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의 풀어 쓴 한자 이야기 - 02. 독서(讀書) 2.
필자가 애송하는 한문장(漢文章)이 있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조선 중기 문인 신흠의 시구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매화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필자의 다소 엉뚱한 생각이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는 어떻게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겠다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맑은 바람이 들려주는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잎을 틔웠고, 깨끗한 물이 들려주는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가지를 뻗었고, 밝은 햇살이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소리를 듣고 꽃을 피웠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그렇다. 책 읽는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깨달음의 효험이 있는 것이다. 하여 독서(讀書: 책을 그 내용과 뜻을 헤아리거나 이해하면서 읽는 것)를 이루고 있는 한자를 풀이해 보고자 한다.
읽을 독(讀)은 말씀 언(言)에 팔 매(賣)로 이루어진 한자이다. 말씀 언(言)은 바늘의 모양을 본떠 곧음을 나타내는 매울 신(亖=辛의 변형)과 사람의 입 모양을 본뜬 입 구(口)가 결합 된 한자이다.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으로 바르게 말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팔 매(賣)는 날 출(士=出의 변형)에 살 매(買)을 받친 글자로 일단 사들였던 물건을 다시 내놓아 판다는 뜻이다. 즉, 읽을 독(讀)은 장사꾼들이 물건을 팔 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소리 내어 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독자(讀者: 신문, 책 등을 읽는 사람), 독파(讀破: 끝까지 다 읽어 냄)가 좋은 용례이다.
글 서(書)는 붓 율(聿)에 가로 왈(曰)이 결합 된 한자이다. 붓 율(聿)은 다시 붓 사(肀)와 두 이(二)로 파자해 볼 수 있는데 붓을 손에 들고 있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가로 왈(曰)은 입 구(口) 가운데에 혀를 뜻하는 한 일(一)을 그은 글자로 입을 열어 말하는 모양을 나타내어 마음에 있는 생각을 말로 나타낸다는 데서 ‘가로되’,‘말하다’ 등의 뜻을 의미한다. 서가(書架: 책을 얹는 선반), 서류(書類: 글자로 기록한 문서)가 좋은 용례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 간서치 이덕무는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한 해박한 식견과 정감 넘치는 개성적 문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을 만큼 한평생 책을 놓지 않았다. 그의 저서 『천장관저서』중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독서의 세 가지 효용을 설명한 글이 있다.
독서자이신위상 기차애용 기차엄박(讀書者怡神爲上 其次愛用 其次淹博 : 독서는 정신을 기쁘게 함이 가장 좋고, 그다음은 받아들여서 활용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해박해지는 것이다) 독서의 효용을 어디서 구할까? 첫째는 정신을 기쁘게 함에 있다. 양서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준다. 좋은 책은 사람을 교양시켜 더 큰 뜻을 품게 만들며, 나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다음은 책에서 얻은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써먹으려고만 읽는 것은 나쁘지만, 읽기만 하고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죽은 독서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 세상을 보는 식견과 안목을 높이고 넓히는 것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나를 정신 번쩍 나도록 깨어나게 만드는 독서를 해야 한다.
덧붙여, 이목구심서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다. 배가 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두 배로 낭랑해져서, 담긴 뜻을 음미하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게 된다.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흐르고 돌아 몸속이 평안해지니 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이런저른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이 글자에만 쏠려 마음이 이치와 하나가 된다. 잡다한 생각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병으로 기침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시원스레 통해 아무 걸림이 없어져서 기침 소리도 문득 멎는다.
가난해서 책만 보던 바보 이덕무가 꼽은 독서의 네 가지 유익한 점이 필자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그는 가난해 늘 배가 고팠다. 책을 읽고 있으면 책 읽는 소리를 따라 배고픔이 마술같이 사라졌다. 엄동설한에 방에 떠 놓은 물이 얼 정도로 추웠다. 추워 덜덜 떨려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도 책만 읽으면 신통방통하게도 추운 줄을 몰랐다. 세상살이 고달픔에 괴로울 때도 독서의 시간 속에서만은 무한한 자유의 경계가 펼쳐졌다. 내가 누군지 무엇이 절박한지도 다 잊었다. 기침을 콜록콜록 할 때, 책을 읽으면 판콜에이가 따로 없다.
경남 의령군 명산, 자굴산 산길에 핀 구철초 향기 가득한 가을날, 등잔불 불빛에 책 읽었던 이덕무를 떠올리며 ‘매일생한불매향’을 다시 읊조린다.
| 讀 | = | 言 | + | 賣(士=出) + 買 |
| 읽을 독 |
| 말씀 언 |
| 팔 매 (날 출) + 살 매 |
| 書 | = | 聿(肀+二) | + | 曰 |
| 글 서 |
| 붓 율 (붓 사 + 두 이) |
| 가로 왈 |
첫댓글 오래전 시골국민학교에 도서관이 생겼는데
그 도서관벽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구가 붙었습니다
내게 큰 울림이 있었던 말이라 살아오는 내내 도서관이랑 이웃에서 살고 일하는 터전이 되었습니다
구남중학교 뒤편 구포도서관에 일하러 갔는데 멀리 고향이 보이는 언덕이었습니다
도서관 뜰에 세운 돌비에 같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그 말의 근원을 알게되어 고맙습니다
네, 그렇군요. 책과 도서관과 함께 아름다운 삶 영위 하시길 소망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