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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다리 농게를 찾아 떠난 순천만
일몰이 아름답다는 순천만 습지가 TV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때마침 세계순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으니 짝다리 농게에 이어 꽃구경도 실컷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광명역에서 순천역까지 기차표를 망설임없이 예약했다. 매번 생각만 하다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물쭈물 하다 내 그럴줄 알았다'는 유명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지명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이루지 못하는 삶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살 것 같았다.
첫째 날 : 순천만 습지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순천역에서 내렸다. 순천역 앞에서 시내버스 66번을 타고 20여분을 가니 순천만습지 입구가 나왔다.
경로는 무료인데 반해, 일반 입장료가 15,000원으로 다소 비싼 느낌이 들었다. 할인이 있는지 찾아보니 누구나 전남도민증을 다운받아 보여주면 50% 할인해 준다. 전라도에 살고 있지도 않은데 도민증이라니 뭔 속셈인가. 속는 셈치고 인터넷에 접속하니 쉽게 도민증이 나온다. 더구나 입장권 한 장으로 순천만습지와 순천국제정원박람회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표를 잘 모시고 다녀야 한다.
순천만자연생태관과 순천만천문대
박람회장 정문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니 순천만자연생태관과 순천만천문대가 보인다. 천문대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천체 투영실에서는 별자리 영상을 누워서 볼 수 있다. 야간 8시~9시쯤 시간이 허락된다면 순천만천문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여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의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뻥 뚫린 순천만습지에서 별자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황홀한 일이다.
서귀포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주변에 천문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하루전날 예약하여 장수별 노인성이라는 별을 찾아본 적이 있다. 잊고 있었던 별자리를 찾아보면서 여행이 더욱 행복하고 특별해진 경험이 있다.
순천만습지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순천 시민들의 자부심이 크다. 갈대밭 사이로 천천히 하루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우리나라 최대의 갈대 군락지이자 세계적인 희귀조류 서식지인 순천만은 갯벌, 갈대, 철새의 낙원이다. 총 93,840ha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습지인데 습지 위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노약자나 휠체어를 타신 분들도 쉽게 산책할 수 있다.
맨발로 걷는 어싱길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어싱길이 나온다. 양말을 벗고 걸어보았다. 처음에는 마사토라서 그런지 발바닥이 따끔거리더니 이내 고운 황톳길이 나와 발바닥이 편안해진다. 어싱길 중간과 끝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이 센스있게 마련되어 있어서 맨발에 묻은 흙을 말끔히 씻을 수 있다.
스카이큐브와 갈대열차
일부 여행객들은 날씨가 뜨겁고 걷기 힘들어서인지 정원역에서 스카이큐브를 타고 순천만역까지 오기도 했다. 스카이큐브 티켓이 있으면 습지 안으로 가는 갈대열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습지대대 선착장이 있는데, 이 곳에서 생태체험선을 타고 습지 S자 수로 6km를 30분 정도 탑승하여 순천만을 체험할 수 있다. (생태체험선 7,000원, 신분증 지참)
순천만 짝다리 농게
다리를 건너면 습지를 걷는 길이 시원하게 펼쳐져 한 눈이 보인다. 뻥 뚫린 벌판에 초록초록한 갈대가 아주 너른 청보리밭 같다. 시야가 시원하다. 가을이 되면 갈대밭으로 뒤덮여 또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눈을 돌려 데크 사이 뻘을 바라보니 뭔가가 꼬물거린다. 내가 보고싶어 했던 농게이다. 다리 하나만 큰 짝다리게가 득시글득시글 뻘밭을 점유하고있다. 농게는 너른 뻘밭에 집게 다리 하나를 높이 쳐들고 뻘속으로 들락날락하고, 짱둥어는 온몸을 뻘에 비비며 습지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신기한 풍경이다. 뻘밭 안에는 숨어서 무궁무진한 생명들이 살고 있었다. 조용히 숨죽이고 기다리면 많은 생명들이 활개를 치고 살아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그 갯벌을 사이에 두고 사뿐사뿐 걸어본다. 사람들은 갈대열차 정류장에 앉아 그들을 보며 쉬고 있다. 울긋불긋한 등산복에 순천여행의 즐거움이 묻어있다.
순천만을 감상하기 좋은 용산전망대
낙조 명소로 많은 용산전망대로 갔다. 천천히 걷다보면 두 시간이 소요된다. 용오름다리인 흔들다리를 지나고 대숲쉼터를 지나면 용산전망대가 나오는데 멋진 갈대밭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 물길과 닿는 지점까지 걸으며 바닥도 들여다볼 수 있다. 갈대밭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전망대에서는 S자 갯골이 보이고, 원형 갈대군락 순천만 습지가 한 눈에 보인다. 넓은 갈대밭과 광활한 갯벌로 어우러진 순천만을 감상하기 최고의 장소이다. 다시 오던 길로 나오면 남파랑길이 연결되어 있다. 여력이 된다면 자전거를 타고 남파랑길을 따라 뚝방 옆으로도 가보는 것도 좋다. (자전거 대여료 10.000원)
순천꼬막정식
순천에 왔으니 순천꼬막정식을 먹기로 했다. 순천은 꼬막집들이 엄청 많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을 기준으로 '남도밥상'에 대기줄을 간신히 섰다. ( 남도탕 꼬막정식 1인분 26,000원) 꼬막무침, 돌게장, 짱뚱어탕, 가자미구이, 꼬막전, 꼬막탕수, 피꼬막 등 꼬막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다 나왔다. 가짓수는 많은데 남도 음식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지 음식에 특별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입로가 아름다운 선암사
선암사에 겹벗꽃이 피었다해서 부지런히 선암사로 갔다. 선암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사 7개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는 선암사를 등재하면서 지나친 개발 및 신축행위를 삼가할 것 등 몇 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했다고 한다.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이 옛스럽고 계곡의 물과 함께 아름다워서 순천만 습지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주었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기왓장 하나에서도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보이고, 때마침 핀 겹벗꽃은 운이 좋아 눈에 가득 넣을 수 있었다.
오로라 핑크빛은 덤, 나의 해마 폴더에 화려함이라는 파일로 저장해놓았다.
순천자연휴양림
지방 여행할 때마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숲나들e' 라는 사이트를 종종 이용한다. 가격도 착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공기좋은 숲속에 통나무집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천에는 두 개의 자연휴양림이 있었다. 숲속에 오도마니 자리잡은 통나무집은 아담하지만 독채라서 편안하고 쾌적하다. 들어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삼겹살과 맥주를 샀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먹고 행복한 오늘을 감사하며 건배했다. 숲속 통나무 집은 바닥이 펄펄 끓을 정도로 방이 따뜻하여 여행자의 쉼터로는 안성맞춤이다. (6명 투숙 가능한 숙소 가격 : 80,000원)
둘째 날 : 순천만국가정원
휴양림 통나무집에서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누룽지와 김치로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공기가 좋아서인지 김치 한 가지 만으로도 맛있다. 휴양림 주변을 가볍게 산책한 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순천만국가정원으로 향했다.
국가정원으로 가는 길에 미곡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 '브루웍스'에 들렀다.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자동차들이 몇 대 있고 천장과 벽은 공장에서 쓰던 기계들로 꾸며 있었다. 이방인이 되어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각별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여행의 연속선상에 있다.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4월 1일부터 10월31일까지 열리고 있었다. '정원에 삽니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식물원과 미래 정원을 체험할 수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국제정원식물원을 들러 연결된 다리를 건너면 지하 전시 공간 시크릿가든에 도착하게 된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얼음동굴, 미디어아트 공간인 식물극장을 보면서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을 미래에는 영상 연출을 통해서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아껴쓰기, 불편해도 대중교통 타고 다니기 등 쉬운 것부터 함께 참여하여 숲을 살리고 지구 온난화 속도를 늦춰야겠다는 메시지도 받는다.
순천 동천변의 화려한 경관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국가정원과 도심을 잇는 뱃길을 복원하여 배가 다니고 있었고, 순천만 습지까지 주변 농경지를 활용하여 꽃을 심어놓아 대규모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원드림호 배삯, 편도 8,000원, 왕복 12,000원)
꿈의 다리는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이다. 긴 지붕이 있는 인도교로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어린이 그림 14만여 점으로 꾸며져 있어 이채롭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공식 마스코트 '꾸루꾸미'는 순천시의 새이자 순천만을 대표하는 흑두루미를 의인화한 캐릭터이다. 꾸루와 꾸미는 꾸르르 우는 흑두루미의 울음에서 착안하여 이름지었다 한다.
쉴랑게 가든 스테이
국가정원 안에 박공지붕 삼나무 캐빈이 여러 동 있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각 텐트 언저리에 작은 텃밭이 있어서 1박2일 정원체험을 할 수 있는 쉴랑게 가든스테이라 한다. 언뜻 들으면 전라도 방언처럼 들리는데 Shi와 Lange의 합성어로 길게 조용히 쉬려는 마음을 담아 만든 숙소라 한다. 텃밭과 화분을 꾸미고, 식물을 그리는 등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고, 순천 식재료를 사용하여 저녁, 간식, 아침이 제공된다고 한다. 특별한 날 가족이랑 가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1인 30만원, 2인에 55만원으로 요금이 비싼 편이었다.
여러 나라의 정원들
12개 나라의 세계정원 중 긴 회랑을 상징하는 아치형 구조물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분수시설을 갖춘 스페인 정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두고 떠나야 했던 마지막 무어왕 보아브딜의 아쉬움 가득한 눈물이 분수 위로 떨어지는 듯 하다. 타레카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멕시코 정원은 국화인 달리아, 야자나무, 다양한 식물로 꾸며져 화려한 색으로 눈에 확 뜨였다. 네덜란드 정원은 풍차와 튤립이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쳐져 있고,
이탈리아 정원은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메디치가문의 빌라정원을 재현했다. 지형을 살리기 위한 계단식 설계, 나들의 조화로운 배치가 예술적으로 잘 어울린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정원 앞에 서 있는 영국 정원, 한 켠엔 빨간 색 공중전화박스도 예쁘게 서서 한몫을 하고 있다. 빨간 공중전화부스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일본 정원과 태국 정원을 감상하고 봉화언덕으로 올라갔다. 고요한 호수 중간에 떠있는 낮은 동산들의 순천호수정원은 순천의 지형과 물의 흐름을 잘 살린 디자인으로 자연스러운 형태로 구성되어있고 그 중심에 봉화언덕이 있었다.
여러 나라의 정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슬슬 고파졌다. 순천도깨비에 가서 우럭회 정식을 먹었다. 우럭회, 전복회, 소라찜, 새우찜, 가리비찜, 멍게, 통우럭매운탕이 나와서 가성비가 좋았다 (1인분 25,000원)
순천 드라마 촬영장
순천 드라마 촬영장은 1960년대 순천 읍내, 1970년대 서울 달동네, 1980년대 서울 변두리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실제로 철거 당시 버려진 건축자재로 세트장을 지었기 때문에 몹시 실감이 난다. 남여 교복도 대여해 주는데 (대여료 3,000원), 교복을 입고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과 향수를 느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입장료 성인 3,000원, 경로 무료)
1박2일 순천 여행을 마치고 순천역에서 18시 27분 기차를 탔다. 집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나의 화양연화를 생각해 본다. 나의 화양연화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이 바로 화양연화인 것 같다.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30여년간 1,600여점의 그림을 그리다가 101세에 세상을 떠난 미국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처럼 나이는 상관없이 꿈꾸는 사람은 아름답다.
눈을 감고 여행 스케치하는 꿈을 꿔본다. 수리산을 걸으면서 사색하고, 라인강을 따라 걸으면서 노래했던 시간들이 내게 화양연화였다. 내가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노트북 앞이 아니라 언제나 파란 하늘 아래였다. 이번 순천 도보여행도 화양연화의 일부분이다. 순천만습지와 순천정원, 그리고 선암사를 걸으면서 쉼표 하나 찍는다. ♤
삶의 향기 2023 봄
첫댓글 후정 선생님, 순천만국가정원에 다녀오셨군요. 저는 작년에 봄꽃 필 무렵에 다녀왔답니다. 다시 가도 좋은 곳입니다. 상세한 안내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