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는 고난에 대한 의미를 잘 해석해 주는 책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아보려는 사람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잘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욥기 1-2장에 보면 꼭 같은 말씀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면서 욥이 어떠한 인물이었나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었느니라." 욥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었느니라."
이상의 세 말씀에서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욥에게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남 3녀 자녀를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온 몸에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기 악창이 났습니다. 욥은 재 강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했습니다. 그이 친구들조차 동정하고 위로하는 말 한마디 없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니 어서 속히 회개하라고 타이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자기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욥기의 핵심절이라고 볼 수 있는 말씀이 바로 욥23:10의 말씀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즉 그가 받고 있는 고난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단련하시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난의 도가니를 통하여 단련하신 후에는 자기를 정금같게 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았던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5)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고 그 고난 중에 고백하였습니다. 후에는 욥이 자기를 위하여 비난하며 조롱하던 친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욥이 당하는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고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에 복을 주시 처음 보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당시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켜 사는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믿음을 지켜 살기 위하여 온갖 박해와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던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입니다. 베드로전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고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받으셨지만 잘 참으셨다고 말씀하며 이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4:16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가하면 베드로 자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벧전5:1)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바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란 말씀입니다.
몽골지방에 가보면 산에 에델바이스가 많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에델바이스는 작지만 강한 꽃입니다. 고산식물인 에델바이스는 아주 추운 겨울에 눈 속에서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맺습니다. 훈훈한 봄 바람에 눈이 녹으면 에델바이스는 청초하고 앙증스런 자태를 드러냅니다. 에델바이스는 시련을 극복해낸 인고(忍苦)의 꽃입니다.
이 꽃은 폭설과 강풍을 견뎌냈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일교차와 추위가 심할수록 에델바이스는 신비로운 색을 발한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은 만드는 명장들은 일부러 북풍을 맞아 남쪽으로 구부러진 나무를 재료로 선택한다고 합니다. 모진 북풍과 혹한의 밤을 견디어 낸 나무가 보통 나무보다 훨씬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단련하는 통로입니다. 요한 세바스챤 바하는 열 살이 되기 전에 고아가 되었으며 배고픈 소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형은 가족을 부양하기 힘겨워 동생들을 증오했다고 합니다. 바하는 결혼한지 13년만에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했습니다. 그는 20명의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에 10명은 10살 이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명은 정신박약아였습니다. 그는 인생 말년에 시력을 잃었으며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 끊임없이 불후의 영작을 남겼습니다. 그의 모든 악보 위에는 Soli Deo Gloria(하나님께만 영광)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교회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인물은 모두가 다 이 연단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 반대로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잠시 풀려 나왔을 때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주일 예배 시간에 "5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내용이었는데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오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고 한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 두 달, 일 년, 십 년 계속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여 순교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