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4.
백운동 원림, 겨울
날이 밝았다. 그리운 곳! 해남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다. 처음은 항상 중요하다.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심한 무지렁이 처지에서는 작은 것에도 큰 의미를 두어야 강한 추진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보훈 시설이 우선이다. 영암에는 낭산 김준연 선생 기념관이 있다. 방명록에 올해 첫 작성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업적인 헌법제정을 생각하면 흔들림 없이 강력한 법치국가이기를 기원한다. 월출산 온천에서 간단하면서 확실한 결론 하나를 얻었다. "전라도 온천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모든 온천에는 가공 입욕제의 한 종류인 물이 미끄러워지는 약을 탓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본다. 확인한 바는 없으나 그렇지 않으리라 굳게 믿는다.
필연이다. 이리로 달려 온 데는 이유가 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이 오랜 세월을 머물렀던 땅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내 삶의 등대였다. 가야 할 목표였으나 아둔하여 길을 잃었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숱하게 미루었던 비루한 날들이었다. 등대는 여전히 멀고 이제는 빛조차 잃어 가물거리고 있다. 다 포기하고 모두를 버리더라도 다산의 고뇌만은 터럭만큼이라도 느끼고 싶다. 필연을 가장하여 위안이라도 받아야겠다. 눈에 보이는 마지막 양심이라도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으나 복원되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1812년 제자들과 월출산을 다녀와 하룻밤을 머문 뒤 아름다운 풍경을 잊지 못해 초의(草衣禪師 意恂, 1786~1866)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한다. 초의가 제4경(홍옥폭), 제10경(풍단), 제11경(정선대), 윤동(1793~1853)이 12경(운당원) 1수를 쓰게 하여 12곳의 아름다운 경승을 칭송하는 시를 남긴다. 4대 주인 이덕휘에게 선물한 <백운첩(白雲帖)>의 그림과 시는 백운동 원림을 복원하는데 근거가 되었다고 전한다.
백운동은 원림(園林)이다. 자연에 약간의 인공을 적절히 가하여 자신의 생활 공간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배치한 별서(別墅) 정원이다. 별서 정원이란 요즘 흔히 말하는 농막을 일컫는다. 조선 중기 이담로(李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白雲洞(백운동)이라고 새기고 꾸민 원림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라 한다. 담양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을 포함하여 호남의 3대 정원 중에서 하나이며 조선 중기 혼탁한 세상을 피해 절세한 선비들의 은거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다산의 눈이 필요하다. 유배 생활 11년째의 다산을 이해해야 한다. 쉰의 나이면 그의 공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제, 다산이다. 백지에서 출발하니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찾아서 읽고 쉴 새 없이 답사하다 보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산의 마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산은 1801년 2월 포항 장기로 유배된다. 그해 11월 전라도 강진으로 이배되어 1818년 8월에 18년 동안의 귀양살이를 끊고 남양주 마재로 돌아간다. 말년을 저술 활동에 힘쓰며 여생을 보내다 1836년 2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74세였다.
해남 이틀째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강진 월출산 남쪽의 어마어마하게 넓은 설록 다원 녹차밭을 걸어 백운동 원림을 답사한다. 바닥에는 차나무가 푸르다. 고개를 들면 대나무 푸른 잎들이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다. 자이당(自怡堂) 마당 끝 돌기둥에는 白雲山庄 岄主(백운산장 월주), 複人複地 笛齋(복인복지 적재) 라고 음각되어 있다. 사람이 복을 받고 땅이 복을 받는 백운산방이란 뜻이다.
꽃은 피고 만다. 동백 숲에서 붉은 꽃을 피우면 곧장 달려가리라. 홍매화 향이 퍼지는 날이면 자이당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도 남겨야겠다. 참꽃 몽우리가 움트려고 한다.
첫댓글 오빠 이제 글을 진짜 잘 적는다
진짜다 이제
설마. 너그 오빠니까 글치.
온천이 매끄러운거는 확인해보자
전라도 온천은 허빵이다. 성곡 온천만한 곳이 없다. 너무 아쉽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