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을 만났다. 여자로선 김선아에 이은, 아니 그보다 더한 강적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기분 좋게 취했던 적이 있었을까. 사람을 편하게 하는데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는 톱스타 전도연(29)과 8시간 가까이 술 자리를 같이 했다.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는 이내 살아가는 이야기로 바뀌었고, 그 다음엔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내 느낀 건 전도연은 정말 올곧은 생각을 갖고 있는 ‘배우’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자주 찾는 ‘오뎅’이라는 선술집에서 엄청난 양의 정종을 마신 뒤 2차를 갔는데 어딘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전도연인데…
그는 며칠 전부터 다음 달 24일부터 방송될 SBS TV <별을 쏘다> 촬영 중이다. 97년 <접속>으로 영화 배우로 입지를 굳힌 뒤 TV 드라마 출연은 <달팽이>, 딱 한 작품이었다. 전도연이라는 톱 배우가 다시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방송가는 술렁였고, 영화계는 주시했다.
‘왜 드라마를?’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고집하다 보니 날 가두게 됐다. 점점 난 ‘내가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선택할 수 없었다. 주변 상황도 살피게 되고, 작품이 우리 영화계에 주는 의미, 내가 했을 때의 영향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이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나를 한 꺼풀 벗겨내고 싶었다. 풀어낸 다음 다시 꽉 묶으면 되지 않는가.”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드라마를 선택했지만 역시 또 부담감이 느껴진다. “전도연이 나오는데 시청률은 당연히…”라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또한 “전도연인데 당연히 연기가 다르겠지”라고 기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래서 결국 편하지 않다. 편하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어제 눈물 흘리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세상에 눈물 연기는 자신 있는 나인데 눈물이 나오지 않더라. 스태프들이 ‘왜 저러지’ 하고 쳐다보는 것 같아 더 긴장됐다. 결국 그 장면은 다시 촬영하기로 했다.”
술을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가 점점 더 진해졌다. 그는 얼마 전 한석규가 최근 한국 영화중 쓰레기 같은 영화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던 걸 끄집어냈다. “충분히 동감한다. 최근 한국 영화를 보면서 무너질 때가 많다. 영화는 상업적이기도 하지만, 예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영화는 발가벗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는 “19살 때부터 연기 했다. 난 내가 배우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끔찍하게 좋다. (최)민식 형, (설)경구 형, 또 감독들과 술 마실 때 너무 좋다. 내가 이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 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 등이 행복해 미칠 지경이다”라며 다소 과장된 표현까지 썼다.
#난 사랑 받고 싶은 여자다
전도연만한 애교 덩어리를 보지 못했다. 정말 애교가 철철 넘쳤다.
“난 사랑 받고 싶다. 그리고 늘 사랑을 꿈꾼다. 남자 친구가 있을 때가 행복하다. 일, 아니면 사랑이다.” 자신 있게 말했다. “아직 일이 너무 좋아서 그렇지 난 반드시 결혼할 거다”라는 당연한(?) 말도 자신 있게 말했다.
“신문이나 방송에 중계방송 되듯, 내 사랑이 공개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물론 정도껏 했으면 하는 불만은 있지만.”
나이가 드니 여자로선 오히려 점점 더 편해진다고 했다. “20대엔 몸이 자유로웠다면, 30대가 되고 보니(우리 나이로 그는 서른살이다)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면서 그는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옆에 있던 매니저 박성혜 씨도 “난 도연 씨가 예전의 정윤희처럼 추억 속에 남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고 거들었다.
전도연은 “난 스크린에서도 여자로 보이고 싶다. 그냥 생활인으로서 생활 같은 연기를 보이기 싫다. 아줌마가 돼 관객들에게 여자 느낌을 전할 수 없다면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다”고 덧붙였다.
오랜 시간 술잔을 주고 받는 동안 정말 우리에게 이런 배우가 있다는 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진 술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