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前略) -
"뽓타빠다여, 그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한 이야기는 그냥 두십시오. 그 이야기는 세존께서 나중에 들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근래에 며칠간 여러 외도 사문 · 바라문들이 토론 장소에 모여서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때 '존자들이여, 어떻게 해서 산냐의 소멸은 있게 됩니까?'라고 산냐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거기서 어떤 자들은 '존자들이여, 원인도 조건도 없이 인간의 산냐는 일어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합니다. 일어날 때에는 산냐가 되고, 멸할 때에는 무(無)산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산냐의 소멸(消滅)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산냐야말로 인간의 자아(自我)입니다. 그것은 다가오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합니다. 다가올 때에는 산냐가 되고, 물러갈 때는 무산냐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산냐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큰 신통과 큰 위력을 가진 사문 · 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산냐을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합니다. 집어넣을 때에는 산냐가 되고, 빼낼 때에는 무산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산냐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제게는 세존(世尊)께 대한 기억이 일어났습니다.
'오, 참으로 세존이 계시는구나. 참으로 선서(善逝)께서 계시는구나. 그분이야말로 이러한 법들에 아주 능통한 분이시지.'라고. 세존께서는 산냐의 소멸에 대해서 능숙하시고 그 본성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어떻게 해서 산냐는 소멸합니까?
"뽓타빠다여, 여기서 '원인(原因)도 조건(條件)도 없이 인간의 산냐는 일어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문 · 바라문은 처음부터 틀렸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뽓타빠다여, 원인과 더불어, 조건과 더불어 인간의 산냐는 일어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사라진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수행이란 무엇인가?
- 중략(中略) -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다섯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겨난다. 환희로운 자에게는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輕安)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그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떨쳐버림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있었던 그의 감각적 욕망의 산냐는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를 가진 자(者)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수행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무른다.
그러면 이전에 있었던 떨쳐버림에서 생겼으며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는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를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수행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바래었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잔나하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성자(聖者)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사띠하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는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평온에 기인한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평온에 기인한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를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수행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사띠가 청정한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무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평온에 기인한 행복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산냐는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미묘하고 참된 산냐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미묘하고 참된 산냐를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수행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물질(色)에 대한 산냐를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산냐를 소멸하고 갖가지 산냐를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물질에 대한 산냐는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를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수행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수행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識)'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는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를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산냐는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는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무소유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무소유처의 미묘하고 참된 산냐를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산냐는 공부지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산냐는 공부지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공부지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비구는 여기서 초선의 경지에서 고유한 산냐를 가진 자가 되는데 그때 그는 그 경지로부터 다시 제2선이라는 다른 경지로, 다시 제3선이라는 다른 경지로 이렇게 점차적으로 산냐의 구경(究竟)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그가 산냐의 구경에 서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내가 의도하고 계속적으로 (업을) 형성해 나가면 이런 나의 산냐는 소멸하고 다른 거친 산냐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으리라.'라고. 그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지 않고 게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산냐는 소멸하고 다른 거친 산냐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을 체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알아차리는 산냐가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等至)이 있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이전에 알아차리는 산냐가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이 설하신 것을 이와 같이 잘 알겠습니다. '뽓타빠다여, 비구는 이처럼 여기서 (각각의 경지에) 고유한 산냐를 가진 자가 되는데 그때 그는 어떠한 경지로부터 다시 다른 경지로, 이렇게 점차적으로 산냐의 구경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그가 산냐의 구경에 서있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내가 의도하고 계속적으로 (업을) 형성해 나가면 이런 나의 산냐는 소멸하고 다른 거친 산냐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으리라.'라고. 그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지 않고 게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산냐는 소멸하고 다른 거친 산냐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을 체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알아차리는 산냐가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等至)이 있다.'라고."
"그러하다, 뽓타빠다여."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산냐의 구경이 하나라고 천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산냐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산냐의 구경들도 천명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산냐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산냐의 구경들도 천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소멸을 체험할 때마다 나는 산냐의 구경을 천명한다. 이와 같이 나는 산냐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산냐의 구경들도 천명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먼저 산냐가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깁니까, 아니면 먼저 지혜가 생기고 산냐가 생깁니까, 혹은 산냐와 지혜가 전도 후도 없이 (동시에) 생깁니까?"
"뽓타빠다여, 산냐가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산냐가 생기면 지혜도 반드시 생긴다. 그는 그와 같이 꿰뚫어 안다. '참으로 이것에 조건 지워져 나의 지혜는 생긴다.'라고.
"뽓타빠다여, 이런 방식을 통해서 '산냐가 먼저 생기고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산냐가 생기면 지혜도 반드시 생긴다.'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산냐가 인간의 자아입니까? 아니면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른 것입니까?"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는 무엇을 두고 자아라고 이해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거칠고 믈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산냐와 자아는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나니,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 다른 산냐가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산냐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나니,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산냐가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산냐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이 아니며(無色) 산냐로 이루어진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물질이 아니며 산냐로 이루어 진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나니, 물질이 아니며 산냐로 이루어진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산냐가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산냐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저는 산냐가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까?"
"뽓타빠다여, 그대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수행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는 참으로 산냐가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산냐와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 알기 어렵다.“
- 후략(後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