집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산 할메네는 아베 말씀에 따르면 부농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송구죽으로 연명할 때도 쌀밥만 해 먹어도 살림에 축이 가지 않을 만큼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산할메네는 다른 사람이 송구죽을 끓여 먹으면 동네 사람들과 똑 같이 송구죽을 끓여 자셨고, 다른 사람들의 의복이 험하면 똑 같이 험한 옷을 입으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기제사에 올리 메쌀이 없으면 으레 아산할메에게 부탁을 했고, 아산할메는 동네 사람들이 안볼 때 저녁무렵에 몰래 쌀 한 바가지를 퍼서 우리 집에 전해 주었다고 한다. 물론 아산할메가 우리집에만 잘 해 준 것은 아니다. 동네에 병 들고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몰래 쌀 한바가지를 퍼서 어둠을 타서 전하곤 했단다. 나는 아산할메가 잘 살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 아산할메의 선행은 아버지께 전해 들은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어릴 적 할머니가 아산할메한테 잘 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하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단순히 할머니와 같이 장사를 다니셨기 때문에 친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 지도층의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경주 최부자가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들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흉년에 빈민을 구제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옛날에는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입고 같이 살아갔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다. 모든 가치가 교환가치, 화폐가치로 치환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너무 인간다움이 없다. 말로는 천민자본주의를 욕하면서 정작 자신은 철저한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현대인이다.
조금만 옆을 돌아보며 살자. 이웃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살자. 초근목피 시절 아산할메가 하셨던 것 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이웃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대이다.
첫댓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일입니다,아산할메의 아름다운 선행을~~~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