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대회사묘군-하얀탑이 백탑
18, 중국 불교의 성지 오대산(五臺山)의 사찰들
중국 산서성 오대현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오대산(五臺山:2890m)은 동쪽의 망해봉(望海峰), 서쪽의 괘월봉(挂月峰), 남쪽의 금수봉(錦繡峰), 북쪽의 협두봉(叶斗峰), 중앙의 취암봉(翠岩峰) 다섯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오대산이라 부른다.
지장보살의 성지인 오대산은 사천의 아미산, 안휘의 구화산, 절강의 보타산과 함께 중국 불교 4대 명산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360여개의 사찰이 있었으나 퇴락하고 지금은 대회사묘군(大恢社廟群)을 중심으로 47개만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도 현통사(显通寺), 탑원사(塔院寺), 보살정(菩萨顶), 수상사(殊像寺), 라후사(羅睺寺)가 유명한 5대사찰이다.
오늘이 6월 6일이니 여행을 출발한지 13일째다. 아직은 절반도 하지 못 했는데 여독에 지친 도사장이 몸살이 났다. 하는 수없이 도 사장을 여관에 남겨두고 순환버스를 타고 관광길에 나섰다. 하지만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돌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환버스는 일정한 코스만 왕복하고 있었다.
벽산사
버스를 타고 벽산사를 돌아보고 다시 타고 백운사를 구경한 후 중국 신기의 제1동이라는 불모동 구경을 나섰다. 하지만 이렇게 해가지고는 하루만에 오대산 관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백운사
그래서 외곽지역 관광은 그만두고 여관으로 돌아와서 때이른 점심식사를 하고는 도 사징의 손을 끌고 오대산 관광의 핵심인 대회사묘군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제일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은 ‘
’이었으니, 입장료가 2위안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정문을 들어서니 커다란 대리석 벽면이 길을 막고 섰다. 거기에는 모택동 주석이 쓴 글씨가 있었지만 초서라서 알아볼 수 없었고 그 뒷면에는 모주석이 항일투쟁 사진이 새겨져 있었다.
모주석로거관(毛主席路居館)
건물 안에는 하얀 옥돌로 만든 모택동 주석의 흉상을 중심으로 오대산 항일투쟁사의 사진과 신문, 서적 등이 전시되어 있었으니, 이것은 모주석이 이 오대산을 중심으로 산서성에서 건국투쟁을 하던 것을 기념하는 곳인 모양이다.
현통사 금탑
먼저 찾은 현통사는 낙양의 백마사(白馬寺)와 함께 역사가 2,000년이나 되는 중국 2대 고찰로 선방이 400개나 되는 큰 절이라 오대산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다.
산문을 들어서니 천왕전이 우뚝 섰고 무량전, 대불전, 문수전, 동전, 후고전이 차례로 서 있는데, 높이가 8m나 되는 동탑과 동전, 동중과 무량전이 유명하단다. 맨 뒤쪽에 있는 장경루 진열실에는 옥불, 무측천 동상, 오색의 나한상과 더불어 명인들의 서화와 공예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탑원사 백탑
다음에 찾은 탑원사는 현통사 남측에 있는데 원래는 현통사의 탑원이었으나 명나라 때 사리탑을 증건 하면서 독립하여 하나의 절이 되었다.
이 사찰에는 절 이름의 기원이 된 높이가 75.3m나 되는 거대한 티벳트 양식의 백탑(白塔)이 높이 서있고 그 주위에는 커다란 마니차가 늘어서 있다.
절 입구에는 하얀 옥돌로 만든 배뿔룩이 불상이 앉아있어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사람들은 거기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고 야단법석을 하고 있고.
라후사
현통사 동쪽에 있는 라후사는 1,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사찰로 당나라 때에 창건되었으며, 명나라 흥치 5년(1492년)에 재건되었다. 천왕전, 문수전, 대불전, 장경각, 곁채, 배전, 랑실 등 사원의 건축 장식에서 소조 조각에 이르기까지 오대산 사찰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았다.
라후사의 명물인 개화헌불(開花獻佛)은 꽃잎이 열리면 안에 있는 불상이 드러나도록 기계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로 보면 최첨단 불상이었던 셈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현통사 오른편에 있는 원조사는 명나라 영락 초기에 인도의 승려 보리사자가 중국에 왔다가 대선전에서 불공을 들이다 앉아서 돌아가셨는데 분신 후 2개의 사리가 나왔다. 그 하나는 베이징 서교로 보내져서 전각사가 세워졌고 다른 하나로 이 원조사의 사리탑을 세웠다.
원조사 경내에는 천왕전, 대불전, 탑원, 장경각 등이 있고, 전각 내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부처님들이 노랑옷을 입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입구에 있는 사리탑 양쪽 벽에는 한 칸에 2명씩 해학적인 인물상을 만들어 놓았다.
보살정
108개의 계단을 올라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보살정은 문수보살의 주거처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전망이 그를 수 없이 좋았다. 이 절은 오대산에서 가장 큰 사찰이라서인지 70세가 넘는 노인이라는데도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오늘은 모두 면표를 했는데 왜 여기만 받느냐고 따져도 들은척도 않고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라는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불전이 430여칸 이나 되는 이 절의 산문 안에는 천왕전, 종고루, 보살정, 대웅보전 등이 있고, 양측에는 배전이 있었다. 보살정사는 전망이 좋아서 인지 아니면 절이 유명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금집과 금탑, 동탑이 많은 경내에는 향불을 피우면서 부처님에게 소망을 비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오대산 5대 사찰을 다 돌아보았는가 했더니 남은 수상사는 오대산 태환진 양수거리 서남쪽에 있었다. 전내에 문수상이 있어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수상사
광화사를 돌아보고 선수사를 돌아보니 신축중인 건물이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금강력사상부터 크기가 대단했다. 가람을 들어서니 여승들이 신축중이라고 하기에 그래도 먼 곳에서 왔으니 구경을 시켜달라고 했더니 하나하나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는게 아닌가. 절은 규모도 컸지만 대웅전은 참으로 웅장했다.
선수사 정문
마지막으로 돌아본 칠불사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7층 백탑이 높이 솟은 절문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신라 고승 혜초 스님이 인도 경전을 번역하다가 787년에 입적했다는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는 어디일까? 스님에게 물어보아도 도래질만 한다.
오대산은 중국 불교의 성지답게 역사 깊은 가람이 많아서 하루만에 외곽에 있는 사찰까지 돌아본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오대산의 핵심인 대회사묘군만 돌아보고 말았지만 오대산의 불교사원은 참으로 대단했다. 저 앞산 꼭대기에 있는 사찰은 이름이 무엇인지 쳐다만 보고 말았고.
모 주석 로거관(毛主席路居館)
모 주석 친필
벽산사
백운사
라후사
개화헌불(開花獻佛)
탑원사
현통사-금으로 도금한 건물과 탑이 많다
보살정
선수사
정문
대웅보전
여승들
오대산 사찰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