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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小勝氷瀑이 초등됐다 - 월간산 89년 2월호 게재 등반이 불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던 설악산 소승폭빙폭이 청악산우회(회장 장기활)의 김운회(28)·이합승(25)회원에 의해 작년 크리스마스에 등반되었다. 구간별로 난도로 봐서는 대승폭보다 한 수 위지만 종합적인 등반차원에서는 대승폭과 토왕폭에 못미친다는 것이 소승폭을 오른 청악인들의 공통된 경해다. 청약팀이전에 소승폭이 등반되었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 기록으로 보고된 바는 없다. <편집자 注> - 김 종 선 - 88년 12월 24일 성탄전야. 제기동에 있는 미도파백화점 앞에 회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합승, 석근, 명식이가 이미 와 있고, 이어 운회와 금석이가 왔다. 용문이는 사정이 생겨 못간다 하니 답십리에 들러 준비한 찌개거리를 받아야만 했다. 용문이 집에 도착하니 찌개거리가 아닌 배낭이 들어온다. 그새 사정이 호전되어 갈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오후 8시 40분경 답십리를 출발, 이제 우리 일곱명은 설악으로 향했다. 간혹 마주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으며 보름달빛에 몹시도 밝은(?) 산야를 바라보며 우리만의 세계와 시간을 갖기 위해 신나게 달렸다. 11시 50분경, 한계령 밑 소승폭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정된 야영장에 봉고차 한 대가 주차해 있고, 창문에는 붉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ABC MAT'라고 쓰여 있는게 아닌가. 어느 산악회의 회기인양 착각을 하고 우리보다 먼저 소승폭을 노리는 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긴장했다. 아침에는 부지런을 떨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로스구이와 소주 한 잔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새벽 1시 5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 25일 아침 7시에 기상하자마자 먼저 옆의 차에 신경을 쓰며 어떤 팀인가를 살펴보았다. 빙벽장비가 하나도 없는 것을 확인 하고는 안도의 숨을 쉬며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 밥하는 냄새도 구수하고 어제 명동에서 직배급한 섞어찌개가 후각을 자극했다. 섞어찌개로 식사를 마친 후 등반장비를 갖추고 9시 40분에 소승폭을 향했다. 약 20분 후 폭포 밑에 도착하니 꽤나 어려워 보이는 고드름이 위협적으로 내려다 본다. 새로 구입한 장비를 고사 지내고 등반준비를 했다. 나는 나의 능력을 벗어난 빙폭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촬영담당의 "찍세"를 자청하였다. 사진촬영 장소가 마땅치 않아 우측 벽면을 조금 올라 폭포의 중간 위치쯤 되는 곳으로 올라갔다. 10시 30분, 톱으로 나선 김운회대원이 첫 스나그를 설치했다. 같은 높이의 측면에서 바라본 빙폭은 밑에서 전면으로 바라본 빙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톱인 운회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직상을 못하고 측면으로 횡단을 계속해야만 하는 괴상한 버섯형 빙질이다. 너무나 가느다란 고드름은 아이젠에도 모두 부서져 버리고 만다. 스탠스가 없는 얼음이다. 좋은 팔힘과 고도의 밸런스 그리고 과감한 배짱 등 빙벽에서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구비한 사람만이 리딩이 가능한 그러한 상태이다. 불안하게 선등하는 김운회 대원 약 1시간 가량 등반후 4개의 확보지점을 이용하여 드디어 톱이 40m 높이의 동굴 속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몇 미터를 등반하는 운회의 모습은 상단부의 등반 성공을 의심하게 한다. 후등자인 이합승 대원이 올라가는 중에 피로가 회복 되길 빌었다. 수많은 고드름 낙빙에 안경이 부러지고 낙수에 온몸이 젖고 눈을 뜰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어쨌든 어려운 등반을 마친 운회는 하단보다는 쉬워 보이는 상단에 오를 때는 체력이 회복 되기를 빌어 볼 수밖에 없었다. 합승이가 뒤따라 등반을 하며 스나그를 모두 회수한다. 만일을 위해 모두 회수시킨다. 합승이가 12시 25분에 동굴에 도착했다. 햇살이 폭포를 비추고 상단의 거대한 고드름 기둥은 푸석얼음으로 변하며 순식간에 녹아 내리고 있다. 속전속결로 등반을 마쳐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밑에 있는 회원들은 라면을 끓여 먹으며 신이나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댄다. 지금 운회의 심정은 어떨까?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고 싶다. 운회가 동굴에서 나와 다시 출발하여 한다. 온 몸이 젖어있다 한다. 동굴 속엔 낙수가 무척 심한가 보다. 고드름 기둥벽에 붙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고는 등반을 포기시키고 싶었다. 운회는 모를 것이다. 상단부의 얼음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한편으로 운회의 침착성을 믿어본다. 그런 결정에는 초등이란 욕심도 조금은 작용하고 있었다. 약 4~5m를 오르는 운회의 모습을 보고는 내려오라고 권해 보았다. 첫 번째 스나그를 설치할 때의 그 모습은 나를 당황하게 했고 합승이에게 주의를 시키게 했다. 스나그를 설치했다가는 손으로 당겨 뺐다. 그 자리에 다시 손으로 밀어넣고서 해머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관찰한 것 이상으로 빙질이 급속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켈과 해머에 매달려 쉬는 중에도 운회의 아이젠이 미끄러졌다. 빗물같은 낙수로 인하고 팔꿈치로 눈을 자꾸 비빈다. 장갑을 벗고 손을 비비며 다시 장갑을 끼곤 한다. 그 절실한 몸놀림은 다시 한번 내려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운회는 무슨 생각인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약 7~8m를 다시 올랐다. 빙질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힘을 받으면 해머가 빠져버릴 정도다. 다시 필요도 없는 스나그를 설치하고 운회는 피켈에 매달려 쉰다. 멀리서 봐도 방풍의가 파르르 떨린다. 내가 선 자리에도 바람이 몹시 불고 있다. 운회는 '우-'하는 소리와 함께 춥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는 몹시 힘들어 하면서도 스윙을 계속했다. 이젠 내려올 수도 없다. 앞으로 7~8m만 더 오르면 빙폭의 경사가 죽을 것이다. 길어야 5분이다. 명식이와 석근이에게 간식과 버너를 갖고 폭포 위로 올라가게 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다리까지 후둘거리고 소름이 끼친다. 운회가 완경사의 얼음에 도착했을 땐 오히려 내가 맥이 빠지고 온몸에 힘이 없어 주저 앉고만 싶어졌다. 운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합승이는 등반준비를 한다. 나는 소리소리 질러 운회와 합승이 사이의 통신병 역할을 했다. 운회가 저렇게 고생을 했는데 얼음 상태가 더 나빠진 상태에서 오르는 합승이는 또 얼마나 고생을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확보가 된 상태이니 운회보다는 팔힘이 좋은 합승이가 손쉽게 오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오후 1시 50분경 합승이가 등반할 때도 아이젠이 미끄러진다. 피켈과 팔힘만 믿어야할 등반이었다. 합승이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촬영장소에서 금석이가 갖고 올라온 자일로 하강하여 모닥불가에서 등반팀을 기다렸다. 부분적 난도는 대승폭 웃돌아 약 20분후 모두들 내려와 등반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고생스런 등반도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합승이는 양손에 피켈과 바일을 사용했었다. 해머는 얼음에서 쉽게 빠졌다고 한다. 동굴엔 낙수가 심한데 운회의 방수의가 낡아 온몸이 젖어 추위에 무척 고생이 심했다 한다. 그는 내려오기가 무섭게 속옷까지 갈아 입었다. 합승이는 새로 구입한 방수의 덕에 그 빗속(?)에서도 옷도 안젖고 추운 줄도 몰랐다고 한다. 햇살이 비치기 전인 오전에 청빙이었던 빙질이 오후부터 급변하였고, 중간 확보 지점을 동굴로 정한 것이 고생을 하게된 가장 큰 원인이였다. 소승폭은 상.하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상.하단의 빙질은 전혀 상이한 형태의 얼음이 형성된다. 중간지점에는 동굴이 있다. 폭포 전체는 90도의 직벽이며 길이는 약 70m 정도이다. 하단은 약 40m의 직벽으로서, 버섯형의 얼음이 약 4~5m의 오버행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측 하단에서 촤측 상단으로 경사지게 형성되어 등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야 한다. 손과 발은 들어가고 상체는 뒤로 쑥 빠진 자세가 되므로 많은 팔힘과 정확한 스윙이 필요하다. 한두번 스윙에 실패하면 상채가 뒤로 젖혀져 한 쪽 팔에 매달려도 발이 빠져버리기 쉽다. 상단은 약 30m의 직벽이다. 커다란 고드름의 집합체며, 흡사 대승폭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약 20m는 수직 얼음덩이로 약간의 오버행이다. 상부 10m는 약 60~70도 정도의 완경사이다. 이 빙폭의 난도는 빙폭의 형태에 좌우된다. 빙폭의 형태는 형성되는 시기의 날씨에 의하여 변화하므로 꼭 어떻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우리팀이 등반한 12월 25일과 1월 1일의 빙폭 형태는 비슷한 모양이었음을 밝혀 둔다. 1월 1일은 물이 흐르지 않았다. 순간 순간의 난도는 어느 빙폭에서도 볼 수 없고 고난도의 빙질을 갖고 있다. 토왕폭이나 대승폭에 비하여 빙폭의 길이가 짧은 데다 중간 확보지점의 선택이 유리하여 단시간에 등반을 마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는 얼음이 얼기 전인 작년 11월 13일에 답사를 하였다. 그때는 얇은 얼음이 얼었다 무너져 내린 흔적이 있었다. 그후부터 얼음이 형성되는 시기를 기다려 왔다. 답사시에는 경사도가 대단해 보이지 않았고 폭포의 길이도 짧아보여 누구나 쉽게 등반할 수 있는 빙폭일 것이라 생각 되었다. 그래서 12월 25일에는 아무 부담없이 전회원이 등반하겠다는 목표로 시도했었다. 25일 등반시는 2명이 3시간 45분 가량 소요했다. 재등한 1월 1일에는 2시간만에 등반을 마쳤다. 또다시 시도한다면 1시간 30분 이내에 마칠 수 있을 것이다. 토왕폭이나 대승폭과 같이 초등 후 재등까지의 시간이 몇 년 몇 달이 경과하는 것이 아니었다. 1월 1일 바로 우리 팀에 앞서 M.C 산악회에서 등반이 성공했다. 그리고 한넝쿨산악회에서 등반을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 때문에 올해만도 수십명의 등반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등반대상지를 놓고 초등 운운한다는 것은 넌센스라는 생각이 든다. 빙질이 형성되기 좋은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면 지금보다 휠씬 쉽게 등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88년 이전에 이미 등반이 이루어진 뒤 등반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워 발표를 꺼린 등반자가 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회에서는 종합적인 등반차원(어프로치, 빙질, 빙폭의 형태, 등반시간, 확보, 등반자의 심리, 지원방법, 체력소모 등)에서 평가하여 대승폭과 토왕폭 다음에 소승폭을 두기로 결론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