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실용주의 개념부터 진단해 보자!
실용은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식의 실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관점에서추구하는 실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오히려 외부의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실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내부적으로 먼저 충분히 정리를 하는 실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 우리가 진보, 보수라는 구분을 두어야 하는가?
그러나 두어야 한다면 바로 실용적으로 두자는 것이다.
이러한 내부적 대립관계를 하고서 실용을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대립관계를 하는 척 하자는 것이다.
실용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우리의 이익과 발전을
지향하기 위해서, 우리 대내외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좋은 결과를 낳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면 먼저 안으로 이러한 실용을 위한 환경조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 각 분야별로,
무엇보다도 사회 지도자들의 각성의 정신이 실용에 있어서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힘의 결정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세계화 때문에 무조건 희생되어야 하는 민족 개념에서 먼저 탈출할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현재는 우리 원사회가 자신의 것을 경홀히 여기는 자세가 너무 보편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세계화가 하나님 뜻처럼 말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다는 점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계화는 종말의 최종 시간대의 마지막 인류가
인류 스스로 선택하여 지상 파라다이스를 추구하는 미혹일 뿐이다.
그것은 각 나라를 하나의 명분으로 묶어두려고 하는 세계화의
어떤 특정한 이들의 농간이 화려하게 들리는 유혹일 뿐이다.
그러므로 외부의 힘과 구분되는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가 서로 편을 갈라서 아직도 싸우는 이러한 구조에서
실용이 말이 되는가? 오히려 외부의 힘이 작용되는 실용이 주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강조하여 말하자면,
나라 바깥을 향하는 나라 대외용으로는 진/보수로 여전히 구분하는 것 같은 트릭을 사용하되
나라 내부로는 국가적으로 우리 모두가 ‘이너 서클’이 되자는 것이다.
밖으로는 열리되 안으로는 닫혀야 하는 것이다.
안으로는 열리되 밖으로는 닫혀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가 사회적으로 공동체적 자각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우리 스스로 조작하는 힘을 운용하는 공동체적 자각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세계를 상대로 공동체적 자각을 이루는 시간을 가졌듯이 말이다.
이제는 우리의 파이팅 에너지를 나라 안에서 아옹다옹하는 소모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에너지를 결집하여 온 나라 밖으로 집중하는 내부적 결속이
먼저 선행되는 실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할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에너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라 안에서 우리끼리의 다툼도 나라밖으로 향하는 트릭이 되기 위해서
하는 움직임들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세계화에 공격을 당하는 너무 거부되는 개념이라면,
세계화의 조류가운데 우리만의 연합개념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
내부 전환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우리 내부가 분리 현상이 일어날 때, 속이기 위함인가?
실제로 멀어지고 갈라지는 것인가?
온 나라적으로 우리네 사회는 이점을 먼저 확실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독자노선, 심지어 중립노선도 사라지는 경향성이 강하고,
이중구조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것이 추세이다.
즉, 양극화 세계 지향이다. 하나의 세계는 법이 주도하여 전적으로 질서가
주도되는 세계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적이지만 곧 무질서가 적용되는음성적 사회가 될 것이다.
세계는 이러한 방향으로 더욱 구체화 되어져 갈 것이다.
그래서 벌써 세계 온 나라가 뭉치거나 우왕좌왕 하여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들은 더욱 고도의 전략으로 세계 밖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화 체제로 들어가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내부 결속을 하거나 더욱
고도화 되는 전략이나 트릭을 세워 밖으로 향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안으로 싸우고 우리끼리 혼란을 즐기는 형국이다.
물론 이것이 나라 밖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한 속임수라면 괜찮다.
그러나 실제로 과거 우리 선조들처럼 당리당략에 의해서 일어나는
당파싸움이고 조직파벌 싸움이라면 우리는 정말 희망이 없는 민족이다.
한반도는 중요한 위치이고 세계화의 힘은 우리 한반도에 집중되었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조절하고 발전의 방향으로 스스로 가동할 힘이 없다.
무슨 말인가? 우리끼리는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는 힘은 있는데
나라 밖의 세력들에 대해서는 속이고자 하는
지혜와 자의적인 독립심이나 의지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와 반대이다.
나라 안에서 치고받고 하는 모든 것들이 나라 밖의 동향을 속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들은 자국 중심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네 사회만이 실제적으로 우리 끼리
서로 잡아먹고 힘들게 하는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애석하다.
예를 들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세계화에 경쟁력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 밖으로 경쟁력이 되어야 하고,
나라 안으로는 섬김이 되어야 한다.
즉, 영어를 잘하는 것이 나라 밖으로 실력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나라 안에 자국민들을 중심으로 실력이 되면 안 된다.
그런데 나라밖으로 경쟁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팔아먹는 쪽으로 실력이 되는 것이다.
나라 안에는 영어를 잘하는 것이 자국의 국민을 업신여기는
실력이 되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전문가가 되는 것은
나라 밖의 경쟁력으로 활용될 때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나라 안에서는 더 겸손해 져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섬김이 되어야 하는 고매한 품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를 어려워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외국 자본가들이 자신들이 투자방식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모두 빼내어 가는데 영어를 잘하는 우리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마어마한 금력을 제공하여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놓고
다시 투자라는 흐름을 통해서 거두어 가버리는 것이다.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민족들에게는 교만의 실력이 되면서,
외국에는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를 가지고,
영어권들이 자기 동력 중심으로 움직임에 동인이 되어
자신의 나라를 팔아먹는 개와 같은 실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먹고 사는 힘을 가지고 목에 힘주고 산다는 것이 우리네 인격성이다.
이러한 정신으로 우리가 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이용당하는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영어권에 이용만 당하는 수준으로 전락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으로 목에 힘주지만 영어권에 이용당하다 버림을 받으면서 말이다.
요즘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려된다.
우리네 사회가 더욱 급속도로 잘못된 방향으로 힘이 모아지는 것이 두렵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