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의 청촌편지[2]】
요즘도 손 편지 쓰세요?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할아버지, 한 장 더 주세요. 또 한 장 주세요. 한 장만 더요... 이번엔 보라색, 빨간색, 파란색....”
손자가 어린이집에서 흥미롭게 배웠는지, 종이를 가위로 오려 각종 모양을 만드는 일에 열중이다.
▲ 손자가 할아버지 편지지를 가위로 오리고 있다.
가위로 오리기 작업하는 과정에서 ‘몰입도’가 높다. 완성하고 나서 ‘성취감’도 대단해 보여서 할아버지는 곁에서 심부름(?)을 열심히 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이제 할아버지는 이런 편지지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구나. 그래도 할아버지는 문방구점엘 가면 예쁜 색깔의 편지지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몇 권씩 꼭 사 온단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손 편지를 자주 썼다. 하지만 이메일과 스마트폰으로 신속하고 손쉽게 소통할 수 있는 요즘, 손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내 서재엔 아직도 색 바랜 옛 편지철이 보관돼 있다. 어느 한 편지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 글씨도 예쁘고, 내용도 따뜻하고 정중하여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은 편지도 상당하다.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이신 장형이 내게 자주 보내주셨던 다정다감한 편지도 그렇고,
▲ 장형이 보내주신 다정다감한 편지
수필가이자 시조시인으로 명성 높으셨던 고 논강 김영배 선생님이 생시에 보내주셨던 원고지 편지도 그렇다.
▲ 김영배 수필가가 보내준 편지
글씨도 명필이지만 그 어른이 반듯하게 쓴 글씨든, 부드럽게 속필로 쓴 글씨체이든 고매한 인품이 묻어난다.
나의 주례를 서주셨던 우선구(禹善求, 초대 충남도교육위원.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 출신. 청남, 정산, 남양국교 교장 등 지냄) 선생님 친필 편지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편지철에서 <보물급>이다.
그 어른은 교육계에 계셨지만 충남 도경(道警)에서 근무했던 나를 줄 곳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친필 편지를 통해 알았다.
충청권 일간지 中都日報에서 나의 특집 기사를 읽고 보내주신 편지다.
貴翰拜誦(귀한배송)
1993.2.5일 자 中都日報(중도일보) 지면에서 윤승원 씨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내 마음 깊이 祝賀(축하)를 하는 次(차)에 글월까지 주어서 더욱 감사합니다.
日日新(일일신)하고 又日新(우일신)하는 성취와 宅內幸福(댁내행복)이 日益繁昌(일익번창)하기를 心祝(심축)합니다.
대단히 반갑고 고맙습니다. (중략) 고맙게도 빼놓지 않고 보내주신 글월과 칼럼, 작품집도 받아 읽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도 훌륭한 수필집이 쌓이는 정성에 감히 칭찬을 드립니다.
때 묻지 않고 잡심이 없는 大自然(대자연) 속에 있는 그대로를 그린 순수한 글월에다가 자기를 과장하지 않는 문맥이 더욱 돋보입니다.
윤승원 씨의 수필 중 ‘말[言]’에 대한 글은 現代版(현대판) 明心寶鑑(명심보감)이니, 요즘 모든 사람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오. 日就月將(일취월장)하는 윤승원 씨의 글 솜씨를 높이 칭찬합니다.
인간이 구비해야 할 ‘5 씨’가 있는데, 그 하나는 마음씨, 둘은 말씨, 셋은 맵시(씨), 넷은 솜씨, 다섯째가 글 솜씨인데, 윤 경장은 5 씨를 모두 갖춘 현대 선비 형이라 부럽고 반갑고 주례를 서준 보람을 느낍니다.
옛날 선비는 1. 道德(도덕) 2. 文章(문장) 3. 節義(절의) 4. 還本(환본) 5. 行世(행세)라 했으니 참고.
가문이 崇祖親宗(숭조친종)하고 兄愛弟敬(형애제경)하며 讀書起家(독서기가)하니 윤승원 씨 댁은 필히 循理保家(순리보가)할 겁니다. 앞으로 일익문장 영창하시기를 심축 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 1993.7.7 禹善求
수많은 명수필을 남긴 고 박연구 수필가의 자상한 편지도 남다른 정성과 품격이 느껴진다.
▲ 박연구 수필가가 보내준 편지
역시 수필 문단에서 명수필로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신 이정림 수필가의 손 편지 글씨체도 참 예쁘다.
편지 내용도 그러하다. 연치 아래인 사람에게도 깍듯하고 정중할 뿐 아니라, 편지 봉투에서 풍기는 어떤 격조랄까, 존경심이 배어난다. 편지지의 색상도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이런 품격과 정성이 느껴지는 편지를 어찌 한 번 읽고 버리랴. 편지철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 이정림 수필가가 보내준 편지
이 분들이 정성스럽게 보내주시는 저서나 편지를 받으면 나도 꼭 우체국에 가서 손 편지 답장을 보내곤 했다.
최근에도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 손쉬운 이메일이나 스마트폰 카톡으로 대신하기 어렵다.
가까운 곳에 사시는 원로 문인이 있다. 이 어른은 내게 “가까운 이웃에 살면서 굳이 우편으로 책을 보낼 필요가 있느냐, 직접 가지고 가겠다”라고 미리 예고한 뒤, 내 집을 찾아왔다.
내가 감사하는 마음을 붓펜으로 한 줄 써서 봉투에 넣어 드렸더니, 놀라워했다.
▲ 김영훈 작가에게 보낸 필자의 답장
최근에 쓴 또 한 통의 편지는 은옥진 수필가에게 보낸 답장이다.
원로 수필가는 조선일보에서 나의 에세이를 읽고 이른 아침에 반갑게 전화를 주셨다. 고마운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 은옥진 수필가에게 보낸 필자의 답장
늘 따뜻한 격려 전화만 받고 답례를 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하다가 나의 졸저 문집을 보내 드리면서 편지도 동봉했다.
원로 문인은 편지를 받자마자 따뜻한 정이듬뿍 담긴 전화를 주셨다.
편지철에는 이밖에도 수많은 귀한 편지가 있다.
오늘은 그리운 형님의 육필편지와 이미 고인이 되신 존경하는 수필가의 편지, 그리고 남달리 품격이 느껴지는 원로 문인 몇 분의 친필 편지만을 소개했다.
요즘 웬만한 소통은 손쉬운 카톡과 이메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꼭 손 편지를 꼭 드리고 싶은 분들도 있다.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고 풀을 바르는 일,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일은 번거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손자가 할아버지 편지지를 가위로 오리는 광경을 보면서 이런 글을 쓴다.
손자가 종이를 자꾸만 더 가져오라 해도 이 할아버지는 <고급 편지지>가 아깝지 않다. 손자가 이 고운 종이의 용도를 곧 알게 될 테니까. ■ 2018.12.16.
▲ 앞으로 이 편지지에는 어떤 분에게 내 마음의 풍경을 담아 보내게 될까? 스마트폰 시대 번개처럼 빠른 카톡으로 편지를 대신하게 될까? 아무리 그래도 손 편지만 한 따스한 체취와 정성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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