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심이집 내외
그곳에 가면 먼저 마주치는 것이 주방에서 일하다 힐끗 보는 그녀의 큰 눈이다. 흰자위가 가득한 그 눈은 손님을 반기는 것인지 아닌지 꽤 오래 이집을 드나들어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녀에게서 다정한 인사나 미소 띤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방과 턱 하나로 이어진 작은 마루 홀에서 써빙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역시 ‘어서 오시오’란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어도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내가 아쉬워 옹색한 빈자리를 찾아 앉으며 조심스레 주문을 한다.
시장 골목 끝에 위치하여도 번듯한 ‘강원도 감자바위’란 상호를 갖고 있는 자그마한 감자옹심이집은 인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식당이다. 주인 내외는 아마도 고향이 강원도라서 말투가 그리 무뚝뚝한 것일까. 그리고 깊은 산골처럼 심지가 깊어 어설피 타협할 줄 모르고 도시인의 약삭빠름에도 물들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융통성 없고 장삿속에 밝지 못해 친절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 짐작해 보기도 한다. 그렇긴 하지만 매번 갈 때마다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연전 직장 가까운 곳에서 식사할 곳을 찾다가 ‘감자옹심이’란 메뉴에 끌려 처음 들어갔을 때나 이즈음이나 변함없는 것은 주인내외의 무뚝뚝함과 음식 맛이다. 허름한 재래시장 통에 자리 잡은 옹심이집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육십이 넘어 보이는 부부가 단둘이 영업을 하고 있다. 처음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식당내부를 찬찬히 살펴보면 열 평도 되지 않을 마루로 된 홀과 방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옆으로 자그만 부엌을 통하게 된다. 아마 처음엔 살림집이던 것을 작은 식당으로 꾸며놓은 듯하다. 가끔 사람이 많을 때는 살림방까지 상을 펴 손님을 받긴 하지만 마루에 빈자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땐 절대로 방에 들이지 않는다. 그 방엔 주인이 사용하는 간단한 이부자리와 TV, 그리고 옷가지 등 어쩔 수 없이 내보여지는 두 사람의 자존심이 단정히 자리 잡고 있다.
서울서 나고 자란 내가 감자옹심이를 먹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옹심이는 동지팥죽 속에 들어가는 자그마한 찹쌀 새알심으로만 알고 있었다. ‘감자옹심이’는 생감자를 갈은 후 물을 빼고 수제비 반죽처럼 뭉쳐 동그랗게 떼어 육수에 끓여내는 것 같다. 서울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메뉴의 간판에 이끌려 들어간 그곳은, 한결 같이 무뚝뚝한 주인장의 매너를 상쇄시켜주고도 남을 ‘맛’ 때문에 자주 찾는다. 주방에서 일하는 여주인장 못지않게 남자는 주문을 받으면서도 울며 겨자 먹는 식이다. 물컵을 공손히 놓는 법 없이 탁 소리가 나게 식탁에 놓는다. 그때부터 기분이 상하지만 주문을 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잠시 후 큼직한 두 개의 항아리와 두 개의 빈 접시를 가져온다.
항아리 속에는 맛있게 익은 총각김치 한 동이와 자르지 않고 맛깔스럽게 담군 배추김치 한 동이가 담겨 나온다. 넉넉히 담아주는 김치는 직접 버무리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김치가 금치로 불리며 배추값이 하늘로 솟을 때도 늘 푸짐한 김치단지를 가져다 상에 올려 김치 값만 해도 옹심이 값은 될 정도다. 옹심이가격도 오년 전에 비해 천원밖에 오르지 않았고 항아리 안에 담긴 옹심이는 넘칠 듯 가득 차 그때나 지금이나 맛과 양이 한결같다. 그것을 보면 뚝뚝한 감자바위 같이 변함없는 마음을 지닌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김치를 자르고 군침을 삼키며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옹기항아리에 푸짐히 담긴 옹시미를 그 남자가 가져온다. 나는 감자의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감자 옹시미를 주로 주문하지만 옆자리의 손님들은 칼국수옹심이, 수제비옹심이를 먹는 모습도 보인다.
이 밖의 메뉴로 감자전과 동동주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만원도 넘는 감자전이 쟁반만한 크기에 오천 원이다. 생감자를 갈아 주문 즉시 부쳐내 따끈하고 쫄깃하며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생감자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이렇게 장사를 하여 뭐가 남을까 싶다.
화장실 입구 선반에 황태대가리가 큰 비닐봉지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이 국물내기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가게입구엔 늘 감자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고 비닐로 포장 둘러쳐진 가건물엔 둥그런 탈수기 같은 기계가 있어, 언젠가 시장 길을 갈 때 부부가 그곳에서 감자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손님이 없을 때는 남자가 주로 감자를 까고 있었다.
완성된 감자옹심이 맛은 중국집의 울면과도 비슷하게 걸죽한 국물이 특징이다. 그 국물 속엔 감자와 냉이가 들어있어 향기롭고 김가루와 깨부생이가 얹혀져 나온다. 감자옹심이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쫄깃하고 상큼하게 맛이든 총각김치와 배추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궁합이 잘 맞는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과 종종 찾아가 배불리 먹고 나온다. 함께 식사를 한 사람들마다 주인장의 불친절엔 혀를 내두르면서도 옹심이 맛은 잊지 못한다고 한다. 요즘엔 입소문이 많이 났는지 손님이 꽤 늘어 엊그제 점심시간엔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바라다만 보다가 그냥 돌아왔다. 그랬어도 내 마음은 왠지 흐뭇하다.
늘 부엌에 서서 재빨리 음식을 만들어내는 주인여자와 막이 턱 하나사이로 음식을 받아내며 써빙을 하는 남자는 주문을 어찌하는지, 또 서로 주고받는 목소리는 어떠한지를 코앞의 작은 홀 안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소리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손님의 식사를 주문받아 만들어 내고 받아서 내주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 더러는 나도 그 내외간 흉내를 내보고 싶을 때가 있어 말을 아낀다.
구본옥 : 2012년『한국수필』등단. 한국수필가협회, 군포여성문학회,
지송문학회 회원.『바람의 이력서』외 공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