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28:10-17절,
주제 : 이는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사닥다리 | 10-12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
네 자손 | 13-15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하늘의 문 | 16-17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
본문 : 창세기 28:10-17절,
제목 : 이는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설교 작성노트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지구상 어디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고 아담을 찾고 계신다. 에덴동산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두시려고 지으신 전원주택과 같은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주택이 아니라 사람이요, 그가 지금 어디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구약의 백성을 두시려고 약속하신 가나안이 에덴동산이요, 자기 아들의 피로 구속하신 백성들을 두시려고 세우신 교회가 에덴동산이요, 믿음의 가정들이 “하나님의 집”인 에덴동산이라는 각성이 필요하다. 이를 증언하려는 것이 내용목적이다.
구원은 회복의 역사다. 하나님과의 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부부관계가 하나님의 목적대로 회복해야 한다. 여기에 적용목적이 있다 하겠다.
강론
야곱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고난을 당하게 되었는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택하실 때에는 사명, 즉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인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난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어찌하여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로 고난을 당해야만 했는가? 영적 출애굽을 계시하시려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나 사도 바울이 어찌하여 그런 고난을 당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택한 나의 그릇”(행 9:15)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고난을 당하게 된 첫째 이유도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장자, 즉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되기를 열망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사모했으면,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25:26)고 말하겠습니까? 배가 고파서 팥죽을 요구하는 형에게 이때가 기회다 하고,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25:31)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자가 되기를 오매불망 열망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기어코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가로찬(27:23) 야곱은 형 에서가 죽이려 하자 하란으로 피난의 길, 즉 순례의 길을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10-11)합니다.
이 광경을 영상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외롭고 처량했을 것인가? 이때 야곱은 무슨 생각을 했을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무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점을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호 12:4)고 야곱을 만나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만나주신 것만이 아니라, “본즉, 또 본즉, 또 본즉”(12-13)하고 주여주심으로 보았다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열어서 보여주심으로만이 볼수 있는 계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라지게 됩니다.
태양을 등지게 되면 자신의 그림자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외롭고 처량한 야곱에게 무엇을 보여주셨고 야곱은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 사닥다리만 본 것이 아니라,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12)것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첫째로 “사닥다리”는 위와 아래, 즉 끊어진 두 사이를 이어주는 기구입니다. 사닥다리가 야곱이 누어있는 땅과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이어주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여주신 계시입니다.
그런 후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는 야곱을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의 계승자로 세워주시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사닥다리 계시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사 59:2) 한,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끊어진 사이를 이어주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 하십니다. 또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자신이 사닥다리 역할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에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겠다”.
㉢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처럼 보장해주시는가? 야곱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요, 메시아언약의 계승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고, 들은” 야곱의 첫 마디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한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한 “여기”가 어디입니까?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한 “한 곳, 거기”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정답은 “야곱”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있는 곳,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하신 언약의 자손이 있는 곳입니다.
야곱의 두 번째 고백은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16-17)한 고백입니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19), 즉 하나님의 집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아무런 건물도 없는 빈들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집”이라 하는가? 허허 벌판인데 어떻게 “하늘의 문”이라 하는가?
㉠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이요,
㉡ “사닥다리 계시”가 있기 때문에 “하늘의 문”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메시아언약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됩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고 말씀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전이라는 고백은 야곱의 고백보다 더욱 더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이는 야곱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하신 “자손”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는 “사닥다리”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인 것입니다. 또한 “두 세 사람이 모인”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과 교제와 교통이 이루어지는, “하늘의 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겠다”.
㉢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보내시는 곳, 가는 곳, 머무는 곳마다 그곳이 빈들이든 사막이든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바로 이 가정이 “이는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인 것입니다.
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