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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장 6-7절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2025. 1. 11.
1986년 12월, 텍사스 출신의 보석 중개인 로이 웨트스타인은 투손시 보석 박람회에서 여러 부스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감자만 한 크기의 돌멩이 하나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판매자는 이 원석이 연보라색 마노라고 주장하며 15달러를 요구합니다. 웨트스타인은 판매자와 흥정을 통해 10달러를 주고 구입합니다.
9개월 후, 웨트스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1,905캐럿(약 381g)짜리 스타 사파이어(Star Sapphire)를 세상에 공개합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스타 사파이어로, 이전 기록 보유자인 1948년산 퀸즐랜드의 블랙 스타보다 700캐럿 이상 컸습니다. 그는 이 사파이어가 GIA(미국 보석학회)의 인증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그 사파이어 원석을 쪼개고 다듬어서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까, 판매액이 무려 228만 달러나 됐습니다. 1만원 남짓한 돌멩이가 26억 원으로 변한 겁니다.
믿기 어려운 이 이야기는 사람이나 사물이나 가꾸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냥 방치하면 하찮은 존재라도 열심히 연단하고 연습하면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연단하고 연습하기 나름이라는 겁니다. 잘 하면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그냥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 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선한 모습을 충실하게 나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는 그냥 거리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돌맹이에 불과 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나는 그냥 하찮게 굴러다니는 돌맹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귀하게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탄 마귀가 함부로 건드리면서 농락하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26년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될 방향과 목표는 지난 주, 새해 첫 주일 설교에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 눈가림으로 일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듯이 해야 한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도 동일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예수의 좋은 일꾼’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수의 좋은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어떠한 모습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는 이 설교를 통해서 깨달음이 주어지고, 나아갈 방향이 다듬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6절 말씀을 보십시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들을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디모데전서는 성경을 구분할 때‘목회서신’으로 구분합니다. 목회서신에 속하는 디모데전서는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였고, 초대교회에서 많은 존경을 받았던 뛰어난 목회자였던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기에 육신의 자녀가 없습니다.
이러한 바울이 디모데를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디모데를 두고 믿음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아들처럼 여긴 디모데는 온전한 신앙과 신실한 인품을 지닌 자로서 이런 사실을 본문을 대하면서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먼저 각인을 시켜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라’고 말합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목양하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그렇다면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충고와 권면은‘좋은 일꾼이 되라’고 말하면, 현재 디모데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좋은 일꾼’이 아니라, 디모데더러 ‘좋은 목회자가 되라’거나 ‘성공적인 사역자가 되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뜻이 쉽게 전달되는‘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라’고 명확하게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의 좋은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믿음의 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가?’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정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6절 다시 보십시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들을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하반절에 보면 바울은‘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를 전제 조건으로 말합니다. 좋은 일꾼이 되려면,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좋은 일꾼이 만들어지도록 양육 받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의 교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말씀들과 교훈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불교의 경전에 보아도, 여러 좋은 말씀과 삶의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주교가 기독교와 많이 닮았다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천주교에도 여러 교훈이 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문학이나 여러 종류의 말씀과 인생의 교훈이 되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른 종교의 교훈이, 그리고 세상의 철학과 문학의 좋은 이야기와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을 훈련시키는 교재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는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바뀐다고 하더라도, 나라와 국경이 바뀌고 시대와 환경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을 만드는 좋은 교재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딤전 4:5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라고 명확하게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이 원하는 좋은 일꾼, 신실한 일꾼, 충직하고 눈속임하지 아니하고 주께 하듯 일하는 일꾼은 말씀과 기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나아갈 방향을 다듬어 나가는 성도가 바로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인격과 가치관, 생활방식 등 삶의 전반을 변화시킵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 모두가 더 많이 성경을 읽고 가까이 하는 좋은 일꾼이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를 수 십년 오래 다녔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중직을 맡았다고 해서 곧바로 성숙한 일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변화됨이 없이 매너리즘에 빠져 습관적으로 교회를 방문하는 모습에서 탈피하여야 합니다.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의 좋은 일꾼은 자기 경험으로 자라지 않고, 말씀으로 자라는 사람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초대교회의 신실하였던 교부였고, 삼위일체라는 신학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하였던 터툴리(Tertulian, 155년~240년경)은 “성도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나는 이제 충분히 안다’고 느끼는 때”라고 일찍이 말하였습니다.
말씀을 배우며 순종하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강대상에서 전파되는 설교를 평가만 하는 분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분은 이미 신앙의 이상증상이 드러나고 있는 분입니다. 이미 성장의 양육이 멈추어지고 있다는 위험신호가 표현되고 있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맡은 바 일에 대하여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섬기고 봉사하는 좋은 일꾼이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에 노력을 더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맙시다. 고난과 역경의 길이 되고, 나를 희생하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는 길이라면 앞으로 전진 하는 우리 무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사고로 발전소에서 유출된 방사성 강하물이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북반구의 광범위한 지역에 떨어져 방사능 오염을 초래합니다. 이 사고가 소련 붕괴에 결정적인 원인을 주기도 합니다.
원전 폭발 후, 원자로 노심에 있는 냉각수가 원자로 지하의 지하수로 유입될 경우,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400배에 달하는 엄청난 방사능 냉각수가 유럽전체로 퍼지게 되는 최악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게 되는 위기상활에 처하게 됩니다.
이 때 세 명의 기술자(알렉세이 아나넨코, 발레리 베스팔로프, 보리스 바라노프)가 들어 갑니다. 자신들이 치명적인 방사능에 노출되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방사능 냉각수가 담겨진 지하로 내려가 밸브를 잠그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 결과 방사능 오염수는 지하수로 내려가지 않고 멈추게 되고 끔찍한 2차 사고를 막게 됩니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방사능에 오염된 물에 들어간 이들은 슈퍼맨과 같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벨브기사였고 그냥 군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우럽 전체의 수 백만명이 목숨을 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 받고 훈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들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도들입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교회를 세워나가는 성도들입니다. 저나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도록 노력하도록 합시다.
2. 자신을 연단하는 자가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세요.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매우 분명한 권면을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좋은 일꾼이 되려면‘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무엇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버려야 한다고 말 한 것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라’고 권면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A. D. 1세기 당시 이단 사설 등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도 이단 사설도 있지만, 그 외에 세상의 잡다한 정보나 지식 등을 가리킵니다. 그런 잡다한 것들을 마음 속 생각에서 먼저 내보내야 합니다. 마치 컴퓨터의 공간을 차지하는 불필요한 파일 삭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야 좋은 내용(콘텐츠)을 저장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을 흐리게 하는 ‘망령된 신화’는 옛날 전설이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처럼 들리지만 말씀은 아닌 것, 경건해 보이지만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생각들입니다. ‘이렇게 행동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이 정도는 해야 교회 안에서 믿음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
이런 말들은 처음에는 신앙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는 성도를 묶어 두게 됩니다. 은혜는 점점 사라지고, 신앙생활은 기쁨보다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인간의 귀를 즐겁게 만들고, 신앙생활을 가벼운 장난처럼 만드는 허탄한 세상 이야기들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고쳐서 쓸 문제가 아니라, 신앙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면 내려놓아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오래 들어 익숙해진 사람의 말입니까?
신화는 항상 말씀보다 앞설 때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먼저 따르는 세상의 말들이 나를 헛갈리게 만드는 신화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분보다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드는 내가 살아온 내 삶의 경험들이 나를 무너뜨리는 신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경건에 이르도록 항상 자기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연단한다는 말은 훈련한다는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다 연단이고 훈련입니다.
실례를 들어 봅시다. 성경을 읽고 싶다고 해서 성경을 펼치자 말자, 그 즉시로 성경이 술술 읽어지면서 그 모든 말씀들이 내 눈에 쏙쏙 들어오고,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잘 박힌 못처럼 내 마음에 콕콕 박히던가요? 성경을 읽어 보신 분들은 ‘절대 아니라’고 말씀할 것입니다.
기도의 예를 또 들어 봅시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기도하려고 합니다. 눈을 감고 입술만 벌리면 기도가 청산유수처럼 터져 나오던가요? 기도한다고 눈 잠시 감았다가 떴는데, 순식간에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는 놀라운 경험을 모두들 하였던가요?
이 또한 절대 아닙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이나, 전도하는 것이나, 말씀을 따르고 충성하며 순종하고 봉사하는 모든 것이‘연단하고 훈련받아야 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한 두번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연단하고, 훈련하고, 기도하고 나아가다가 쓰러지고 깨어지고 넘어지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늙은 노사도 바울은 자신이 평생 동안 느끼고 깨달았던 이 진리를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말하고 강조한 것입니다.
경건은 특별한 은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고, 기도로 하루를 열며, 사람보다 주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울은 경건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운동선수가 훈련하듯, 신앙도 연단이 필요합니다. 화려한 체험보다, 매일의 작은 순종이 우리를 경건으로 이끈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맙시다. 말씀이 기준이 되고, 은혜가 중심이 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삶을 이끌 때, 신앙은 다시 단순해지고 건강해진다는 점을 깨닫고 실천할 때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의 교양프로그램에서 ‘일본의 도자기 장인’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으로 방송한 것을 하나 보았습니다. 일본에서 전통 도자기를 만드는 이름난 도자기 장인들은 30년 물레 연단을 한다는 주제였습니다. 일본의 전통 도자기 장인들은 첫 10년 동안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흙 고르기, 물레 돌리기, 실패한 그릇 깨기, 이런 반복적이고 훈련되는 모습을 수 십년 동안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긴 연단 끝에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한 번의 손놀림으로도 흙의 상태를 느끼는 장인이 됩니다. 마지막 나레이션에 이런 말을 합니다. ‘기적은 하루아침에 보이지만, 그 손은 수십 년의 훈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붙들 것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망령되고 허탄한 세상의 풍습과 신화를 버리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사람의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경건을 붙듭시다.
그럴 때 나의 신앙은 무거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좋은 일꾼이 되어 칭찬받는 일꾼이 되도록 2026년도에는 노력하고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