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
이방인을 위한 사도인 바울은 만일 비유대인이 회개하고 믿어 주께로 돌아온다면. 그들은 유대인이 되거나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이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행 15:1)과 갈라디아 교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행15장에서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되어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썼던 바로 그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이것은 여전히 논란거리였으므로 바울은 이런 문제에대해 쓰는 것이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자들을 삼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행하는 것은 단지 외면적인 의식, ‘육체를 신뢰’하는 문제가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1-3절).
4-6절에서 바울은 자신도 ‘육체를 신뢰’(유대인으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자신의 종교적인 삶에서 유익한 것으로 여겼던 일곱 가지(8일 만에 할례받은 것,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나서 자란 것, 자신의 지파가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난 베냐민 지파인 점, 히브리인 부모의 아들로서 아람어를 말할 수 있는 히브리인이라는 점, 바라새인인 점, 열심히 있었던 점, 흠이 없었다는 점 등)를 열거합니다(5-6절). 하지만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이 모든 유익을 하나의 큰 해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모든 것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결정하였고, 이제 그의 소원은 단지 믿는다는 조건으로 제공되는 하나님의 선물인 ‘의’에 근거하여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를 아는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7-11절). 이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 곧 그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과 구원의 복음이 모든 백성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고난과 역경에 맞섬으로써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인데,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이 두 가지 사실이 항상 공존해야 하는 듯 합니다.
빌립보 교인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함(마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이라는 목표에 이르렀거나 ‘도달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완전함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바울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된 그 큰 목적을 잡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아직 잡지 못했고, 오히려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14절). 그러면서 빌립보인들이 따라야 할 본으로서 자신의 본을 들고 있습니다(15-17절).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 고난에 참여함’(10절)을 받아들인 것처럼, 빌립보인들도 십자가가 중심이 되는 삶(1. 영생을 소망하며 사는 삶, 2.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러나 빌립보인들의 일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소원을 ‘그들의 신’으로 삼았고, 실제로 부끄러운 일을 자랑하였고, ‘땅의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길에 있었습니다(18-19절). 그런 가운데서 바울은 참 그리스도인들은 ‘땅의 일’에 대한 소원이 삶을 지배하는 자들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삶과 시민권이 바로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0-21절).
빌립보서 4장은 바울의 호소와 개인적인 메시지와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대한 감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그들에게 어떤 세력이 공격해도 물러서지 않을 결심을 한 군인처럼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절). 그런 다음 2-3절에서 그들의 삶을 훼손시키고 있는 한 가지 다툼, 곧 ‘유오디아’와 ‘순두게’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고, 또한 그가 신뢰하는 동역자 중 한 사람에게 그들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부탁하며, ‘글레멘드’라는 사람과 그 외에 동역자들도 도우라고 합니다.
또한, 바울은 4-7절에서 주안에서 기뻐하고 기도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모든 일에 대해서 기도를 할 수 있다면 염려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염려가 기도로 바뀔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들어오고, 그 평강은 두려움이나 염려나 유혹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의해 제압당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감정을 지키는 보초 노릇을 합니다(6-7절). 이러한 사실이 매일의 삶 가운데 증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에 충만해야 할 것들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것들을 붙들라고 합니다(8-9절).
10-20절은 빌립보 교인들이 보낸 선물에 대한 바울의 태도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의 선물을 기뻐합니다(10절). 그들의 선물이 바울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었지만, 그는 그 선물에 의존하지도 않았고 또 더 많은 선물을 받아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부족하든지 풍부하든지 간에 외적인 환경에 대해 자족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11절). 그리고 그의 자족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곧 살아 계신 주 예수로 말미암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13절). 이는 예수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것이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엡3:8)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런 기본적인 영적 원리에 대해 말하면서도,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감사한다는 것을 확언합니다. 그 선물(아마 물질적 도움인 듯 함)은 그가 ‘괴로움’에 처해 있을 때 그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다(14-16절).
그러면서 바울은 17-18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이 그들 자신에게 ‘유익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기독교의 헌금은 헌금하는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한 것은 주님을 위해 한 것으로 인정되고(마25:40) 이것이 곧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고 합니다(18절).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분량은 어떤 인간이 주는 것보다 무한히 큽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공급하신다고 하는데(19절), 이 약속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인사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20-23절).
주 안에서 우리 또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하나님을 떠난 심령의 우선순위는 눈앞에 보이는 땅의 일에 있고, 그들이 기뻐하는 땅의 것들은 하늘 시민권을 가진 성도에게는 가치없고 자랑하기 부끄러운 것들뿐일 것입니다.(3:18-20)
그렇긴해도 우리가 사는 이세상이 불완전하고 깨져 있기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안에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듣고 배운대로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4:6)
자기만족에 찌든 세상처럼 화합하지 못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그것에 불편을 느끼기보다 그게 자연스런 세상이치라는듯 수긍하며 넘어갑니다. 하지만 바울은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사실앞에, 모든 것을 아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소한 차이는 내려놓고 한 마음을 가지라고 촉구합니다.(4:1-2)
이게 가능할까? 사람이 변하나?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주님께 나의 파편화된 마음까지도 맡길때 하나님의 평안안에서, 교만과 분란과 다툼, 실망대신, 참되고 경건하고 옳은 것이 내안에 열매맺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믿으며 아멘합니다.(3:21, 4:7-8)
참되고 경건하고 옳은 것으로 열매 맺게 되기를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고 알아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고, 주님을 찬양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에게 유익하던것도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해가됨을 인정할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모든것 위에 가장 소중한것임을 아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해 봅니다.
귀한 생명을 허락해 주심에 주은혜 감사합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깊어갈 수록 자유함과 은혜가 차고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