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이 피워낸 丁荘花
- 『딩씨 마을의 꿈』에 드러난 두 개의 덫에 관한 이야기
오 낙 영
딩씨 마을 곳곳에 꽃이 만발했다. 하늘과 땅을 온통 뒤덮을 듯이 활짝 핀 신선한 꽃들이 휘날리며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꽃의 바닷속에서 뭔가를 파고, 캐고, 메고, 들었다. 모두 너무 바빠 숨이 차 말을 못 할 지경이었다. (중략) 알고 보니 이 평원의 지상에는 꽃이 만발했지만 지하에서는 금이 잔뜩 자라고 있었다. 리싼런의 손자는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간 황금 콩이 땅 위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169~170)
리싼런이 학교에 들어와 살기로 한 날, 딩쉐이양(丁水阳)이 꿈에서 본 내용이다. '하늘과 땅을 온통 뒤덮을 듯이' 피어있는 꽃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곳에 가득 핀 복숭아꽃과 같다. 무릉도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허상을 좇는 존재이기 때문에 허상 뒤에 도사리고 있는 실상을 외면한 채, 혹은 알지 못한 채 그것에 매몰된다. 딩쉐이양(丁水阳)이 꿈에서 본 꽃들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낙화생(땅콩)같이 뿌리에 금을 키우고 있다. 그러니까 화려한 꽃은 금이라는 탐욕의 외양인 셈이다.
옌롄커가 『딩씨 마을의 꿈』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매혈이나 에이즈로 인한 공동체의 파괴나 그것에서 비롯되는 관계의 파멸은 아닌 것 같다. 더욱 근원적인 문제라고 보이는 인간의 탐욕과 문화(관습과 규범)가 어떻게 자신을 억압하며 세계를 종말에 이르게 하는지 꿈과 신화를 통해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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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국의 농촌은 붕괴되고 있었다. 개혁 개방 초기의 농촌은 향진기업 등의 약진으로 꽤 괜찮은 성과를 내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영기업의 발흥과 상대적으로 품질과 판로에서 뒤처진 결과 처참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소설의 소재가 된 매혈은 이 시기의 무너진 농촌경제가 굴욕적으로 받아들인 '대약진운동' 식의 켐페인이다.
아버지는 줄곧 웅덩이 옆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허리를 굽혀 손으로 웅덩이 안의 물을 떠서 마시더니 손을 씻었다. 그리고는 빙긋이 웃었다. (63)
숨어 있던 금에 대한 탐욕이 싹트는 순간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딩후이(丁辉)는 개혁개방으로 등장하는 졸부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의 끝없는 욕망은 쟈오국장과 결탁하며 권력을 향해 나아간다. 리싼런(李三仁)은 촌장 시절의 권력을 잊지 못하고 잃어버린 관인에 집착한다. 딩유에진과 쟈껀주는 딩량과 링링의 사통을 빌미로 학교 안의 지도권을 찬탈하고 당의정을 입힌 권력의 맛에 취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환자들이지만 학교에서의 공동생활 가운데, 자오씨우친은 쌀을 훔치고, 자오더취안은 링링의 붉은 비단 저고리를 훔친다.
이들의 욕망과 값싼 윤리의식이 매혈을 통해 전염된 열병(에이즈)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열병은 다만 그들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것들을 흔들어 깨웠을 뿐이다. 옌롄커가 그리고 있는 딩씨 마을의 모습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초기의 혼란스러운 중국 사회상을 녹여내고 있다. 물질의 달콤한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사람들이 벌이는 활극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이 피를 팔고는 다시 농사를 지으러 가질 않는단 말입니다. 심지어 더 이상 땅도 원하지 않지요. 피가 아무리 팔아도 마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백년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백년을 산다고 해도 백년동안 피를 팔 수는 없는 일이지요. (155)
피를 팔아 번 돈으로 화학비료를 사서 뿌린 농부의 한탄은 달콤한 자본의 맛을 본 사람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금단증세를 말해 준다.
해는 이미 붉은 납덩이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중략) 골목 입구에서 바라보면 서쪽 평원이 불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타닥타닥 측백나무 숲이 불에 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348)
마을은 더 이상 예전의 '딩씨 마을'로 돌아갈 수 없다. 비교적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던 노인 딩쉐이양(丁水阳)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멸시당하고 존재감을 상실해 가는 모습은 그걸 웅변하고 있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사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변해가는지 모른다. 딩쉐이양이 성서의 사사(판관) 모습을 띤 지도력을 가지고 수평적인 환자 공동체를 이끌었다면, 딩유에진과 쟈껀주는 그들의 뜻을 붉은 종이에 적어 게시하는 지도력으로 수직적 성격의 공동체로 바꾼다.
그 결과 이런 규정으로 인해 학교와 마을에서는 오히려 수상쩍은 일들이 훨씬 더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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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 사람들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기제는 '관습 혹은 규범'이라 불리는 문화이다.
관(棺)과 음혼(陰婚)은 벗어날 수 없는 문화 코드이며 살아남은 자들의 자기 위안이다. 딩쉐이양의 큰아들인 딩후이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가는 가장 큰 무기로 사용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딩후이는 교활하다고 할 만큼 죽음을 매개로 하여 평원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기가 분명한데 사람들은 딩후이에게 고마워하고 결코 싸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것은 장례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문화의 덫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말 싼 가격이지요!”
마지막으로 노인은 탄성을 내질렀다.
“음혼을 맺어주면서 정부에서는 음혼비 이백 위안밖에 받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를 덜어준 셈이지요” (546)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판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마케팅 기법을 알 리 없는 초기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안의 사람인 딩후이는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는 지출을 강제하는 덫인지 안다. 평원의 사람들은 '스톡홀름 신드롬'에 사로잡혀 딩후이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딩량과 링링의 사회규범을 무너뜨리는 원초적 사랑은 생사의 기로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정의(情意)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욕정에서 시작하였으나 죽음을 무릅쓴 링링과 딩량의 최후에 이르러서는 완성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열병에 걸리자 각자의 배우자들에게서 버려졌고, 부부가 될 수 없는 규범과 조건 아래에서 죽어서 같이 묻히기 위해 혼인증서를 받아내야 했다.
“아주버님이 죽으면 저와 함께 묻힐 수 있을까요?”
삼촌이 대답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정말 더 좋을게 없겠군요.”
링링이 말했다.
“샤오밍은 자신이 죽더라도 저와 함께 묻히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요.”
삼촌이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링링과 함께 묻히고 싶어요.”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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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롄커가 『딩씨 마을의 꿈』에서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불결한 매혈 시스템에서 생긴 전염병 이야기가 아니었다. 비록 많은 마을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되는 비정상적인 사례가 이야기의 소재로 쓰였고 그런 체제를 고발하고 있으나, 정말 하려는 얘기는 인간을, 공동체를 타락하게 하는 탐욕과 관습과 규범이라는 이름의 문화 현상으로서의 구속과 덫이었다. 그걸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꿈과 신화가 차용되었다.
딩쉐이양(丁水阳)의 꿈은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상쩍은 사건을 미리 보여주기도 하고 더불어 나타내기도 하는 근간화소로 작동한다. 성서 창세기의 요셉이 해몽하는 첫 장면은 딩쉐이양의 꿈과 평행을 이루며 전체 이야기의 향방을 암시한다. 중국의 신화인 '후예' 이야기는 도굴이라는 기괴한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딩쉐이양의 죽음으로 한 세계가 종말을 맞는 국면에서 보인 '여와'는 새 세상에의 희망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신화나 전설의 시대에 비해 서사적 영향력이 축소된 오늘날의 소설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은 그것이 극사실주의를 표방하며 현실을 재현하였다고 하더라도 읽고 사유하는 과정없이 의미를 생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소설은 '글 읽는 사람'의 전유물이고 '생각하는 사람'의 취미일 수 있었다. 사유하게 하는 어떤 것으로서의 소설은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며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였더라도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기득권자들에게는 불편하게 보일 수 있고 불온한 문서로 규정되는 사태를 피할 길이 없다.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로 여긴다면 더없이 다행이겠지만, 추방해야할 몽상가로 여겨질 수 있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소설가 옌롄커(阎连科)는 중국 체제가 금기로 여기는 것들을 소재로 강고한 벽에 계란을 던지고 있다. 그의 소설에 그려지는 통속적 사랑의 모습(『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노골적이라고 느껴진다)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기를 파괴하는 데 따른 경직성을 경감하는 장치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의 국제적 명성은 어쩌면 반중정서를 이용하는 서방의 전략적 조명에 의해 부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과거 중국의 5세대 영화감독들이 문화혁명 기간 내내 천시되었던 전통과 그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그려내어 국제적 명성을 쌓았지만 정작 오리엔탈리즘에 매몰되었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렇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