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일찍 먹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락산을 다녀온 산행(山行) 후기(後記)를 쓰느라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밖에서 쿵쿵 대포 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불꽃놀이 하는가 봐요."
소리만 듣고도 알아 맞추는 아내의 말대로 창 밖 올림픽공원의 밤하늘에서는 화려한 불꽃쇼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책상 위에 있던 카메라를 찾아 들고 불꽃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오늘은 12월 4일 일요일, 2005 경륜(競輪) 시즌이 끝나는 날, 자축행사로 불꽃쇼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불꽃쇼는 화려하지만 경륜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모습도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경륜운영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오늘로써 올림픽공원 안에서 열리던 경륜장이 완전히 폐장되고,
내년부터는 경기도 광명시에 새로 지은 지붕이 있는 큰 경륜장으로 이전(移轉)한다는 새로운 뉴스가,
나를 놀라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고 걱정이 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매일 저녁 운동을 하러 길 건너편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정말 올림픽경륜장이 보기 싫었습니다.
"그린 스포츠 경륜 !",
-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나에게 경륜은 카지노처럼 고스톱처럼 한낱 도박(賭博)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 넓은 주차장과 길을 가득 메우는 자동차들.
- 자가용도 있고, 택시도 있고, 트럭도 ,버스도 , 봉고차도, 크고 작은 화물차도 있고,
오토바이까지 자동차 전시장으로 변하는 올림픽공원과, 춘하추동 사계절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눈 비 올 때 가리지 않고
한참 일할 때 일할 사람들이 꾸역꾸역 찾아 들어가는 경륜장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어떤 때는 차라리 지진이라도 나서 경륜장이 무너졌으면, 어이 없는 바램까지 가져 보았습니다.
지금도 남2문 경륜장 입구에는,
"100원으로 그린 스포츠 경륜을 즐길 수 있다."는 프랑카드가 빛 바랜 기간만큼 걸려 있지만,
경마장을 들락거리다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를 타고,
거기에 경륜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가정 파탄과,
'인생에 종(鐘) 친 사람들'의 소식은 나의 분노를 더 부채질했습니다.
처음의 100원이 천원이 되고 만원 십만원 백만원으로 커지는 것이 도박의 생리(生理)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 쓰러진 사람은 선수만이 아니겠지요. 그리고 돈도 날아가고요.
마지막 경주가 끝나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경륜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입니다.
나의 편견도 많이 들어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륜에 대한 분노는 적개심으로 변한지 오래입니다.
경륜에 건 돈으로 식구를 위해 썼으면 그 집은 얼마나 평화로운 가정이 될까, 상상을 해 보지만,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은 소풍 나온 사람처럼 처자식까지 거느리고 경륜장을 찾아 사행심리를 부추기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도박은 아편처럼 중독 증세가 강합니다.
호기심에 첫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도박의 유혹에 사로잡히고 만다는 것이 내가 경륜을 미워하는 이유입니다.
도박은 '땀 흘려 번 돈'의 의미를 비웃습니다.
또, 경륜의 수익금을 아무리 좋은 데 쓴다고 해도 수단이 나쁘면 그 돈은 '더러운 돈'이라는 게 나의 지론입니다.
더우기 지난 가을, 경륜장 들어가는 남2문 쪽 가로수를 네온싸인으로 장식해 놓아 불이 들어오면,
붉은 불이 번쩍 푸른 불이 번쩍 카바레 간판 같아 그 천박한 안목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바람이 부는 날, 추운 날이면 나는 가끔 창문을 열고 경륜장을 바라봅니다.
길 건너편 쪽에 경륜장이 있어 주차하고 있는 자동차며,
그 나쁜 날씨에도 사람들이 웅크린 채 돈을 걸고 요행을 기대하는 모습이 먼 발치에서도 보여 나의 분노를 치솟게 했습니다.
한 달 전인가, 나는 [우리집 이야기]에 "그 남자는 울고 있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올려 놓고 글을 쓰다가,
내가 너무 감정적(感情的)인 것 같아 쓰기를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운동을 하러 [서울 시내에서 걷고 싶은 10 곳]에 뽑힌 아름다운 길 올림픽공원 남1문 길을 지나
남2문으로 가던 도중 은행나무 밑에서 울고 있던 '그 남자'를 본 것입니다.
먼 곳에서 처음 봤을 때는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린 채 두 팔로 연신 눈물을 닦으며 심하게 울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경륜장 길 가까이니까 나는 당연히 '돈을 잃은 한 남자의 비참한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길 가에서 울고 있다니 !!!

* 경륜이 완전히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기를,
불꽃쇼는 한참 더 계속되다가 멈춰지고 밤하늘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습니다.
마지막 불꽃이 희미한 자국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올림픽공원을 찾는 경륜 도박꾼들의 모습은 볼 수 없어 다행입니다.
그 대신 이 곳보다 여섯 배나 더 크고, 지붕까지 갖춘 광명시 돔경륜장을 찾을 6만 인파를 상상하면,
걱정이 더 크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경마에 경륜에 이제는 경정(競艇)으로 확대되는 추세니까,
담배처럼 매춘처럼 술처럼 사람 사는 사회의 '필요악(必要惡)'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아직도 나는 경륜 같은 도박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평화를 찾은 밤하늘처럼 ,
경륜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면 하는 기적을 이 밤, 맹렬하게 가져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