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을 찾으며.. 모시고 산다고 하는 우리들.
그러나.. 진정 주님이신지?.. 마음 중심을 삼가 살펴 보자.
사순절에 묵상하는 두번째 그림은, 그래서.. "황금 송아지 숭배" 니콜라 푸생의 그림이다.

황금송아지 숭배 - 니콜라 푸생 -
211.8 x 153.4 cm / 캔버스, 유화 / 1633-34년 작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프랑스 미술이 세계적인 미술이 되게 만든 니콜라 푸생은..
17세기 프랑스 바로크 미술의 대가이면서 고전주의의 기초를 놓은 사람.
푸생의 어린 시절, 그의 고향에는 프랑스 제일의 무희(舞姬)들이 살았고.. 이런 환경의 영향일까?
그가 그리는 무희는 남다른데..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림 한가운데.. 단 위에 우뚝 세워진 황금송아지.
그 주위에, 환호하며 춤추는 사람들..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신을 만난 기쁨이 충만하다.
흰 옷에 흰 모자를 쓴 사람이, 모세의 형 아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자신이 만든 송아지를 가리키며.. ‘오라. 와서 보아라.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아론.
그는 여호와의 절일을 선포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이 황금송아지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는데..(출애굽기 32:6)
스데반집사는 그의 설교에서 이 장면을 가리켜..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라고 말한다.(사도행전 7:41)
우상에게 제사 드리면서.. 그것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기뻐 뛰노는 어리석은 사람들..
푸생이 그린 것은 바로 이 날, 이 장면.
그러나 그는.. 시내산 아래에서 벌어진, 이 어리석은 일만을 그리지 않고..
이것을 알고,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함께 그려 넣었다.
하나님의 진노로 불붙은 산 때문에, 벌겋게 물든 하늘..
그뿐인가? 이 붉은 빛은, 산 아래..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반영되고 있다.
이것이 푸생이 그린..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
우리가 놓쳐서 안 될 부분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임을 알기에..
그림 왼편 산기슭에.. 이제 곧, 하나님의 진노를 전달할 ‘하나님의 사자’ 모세도 함께 그렸다.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듯.. 모세의 손에 높이 들리워진 십계명 돌판까지..
모세 옆에서는.. 함께 산에 올랐던 여호수아가, 이 황당한 장면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모세는 신명기 9:8-21에서, 당시 일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손에 있었느니라.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신명기 9:15,16)
푸생, 그는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깨닫지 못해,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하나님이라 여겨 경배하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면서, 동시에.. 그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닥칠 진노를 그려..
우리도 이같은 어리석음에서 떠나,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진실로.. 하나님만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께만 경배와 찬양 돌리기 원하는데..
어느 결에 우상을 세우고, 우상인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 내게는 없는지..?
영적분별력 주시어.. 밝히 살피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며..
바른 섬김으로,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찌니라. (에스겔 20:39)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느냐?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다. (시편 24:3~5.표준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