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루이스 — 이타의 수석사제
후안 루이스(Juan Ruiz, 약 1283년 알칼라 데 에나레스[1][a]-약 1350년)는 이타의 수석사제(Arcipreste de Hita)로 알려진 인물이며, 《좋은 사랑의 책》(Libro de buen amor)[2]의 저자이다. 이 작품은 서사가 중심을 이루는 혼합 장르 작품으로, 스페인 중세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생애
그는 성직자였으며 오늘날 과달라하라주에 속하는 이타에서 수석사제로 일했다. 생애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매우 적다. 톨레도 대성당에 보존된 문서집의 한 문서에 그의 이름과 저서에 등장하는 인물 페란 가르시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작품에서 추론한 자전적인 듯한 언급을 근거로 일부 학자들이 작가의 삶에 관해 여러 추측을 내놓았다.
그는 1283년 무렵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에밀리오 사에스와 호세 트렌치스는 하엔주의 알칼라 라 레알 출생설을 제기했으나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톨레도·이타·알칼라 데 에나레스 또는 이 일대의 어느 도시에서 공부했을 것으로 보이며, 톨레도 대주교 힐 데 알보르노스의 명령으로 투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3] 그러나 슈피처, 마리아 로사 리다, 살바토레 바탈리아 등의 문헌학자들은 이러한 가설 다수의 엄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작품에 사용된 매우 전문적인 음악 어휘가 그 방면에 대한 지식을 입증한다. 맹인 가수들을 언급했으며, 특히 맹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래를 지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단 한 작품, 《좋은 사랑의 책》만을 썼으며 감옥에서 집필했을 가능성이 있다. 1351년에는 페드로 페르난데스라는 인물이 이미 이타의 수석사제직을 맡고 있었으므로, 후안 루이스는 그보다 앞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생지를 둘러싼 논쟁
《좋은 사랑의 책》을 바탕으로 후안 루이스가 ‘알칼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추론해 왔다. 라몬 곤살베스 루이스는 2002년 이타의 수석사제를 주제로 한 전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
후안 루이스는 책 곳곳에 자신의 개인적 전기에 관한 정보를 뿌려 놓았다. 트로타콘벤토스가 수석사제를 대신하여 무어인 여성에게 인사하며 하는 유명한 구절, “아가씨, 알칼라 출신의 어떤 분이 당신에게 정중히 안부를 전합니다”(제1510연 a행)가 암시하듯, 그는 알칼라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이 진술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항 가운데 하나다. 《좋은 사랑의 책》에 나타나는 다른 개인적 정보 및 중재 판결문—그의 이름이 “존경하는 이타의 수석사제 요한 로드리게스”(uenerabilibus Johanne Roderici archipresbitero de Fita)로 적혀 있다—과 일관되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의 전기에서 이 사실을 의심할 만한 확고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 라몬 곤살베스 루이스, 앞의 글, 2002년
곤살베스 루이스는 탈라베라·톨레도·알칼라 데 에나레스·이타와 연관된 수석사제의 생애 동선을 분석한 뒤 이렇게 말한다.[1]
직책상 그는 톨레도를 자주, 아마도 해마다 한 번 이상 방문해야 했을 것이다. 이 도시와 탈라베라를 잘 알았고, 물론 그가 가장 잘 아는 고장이자 출생지이며 이타에서도 멀지 않은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도 익숙했다.
현재 두 도시가 이 카스티야 작가이자 성직자의 출생지를 자처한다. 마드리드주의 알칼라 데 에나레스와 하엔주의 알칼라 라 레알이다. 양쪽 모두 자기 도시가 출생지라고 믿을 만한 여러 중요한 근거와, 그보다는 덜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명료하고 간결한 전기 자료가 새로 발견되지 않는 한, 이미 각자의 지지자들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두 주장을 일치시키기는 어렵다.
후안 루이스를 알칼라 데 에나레스 출신으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수석사제로 일한 이타(과달라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건들의 무대와도 가깝다. 그 사건에는 톨레도 대주교 힐 데 알보르노스가 내린 “탈라베라 성직자들의 생활을 감독하라”는 명령, 이후 이타 수석사제구에 속한 과달라하라의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에 수감된 일 등이 포함된다.
반면 알칼라 라 레알 출생설은 소수설이며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이 가설은 후안 루이스가 성과 이름이 분명한 ‘후안 루이스 데 시스네로스’였다는 추정에서 시작된다. 그는 시스네로스 영주 아리아스 곤살레스의 사생아로, 1280년부터 1305년까지 알칼라 라 레알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작가의 출생 연대와 겹친다.
이 가설의 지지자들은 《좋은 사랑의 책》을 검토하여 후안 루이스 데 시스네로스의 삶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몇 가지 유사점을 제시한다. 때로는 작품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이슬람 문학 및 안달루시아 문학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는 특징들을 강조하기도 한다.
기념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이타의 수석사제 거리’.
알칼라 데 에나레스와 마드리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세비야주 산후안 데 아스날파라체의 과달라하라 지구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도 ‘이타의 수석사제 거리’가 있다.
주[a] 출생지 논쟁의 경과
후안 루이스의 출생지는 1972년부터 본격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에밀리오 사에스와 호세 트렌치스는 제1회 이타의 수석사제 국제학술대회 회의록 365~368쪽에 실린 발표문 「《좋은 사랑》의 저자 후안 루이스 데 시스네로스(1295/1296~1354/1352)」에서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알안달루스에서 수십 년을 보낸 후안 루이스 데 시스네로스라는 인물을 《좋은 사랑의 책》 저자와 동일시하고, 시인의 전통적인 출생지로 여겨지던 알칼라 데 에나레스가 아니라 알칼라 라 레알에서 태어났다고 본 것이다.
알칼라 라 레알 출생설에도 지지자들이 있었지만 학계 다수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현재도 이타의 수석사제 후안 루이스의 가장 가능성 높은 출생지는 알칼라 데 에나레스로 여겨진다. 카스탈리아 출판사의 기번모니페니 판본이나 카테드라 출판사의 알베르토 블레쿠아 판본 같은 후대 판본들은 이 가설을 《좋은 사랑의 책》 저자의 정체를 밝히려는 여러 시도 가운데 하나로만 다룬다.
니카시오 살바도르 미겔은 현대어판에서 사에스와 트렌치스가 첫 발표 때 약속했던 “증거를 갖춘 책”을 끝내 쓰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 뒤,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어쨌든 일부 학자들이 이 이론에 부여한 신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이론은 알칼라 라 레알에서 태어난 후안 루이스 데 시스네로스가 《좋은 사랑의 책》의 저자라는 트렌치스와 사에스의 가설이다.
논쟁의 전반적인 현황은 호세 안토니오 세라노 세구라가 후안 루이스와 《좋은 사랑의 책》을 다룬 상세한 웹페이지의 제3항 ‘저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2009년 12월 24일 웨이백 머신에 보존되었다.
참고문헌
- 라몬 곤살베스 루이스, 「후안 루이스라는 인물」, 비엔베니도 모로스·프란시스코 토로 세바요스 편, 《후안 루이스, 이타의 수석사제와 《좋은 사랑의 책》》, 2006~2008년 세르반테스 가상센터 디지털판. ISBN 84-690-1627-X.
- 호세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히메네스·프란시스코 무뇨스 마르키나·미겔 앙헬 사리온 모라, 「언어와 의사소통」, 《카스티야어와 문학》, 마드리드: 아칼, 2011, 121쪽. ISBN 9788446033677.
- 마리아노 칼보, 「이타의 수석사제—중세의 길」, 《톨레도의 문학기행》, 톨레도: 쿠아르토 센테나리오, 1992, 49~50쪽. ISBN 978-84-940811-2-5.
- 미켈 포소 플로레스, 「14세기 팔렌시아의 시스네로스 가문: 정치와 재산」, 《Institución Tello Téllez de Meneses 간행물》 80호, 2009, 188쪽 주 16. ISSN 0210-7317.
마리아노 칼보에 따르면 이타의 수석사제는 톨레도 대주교 감옥—오늘날 비카리오 골목 3번지—에서 《좋은 사랑의 책》의 최종판을 썼다. 한 사본의 발문에는 이 일이 다음과 같이 암시되어 있다. “이 책은 이타의 수석사제의 책으로, 그가 톨레도 대주교 돈 힐 추기경의 명령으로 갇혀 있을 때 지었다.”
이타 수석사제구는 톨레도 대교구 소속이었다. 추정되는 체포 이유는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 성직자들의 반란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힐 데 알보르노스 대주교가 성직자들에게 내연녀를 내보내라고 명하자 그들이 이에 반대했다. 〈탈라베라 성직자들의 노래〉에는 수석사제가 마지못해 이 도시의 성직자들에게 가서 내연녀들을 떠나보내게 하는 임무를 맡은 일이 3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연구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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